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11일 수요일

“지리수업 중에 몰래 수학문제 풀어 ㅠㅠ”…“유치원아이들, 혼내도 금방 와 뽀뽀 ^ ^”



교사는 취업을 준비하는 청춘들에겐 선망의 직업입니다. 하지만 막상 교사가 된 청춘들은 한목소리로 말합니다. 온갖 잡무에다 학부모 등쌀에 시달리느라 애초에 품었던 교육자로서의 꿈은 실현하기 힘들다고. 스승은커녕 ‘교육 회사원’으로 전락했다는 푸념도 들립니다. 청춘리포트가 ‘청춘 교사’ 6명을 만났습니다. 다가오는 일요일(15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이들에게 ‘스승’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하려면 어떤 사회적 여건이 필요할까요.


중앙일보
스승의 날을 일주일가량 앞둔 지난 9일. 서울·경기 지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2~8년차 교사 6명을 각각 만났다. 유치원 교사 장모(23)씨,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인 김모(30)씨, 3학년 담임 박모(28)씨, 중학교 기술·가정 교사 최모(29)씨, 사회 교사 A씨(30), 고등학교 지리 교사 권혁문(35)씨다.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교단에 섰다는 이들은 수년이 지난 지금 현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청춘리포트는 이들의 학교생활에 대해 물었다. 솔직하고 생생한 답변을 듣기 위해 일부 익명을 사용했다.

기대 - 선생님이 돼 보니 어떻던가.

장=처음엔 아이들과 함께할 생각에 너무 행복했다. 7세반 수업 중에 주산(수판셈)이 있는데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난생 처음 주판 사용법을 열심히 배웠다.

최=의욕이 많았다. 학급에 부모 없이 할머니 손에 자란 아이가 있었다. 요리사가 되고 싶다 하기에 방과 후에 ‘엄마와 함께하는 무료 요리교실’에 등록해 주고 내가 엄마 자격으로 함께 가기도 했다.

권=남자 입장에서 남고 교사라 굉장히 편하다. 애들을 편하게 대할 수 있고 운동도 같이하다 보니 친밀감을 형성하기 좋다.

인내 새내기 교사들이 현장에서 가장 먼저 부딪치는 문제는 뭘까. 2030 교사들은 학교생활의 어려움으로 ‘잡무가 너무 많다’는 점을 꼽았다. 수업 준비를 하거나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대신 공문을 처리하고 각종 서류를 작성하는 행정업무를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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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점이 제일 힘들었나.

권=고3 담임인데 진학 상담, 수업 준비보다 교육청 보고,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성적 입력, 학내 설문조사 등 각종 공문 작성 때문에 초과근무를 할 때 안타깝다. 본질이 아닌 업무에 힘을 빼앗긴다.

장=유치원은 모든 게 선생님 손을 거쳐야 한다. 보통 8시에 출근해 밤 10~11시에 퇴근하는데도 일이 너무 많아 집에 가져가야 할 정도다. 수업마다 계획안을 작성해야 하고 준비물을 만든다.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만든다고 하면 습자지(손으로 구겨 모양을 만드는 종이)를 사다가 원 모양으로 잘라놔야 한다. 아이들이 못하니까. 또 거기에 붙일 카네이션 줄기며 장식도 다 잘라놓고 아이들은 조립만 하게 하는 거다. 바느질을 가르치려면 바늘 26개에 실을 모두 끼워 놔야 하고. 하루 두 번은 어머님들께 전화해 통화 내용도 기록해야 한다. 관찰일지도 쓰고 놀잇감도 만들고….

부담 보육교사의 폭력, 가정 내 아동학대, 세월호 사고 등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준 각종 사고 이후 더 엄격해진 사회 분위기는 선생님들에게 부담이 됐다.

김=세월호 이후 안전교육이 굉장히 강화됐다. 아침시간에 아이들에게 안전교육을 꼭 한다. 특히 초등생은 한창 이갈이를 하는 나이인데 이럴 때 넘어지면 입술이 찢어지고 잇몸까지 다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학부모가 등하교를 함께하고 안 되면 도우미를 쓸 정도로 부모들 사이에 불안감이 있다. 내가 봐도 초등생은 불안한 시기라 보호가 필요하다.

최=옆 반 남자아이 뒷목이 시퍼렇게 멍들어 물어보니 “아빠에게 맞았다”고 하더라. 과거엔 문제 제기를 못했는데 지금은 담임교사가 교장·교감선생님께 보고하고 학부모와도 통화했다.

A=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를 가르치기 위해 야외수업을 하려 했는데 교감선생님이 위험하다고 금지했다. 사진반 동아리를 만들려고 했더니 ‘야외에 사진 찍으러 나가면 사고 난다’며 막았다. 방학 직전 한국걸스카우트연맹에서 캠프 비용을 지원해 준다고 해서 주말에 아이들과 가려고 했는데 학교는 위험하다고, 학부모들은 학원 보내야 한다고 반대해 포기했다.

