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8일 화요일

내가 처음 발명’ 헉! 자네가 먼저?


과학기술 역사상 중요한 발견, 발명에는, 똑같은 이론을 거의 같은 시기에 여러 사람이 주장하거나, 새로운 기술이나 발명품을 두 명 이상이 거의 동시에 발명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영국의 저명한 과학사회학자 로버트 머튼(Robert K. Merton)은 과학사에서 단독 발견보다는 도리어 동시발견이 더 전형적인 경우라고 주장한 바 있다.
동시발견/발명의 데자뷔 중에서 몇 가지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수학 분야에서 뉴턴(Isaac Newton; 1642-1727)과 라이프니츠(Gottflied Wilhelm Liebniz; 1646-1716)의 미적분법 발견, 네이피어(John Napier; 1550-1617)와 뷔르기(Jobst Bürgi; 1552-1632)에 의한 로그(log)의 발견 등이 있다.
물리학 분야에서는 마이어(Robert Mayer; 1814-1878), 주울(James P. Joule; 1818-1889), 콜딩(Ludvig A. Colding; 1815-1888), 헬름홀츠(Hermann von Helmholtz; 1821-1894)의 무려 네 명의 과학자들에 거의 같은 시기에 연구되었던 에너지보존의 원리가 있다.
생물학 분야에서도 대발견이었음에도 수십 년간 잊혀졌던 멘델의 유전법칙이 세 명의 생물학자, 즉 네덜란드의 드프리스(Hugo De Vries; 1848-1935), 독일의 코렌스(Carl Correns; 1864-1933), 오스트리아의 체르마크(Erich Tschermak; 1871-1964)에 의해 1900년에 재발견 되었고, 자연선택설에 기반한 진화론 역시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과 월러스(Alfred Russel Wallace; 1823-1913)에 의해 거의 같은 시기에 연구되고 발표되었다.
진화론도 다윈과 월러스에 의해 동시에 발표되었다. 사진은 진화론을 풍자한 당시의 만화. ⓒ Free Photo
진화론도 다윈과 월러스에 의해 동시에 발표되었다. 사진은 진화론을 풍자한 당시의 만화. ⓒ Free Photo
발명시기 및 생몰연도까지 동일한 두 사람
기술적 발명인 경우에도 동시발명의 사례가 매우 많다. 이중에서도 알루미늄의 제련법 발명과 레이저의 발명은 데자뷔라할 만하므로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알루미늄(Al)은 현대 공업문명사회에서 중요한 금속자원이지만, 대량제조법, 즉 실용적인 제련법이 개발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즉 철이나 구리 등의 다른 금속들이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부터 대량으로 사용된 데에 비해, 알루미늄은 19세기에 들어서도 대량으로 제조하는 방법이 확립되지 않았다. 알루미늄은 화학적으로 이온화 경향이 크고 다른 원소와의 결합력이 매우 강해서, 독립된 원소로 분리해 내기가 상당히 힘들었기 때문에, ‘찰흙에서 나온 은’이라고 불릴 정도로 귀금속이었다.
실용적인 알루미늄의 제련법을 발명한 사람 중 하나가 미국의 화학기술자 홀(Charles Martin Hall; 1863-1914)이다. 그는 1886년에 산화알루미늄 원료인 보크사이트에 빙정석(Na3AlF6)을 넣고 가열하여 용융상태로 만든 후 직접 전기분해를 하는 방식으로 알루미늄을 대량 추출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22세의 젊은 나이에 알루미늄의 경제적인 제조법을 확립한 그는 회사를 차려서 많은 돈을 벌어들이다가 그만 51세에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에 알루미늄 제련법을 발명한 홀(왼쪽)과 에루. ⓒ Free Photo
같은 해에 알루미늄 제련법을 발명한 홀(왼쪽)과 에루. ⓒ Free Photo
그런데, 홀이 새로운 알루미늄 제법을 발견한 해인 1886년에 프랑스에서는 에루(Paul Louis T. Héroult; 1863-1914)라는 야금학자가 홀과 똑같은 방법인 용융빙정석을 이용한 전기분해법으로 알루미늄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하여 프랑스 특허를 취득하였다. 물론 홀과는 아무런 사전 관계나 교류가 없었는데, 기존의 알루미늄 제법보다 훨씬 경제적인 이 방법은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홀-에루법’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홀과 에루는 태어난 해도 같고, 22세로 같은 나이인 1886년에 똑같은 알루미늄 제법을 각각 발견하였고, 심지어 죽은 해도 1914년으로 같다는 점은 동시발명의 우연 치고는 상당히 기이하다는 느낌도 든다.
