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1. 패러독스들
1. 이 문장은 거짓이다.
<이 문장은 거짓이다>라는 문장의 참, 거짓을 따져보자.
만약, 이 문장이 참이라면 이 문장에서의 주장대로 이 문장은 거짓이 된다.
만약, 이 문장이 거짓이라면 이 문장에서의 주장과는 다르게 이 문장은 참이 된다. 참과 거짓이 뒤바뀌고 있다.
2.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도 이전에 고대 그리스에 에피메니데스라는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크레타인이면서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후대에 사람들은 두고두고 말하고 있다.
만약, 그의 말이 진실이라면,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이므로 그도 거짓말쟁이이고, 그의 말은 거짓일 것이다. 따라서,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만약 그가 거짓을 말했다면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가 아니고 그 역시 거짓말쟁이가 아니므로 그의 말은 진실이다. 따라서,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
그는 진실을 말하면서 거짓을 말하고 있고, 거짓을 말하면서 진실을 말하고 있다.
3. A: 문장 B는 거짓이다.
B: 문장 A는 진실이다.
만약, 문장 A가 진실이라면, 문장 B는 거짓이 되고, 다시 문장 A가 거짓이 된다.
만약, 문장 A가 거짓이라면, 문장 B는 진실이 되고, 다시 문장 A가 진실이 된다.
출발하여 되돌아오는 과정이 무언가 뒤틀려있다. 종이에 다음과 같이 적어놓을 수도 있다.
앞면: 뒤면에 적힌 말은 진실입니다.
뒷면: 앞면에 적힌 말은 거짓입니다.
4. 나는 스스로 면도하지 않는 사람들만 면도한다.
세비야의 이발사는 이발소 앞에 다음과 같이 써 붙였다. <나는 스스로 면도하지 않는 사람들만 면도한다.> 이발사는 자신이 써 붙인 말에 매우 만족했지만, 지나가던 어떤 사람에게 이런 질문은 받는다. <그럼, 당신은 누가 면도를 해주나?>
만약, 이발사가 스스로 면도를 한다면, 그는 스스로 면도하는 사람에 속하기 때문에 그는 이발소 앞에 붙어 있는 말에 따라 자신이 면도할 수가 없다. 즉, 그는 면도를 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발사를 면도해준다면, 그는 스스로 면도하지 않는 사람에 속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이발사 자신이 면도해주겠다고 이발소 앞에 써 붙여놓았으니, 자신이 면도를 해야 한다. 즉, 다른 사람이 면도할 수 없다. 도대체, 이발사는 어떻게 면도를 해야 하는 것일까?
세비야의 이발사 이야기는 버트랜트 러셀이 자신이 만든 집합을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소개하려고 만든 이야기다. 러셀은 20세기 최고의 지성으로 평가 받는 사람이다. 러셀은 재미있는 사람이다. 그는 수학자였고, 철학자였는데, 그가 받은 상은 노벨 문학상이었다. 그는 현실적인 참여도 매우 왕성해서, 아인슈타인과 공동으로 핵무기 사용 금지에 관한 선언을 했는가 하면, 말년에는 중국에도 왕래하는 등의 여러 행보를 거쳤다.
러셀이 쓴 ‘행복의 정복’이란 책에서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가 5살 때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자신의 생을 객관적으로 보니까, 너무 재미없고 따분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75살까지 사는 것 같은데, 앞으로 이렇게 재미없는 삶을 지금 살아온 것의 14배를 더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지루하고 앞이 캄캄했다는 것이다. 삶에 대한 그의 회의는 20살 경에 정점에 이르렀는데, 그는 삶이 너무 견딜 수 없을 만큼 재미없어서, 죽으려고 여러 번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죽지 못했던 단 한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수학을 조금 더 알고 싶어서>였단다. 내가 그의 글을 읽었을 때, 나 역시 20살이었고 그 즈음에 수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나는 인생을 즐기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수학 공부를 게을리했었다. 아무튼.
러셀이 만든 집합은 다음과 같다.
S = {x| S에 속하지 않는 모든 것들 }
이야기 1에서 소개한 앞뒤가 잘 맞지 않은 이야기들은 사실, 위에서 소개한 러셀의 집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러한 패러독스는 생각보다 자주 접하게 되고, 또 의도적으로도 많이 만들 수 있다.
- 노총각: 나는 나 같은 멍청이와 결혼하지 않을 현명한 여자를 만나서 결혼할 것이다.
- 법칙: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
- 담 벽: 낙서 금지
- 작가의 변: 나는 지금 독자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 도대체 노총각은 어떻게 결혼을 할 것인가? 결혼할 생각이 있는가? 없는가?
->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는 법칙의 예외는 어떤 법칙일까?
-> 왜 남의 담 벽에 그런 낙서를 하는 건가?
-> 작가는 지금 독자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참말을 하고 있는 건가?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들은 러셀의 집합과 같이 자기 자신의 문제를 언급하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야기 1에서 3번을 제외한 모든 이야기가 자기 자신을 포함한 것에 대하여 언급함으로써 문제의 상황을 만들고 있다. 좀 더 세밀하게 보면, 3번의 경우도 두 문장을 하나의 문장으로 합쳐서 생각하면 자기 자신을 언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좀 더 재미있는 러셀의 패러독스를 만들고 싶다면, <자기 언급>의 방법을 사용해보라.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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