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선택을
통한 종의 기원, 즉 진화론 하면 찰스 다윈이지만 이 분야에 좀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앨프리드 월리스라는 이름도 떠올릴 것이다. 1858년
학회에서 다윈과 월리스는 공동으로 진화론을 발표했지만 이듬해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판되면서 대중의 머리에는 ‘진화론=다윈’이라는 등식이
각인됐다. 1964년 힉스 메커니즘(물론 당시에는 이런 이름이 없었다)을 제안한 물리학자 6명 가운데 수년 뒤부터 이 이름이 널리 쓰이면서 피터
힉스만이 기억되는 것처럼.
학술지
‘린네학회생물학저널’ 최신호에는 월리스도 그렇게 섭섭할 건 없다는 주장을 담은 논문이 실렸다. 즉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하기 28년 전인
1831년 이미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론을 제안한 책이 출간됐다는 것. 물론 저자는 위의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아니라 패트릭
매튜(Patrick Matthew)라는 사람이다. 월리스야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만 매튜라는 이름은 대부분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논문
저자인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마이클 윌 교수는 진화론의 창시자로 다윈, 월리스와 함께 매튜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패트릭 매튜는
누구인가.
과수
키우며 아이디어 떠올려
1790년
스코틀랜드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패트릭 매튜는 열일곱 살에 아버지가 사망하자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영지를 운영했다. 매튜는 사과와 배 같은
과수를 많이 심었는데 1만 그루가 넘었다고 한다. 과수뿐 아니라 목재용 나무도 심었던 매튜는 묘목을 잘 선별하는 게 훗날 좋은 과일과 목재를
얻는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당시
영국 해군은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는데 매튜는 해군력을 유지하는데 군함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군함을 만드는 목재에 대한 책을 집필했다. 1831년
출간한 ‘군함용 목재와 식림에 대하여(On Naval Timber and Arboriculture)’다. 그런데 이 책의 부록 곳곳에서 매튜는
흥미로운 통찰을 담은 서술을 하고 있다. 바로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론이다. 다음 구절을 보자.
“같은
부모에게서 난 자손들도 아주 다른 환경을 거치면서 여러 세대가 지나면 서로 번식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별개의 종이 될 수도 있다.”
자연선택을
통한 종의 기원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있다. 이 밖에도 곳곳에서 진화론에 대한 통찰이 보이는데 윌 교수는 모두 11가지 항목에서 다윈과
월리스, 매튜의 입장을 비교하고 있다. 먼저 진화론의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세 항목으로 예상대로 세 사람 모두 동의하고 있다. 즉 개체수
과잉이 경쟁을 부르고 종 안에 변이가 생기고 생물학적 특성이 유전된다는 것.
다음으로
자연선택을 통한 대진화(macroevolution), 즉 종분화로 물론 세 사람 모두 동의하고 있다. 사실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는 당시 여러
생물학자들이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때의 진화는 한 종 내부 변종의 등장 같은 소진화(microevolution)였다. 즉 진화를 통해 종 자체가
새로 등장할 수 있다고는 믿지 않았다.
한편
세 사람 사이에서 입장이 다른 측면도 꽤 된다. 먼저 급격한 환경변화로 인한 대멸종에 대해서는 월리스와 매튜는 가능하다고 봤지만 다윈은
부정적이었다. 오늘날 관점에서 다윈이 틀렸다. 자연발생설, 즉 하등 생물이 저절로 나올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다윈과 월리스는 부정했지만 매튜는
가능하다고 봤다. 이와 관련해 다윈과 월리스는 생명수(tree of life)가 한 뿌리라고 생각했지만 매튜는 그렇지 않았다. 이 두 항목에서는
매튜가 틀렸다. 획득형질의 유전에 대해서는 다윈과 매튜가 긍정적이었고 월리스는 부정적이었다.
진화는
발전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다윈은 부정적이었지만 월리스와 매튜는 그렇다고 믿었고 진화에 지적인 힘(신)이 개입한다는 데 대해서는 다윈과 매튜는
부정적이었지만 월리스는 그렇다고 믿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전반적으로 다윈의 관점이 가장 과학적이지만 매튜 역시 자연발생설 같은 치명적인 오류만
눈감아주면 꽤 정교한 수준이다.
1860년
‘종의 기원’ 출간 알게 돼
1831년
책을 낸 뒤 여러 사업으로 국내외를 오가며 정력적으로 활동하던 매튜는 1860년 ‘원예사 연대기(Gardeners’ Chronicle)’이라는
잡지에서 ‘종의 기원’에 대한 서평을 읽게 된다. 자신이 거의 30년 전 제안한 개념이라는 걸 깨달은 매튜는 관련 내용을 발췌해 잡지에 보냈고
이 내용이 실렸다. 이를 읽은 다윈 역시 잡지에 글을 보냈다.
“패트릭
매튜 씨가 4월 7일자에 기고한 글은 매우 흥미로웠다. 내가 자연선택을 통한 종의 기원을 제안한 것보다 오래 전에 매튜 씨가 먼저 통찰한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나나 다른 어떤 박물학자도 매튜 씨의 관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을 거라는 게 놀랄 일도 아니다.”
즉
매튜의 진화론 제안이 빨랐다는 건 인정하지만 다윈 자신은 그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말이다. 월리스 역시 같은 맥락으로 얘기했다고 한다.
그 뒤 과학사가들 대다수도 다윈과 월리스의 주장을 인정하고 있는데, 이들이 목재에 관한 책(부록에 진화론을 실은)을 읽었을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
뒤 매튜와 다윈은 몇 차례 서신교환을 하기도 했는데 물론 정중하게 의견을 나눴고 다윈은 ‘종의 기원’ 3판부터 매튜의 책을 언급했다. 그럼에도
매튜는 아쉬움이 남았는지 명함에 ‘자연선택 원리의 발견자(Discoverer of the Principle of Natural
Selection’라는 문구를 박아넣었다고 한다.
총명하던
월리스가 말년에 미신에 빠지며 젊은 시절 얻은 명성을 다 까먹었듯이 매튜 역시 말년에 다윈을 공격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드러냈다. 즉 1971년
다윈이 펴낸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에 대해 미는 자연선택의 대상이 아니라며 반박한 것. 매튜는 인간이 자연선택의 범위 밖에 있는 존재라고
믿었다. 오늘날 다윈이 진화론을 상징하는 건 나이가 듦에 따라 정신이 퇴보한 게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혁신적인 개념을 제안하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매튜는 1874년 84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사람들 대다수가 패트릭 매튜라는 이름조차 모르는 현실은 좀 부당한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매튜의 진화론은 ‘종의 기원’이 나오기 한 세대 전
개인 일기장도 아닌 공식적으로 출판된 책에 실려 있기 때문이다. 윌 교수는 아래와 같은 말로 논문을 마무리했다.
“매튜를
무시하는 건 우리로서도 손해다. 매튜의 업적은 짤막하지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 주목을 받을 가치가 있다.”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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