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유기체 내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새로운 유형의 물리학 법칙을 기꺼이 찾아야 한다. 혹시 그 법칙을 비물리학적인, 아니 심지어 초물리학적인 법칙이라 불러야 할까?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새로운 원리는 전적으로 물리학적이다. 그 원리는 다름 아닌 양자이론의 원리라고 나는 믿는다.
- 에르빈 슈뢰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 (1944)
1938년 오스트리아가 나치독일에 병합된다. 그라즈대 교수로 있던 슈뢰딩거는 곧 곤경에 빠진다. 나치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혀왔기 때문이다. 그라즈대에서 해임된 슈뢰딩거는 고국을 등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1940년 아일랜드 더블린의 고등연구소에 정착하게 된다. 슈뢰딩거는 1944년 더블린에서 ‘생명이란 무엇인가?’란 책을 출간한다. 양자물리학자로 평생을 살아온 그가 난데없이 생명을 주제로 글을 쓴 것이다.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슈뢰딩거는 유전이 생명의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부모의 정보가 자손에 온전히 전달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다. 고양이는 고양이를 낳지, 고등어를 낳지 못한다. 슈뢰딩거가 책을 쓸 당시, DNA가 유전을 매개하는 물질인지조차 분명치 않았다. 유전물질이 세포 안에 있으므로 아주 작은 것은 분명했다.
고전통계역학 관점에서 봤을 때 이런 작은 물체들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기적이다. 꽃가루나 먼지처럼 무작위로 움직이며 브라운 운동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구공 같은 큰 물체는 뉴턴역학에 따라 완벽하게 예측 가능한 운동을 한다. 결국 슈뢰딩거는 유전의 안정성이 원자수준에서 보장된다는, 즉 양자역학적 결과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제 우리는 슈뢰딩거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안다.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란시스 크릭은 DNA의 분자구조를 밝히고 유전정보가 분자수준에 들어있음을 보인다. DNA에 있는 연속한 3개의 염기가 하나의 아미노산을 지정하며, 아미노산이 모이면 단백질이 된다. 단백질은 생명체 자체를 만드는 재료이면서 모든 화학반응을 제어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
인간과 고등어가 다르다면 그들을 구성하는 단백질이 다른 것이다. 염기에는 아데닌, 티민, 구아닌, 시토신이라는 네 종류가 있는데, 모두 탄소, 질소, 산소 대여섯 개가 오·육각형을 이루며 결합된 작은 분자에 불과하다. 아데닌과 티민, 구아닌과 시토신은 각각 두 개, 세 개의 수소를 매개로 결합된다. 부모의 DNA를 자손에 전달할 때, 이 결합이 끊어진다. 결국 생명의 핵심 원리인 유전은 바로 이들 원자 몇 개 수준, 즉 양자역학적 원리에 따라 제어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생물학자들은 양자역학을 잘 모른다. 왜 그럴까? 생명과 관련된 모든 물질은 원자로 되어 있고, 원자는 양자역학으로 설명된다. 문제는 ‘딱 여기까지’라는 거다.
생명체를 이루는 분자들은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지만,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의 원자로 이뤄져 있다. 예를 들어 단백질 공장인 리보솜을 만들려면 원자 수십만 개 가 필요하다.
이렇게 많은 수의 원자로 이뤄진 계에 양자역학을 직접 적용하는 것은 현재의 계산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원자 하나를 행렬역학으로 기술하는 데 10개의 숫자를 사용한다면, 원자 10만 개를 기술하기 위해 숫자가 10100000개나 필요하게 된다. 이 수는 우주전체 원자의 개수보다 크다. 쓰는 것 조차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 광합성과 철새의 양자생물학
철새는 서로 다른 방향의 스핀이 생기는 비율을 보고 북극과 남극의 방향을 알 수 있다. - istockphoto 제공
생물학자는 분자를 마치 거시세계의 축구공처럼 다룬다. 꼭 필요한 부분에만 양자역학 개념을 사용할 뿐이다. 하이브리드라고나 할까. 분자 자체는 양자역학적 원리로 구성돼 있으나 분자 전체를 한 단위로 보았을 때 이것은 공이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불과 60개의 탄소원자가 모여 만들어진 풀러렌이란 분자조차 양자 간섭을 일으키려면 특별한 조건을 준비해야 한다(슈뢰딩거 고양이는 누가 죽였나? 참고). 결어긋남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말이다. 결어긋남이란 측정당할 때 일어난다. 원자 하나만 부딪혀도 측정이 일어난다.
