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10일 화요일

뉴욕 보딩스쿨 재학 한국 학생을 만나다

“꿈 좇아가는 ‘진짜 공부’, 즐거움·책임감 동시에 느끼죠”


지난달 18일(현지 시각) 오전 11시. 스웨덴 교육업체 이에프(EF)가 운영하는 EF국제사립학교 미국 뉴욕 캠퍼스 내 잔디밭에선 노르웨이 문학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노르웨이 학생들과 교사가 모국어로 된 작품집을 번갈아 읽어 내려갔다. 이따금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이어 방과 후인 오후 4시엔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햇빛과 여가를 즐기는 학생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수업 중 획일적인 강의를 듣고, 쉬는 시간에도 여유가 없는 한국 고교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그럼에도 이 학교의 명문대 합격률은 매년 높아지고 있다. 올해 졸업 예정자들은 펜실베이니아대·카네기멜런대·뉴욕대·줄리아드·파슨스 등에 합격했다. 이곳에 재학 중인 한국 학생들은 "입시에 매몰되지 않은 교육 방식이 오히려 학습 능률을 향상시킨다"고 입을 모았다.

◇주입식 교육 대신 토론 수업
11학년에 재학 중인 김소희(18)양은 서울에서 고교를 다니던 중 주입식 교육이 싫어 지난해 미국행을 택했다고 했다. "입시 경쟁이 심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그대로 학교에 다니다가는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찾기도 어려울 것 같았고요." 같은 학년인 박성훈(18)군도 마찬가지였다. "시험을 치기 위해 하루하루 버틴다는 느낌이었어요. 꿈이 영화감독인데,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식의 수업은 제 장래 희망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래인 손지덕(17)군은 획일화된 입시 교육에서 벗어나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어 유학을 왔다. "더 재미있게 학교생활을 하고 싶어 유학을 선택했어요. 세계 곳곳에서 온 친구들을 만나거나 여러 문화를 접해보고 싶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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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박성훈군₩김소희양₩손지덕군. 이들은“한국과 달리 입시에만 매달리지 않고 좋아하는 분야에 몰두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논리적 사고 갖게 하는 IB 디플로마
이들은 모두 IB 디플로마(International Baccalaureate Diploma·국제 공통 고등학교 학위 과정)를 이수 중이다. 이 학교 학생들은 11학년부터 2년간 IB 디플로마와 A레벨(A Level·영국 대학 입학 준비 과정) 중 하나를 택해 이수해야 한다. 수업은 대학교 1학년 수준으로 진행되며 토론 수업이 주를 이룬다. IB 디플로마를 주관하는 IBO에 따르면 IB 디플로마를 이수한 학생의 대학 합격률이 이수하지 않은 학생보다 평균 22%포인트 더 높다. 김소희양은 토론 수업을 하는 과정에서 사고 체계가 달라진 것 같다고 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선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사실이 당연한 거잖아요. 한 번도 '왜 그런지' 의심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 독도에 대해 얘기하려니까 외국 친구들이 '독도가 왜 한국 영토냐'고 묻는 거예요. 말문이 딱 막혔죠. 이후 작은 사실 하나를 두고도 근거를 따지는 습관이 생겼어요." 박성훈군은 "교과 내용을 깊이 알아야 하기 때문에 공부량이 만만치 않다"면서도 "내 손으로 고른 과목을 공부한다는 즐거움과 책임감이 있다"고 했다. 그가 이번 학기에 수강하는 과목은 영화·영어·생물학·역사·모국어(한국어)다.

◇"꿈을 구체적으로 꿀 수 있게 됐다"
박성훈군은 "뉴욕이라는 지리적 조건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브로드웨이는 책이나 영화로만 보던 성공 신화가 현실로 이뤄지고 있는 장소잖아요. 그런 곳이 학교에서 자동차로 겨우 40분 걸리는 데 있는 거예요. 여기서 각종 공연을 보다 보면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실현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요. 예전에 막연히 영화감독이 꿈이라고 했다면, 지금은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식으로 생각을 구체화하게 됐어요."
김소희양은 클럽 활동을 통해 미처 몰랐던 관심사를 발견했다. "과학에는 영 흥미가 없었는데, 우연히 환경과학이라는 과목을 들으면서 재미를 느꼈고 관련 클럽까지 가입했어요. 클럽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친환경적으로 처리하는 애벌레를 알게 됐는데, 학교에서 선뜻 구입해줘서 지금 애벌레를 활용한 실험을 진행 중이에요. 여기선 대외 활동을 무척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학교가 클럽을 적극 지원하거든요." 현재 이 학교엔 모의 UN·축구·수학·골프·트랙·봉사·미술·체스·크로스컨트리·댄스 등 45개 이상의 클럽이 개설돼 있다.

손지덕군은 "여러 국가 친구들을 만나면서 교육이나 대학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EF국제사립학교에는 75개국 학생이 재학 중이다. 한국인은 5% 미만으로 제한한다. "한국에선 대부분 이름이 잘 알려진 명문대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여기선 누구도 '대학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입시 부담이 줄었고, 시간이 있을 때 가능한 한 많은 경험을 해보겠다고 마음먹게 됐습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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