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과학 역사를 이끌어온 이유

과학의 역사에 있어서 전 세계에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나라를 선택하라면 단연 ‘영국’이 1순위로 꼽힌다. 16세기 초까지만 해도 해상 강대국들의 주변 섬나라에 불과했던 영국은 역사의 전환점마다 부흥의 발판을 마련하면서, 쟁쟁한 강대국들을 제치고 현대사회의 선봉에 설 수 있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18세기를 지나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영국이 최고의 부국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산업혁명, 특허권, 과학학회 등으로 대변되는 ‘과학기술’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작용했다. 뉴턴, 다윈 등 과학사에 길이 남을 영국 출신의 위대한 과학자들을 나열하지 않더라도, 영국인들에게 ‘과학’은 자긍심을 느끼게 해주는 특별한 그 무엇일 뿐만 아니라, 쉽고 친근하게 다가가고 누릴 수 있는 대중적인 문화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영국의 과학박물관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 안에 과학을 느끼고 문화를 꽃피울 심오한 비결이 숨겨져 있진 않을까.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넘쳐나 날마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도시 런던,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런던과학박물관(London Science Museum)을 찾아 과학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영국 런던 남서부 중심가에 위치한 런던과학박물관의 입구. ⓒ 장미경

무료로 입장하는 과학문화 공간

런던과학박물관은 영국 런던 남서부 중심지의 사우스 켄싱턴(South kensington) 역에 인접해있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자연사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도 거의 맞닿아 있다고 표현해도 될 만큼 가깝게 위치하고 있어,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꿈같은 공간이다. 게다가 귀중하고 희귀한 각종 자료들을 무료로 입장해 감상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지 않을까.

런던과학박물관은 자국민들의 과학교육 증진을 위해 1857년 설립됐다. 1851년 런던에서 열린 런던만국박람회의 자료들을 바탕으로 출발한 후, 1883년 특허박람회의 자료를 통합해 1893년 현재의 과학박물관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런던과학박물관은 1851년 런던에서 열린 런던만국박람회의 자료들을 바탕으로 출발한 후, 1883년 특허박람회의 자료를 통합해 설립됐다. ⓒ 장미경

런던과학박물관의 구조는 지하 2층에서부터 지상 5층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0층(Ground floor)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거대한 증기기관 전시물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바로 에너지전시관이다. 이 곳에는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뿐만 아니라, 각종 에너지 동력 자료들이 꼼꼼하고 섬세하게 전시돼 있다. 과학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첫 번째 전시물이 산업혁명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과학관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거대한 증기기관 전시물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바로 에너지전시관이다. ⓒ장미경

실제로 영국의 산업혁명은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개량된 증기기관으로 대변된다. 새로운 에너지 활용 방법과 공장제의 출현은 엄청난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고, 이 덕분에 영국은 세계 최초로 산업화에 성공한다. 그래서일까. 영국에 있는 수많은 과학관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제임스 와트다. 영국이 제임스 와트에 표하는 존경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영국에 있는 수많은 과학관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제임스 와트다. ⓒ 장미경

에너지관 뒤로 이어지는 전시관에는 우주탐험관(Exploring Space)과 근현대세계관(Making the modern world)이 자리하고 있다. 우주탐험관 입구에는 실물 크기의 로켓이 전시되어 있어 생생함과 신비로움을 더한다. 근현대세계관에서는 대략 17세기부터 현재까지의 과학기술이 낳은 대표 산물들을 총체적으로 만날 수 있어, 과학의 발달과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과학관

런던과학박물관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가장 인상적으로 느낀 부분은, 바로 탄탄한 스토리라인에 중점을 두고 전시물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관람객들이 과학기술의 흐름을 쉽고 재미있게 접함과 동시에, 또 다른 지적 욕구와 흥미를 갖게 된다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고전을 읽다보면 위대한 작가와 차 한 잔을 옆에 두고 대화를 하고 있다는 착각 속으로 빠져들 때가 있는데, 전시가 잘 꾸며진 과학관에서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전시물들의 구성과 배치, 설명을 읽다보면 마치 과학관 설립자가 나타나, 왜 전시물을 이렇게 배치했는지,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지, 흥미롭고 자연스럽게, 그러나 열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상상에 빠질 수 있으니 말이다.

런던과학박물관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가장 인상적으로 느낀 부분은, 바로 탄탄한 ‘스토리라인’에 중점을 두고 전시물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 장미경

스토리라인의 힘 덕분일까. 런던과학박물관의 전시동선을 따라 전시물 하나하나를 접하다보면, 흥미로운 이야기 속을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 곳에서는 시간이 흐르고 어느 곳에서는 과학 이야기가 흐른다. 현대 사회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스토리텔링’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과학관인 셈이다. 이 부분은 워낙 방대한 양의 전시물 실체와 콘텐츠를 갖고 있는 영국이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세계를 변화시킨 6개의 네트워크

1층으로 가면 재료관(material)과 농업관(agriculture)이 있다. 농업관 역시 실제 농기구뿐만 아니라, 각종 생생한 모형을 이용해 시대의 흐름에 따른 농업의 역사를 알기 쉽게 전시해놓고 있다. 동선을 따라 이어진 우주관(Cosmos)에서는 고대로부터 지구과학과 관련된 영상 등을 통해 별과 인간에 대해 알려주고 있으며, 인류관(Who am I)에서는 뇌와 유전자에 대해 설명한다. 스토리텔링의 힘으로 전시를 이끌어가는 일관성은 어느 전시관에서나 유지된다.