냉전 중이던 미국과 구소련에서 동시에 레이저 발명
오늘날 광범위한 분야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는 레이저의 원리는 미국과 구소련의 과학자들에 의해 거의 같은 시기에 발견되었다. 영어로 ‘복사의 유도 방출과정에 의한 빛의 증폭’의 머리글자 약어인 레이저(Laser; 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는 미국에서는 타운스(Charles Hard Townes; 1915- ) 등에 탄생하였다.
보통의 빛과는 다른 레이저 광의 중요한 특징으로서, 단일한 파장의 빛을 방출하는 단색성, 옆으로 거의 퍼지지 않고 앞으로 똑바로 나아가는 직진성, 매우 밝고 출력이 큰 고휘도성, 그리고 가간섭성 등을 들 수 있다. 고주파 발생 장치를 개발하던 그의 연구팀은 1917년 아인슈타인에 의해 발표된 유도방출에 의한 전자기파 발생 이론에 주목한 끝에, 결국 같은 파장으로 일정한 방향으로만 진행하는 새롭고 강력한 빛인 레이저를 얻을 수 있었다.
레이저 공동발명자 중 한 사람인 구소련의 프로호로프. ⓒ Free Photo
레이저 공동발명자 중 한 사람인 구소련의 프로호로프. ⓒ Free Photo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구소련에서 양자광학 등을 연구하던 바소프(Nikolai Gennadiyevich Basov; 1922-2001)와 프로호로프(Aleksandr Mikhailovich Prokhorov; 1916-2002) 역시 독립적으로 레이저를 발명하였다. 당시 치열한 냉전과 경쟁을 벌이던 미국과 구소련이 향후 군사적으로도 중요하게 활용될 가능성이 있는 레이저의 개발을 두고 서로 협력했거나 교류했을 리가 결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구소련의 이들 세 명의 과학자들은 레이저 발명의 공로를 인정받아 1964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사이좋게 공동으로 수상하였다.
레이저(Laser) 하면 사람들은 흔히 SF영화에 나오는 광선총과 같은 무기를 먼저 떠올리곤 하는데, 미국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 처음 입안된 바 있는 전략방위계획(SDI; Strategic Defense Initiative), 이른바 스타워즈계획이나 현재의 미사일방어체제(MD; Missile Defense)는 레이저 무기 등을 이용하여 상대방의 군사위성이나 미사일을 파괴하는 시스템을 포함한 것이다.
이러한 동시 발견, 발명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중요한 발견은 시대에 부합해야 한다거나 시기가 무르익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해당 과학기술자에게는 유리하게도 또는 불리하게도 작용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할 것이다.
즉 획기적인 연구개발 성과의 발표를 앞두고 한껏 고무된 사람이라면, 다른 과학기술자들도 비슷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확인해보고, 가치가 큰 기술이라면 우선권을 빼앗기지 않도록 특허 출원 등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반면에 남들이 거의 알아주지 않는 연구를 홀로 힘들게 진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군가 똑같은 연구를 하고 있을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실제로 그런 동료 과학기술자를 찾거나 교류하면서 함께 연구하여 더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레이저를 이용한 실험 장면. ⓒ Free Photo
레이저를 이용한 실험 장면. ⓒ Free Photo
동시발명의 데자뷔는 앞으로도 자주 반복될 가능성이 큰데,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에서 교훈을 찾을 필요가 있겠다. 인류가 오랫동안 쌓아온 지식의 바탕 위에 보완하거나 추가하는 경우든, 기존과는 사뭇 다른 무척 새로운 것이든, 동시대의 사람이라면 혼자만이 아닌 여러 명이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하고 비슷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얘기이다.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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