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8일 화요일

발상의 전환을 낳은 ‘제2의 연필’


올드미스가 운영하는 빵집에서 늘 딱딱하게 굳은 식빵을 사가는 중년 남자가 있었다. 올드미스는 그가 돈이 없어 늘 딱딱한 식빵밖에 먹을 수 없는 무명의 가난한 화가일 거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그녀는 또 딱딱한 식빵을 사러 온 중년 남자의 빵 속에 버터를 몰래 발라서 포장해 주었다. 그녀는 빵을 먹다가 버터를 발견하고 감동하는 중년 남자의 모습을 온종일 상상했다.
그러나 얼마 후 빵집으로 올드미스를 찾아온 중년 남자는 불같이 화를 냈다. 화가인 줄 알았던 그 남자는 사실 건축설계사였으며, 시청 설계도를 그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연필로 그려놓은 설계도의 밑그림을 지우다가 난데없이 빵 속에 버터가 밀려 나오면서 3개월간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온 설계도가 엉망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상은 오 헨리의 단편소설 ‘마녀의 빵’ 줄거리이다. 지우개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실제로 이처럼 딱딱해진 빵으로 연필 자국을 지워야 했다. 그나마 연필은 칼날로 쓴 자국을 긁어내야 하는 잉크보다 편리한 필기도구였다.
연필이 좀 더 완벽한 필기구가 된 것은 지우개라는 발명품이 탄생하면서부터이다. ⓒ morgueFile free photo
연필이 좀 더 완벽한 필기구가 된 것은 지우개라는 발명품이 탄생하면서부터이다. ⓒ morgueFile free photo
그렇다고 해서 연필이 보존성이 약한 필기구라는 의미는 아니다. 2014년 남극에서 영국 스콧탐험대의 일원이었던 조지 머리 레빅의 수첩이 발견됐다. 그가 1911년에 연필로 기록했던 그 수첩은 주변의 눈이 녹으면서 103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이후 레빅의 수첩은 프랑스 복원 전문가의 7개월간에 걸친 작업 끝에 완벽히 복원됐다.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보존될 수 있었던 비결은 연필의 흑연이란 소재 속에 숨어 있었다. 탄소로만 이뤄진 흑연은 천연에 가장 가까운 재료로서 볼펜이나 만년필 같은 잉크보다 월등한 보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많은 문호들이 연필을 선호했다. ‘분노의 포도’를 쓴 소설가 존 스타인벡은 ‘블랙윙 602’라는 연필로만 글을 썼으며,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로알드 달은 매일 아침에 연필 6자루를 깎은 후에야 집필을 시작했다.
초기 지우개의 단점을 해결한 굿이어
연필이 좀 더 완벽한 필기구가 된 것은 지우개라는 발명품이 탄생하면서부터이다. 1770년 어느 날, 영국의 엔지니어 에드워드 나인(Edward Nairne)은 우연히 빵 대신 옆에 있던 고무 뭉치를 집어 들어 틀린 글자를 지웠다. 그런데 빵보다 훨씬 글씨가 잘 지워지는 걸 알곤 깜짝 놀랐다.
고무가 빵보다 연필로 쓴 글자를 지우는 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그는 즉시 고무 뭉치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고무 뭉치에 ‘루버(rubber)’라는 이름을 붙인 이는 산소를 발견한 영국의 화학자 조지프 프리스틀리였다. 그는 흔적을 지우기 적합하다는 의미에서 ‘문지르다’라는 뜻의 단어 ‘rub’를 사용해 이 같은 이름을 지었다.
지우개를 최초로 발명한 영국의 엔지니어 에드워드 나인. ⓒ ScienceTimes
지우개를 최초로 발명한 영국의 엔지니어 에드워드 나인. ⓒ ScienceTimes
지우개의 원리는 아주 간단하다. 연필이 종이 위에 남긴 자국들을 고무로 문지르면 종이 섬유에 붙어 있던 흑연 입자가 고무 가루와 결합하면서 종이에서 떨어져 나오게 된다. 고무의 분자 구조가 종이보다 강하게 흑연 입자를 잡아당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사용한 초기의 지우개는 문제점이 많았다. 생고무를 사용한 까닭에 빵 부스러기처럼 잘 으스러졌을 뿐더러 오래 두면 부패하는 단점이 있었다. 또 기온이 올라가면 끈적거리고 추운 날엔 너무 굳어서 사용하기 힘들었다.
이런 문제는 1839년 미국의 발명가 찰스 굿이어가 고무를 단단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아내면서 해결되었다. 그는 천연고무 덩어리와 황을 혼합한 물질을 실수로 난로 위에 떨어뜨렸다가 다음날 그 고무 덩어리가 탄성을 갖고 내구성이 좋아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고무지우개의 질이 크게 개선되었음을 물론이고 자전거 바퀴와 자동차 타이어, 신발 밑창, 기계 벨트 등으로 고무의 용도가 확장됐다.
미국의 저명한 작가인 존 브록만은 뉴밀레니엄을 기념하기 위해 과학인 110명에게 ‘지난 2천년 동안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컴퓨터, 민주주의, 문자 등등 다양한 답들이 쏟아진 가운데 과학저술가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매우 독특한 답을 내놓았다. 그의 대답은 바로 ‘지우개’였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만약 지우개가 없었다면 과학적 모델도 없었을 것이고 정부와 문화, 도덕도 없었을 것이다. 지우개는 우리의 참회소이자 용서하는 자며, 타임머신이기도 하다.”
또한 혹자는 지우개에 대해 단순히 실수를 바로잡는 도구가 아니라 사고의 일대 전환을 가져온 매우 중요한 도구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컨버전스의 대표 사례 ‘지우개 달린 연필’
‘제2의 연필’로도 불리는 지우개가 또 다시 획기적인 발명품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은 정말로 가난한 화가 지망생이었던 미국의 한 소년에 의해서였다. 1867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병든 홀어머니를 모시며 사람들에게 인물화를 그려주던 하이만은 추운 겨울날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데생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데생이 잘못돼 지우개를 찾았으나 도무지 지우개를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결국 그날 한 장의 그림도 완성하지 못했던 하이만은 며칠 후 외출을 하기 위해 모자를 쓰면서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지우개를 연필의 머리 부분에 모자처럼 고정시켜 놓으면 잃어버릴 염려 없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후 그는 양철 조각을 구해 연필과 지우개를 연결시켜 사용했는데,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 월리엄의 권유에 의해 특허를 출원했다.
몇 년 후 하이만은 지우개 달린 연필의 특허권을 조지프 레첸도르퍼에서 팔았으며, 알려진 대로 이 발명품은 시판되자마자 엄청난 히트 상품이 되었다. 새로운 물건이나 방법이 아니라, 이미 있는 물건과 방법들을 활용해 ‘1+1’의 기법으로 탄생한 지우개 달린 연필은 컨버전스(융합)의 기적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례로 지금껏 회자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고무가 처음 알려진 것도 1880년대 무렵 미국에서 지우개가 달린 연필이 들어오면서부터였다.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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