1층 농업관에는 실제 농기구뿐만 아니라, 각종 생생한 모형을 이용해 시대의 흐름에 따른 농업의 역사를 알기 쉽게 전시해놓고 있다. ⓒ 장미경

런던과학박물관에서 가장 흥미롭게 느껴진 전시관은 바로 2층에 자리하고 있는 정보시대관(Information age)이다. 이 전시관은 세계를 변화시킨 6개의 네트워크를 주제로, 현대 정보통신사회에 대한 전시물을 다루고 있다. 6개의 소주제마다 수십 개의 전시물들을 갖고 있는데, 특이한 점은 이와 별도로 3-4개의 짤막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한 주제관(Exchange)에서는 1957년 런던의 콘서트장에 울려 퍼진 흑인가수 폴 로브슨(Paul Robeson)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가수로서 노래를 부르지만 한명의 시민으로서 언제나 평화를 말할 것이다. 그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다.” 폴은 런던이 아닌 뉴욕에서 전화선을 통해 런던의 콘서트장에 자리한 시민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달했다. 전시물과 사람과의 관계를 설정해 전시물이 생명력을 얻고, 관람자의 뇌리에 생생하고 오랫동안 기억되도록 설계했다는 점은, 스토리텔링 아이디어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과학기술의 역할에 대한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2층 정보시대관에서는 우리의 세계를 변화시킨 6개의 네트워크를 주제로, 현대 정보통신사회에 대한 전시물을 다루고 있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나타낸 메인 전시물. ⓒ 장미경

보고 만지고 체험하며 즐긴다

이번에는 아이들을 위한 체험형 과학센터가 있는 3층으로 올라가보자. 론치 패드(Launch Pad)라고 이름 붙여진 이 전시관에는 각종 체험형 전시물과 사이언스쇼 공연장이 자리하고 있어 아침 개장시간부터 수많은 아이들이 끊임없이 찾는 장소다. 흥미로운 경험을 통해 과학에 대한 자극을 갖게 된다는 점은 여느 체험형 과학센터처럼 좋았지만,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함께 자리하고 즐기기엔 다소 비좁아 아쉬웠다. 아마 전문적인 과학센터 방문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면, 만족감이 조금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3층에는 아이들을 위한 체험형 과학센터인 ‘론치 패드(Launch pad)가 있다. ⓒ 장미경

두 구획으로 나눠진 체험형 전시관 사이에는 사이언스쇼가 펼쳐지는 공연장이 있는데, 하루 6회, 1시간 간격으로 2가지 주제를 번갈아서 회당 약 40분 정도 공연을 진행한다. 뛰어난 순발력과 전문성을 갖춘 진행자가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재치와 유머를 섞어 과학실험을 설명해주는 방식이다. 매 공연마다 10여명의 아이들에게 자발적으로 참여할 기회도 주고 있어, 과학 공연이 지향하는 체험형 과학학습 목표에 제대로 부합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3층에 있는 사이언스쇼 공연장에서는 하루 6회, 1시간 간격으로 2가지 주제를 번갈아서 회당 약 40분 정도 과학공연이 진행된다. ⓒ장미경

이밖에 4층과 5층에는 의학 관련 역사와 자료를 만날 수 있는 전시관이 있다. 특히 고대 이집트에서 이용하는 의학 기구에서부터 중세, 근대까지의 동양과 서양의 진기한 의학 관련 기구와 작품이 수백여점 전시되어 있다. 이 곳 역시 관심 있는 전시물들의 설명을 읽다보면 기구의 사용 방법과 함께 과거 이 지역에서 의학을 대하는 사람들의 풍습까지 배울 수 있다. 또한 일부 잘못된 의학상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기구들에 대해서는 그에 대한 올바른 의학지식을 같이 전달해 줌으로써, 관람자가 자연스럽게 의학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5층의 의학관에는 동양과 서양의 진기한 의학 관련 기구와 작품이 수백여점 전시되어 있다. 외과 수술 장면을 실제 크기 비율로 생생하게 재현한 전시물. ⓒ 장미경

과학 역사를 이끈 비결

16세기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성경의 한 구절(“Many will go back and forth and knowledge will increase.”)을 인용해 관찰과 실험 등 경험에 기초한 과학적 방법과 정보 교류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원칙을 확립했다. 영국은 이 사상을 출발점으로 삼아 과학학회를 만들어 각종 과학 정보를 공유했고, 더 나아가 왕립학회 결성 및 각종 과학 지식을 나라 전역에 보급하는 일에 매진했다. 또한 1624년 세계 최초로 실질적인 특허권을 만들어 지식정보 생산자의 권리를 보장해주었다. 이러한 지식정보사회 환경 구축은 뉴턴과 같은 위대한 과학자가 탄생할 수 있는 든든한 배경이 되었고, 제임스 와트가 개량된 증기기관을 만들어 산업혁명이 이루어지게 하는 토양으로 작용하게 된다. 영국이 과학의 역사를 이끌어온 비결인 셈이다.

런던과학박물관의 내부 모습. 현대의 과학박물관 설립 목적도 영국이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과학의 역사와 뜻을 같이 하지 않을까. ⓒ 장미경

현대의 과학박물관 설립 목적도 영국이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과학의 역사와 뜻을 같이 하지 않을까. 과학관을 통해 국민들의 과학적 소양을 증진시킴으로써 두텁고 현명한 시민 계층을 형성하고, 제도로서 과학자의 권리를 보장해 국가 전체의 과학 수준과 생산성, 나아가 창의성과 미래 동력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나라들이 영국 산업혁명의 성공 시스템을 배우고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과학박물관 역시 그 핵심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