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은 우리나라 고유의 명절인 대보름과 서양의 발렌타인데이(Valentine Day)가 겹치는 날이다. 발렌타인데이는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가 원정에 징집된 병사들이 출병 직전 결혼을 하면 사기가 떨어질 것을 염려해 결혼을 금지하였으나 사랑에 빠진 두 남녀를 안타까워한 발렌타인
신부가 이들 사이의 결혼을 몰래 허락하고 주례를 섰다가 처형된 서기 270년 2월 14일을 기념하는 날로 전해지고 있다.
남녀가
사랑을 고백하고 초콜릿을 주고받는 날이 되어버린 2월 14일을 올해는 우리 고유 명절인 대보름 날 행사로 즐기면서 젊은이들이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새롭게 조명되었으면 하는 맘이다.
우리 조상들은 정월 대보름 날 밝은 달을 보면서 새해의 소망을 빌어 왔으며, 여러 가지
과학적이고 슬기로운 방법으로 가정의 평온과 만수무강을 기원하였다.
지금은 잊혀진 풍습이지만 부럼 깨물기, 더위팔기 등이 있는데
유머가 가득한 풍습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개인적으로 기복을 바라면서 귀밝이술마시기, 오곡밥 지어 먹기, 시절음식인 복쌈이나 묵은 나물먹기와
달떡을 먹는 것이 있다. 줄다리기, 다리 밟기, 고싸움, 돌싸움, 쥐불놀이, 탈놀이 등 동네의 이웃들이 함께 모여 한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협동의
정을 나누던 행사도 있었다.
특히 정월대보름 전날 밤이면 어린이들은 쥐불놀이에 푹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른다. 빈 깡통에 듬성듬성
바람구멍을 뚫은 뒤 깡통의 모서리에 철사를 길게 매단다. 깡통 안에는 작은 장작개비 조각이나 솔방울을 넣고 불을 붙인 다음에 빙빙 돌리면,
깡통안의 불꽃이 원을 그리며 어두운 밤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이때 불붙은 논둑에는 잔디들이 까맣게 변하면서 달밤을 더욱 신비롭게 한다.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 논둑을 태우는 쥐불놀이는 왜 하는 것일까?
예전에는 농사를 지을 때 농약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입춘이
지나 봄을 맞이하기 전 벼멸구 등 해충들이 낳아둔 알을 없애기 위해 논둑이나 밭둑의 잡풀을 불태우는 쥐불놀이를 하였다. 즉 영농작업 중 하나로
무농약과 친환경 농사의 한 방법이다.
자칫 바람이 불어 불똥이 원하지 않는 곳까지 튀는 위험이 있기도 하지만 논둑이 타는 것을 지키면서
깡통에 넣은 장작개비가 타는 불꽃이 원을 그리는 것을 즐기는 놀이야 말로 신나는 풍습이었다.
쥐불놀이를 할 때 깡통속 내용물이
쏟아져 다칠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그렇지 않다.
왜 그럴까? 과학적으로 설명해 보면 쥐불놀이는 등속원운동이며, 속력이 일정하지만 방향은
계속하여 바뀌므로 가속도운동을 하는 원운동이다. 따라서 가속도계의 운동이며 운동하는 물체에 작용하는 실제적인 힘은 구심력이고, 구심력은
원운동하는 물체의 안쪽으로 작용한다. 이때 쥐불놀이 깡통속의 내용물이 쏟아지지 않고 정지해 있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구심력에 대한 관성력이
같은 크기로 구심력의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즉 가상적인 힘인 관성력을 도입하여 설명하는 것인데 이때 원운동이기
때문에 구심력에 대한 관성력을 쉬운 말로 원심력이라 부르고 있다.
즉 쥐불놀이의 깡통 속에서 운동하는 장작개비에는 원심력이
작용하여 회전 운동하는 깡통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는다. 이는 롤러코스터의 원리와 비슷하다. 롤러코스터가 360도 회전을 해도 떨어지지 않는 것은
원의 바깥 방향으로 작용하는 원심력이 물체를 떨어뜨리려는 중력과 직각으로 작용을 한다. 따라서 중력과 원심력이 같게 되면 물체는 거꾸로 매달려도
떨어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쥐불놀이에는 과학원리가 또 있다. 처음에 깡통 속에 작은 불씨를 넣었는데도 나중에는 활활 타오르게
된다. 유체는 좁은 통로를 흐를 때 속력이 증가하고 넓은 통로를 흐를 때 속력이 감소한다는 베루누이의 정리를 대입해 보면 깡통에 듬성듬성
송곳으로 작은 구명들을 뚫어 놓았는데 손잡이 철사를 잡고 원운동을 시키면 바람이 작은 구멍을 통과하면서 속력이 더 빨라져 강한 바람으로 변하게
되고 휙휙 소리를 낸다. 이때 깡통 속의 장작불은 더욱 세차게 타오른다.
이러한 원운동을 실생활에 활용하는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필자는 1994년 8∼9월에 옥토버페스티발(October Festival)이 한창인 독일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동료들과 함께
베를린의 어느 맥줏집에 들려 맥주를 마신 경험이 있다. 그때 아주 재미있는 장면을 목격하였는데 맥주를 나르는 웨이터가 맥주를 가득 담은 생맥주
잔을 끈 달린 쟁반접시 위에 올려놓고 흔들면서 손님에게 갖다 주는데도 맥주가 전혀 엎질러지지 않았다. 사각형 접시의 모서리에 4개의 끈이 달려
있으며 그것을 약 50cm 높이에서 하나로 모아 손으로 잡고, 접시 위에는 유리로 된 2∼3개의 맥주잔에 맥주가 가득 담겨 있는데도 자연스럽게
왔다 갔다 하면서 흔드는 모습으로 맥주를 손님들에게 날라다 줬다.
아하! 그렇구나. 당시에 나는 ‘저렇게도 과학 원리를 실생활에
활용하는 사람이 있네’ 하고 감탄하면서 한국에 돌아와서 똑같이 끈 달린 접시를 만들어 학생들과 함께 체험하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그런데 학생들은 흔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수직 수평 방향으로 자유자재로 묘기를 부리듯 접시와 물컵을 회전시킨다. 그래도 컵 속에
들어있는 물이 쏟아지지 않는다.
왜 컵 속의 물은 쏟아지지 않을까?
그 해답은 쥐불놀이서 깡통 속에 들어있는 장작개비 조각들이
쏟아지지 않는 것처럼 등속원운동과 원심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런 원운동에는 회전목마, 선풍기, 세탁기(탈수기), 시곗바늘, 자전거
바퀴, 물레방아, 다람쥐 쳇바퀴 등이 있다.
쥐불놀이의 원운동을 보면서 보어(Bohr)의 원자 모델과도 비슷하다는 설명을 덧붙일
수 있지만, 끝없이 계속되는 과학도 너무 많이 공부하면 머리가 아픈 법, 이쯤에서 정리하면서 14일 밤에 떠오르는 둥근 달을 보고 각자 소원을
빌어보자. 우리 생활에 깊숙이 숨어있는 과학 원리는 너무 많고, 알고 싶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