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4일 수요일

찰스 다윈 -5년 항해에서 작성한 일지만 2000장… '종의 기원' 완성하는 계기 됐죠

  
여러분은 '진화론'에 대해 아나요? 진화론은 생물체가 하등 생물에서 고등 생물로, 단순한 구조에서 복잡한 구조로 발전해 왔다는 이론이에요. 지금은 대부분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진화론이 처음 제기되었을 때 사람들은 세상이 뒤집히는 듯한 충격을 받았답니다. 그때까지 사람들이 믿던 사회와 역사, 인간에 대한 모든 생각을 뒤흔드는 주장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다윈은 1809년 영국 슈루즈베리의 부유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의사나 목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다윈은 어릴 때부터 마당과 집 근처 숲을 오가며 자연을 관찰하는 일로 시간을 보냈어요. 새 둥지의 알을 꺼내 관찰하거나 바닷가에서 조개껍데기와 돌 조각, 광물 등을 주워 모으기도 했어요. 다윈은 우표, 동전 등 닥치는 대로 수집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특히 곤충 채집을 좋아했다고 해요. 이런 습관 때문에 학교에서 집중력이 없는 아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답니다. 케임브리지 신학대학에 다니면서도 딱정벌레를 수집한 일이 전해질 정도예요.
찰스 다윈 사진
다윈(사진 왼쪽)의 진화론은 이후 세계관에 큰 영향을 줬어요. 찰스 다윈은 외부 세계와 단절된 갈라파고스 제도의 동식물 모습에서 진화론의 실마리를 얻었어요. /위키미디어 ·Corbis/토픽이미지
신학보다 자연이나 생태, 지질 연구를 더 좋아한 다윈은 1831년 영국의 해군 측량선인 비글호에 박물학자로서 동승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비글호를 타고 아프리카와 브라질 등을 거치며 세계 생태계를 연구했지요. 그리고 항해 중 기록한 내용과 알코올에 보존한 표본을 영국으로 보냈어요. 케임브리지에서 다윈을 지도한 헨슬로 교수와 동료 학자들이 그 자료를 분석했고요. 1836년 항해를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왔을 때 다윈은 이미 유명한 과학자가 되어 있을 정도로, 그가 기록하고 수집한 자료의 양은 어마어마했답니다. 매일 작성한 일지 2000장, 지질과 동물에 대한 자료 1700장, 동물 표본 3900점 등 항해에서 얻은 자료를 정리하는 데만 10년이 걸렸다고 해요.

다윈은 연구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종의 기원'을 완성합니다.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연구한 동물들이 바로 진화론의 실마리가 되었지요. 그곳에서 먹이 종류에 따라 부리 모양이 다른 새를 보았거든요. 다윈은 같은 종(種)인데 부리가 다양한 새를 보고, 이들이 한 공통 조상에서부터 조금씩 차이가 생겨 갈라져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하였어요. 같은 종이라도 환경에 적응하며 개체변이가 생기고, 이 가운데 생존에 유리한 변이가 자연의 선택을 받아 살아남고 후대로 전해져 진화가 일어난다는 '자연선택설'을 정립한 것이에요.
갈라파고스 제도 지도
다윈의 진화론이 끼친 파장은 엄청났습니다. 당시 신이 우주 만물을 만들었다는 창조론을 믿던 사람들은 진화론을 신성모독으로 받아들였고, 다윈은 거센 비난을 받았어요. 하지만 이후 진화론을 통해 과학은 물론 사회, 정치, 경제, 종교 등 모든 분야의 인류 역사가 다시 쓰였고, 다윈은 세상을 바꾼 인물로 인정받았습니다. 호기심 많고 관찰을 좋아하는 아이였던 찰스 다윈. 그의 이야기를 보니 호기심과 탐구 정신, 그리고 열정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지요?
[1분 상식] '갈라파고스 제도'란 어떤 곳인가요?
19개 섬으로 이루어진 갈라파고스 제도는 남아메리카 동태평양에 있어요. 아메리카 대륙에서 1000㎞가량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 위치해 다른 지역과 교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곳의 생물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거나 다른 지역 생물과 섞이는 일 없이 순수하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 왔지요. 체중 200㎏에 달하는 코끼리거북, 몸길이 1.5m에 달하는 바다이구아나 등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고유한 동식물이 서식해요. 그래서 ‘생물 진화의 야외 실험장’이라는 별명을 얻었어요.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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