20~3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학부모들과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의 옷에 얼룩만 묻어도 항의하는 부모들이 있는가 하면 친구를 때리거나 사고를 쳐도 모른 척하는 부모도 있다.

- 부모들 만나는 게 쉽지 않겠다.

권=대입 수시전형이 확대되면서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내용이 대입에 많이 반영되게 됐다. 학교생활기록부를 작성할 때면 학부모들이 이것저것 개입하고 요구하려고 해 부담이 된다.

장=유치원 5세 반에서 선생님이 아이와 뿅망치(장난감)를 주고받으며 놀았다. 아이가 집에 가서 ‘선생님이 망치로 머리를 때렸다’고 했고, 어머니가 유치원 와서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데 막막하더라.

최=아이가 돈을 훔쳐 선도위원회가 열리게 됐다고 학부모에게 연락했더니 새벽 1시에 술 취한 목소리로 전화해 ‘내 아이 건들면 가만 안 놔두겠다’고 하더라. 이후 일주일간 밤마다 ‘가만 안 두겠다’ ‘선생님께 죄송하다’ ‘애가 잘못되면 선생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문자가 반복해서 와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박=어머니들이 카톡방에 나를 초대해 이것저것 묻거나 카톡 프로필 사진이 바뀔 때마다 ‘선생님 어디 놀러갔다 오셨나 봐요~’라며 말을 걸어 부담스러웠다. 또 아이가 오더니 “선생님 우리 엄마가 선생님 카톡 사진 보더니 너희 선생님 완전 애네?라고 했다”더라. 업무용 2G 휴대전화를 따로 구입했는데 이번엔 학부모들이 “선생님은 왜 카톡에 친구로 안 떠요?”라고 물어 난감해했다.

실망 교사들이 가장 힘들 때는 믿었던 아이들에게 실망했을 때다. 초보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전적으로 사랑을 준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사건·사고를 겪으며 아이들의 세계도 마냥 평화롭지만은 않은 사회라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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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아이들이 잘못인 줄 알면서도 영악하게 친구를 괴롭힐 때 충격을 받았다. 힘 없는 친구가 지나갈 때 휴지에 물을 묻혀 얼굴로 던진다거나, 자기보다 어린 아이들을 밖으로 불러내 안 보이는 데서 때리고, 자기보다 약한 애에게 곤란한 일들을 시키는 걸 보니 너무 실망스럽더라.

A=자율학기제를 시행한다고 해서 아이들과 스마트 수업을 하려고 했다. 없는 예산에 태블릿PC를 빌리고 수업을 준비했는데 이 수업이 성적에 안 들어간다는 걸 알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수학문제집을 풀더라. 차라리 게임을 하다 걸렸으면 귀여웠을 텐데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매번 조퇴시키는 엄마들도 있었다.

- 일반 직장인이 부러울 때는 없나.

장=나는 아이들 밥 먹이고 흘린 것 닦고 화장실 보내느라 밥을 마시듯 털어넣는데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에 같이 밥 먹고 커피도 한잔 하니 부럽다. 월차도 쓰고 새로운 사람을 계속 만나는 회사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다.

권=직장인들과 달리 교사는 학교라는 공간에서만 일하고 만나는 사람들이 한정돼 있어 시야가 좁아지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김=교사의 학급운영권을 보장해 주는 것은 큰 장점인데 반해 교장·교감 등 관리자에 따라 분위기가 좌우된다는 점은 안타깝다.

최=직장인들이 연봉 얘기할 때 제일 부럽다. 월급이 조금만 올랐으면 좋겠다.

보람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래도 아이들에게서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 힘든데도 교사가 좋은 이유는.

최=중1 담임인데 애기들을 보는 것 같다. 교실에 들어가면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어서 ‘선생님~ ○○이 아까 저한테 뭐라고 했는 줄 아세요?’ ‘제가 아까 뭐 먹었느냐면요~’라며 미주알고주알 얘기하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 아이들에게 신문에 쓸 사진 찍어 달라고 했더니 “왜요? 인스타(그램)에 #수업 중이라고 올리게요?”라며 놀리더라. 정말 귀엽지 않나.

장=아이들은 정말 단순해 좀 전에 혼나도 금방 달려와 뽀뽀하고 애정 표현을 정말 많이 한다. 그럴 때면 화가 풀리고 기운이 난다. 정말 그것 하나 때문에 하는 것이다.


- 곧 스승의 날이다.

A=선생이 되고 보니 학생시절이 더 생각난다. 최근 지난해 가르친 아이들에게 편지를 받았는데 참 고마웠다. 덕분에 나도 초등학교 선생님이 생각나 인터넷에 검색했는데 때마침 경기도교육청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교사상을 받으셨더라. 반가웠다. 선생님 앞으로 축하 꽃을 보내려고 한다.

최=스승의 날이 일요일이라서 다행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선물 사오지 말라’고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돼 교사와 아이들 모두 부담을 덜었다. 나도 학창 시절 선생님을 생각하는 날로 보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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