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그런 아이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필자가 어린이였던 한 세대 전에는 군것질 거리가 많지 않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사루비아(샐비어,
salvia)라고 부르는 식물의 꽃을 ‘뽑아’ 끝에 묻어 있는 단물을 빨아먹곤 했다. 빨간 사루비아 꽃 끝에는 꽤 달콤한 꿀물이 감질날 정도의
양만큼 들어있었다.
사실
사루비아 꽃이 아니더라도 꿀벌 같은 곤충이 찾는 꽃 대다수는 이처럼 꽃꿀, 즉 화밀(nectar)을 지니고 있다. 물론 아이들이 재미삼아 먹는
것 말고는 사람이 화밀을 직접 채취하는 일은 없다. 대신 꿀벌이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처럼 힘들게 모아 벌집에 저장해 놓은 화밀의 변형체
즉 꿀을 슬쩍해간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이용해온 꿀에 대해서는 수많은 연구가 행해졌지만, 놀랍게도 그 원형인 화밀에 대해서는 그다지 연구가 많이 돼 있지 않다. 심지어
식물이 어디서 어떻게 화밀을 만들어 꽃에 분비하는지도 미스터리였다. 그런데 학술지 ‘네이처’ 4월 24일자에 이 과정을 분자차원에서 밝힌
연구결과가 실렸다.
설탕
운반 단백질 있어야
미국
스탠퍼드대 생물학과와 독일 막스플랑크화학생태학연구소의 공동 연구자들은 꽃피는 식물, 즉 현화식물(속씨식물) 가운데 쌍떡잎식물의 화밀 생성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쌍떡잎식물에는 샐비어를 비롯해 장미, 국화 등 식물 대다수가 포함된다. 한편 외떡잎식물은 벼나 옥수수 같은 종류다. 참고로
소나무 같은 겉씨식물은 주로 바람에 의해 수분이 이뤄지기 때문에 화밀을 분비하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쌍떡잎식물의 연구모델인 애기장대를 대상으로 실험에 착수했다. 그 결과 스위트9(SWEET9)이라는 당 운반 단백질이 꿀샘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꿀샘(nectary)은 화밀을 분비하는 조직이다. 즉 꿀샘의 세포 안에 들어있는 자당을 스위트9 단백질이 세포 밖으로
내보낸다는 것. 자당(sucrose)은 단당류인 포도당과 과당이 결합된 이당류 분자로 소위 말하는 설탕이다. 예측할 수 있겠지만 스위트9
유전자가 고장난 돌연변이체는 세포 안에 자당을 잔뜩 머금고 있어도 분비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화밀이 없다.
그렇다면
꿀샘 세포 안의 자당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식물은 햇빛을 에너지로 써서 이산화탄소와 물로 포도당을 만든다. 이 과정을 광합성이라고 부르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포도당이 체관을 따라 이동해 꿀샘의 세포에 들어가 고분자인 녹말로 바뀌어 저장돼 꽃이 필 ‘때’를 기다린다. 꽃이 피기 시작하면
녹말을 분해해 자당으로 만드는 효소가 활성화된다. 즉 이렇게 만들어진 자당을 스위트9이 세포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한편
세포 밖에서는 자당을 다시 포도당과 과당으로 분해하는 효소가 활성화된다. 굳이 이런 번거로운 작업을 하는 이유는 삼투압을 높여 세포 안의 물을
밖으로 더 많이 빼내 화밀액의 부피를 늘이기 위해서다. 삽투압은 용질의 농도에 비례하는 힘으로, 자당이 분해돼 포도당과 과당으로 바뀌면 용질
농도가 두 배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자당이 100% 분해되지 않기 때문에 화밀은 대부분 자당과 포도당, 과당의 혼합물이다. 여기에 그
식물에 특이한 향기성분이 섞여 있어, 우리는 화밀이나 꿀벌이 만든 변형체인 꿀을 맛보면 어떤 꽃에서 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런 메커니즘의 보편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애기장대의 사촌이라고 할 수 있는 같은 십자화과 식물인 유채와 먼 친척인 담배를 대상으로 화밀의
생성 과정을 조사했고, 역시 예상대로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이 메커니즘은 약 1억 2000만 년 전 원시
속씨식물에서 쌍떡잎식물의 갈라져 나올 무렵 진화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먹는 꿀 속에는, 식물이 번식을 위해 곤충을
끌어들인 1억 년이 넘는 ‘달콤한 역사’가 배어있는 셈이다.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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