따라서 고온의 물에 담겨있는 생명체에서 결어긋남을 막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양자 중첩의 입장에서는 상온도 엄청나게 높은 온도다). 그래서 대부분의 양자실험은 진공, 또는 영하 270℃정도의 극저온에서 수행된다.
양자 중첩을 이용하는 양자컴퓨터는 기존의 컴퓨터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거나 효율을 극적으로 높일 수 있다(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컴퓨터 참고). 혹시 생명체가 생존을 위해 양자 중첩을 이용하고 있는 사례는 없을까? 진화란 생존에 조금이라도 유리하면 그 방향으로 가는 거다. 양자 중첩이 좋다면 생명이 이용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이름하여 양자생물학!
2007년 UC버클리대 플레밍 교수 연구팀은 광합성에서 양자 중첩의 증거를 발견한다. 광합성은 태양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바꾸는 것으로 생명체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중·고등학교 생물시간에 ‘전자전달계’라는 것을 들어 봤을 것이다. 이때 나오는 반응물의 이름을 달달 외우던 악몽이 떠오르는 사람도 있을 거다. 깔때기 모양의 단백질에 빛이 닿으면 전자가 들떠서 깔때기 중심으로 이동하게 된다. 빛에 닿는 면적이 커야하므로 단백질이 깔때기 모양인 것은 당연하다. 다만 들뜬 전자의 이동 과정이 지나치게 효율적이라는 것이 의문이다.
전자를 공이라고 생각해보자. 중심이 어딘지 알 길 없으니 전자는 여기저기 마구잡이로 부딪히며 이동하고 당연히 에너지를 잃게 된다. 하지만 실제 에너지 효율은 예상보다 훨씬 높다. 왜 그럴까? 플래밍 교수는 여기에 양자 중첩이 작동한다고 제안한다. 전자가 모든 경로를 동시에 훑어보고 최단경로를 찾아 고속도로를 탄 것처럼 이동한다는 것이다. 경로들이 양자 중첩돼 있어야 가능한 얘기다.
하지만 결어긋남의 요인들이 득실거리는 생명체 내에서 식물이 어떻게 결맞음을 유지하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양자생물학은 철새의 비행도 설명한다. 철새가 지형지물 하나 없는 바다 한 가운데서 어떻게 방향을 찾아가는지는 여전히 불가사의다.
양자생물학의 설명방법은 이렇다. 철새의 눈에 빛이 들어가면 두 개의 라디칼이 쌍으로 만들어진다. 각 라디칼은 홀전자(unpaired electron)를 하나씩 갖는다. 이 두 홀전자들은 특별한 관계를 형성한다. 전자는 그 자체로 자석이 될 수 있는데, 이런 특성을 스핀이라 부른다.
특별한 관계라는 것은 전자의 스핀들이 양자얽힘 상태를 이룬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한 전자의 스핀이 북쪽을 가리킬 때, 다른 전자의 스핀은 남쪽을 가리키는 방식이다. 이 경우 라디칼 전자들의 두 스핀은 두 가지 방식으로 얽힐 수 있다. 편의상 A와 B라고 부르자. A와 B 가운데 어떤 방식으로 얽힐지는 외부 자기장의 방향에 의존한다. 따라서 A와 B의 생성 비율을 보면 지구자기장 방향을 알 수 있다. 철새의 눈에 양자나침반이 들어있는 셈이다. 하지만 살아있는 새에서 이뤄진 실험이 아니기에 아직 논란이 있다.
● 인류는 양자생명체로 진화할까
1989년 로저 펜로즈는 ‘황제의 새마음’이란 책에서 양자역학이 인간의 의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펜로즈는 우선 인간의 의식에 계산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합이 홀수가 되는 두 짝수는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생각해보자. 짝수와 짝수를 더하면 언제나 짝수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짝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컴퓨터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산을 시작할 거다.
2+2=4, 2+4=6, 4+4=8....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결코 답을 구할 수 없다. 물론 이런 문제는 결과를 그냥 외워둘 수도 있겠지만,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나 ‘골드바흐 추측’ 같은 문제는 계산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인류의 진화에도 양자법칙이 숨어있을까? -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진화의 역사를 보라. 양자역학이 생존에 이익이 된다면 생명은 이를 반드시 이용했을 것이다. 아직 이용하지 않았다면, 양자역학을 깨달은 바로 지금의 인류가 최초의 양자생명체가 될지도 모른다.
동아사이언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