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환경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자라느냐는 그 사람의 인성과 태도, 성공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속해있는 집단의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기 쉬운 것이 인간이다 보니, 어릴 때부터 가장 밀착된 관계를 형성해온 가족의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죠.
물론 악조건을 이겨내고 훌륭한 과업을 달성하는 사람도 있고, 부모가 잘난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자식들까지 잘 크는 것은 아닙니다. "왜 나처럼 되지 못하느냐"고 윽박지르는 대신 자연스레 좋은 길로 인도하는 부모가 되기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니까요. 오늘은 가족 구성원 모두의 학력과 명예가 눈부신 한 집안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하는데요. 이런 집안을 일궈낸 부모의 교육 방식에 대해서도 살펴볼까 합니다.
고광림, 전혜성 부부
오늘의 주인공은 고광림 박사와 전혜성 박사 부부입니다. 아내 전혜성 박사는 경기여고 졸업 후 이화여대 영문과 재학 중 전액 장학금을 받고 미 보스턴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사회학 박사,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남편 고광림 박사는 서울대학교 전신인 경성제국대학의 법대를 수석 졸업하고 하버드에서 법학박사를, 럿거스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은 인재입니다.
![]() |
물론 학위 취득 이후의 경력도 화려한데요. 전혜성 박사는 보스턴대, 예일대 로스쿨에서 강의하고 예일대 비교문화 연구소 연구부장으로 재직했죠. 또한 컴퓨터가 보편화되기도 전인 1960년대에 로마자가 아닌 비로마자를 모두 컴퓨터 코드화하는 비교문화 정보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이 시스템을 토대로 일본 국립 민족학 박물관과 국제 일본 문화연구센터에서 객원교수로 활동했죠.
![]() |
52년에는 동서양의 문화 이해를 상호 증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남편 고광림 박사와 함께 '한국연구소'를 설립했고, 그를 계승한 동암문화연구소에서도 이사장직을 맡았죠. 저서로는 <엘리트보다는 사람이 되어라>, <섬기는 부모가 자녀를 큰 사람으로 키운다>, <여자 야망 사전>, <가치있게 나이 드는 법>, <생의 목적을 아는 이가 큰 사람으로 자란다> 등이 있습니다.
![]() |
1989년 타계한 고광림 박사의 경우 1952년 제16차 UN 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으며 1960년 서울대학교 교수, 주 미국 대한민국 대사관 공사를 거쳐 1961년에는 예일대학교 방문교수로, 호프스트라 대학교 부교수로 활약합니다. 5년 뒤인 1966년에는 코네티컷 주립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부임했죠. 저서로는 <미국 평론> 시리즈와 <영국정부론> 등이 있습니다.
모두 미 아이비리그 출신인 자녀들
![]() |
전혜성, 고광림 박사의 사이에는 6남매가 있습니다. 자녀들 역시 들으면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의 스펙을 자랑하죠. 먼저 장녀 고경신 씨는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MIT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앙대학교 화학과 교수, 자연 과학대 학장을 지낸 바 있습니다. 장남 고경주 씨는 예일대 의대를 졸업했으며, 종양학, 혈액학, 피부학, 내과의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했죠. 예일대, 코넬대, 컬럼비아대, 프린스턴대, 하버드대, 보스턴대 의과대학교수를 거쳐 하버드대 공공보건 대학원 원장을 지냈으며, 미 민주당 보건행정특보 위원으로서도 활동했죠. 또한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보건부 차관보로 일했습니다.
![]() |
차남 고동주 씨는 하버드와 MIT에서 의학박사,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매사추세츠 의대 교수이자 마취과 전문의로 일하고 있습니다. 차녀 고경은 씨는 하버드대 법학박사로 유색인종 여성 최초로 예일대 법대 석좌교수에 임명되었죠.
![]()
장남 고경주 박사와 삼남 고홍주 씨는 오바마 정권에서 각각 보건행정, 인권 담당 차관보를 지냈다
|
삼남 고홍주 씨는 영국 옥스퍼드에서 유학한 뒤 하버드 대학에서 법학박사를 받았으며, 98년부터 2001년까지 미 국무부 민주주의, 인권, 노동담당 차관보를 거쳤고 2001년 예일대 법대 교수가 되어 2004년부터 2009년까지는 법과 대학원 학장을 맡았죠. 국무부 법률 고문과 인권 담당 차관보를 지낸 뒤 2014년부터 현재까지 예일대 로스쿨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사남 고정주 씨 역시 하버드대 사회학과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보스턴 뮤지엄대 미술과에서 MFA 학위를 딴 뒤 화가로 활동하고 있죠.
부부의 교육관
![]() |
가족 구성원 중 하버드나 예일 안 나온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로 화려한 학력과 경력이다 보니, 사람들은 이 가족을 두고 "아버지 저 서울대 합격했어요"하고 자랑하면 "나가 이 불효 자식아"라는 말을 들을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죠. 아무리 부모 자신이 똑똑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여섯 명이나 되는 자녀가 이렇게 한결같이 훌륭하게 자라기는 어려운 일일 텐데요.
![]() |
가까이서 아이들 교육을 담당했던 전혜성 박사는 "공부하라"고 말하지 않고 "공부하자"고 말했으며, 집에 책상을 여럿 두고 남편과 자신이 먼저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회고합니다.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부모가 자신의 일을 성실히, 묵묵히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도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것이 전 박사의 생각이죠.
![]() |
또한 매주 금요일 저녁 가족회의를 매주 열어 집안의 대소사를 논의했는데, 정식으로 기록도 하고 공식적인 용어, 절차를 통해 합의에 이르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도록 했죠. 토요일이면 아이들과 도서관을 찾았고, 그날의 목표량을 스스로 정해 그것부터 끝마치는 습관을 들여 주었습니다. 공부만 할 줄 알고 생활에서 무능력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조금씩 분담했고 아이들이 조금 컸을 때는 간단한 요리를 할 수 있도록 가르쳤죠.
![]()
코네티컷 주 '2018 이민자 유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일가족 ㅣ 출처 Koreatimes
|
'자식 여섯을 어느 하나 빠지지 않게 남부럽지 않게 잘 키웠다'는 말을 자주 듣는 전혜성 박사는 자녀들이 미국에서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사회에서 인정받는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데요. "우리 아이들이 사람 구실을 하고 산다는 소리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것이 전 박사의 마음이라네요.
ZU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