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30세 전부터 난청에 시달린 베토벤은 청력을 잃고서도‘운명’‘합창’등 훌륭한 교향곡을 작곡하였어요. (아래)베토벤이 사용한 보청기. /위키피디아·Corbis 토픽이미지
베토벤은 1770년 독일 본에서 가난한 음악가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그의 어린 시절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술주정뱅이였던 아버지가 베토벤을 유명한 음악가로 키울 욕심에 강압적으로 음악을 가르쳤거든요. 베토벤은 네 살 때부터 방 안에 갇힌 채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했다고 해요. 베토벤이 음악에 재능을 보이자 아버지의 욕심은 점점 커졌지요. '신동'이라고 광고하며 아들을 돈벌이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에요. 더 큰 관심을 얻고자 여덟 살이던 베토벤을 여섯 살로 속이기까지 했대요. 베토벤의 연주 실력에 감탄한 사람들은 '제2의 모차르트'라며 열광했지요. 다행히 이런 힘든 상황에서도 베토벤은 음악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고, 음악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았다고 해요. 그는 열한 살 때부터 오케스트라 단원, 오르간 연주자 등으로 활동하다가, 10대 후반부터 모차르트와 하이든 같은 음악가에게 지도받으며 본격적인 작곡가의 길을 걷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이 작곡가로서 이름을 알리며 교향곡을 만들기 시작할 무렵, 원인불명의 난청(難聽)이 찾아옵니다. 서둘러 의사를 찾아갔지만, 귓병은 낫지 않았어요. 그는 밤낮으로 윙윙거리는 소리에 시달렸지요. 갖은 노력에도 난청은 점점 심해져서 다른 사람의 말은 물론 악기 소리조차 잘 듣지 못할 정도가 되었어요. 그리고 곧 청력을 완전히 잃고 말았습니다.
베토벤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을 이제 더는 들을 수도, 만들 수도 없다는 사실에 절망합니다. 괴로움을 이기지 못한 그는 죽기로 결심하고 유서를 써요. 그런데 자신의 고통을 글로 써내려가던 베토벤은 마지막에 '귀가 들리지 않지만, 더 많은 창작을 하기 위해 살아야겠다'고 적습니다. 실제로 그 후에 더욱 작곡에 몰두했어요. 게다가 당시 그가 쓴 곡들은 매우 쾌활하며 희망적인 작품이었지요. 그는 정말 죽고 싶었던 게 아니라 살아서 더 많은 음악을 만들고 싶어 유서를 썼던 것이에요. 오늘날 그의 대표작으로 남은 교향곡 '운명' '전원' '합창' 등은 청력을 잃고 나서 만든 작품입니다.
베토벤은 크나큰 시련에 맞서 싸웠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 시련을 아름답고 숭고한 예술로 승화시켰어요. 이러한 열정과 예술혼은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도 전해져서, 교향곡 '합창'을 들은 사람들은 '베토벤의 작품을 능가하는 교향곡은 누구도 쓸 수 없을 것'이라며 칭송했다고 해요. 그리고 지금까지도 베토벤의 삶과 음악은 많은 사람에게 커다란 감동과 희망,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1분 상식] '하이든'은 어떤 음악가인가요?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1732~1809)은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음악가예요. 오스트리아 시골 마을인 로라우에서 태어났지요. 하이든은 100곡이 넘는 교향곡과 80곡 이상의 현악 4중주곡을 작곡하여 고전파 기악곡의 전형을 만들었으며, 특히 제1악장에서 소나타 형식을 완성한 사람으로도 유명해요. 1790년대 초 영국 런던에서 12곡의 교향곡을 발표하여 호평받았는데, 그 안에 '놀람' '런던' '시계' '군대' 등 대표작이 들어 있어요. 이후 '천지창조'와 '사계'라는 2편의 대작을 완성하고, 1809년 세상을 떠났어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