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8일 화요일

800년 보존된 팔만대장경의 과학

근대 서구 학계에서는 고려대장경을 ‘Tripitaka Koreana’라고 부른다. 여기서 Tripitaka는 삼장(三藏)이란 뜻으로서, 산스크리스트어로 ‘3개의 광주리’를 의미한다. 그 이유는 대장경이 부처님의 가르침 자체를 그대로 실은 경장(經藏), 승단의 계율을 실은 율장(律藏), 고승과 불교학자들이 남긴 주석과 논평을 실은 논장(論藏)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려대장경은 이를 구성하는 목판의 판수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팔만대장경’으로 불린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목판은 8만1258판. 이 판들을 모두 쌓으면 높이가 약 3.2㎞에 달하며, 무게만도 4톤 트럭 70대 분량인 280톤이나 된다.
고려대장경은 아시아 전역에서 유일하게 완벽한 형태로 현존하는 목판본이다. 따라서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정확하고 가정 완벽한 불교 대장경판으로, 산스크리트어에서 한역된 불교대장경의 원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고려대장경은 이미 사라진 초기 목판제작기술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문화재청
고려대장경은 이미 사라진 초기 목판제작기술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문화재청
특히 일본의 경우 1388년~1539년 동안 총 83차례에 걸쳐 고려대장경의 판본과 목판을 요청했을 만큼 고려대장경의 판본은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 나가 동아시아의 불자와 학자들에게 원전(原典) 역할을 했다.
모든 불경이 그렇듯이 고려대장경에도 단지 종교적인 가르침뿐만 아니라 경전을 만들고 연구하고 믿은 사람들이 이해했던 내용까지 들어가 있다. 따라서 고려대장경은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인간관은 물론 각 지역의 문화 및 사상적 특징을 추론할 수 있는 훌륭한 연구자료가 된다.
초기 목판제작기술의 귀중한 자료
고려대장경은 희귀 판본으로서의 가치도 매우 높다. 전 세계 다른 어느 곳에도 없으며, 오로지 고려대장경 안에서만 현전하는 판본이 다수 들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조당집 같은 자료는 선종 연구에 있어 학계에 일대 변화를 불러일으킬 만큼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고려대장경은 이미 사라진 초기 목판제작기술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목재로 만든 대장경판이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었던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실제로 제작된 후 770년이 지난 현재에도 흠결 없이 완전한 고려대장경 판본을 인쇄할 수 있을 정도다.
그 비밀의 시작은 목재 선정에서부터 비롯됐다. 대장경판에는 30~50년씩 자란 산벚나무, 돌배나무 등 10여 종의 나무가 사용됐다. 이 나무들은 모두 같은 종류가 한 곳에 모여서 자라지 않는 특성을 지녔다. 때문에 물푸레나무나 참나무 등의 무섭게 성장하는 경쟁자를 물리치기 위해 늘씬하고 곧바른 줄기를 갖게 되는 것.
베어진 목재는 곧바로 사용되지 않고 바닷물 속에 1~2년간 담가 두었다. 그 후 경판 크기로 잘라서 다시 소금물에 삶는 처리 과정을 거쳤다. 목재를 그대로 건조할 경우 표면이 너무 빨리 말라버림으로써 갈라지고 비틀어지기 쉽다. 하지만 소금물 처리를 하면 소금이 표면에 코팅되는 효과를 거둠으로써 그런 현상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소금물에 삶게 되면 나무의 진이 빠져 목재 내의 수분 분포가 균일해지고 나뭇결이 부드럽게 되어 글자를 새기기 쉬워진다.
경판의 두께 편차가 0.1㎝ 이하에 이를 만큼 정밀해
8만여 장이나 되는 목판의 균일성도 놀라울 정도다. 경판 하나의 크기는 가로 78㎝, 세로 24㎝이다. 그런데 각 경판 간의 오차 범위가 가로는 0.2~0.5㎝, 세로는 0.1~0.6㎝에 불과하다. 또 한 장의 경판에서 각 위치에 따른 두께의 편차는 0.1㎝ 이하인 것. 당시 목재를 가공했던 기술이 얼마나 정밀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고려대장경은 세계적으로 옻칠을 한 유일한 목각판이기도 하다. 옻나무에서 채취한 생옻의 주성분은 옻산으로서, 3차원 구조의 고분자이기 때문에 산이나 알칼리에 쉽게 녹지 않아 방부성, 방충성, 방수성, 내염성, 내열성이 뛰어나다.
확인 결과 고려대장경에는 생옻을 사용해 2~3회 옻칠을 했으며 칠의 두께는 55~65마이크로미터 가량으로 균일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판이 목질부와 옻칠 사이에 먹층이 들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대장경판에 글자를 새긴 다음 여러 번 인쇄를 한 후 옻칠을 했다는 의미인 것. 이렇게 한 이유는 먹물에 섞여 있는 미세한 돌가루가 옻칠 공정에서 바탕을 고르게 해주는 눈막이란 공정을 대신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인사에는 고려대장경판 외에도 5987판의 제경판이 소장되어 있다. 고려대장경판은 국가 제작판으로서 1237년~1248년에 제작되었으며, 제경판은 사찰 제작판으로서 1098년~1958년에 조판된 것이다. 이 제경판은 대장경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서, 그중 일부는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다.
고려대장경은 1962년 국보 제32호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 6월에는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고려대장경의 완벽한 보존에는 보관 장소인 해인사의 장경판전도 큰 역할을 했는데, 이 역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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