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6세기, 철학자이자 시인인 에피메니데스(Epimenides)는 이런 글을 썼다. “모든 크레타 섬 사람들은 거짓말쟁이다” 재미있는 것은 에피메니데스 자신도 크레타 섬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이라 불리는 이 말은 ‘거짓말쟁이의 역설’이다.
이처럼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는 ‘거짓말’을 알고 사용하곤 했다. 성인의 경우에는 종종 남을 속이려고 거짓말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어린이의 경우에는 굳이 남들을 속이려는 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입가에 초콜릿이 얼룩져있는 상태에서 아이들은 ‘초콜릿을 먹지 않았다’라고 어설픈 거짓말을 하곤 한다.
이때 아이들은 남을 속이고자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거짓말이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4살 전후가 되면, 아이들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왜 그런 것일까.
이때 아이들이 하는 거짓말은 일종의 자신의 새로운 능력을 테스트하는 과정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올해 2월, 빅토리아 탈와르(Victoria Talwar) 맥길대학교(McGill University, Canada) 조교수팀은 미취학 아동은 스스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신뢰를 활용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밝혔다. (원문링크)
연구팀은 아이들에게 거짓말과 관련된 몇 가지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세 살 난 아이의 삼분의 1(1/3) 이상은 혼나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 비율은 4~7세로 넘어가면 절반 이상으로 올라가게 된다. 처벌을 피하거나 관심 또는 인정을 받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즉, 거짓말과 지능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어린 아이들이 순진하다고 생각하고 그 때문에 ‘거짓말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거짓말은 훨씬 고도의 기술을 요구한다. 일단 진실을 알아야 거짓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지능적으로 또 다른 현실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에게 새로운 현실을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짓말은 아주 발달한 인지 능력과 불필요한 사회성을 필요로 한다. 결국 거짓말 하는 행위를 일종의 ‘발달 과정의 단계’로 결론 지을 수 있다.
창의적인 사람, 거짓말하는 경향 높아
앞서 설명한 연구에 따르면 아이는 자신의 지식을 활용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그렇다면 성인의 경우에는 어떨까. 어떤 사람이 주로 거짓말을 할까. 창의적인 사람일수록 거짓말을 더 잘하고, 시험 등에서 부정행위를 하는 경향이 높다는 연구가 2013년 12월 발표되었다.
프란체스카 지노(Francesca Gino) 하버드 경영대학원(Harvard Business School) 연구팀은 정직성과 창의력과의 연관관계를 알아보는 일련의 실험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른 사람이 솔직하게 시험을 본 사람보다 창의력 시험에서 더 높은 점수를 기록하였다. (원문링크)
창의력과 정직에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창의력은 규칙을 깨뜨리는 행동을 부추긴다. 즉, 규칙을 어기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부정행위와 연관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규칙은 깨어지기 위해 있다’는 말처럼, 창의적인 행동의 뿌리에는 거짓말이 있다는 것이 밝혀진 셈이다.
선의의 거짓말, 사회적 유대감 증진시켜
결국 ‘거짓말’은 부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남을 ‘속인다’라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이라고 배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거짓말이 나쁜 것은 아니다. 선의의 거짓말(White lie)은 오히려 사회적 유대감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지난해 7월, 옥스퍼드 대학교(Oxford University, UK)를 비롯한 공동 연구팀은 선의의 거짓말이 사회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발표하였다. 연구팀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안에서 이뤄지는 복잡한 의사소통 데이터 베이스를 한 곳에 모으는 모델링을 구축한 후, 악의적 거짓말과 선의의 거짓말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았다. (원문링크)
그 결과,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그룹은 집단 내에서 공고한 유대감을 구축했다. 심지어 그 저변을 더욱 넓혀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악의젓 거짓말을 일삼는 그룹이 갈수록 서로 고립되는 성향을 보이는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 셈이다.
최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이용이 일상화되면서 이런 선의의 거짓말은 더욱 증대되고 있다. 이는 자신의 마음을 직접 드러내는 것을 꺼려하는 성향이 사람들 사이에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 상에서만 보는 이들에게 굳이 감정을 상하게 하기 보다는, 그저 좋은게 좋은 것이라는 심정으로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다만, 의도는 좋지만 거짓말은 결국 진심을 내비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정한 유대감이 형성될 수 있다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선의의 거짓말에는 상대방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는 ‘배려’가 있기 때문에, 이것이 쌓여 사회적 유대감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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