2020년 2월 29일 토요일

하버드 입학한 학생들의 ‘그후’ 아시나요?

-공부도 재능, 성공한 부모가 공부의 재능이 앞설 가능성이 크고 그것은 상당 부분 유전된다
-서울대, KAIST 등은 학생들의 개인화된 교과과정을 제공하지 못하고 대규모로 수월성 교육
-하버드대학 졸업생이 뭐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명문대 입학=사회이동성은 절대 아니다

어느 국회의원이 4대 명문대학과 의대, 법전 입학생의 고소득자 자녀의 편중 현상을 부각해서 발표하고 심각한 사회문제로 지목했다고 한다.
 
고소득자 자녀들이 압도적으로 명문대에 많이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수저론’의 일환인 셈이다.
 
당연히 사회는 모든 국민에게 기회의 균등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부모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가난을 대물림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 이유로 부유한 부모 아래에서 성장했다고 해서 기회를 박탈 당해도 안된다. 결과적 통계가 문제가 아니라 기회가 고루 주어지느냐의 이슈로 다루어야 한다.
 
▲ 미국의 명문 하버드대학교

공부도 재능이라는 점을 우리 사회가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성공한 부모가 그렇지 못한 부모보다 공부의 재능이 앞설 가능성이 크고, 그것은 상당 부분 유전된다. 유전적 형질을 부인할 수는 없다. 6.25 직후, 모든 국민이 가난하고 농민일 때는 그런 사회적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서울로, 그것도 특정 지역으로 몰려왔고 그 자식들은 공부를 더 잘할 유전적 형질을 타고 났을 가능성이 있다. 그 사실을 부인하면 이야기가 이상한 결과적 평등주의로 흐를 수 있다.

아래 그래프는 미국의 대학에서 10분위 소득부터 1분위(최하 10분위 소득계층)까지 각 계층 자녀의 비율이다. 다양한 입시 전형 방식을 통해 취약계층의 자녀에게 입학의 기회를 제공하지만 하버드나 UC버클리 같은 명문대학 입학생 가운데 이들의 비중은 지극히 적다. 하버드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반면 Glendale Community College의 입학생의 1/3은 빈곤계층의 자녀들이다.

 
 
 
 
두번째 도표를 보자.
최빈소득층 자녀들이 그 대학에 입학하는 비율과 졸업한 후에 이 빈곤층 자녀가 나중에 최고 소득계층으로 진입에 성공하는 비율을 곱해서 사회이동성의 성공률을 계산하는 것이다. 그 사회이동성의 성공률 톱 10 학교다. 여기에 우리가 아는 명문대학은 커녕, 좋다고 알고 있는 주립대학도 없다. 그런데 가난한 학생이 1/3인 Glendale Community College 졸업생의 21%가 최고 소득층의 진입에 성공한다. 우리 같으면 학교로 치지도 않는 곳이다.
 

사회적 성공은 명문사립대학에 입학한다고 보장되지 않는다. 수월성 위주의 대학에서 준비 안된 학생이 입학이 허용되어도 수재들과의 경쟁에서 뒤지고 치이면 상처만 남고(KAIST에서도 이런 불행한 일이 있었다), 대도시의 비싼 생활비 때문에 거대한 부채를 안고 시작할 수도 있다.

그보다 자신에게 생활비까지 충분한 장학금을 주고, 유사한 학생들을 지도해본 경험이 있는 교직원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자신감을 쌓아가고 그래서 점진적으로 성공의 길로 가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바꾸어야 하는 것의 하나는 수능시험 잘 보는 것이 재능의 전부인 양 하는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림 잘 그리고, 노래 잘하고, 디자인 잘하고, 운동 잘하고, 네일 아트 잘하고— 다양한 재능을 인정하고 각 개인이 잘할 수 있는 길로 일찍부터 인도하는 것이 수저계급론의 함정을 벗어나는 일이다. 서울대, KAIST, 연대는 학생들에게 이런 재능을 발굴해서 개인화된 교과과정을 제공할 수 있는 학교가 아니라 대규모로 수월성 교육을 하는 학교다.

나는 과학고 나와서 KAIST에서 공부한 영재들을 다독여서 좋은 논문을 쓰고 외국 대학에 교수로 보내는 일은 할 수 있어도 조그만 자영업자 식당 주인의 아들로 태어나서 세계적인 세프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는 젊은이의 앞날을 지도할 능력이나 경험이 없다. 이런 젊은이는 KAIST에 오면 안된다.

교육기관도 수월성 위주로 하는 교육기관과 인문사회학을 위주로 하는 교육기관과 취약계층에게 현실적 취업 위주의 교육을 하는 기관으로 분화되고 다양화하는 것이 선진국의 교육 현실이다. 사회 이동성에 대해 지금 국감에서 지적한 정도의 선동적이고 선정적인 통계로 수저론의 편견과 분노에 호소하는 것은 진정으로 사회이동성에 관한 문제 제기가 아니다.

하버드대학 들어갔다고 자랑하는 부모 많다. 하지만 그렇게 명문대학에 입학한 학생 중에서 적응 못하고 중퇴한 애들이나, 그렇게 하버드 나온 자식이 뭐하고 있는지 끝까지 알고 있는가? 명문대 입학 = 사회이동성 절대 아니다.

이 자료들은 Mobility Report Cards: The Role of Colleges in Intergenerational Mobility라는 논문에서 취한 것이고 하버드대학 등의 대학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The Equality of Opportunity Project’를 통해 많은 데이타와 평등한 사회를 위한 증거 기반의 정책을 탐구하는 연구의 결과이다.
 
사회적 성공이나 소득보다 더 중요한 일은 건강한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건강한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는 4H라고 한다. 육체적 건강 (healthy), 정신적 건강 – 해학과 행복(Humour, Happy), 사회적 건강 – 정직(Honest)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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