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의 일이었다. 맑게 갠 봄날 오후, 나른한 식곤증을 이기기 위해 창밖을 내다보다 문득 하늘이 참 파랗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과학 시간이었기
때문에 선생님께 하늘이 왜 파란지 물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낮이니까 하늘이 파란 것이 당연한데 그걸 질문이라고 하느냐고 혼을 내셨다.
세상에
이유가 없는 현상은 없다. 당연히 우리가 늘 보는 일상적인 일에도 이유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늘 보는 현상에는 특별한 호기심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푸른 하늘이 바로 그것이고, 붉은 저녁 노을 또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평소에 잘 보지 못하던 현상이 나타나면 사람들의 호기심이 발동된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붉은 달이다. 달이 지평선 근처에 있을 때 가끔 붉은
색으로 보일 때가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주로 건물 위로 높이 뜬 달을 보기 때문에 붉은 달을 볼 기회가 많지 않다. 어쩌다 붉은 달이
뜨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섬뜩하다거나 혹은 을씨년스럽다고 느끼게 된다. 핏빛처럼 붉은 달을 보면서 좋은 감정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
정월 대보름 풍습 중 산등성이 위로 떠오르는 보름달의 색깔을 보고 그 해의 농사를 예측하는 달점 보기가 있었다. 달의 빛이 붉으면 가뭄이 들고,
빛이 희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여겼다. 과학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옛사람들은 붉은 달을 나쁜 징조로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보름달의 색깔로
가뭄이나 풍년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달이 붉게 보이는 현상을 이해하게 되면 붉은 달을 볼 때 느껴지는 섬뜩함도 없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지평선 근처의 달이 붉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빛의 산란 현상을 알아야 한다. 빛이 대기를 통과할 때 대기 중의 공기분자나 먼지, 수증기 등과 충돌하면서
흩어지는데, 이를 빛의 산란이라고 한다. 그런데 산란하는 정도는 빛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우리가 가시광선이라고 부르는 빛은 흔히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가지 빛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얘기한다(정확히는 무수히 많은 빛깔의 조합이다). 일곱 가지 빛이 모두 같은 양만큼
보이는 것은 아니다. 무지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가시광선 중 보라 빛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파란 빛 뒤로 갈수록 파장이 짧고 에너지가 큰 데
반해 산란이 잘 일어나 멀리까지 가지 못한다. 반면에 붉은 빛으로 갈수록 에너지는 작지만 파장이 길어서 푸른빛에 비해 더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다.
호수에
떠 있는 작은 배를 생각해보자. 그 배의 앞에 돌을 던지면 작은 물결이 배 쪽으로 밀려갈 것이다. 작은 물결은 배에 부딪혀 사방으로 흩어질 뿐
배를 통과해서 반대쪽으로 나가지는 못한다. 하지만 큰 너울이 배를 덮치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커다란 너울은 배에 부딪히지 않고 배를 통과하여
반대쪽으로 나아간다. 여기서 작은 물결은 파장이 짧은 파란 빛이고 너울은 파장이 긴 붉은 빛이다. 낮에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빛의 산란 때문이다.
자
이제 다시 붉은 달로 화제를 옮겨보자. 지평선 근처에 먼지가 많거나 안개가 엷게 껴 있는 날에는 달이 특히 더 붉게 보인다. 이것도 역시 빛의
산란 때문이다. 달빛이 먼지나 안개를 통과할 때 파장이 짧은 파란 빛들은 산란된다. 지평선까지의 거리는 천정 부분에 비해 훨씬 멀다. 따라서
산란된 파란 빛들은 우리 눈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파장이 긴 붉은 빛만이 먼지와 안개를 뚫고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다. 달이 높이 뜨면서 달빛을
산란시키는 먼지나 수증기가 줄어들면 붉은 빛은 사라지고 원래의 연노란 달빛으로 보인다. 물론 지평선 근처에 먼지나 수증기가 많지 않은 날에는
산란되는 정도가 작기 때문에 달이 붉게 보이지 않는다.
비슷한
이치로 지평선 근처에 있는 별은 높이 떠 있는 별들에 비해 붉게 보인다. 지평선 근처에 먼지나 수증기가 많은 날에는 별빛이 더 붉게 보인다.
황혼이 붉게 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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