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전갈과 개구리가 살았다. 전갈이 길을 가다가 개천에 다다랐다. 전갈: 개구리야, 나 좀 태워줘.
개구리: 싫어, 부모님이 전갈은 독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어.
전갈: 걱정마! 내가 너를 찌르면 나도 물에 빠져 죽는데, 설마 찌르겠니?
개구리: 아~ 그렇구나. 어서 타렴!
개천을 건너는데, 물살이 거세졌다. 놀란 전갈은 무의식중에 개구리에게 독침을 놨다.
개구리: 아얏~! 아니, 너도 빠져 죽을 텐데 왜 날 찔렀니?
전갈: 미안해. 어쩔 수 없어. 그게 나의 본성인걸….
저명한 생물학자인 미국 하버드대 에드워드 윌슨 교수는 ‘지구의 정복자’라는 저서에서 이 우화를 언급하며 “전쟁은 유전된 저주”와 같다고 말했다. 그는 “종종 대량학살을 수반하는 전쟁이 몇몇 극소수사회의 문화적 인공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중략) 전쟁과 대량학살은 어느 특정한 시대나 장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영속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성’을 갖고 있는 유일한 생명체, 조물주가 자신의 모습대로 창조했다던 인간은 왜 야만적인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 것일까?
다행히도 20세기 후반 들어 전쟁이 줄어들고 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인류안보센터가 발간한 ‘인류안보보고서’에 따르면, 이른바 강대국 간의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없었으며 최근 몇 백 년 동안 가장 평화로운 기간이었다. 2차 대전 이후에는 식민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독립 전쟁, 국가 간 소규모 영토 분쟁, 종교 분쟁이 있었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역시 크게 줄어들었다. 보고서는 1992년부터 2005년까지 13년간 무력분쟁이 40%줄었고, 사망자 역시 80%나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센터는 “1980년 초반부터 당시 국제 전쟁의 60~100%를 차지했던 식민지 독립 전쟁이 거의 끝났고, 1990년대 들어 냉전이 종식되면서 관련된 무력 분쟁이 줄었다”고 분석했다. 센터는 이 같은 갈등 요소가 줄어든 것과 함께 세계의 민주화 바람, 무역의 증대, 국제기구 활동으로 평화 체제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갈의 독침 같은 인간의 전쟁 본능이 정말로 꼬리를 내리는 것일까? 이에 대해 과학은 전쟁이 감소한 3가지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1 잔인성의 입지는 줄고, 호혜의 동심원은 커진다
국제 뉴스를 보다 보면 ‘저 민족 너무 호전적이야’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역사적으로도 전쟁과 침탈을 일삼으며 주변국에 공포감을 심어주는 민족과 국가가 종종 있었다. 성경 민수기를 보면 모세가 1만 2000명의 군대를 구성해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인 미디안을 공격한 뒤, 처녀를 제외하고 남자와 유부녀를 모두 죽이고 재물을 탈취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만 해도 부족 간 잔인한 전쟁이 흔한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장면은 고대의 벽화나 유적지의 유골 무덤 등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심리학자인 하버드대 스티븐 핑커 교수는 “중세는 범죄를 처형하는 것이 일종의 오락으로 자리 잡았을 정도로 잔인성이 만연한 사회”라고 설명했다. 민족이나 개인의 호전적이거나 잔인한 성격은 어떻게 진화된 걸까?
박승배 UNIST 교수는 2013년 발표한 ‘사이코패스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에서 “생활환경이 열악했던 과거에는 잔인하고 호전적인 인간이 생존해 자손을 낳을 확률이 컸고, 결국 호전적인 유전자가 현재까지 이어온 것”이라고 해석했다. 고대 사회에는 호전적인 성격이 유순한 것보다 생존에 유리했다. 구석기 시대에는 과일, 물, 가축 등을 확보하거나 재난을 피해 여기저기 이동하면서 생활했다. 이동을 하다보면 다른 부족과 충돌은 불가피했고 결국 싸움을 벌여야 했다. 이때 호전적인 사람과 민족이 다른 부족을 제압하고 식량 등을 구하는 데 유리했다. 호전적인 사람들은 살인, 폭력에 대해서 죄책감을 덜 느끼며, 부족 내에서 지도자 자리를 차지하는 일도 많았다. 박 교수는 “인류의 조상은 현재보다 훨씬 잔인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호전성과 잔인성이 현대 들어 꽤 줄어든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핑커 교수는 ‘우리 본성의 더 나은 천사들: 왜 폭력은 감소했는가’라는 저서에서 “고대 시대에 사람이 살해당한 비율이 15%였지만, 20세기에는 3%로 줄었다”며 “현재가 아마도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일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범죄학연구소의 마누엘 아이스너 교수도 현대 유럽의 범죄 비율이 중세의 10%에 불과하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는 정부가 발달한 근현대 사회에서 잔인성과 호전성이 발붙일 여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 정부가 출현하면서 공권력만이 합법적으로 폭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됐고, 개인, 부족 간 폭력은 정부가 형벌로 다스면서 잔인성을 동반한 폭력은 점차 줄어들었다.
반면 서로 도와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호혜성이 증가했다. 핑커 교수는 현대 사회가 과거에 비해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과학기술과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는 2013년 12월 26일 열린 다산포럼에서 조선시대 사람들의 평균수명을 35세 내외, 혹은 그 이하로 추정했으며 영아사망율도 높았다고 보고했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가족 등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흔히 접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처럼 죽음이 일상화됐던 고대나 중세 시대에는 개인의 생명 가치가 그리 높지 못했다.
핑커 교수는 “현대 사회에서 수명이 늘고,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즐길 것이 늘어나 ‘삶은 살만한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며 “생명에 대한 존중 의식이 퍼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인터넷, 방송 등 정보통신미디어 기술이 발달해 세계가 좁아지면서 다른 대륙의 국가, 다른 민족에 대한 존중이 커졌다. 생명윤리학자인 미국 프린스턴대 피터 싱어 교수도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공감능력이 동심원처럼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인간의 공감능력이 친척, 마을, 부족, 국가, 다른 민족, 다른 성별로 확산됐고, 앞으로 이를 동물까지 넓혀야한다”고 주장했다.
2 경제의존성이 0.6을 넘으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경제가 발전하고 교역을 통해 얻는 것이 커지면서 국제 교류가 생겼다. 대표적인 것이 실크로드다. 경제 교류는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전쟁을 막는 방패 역할도 해왔다. 흔히 경제적으로 긴밀히 연결될수록 전쟁은 줄어들 것으로 추측하는데 정말 그럴까? 과학적인 방법으로 이를 증명한 연구가 있다.
민병원 이화여대 정치학과 교수는 ‘경제적 상호의존성과 전쟁’이라는 2006년 논문에서 경제적으로 서로 의존하고 있는 국가들의 전쟁 확률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했다. 민 교수는 우선 A, B 두 나라가 얼마나 서로 의존하는지를 측정했다. 양국이 교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대수준은 희소한 자원을 갖고 있을 수록 높다. 그리고 각국의 기대 수준을 그 나라의 국력을 기준으로 나눴다. ‘(수출액+수입액)/GDP’를 계산한 것과 같은 원리다. A국이 B국과 교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을 100이라고 하고, 국력이 1000이라면 A국의 B국에 대한 의존도는 0.1이다. A국이 전쟁 또는 무역으로 국력을 2000으로 강화했다면, 0.05가 된다.
민 교수는 또 실제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을 프로그래밍 했다. 프로그램 속에서 A나라가 전쟁을 선택하면(선전포고를 하면) 상대국인 B는 맞서 싸울지 또는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을지 결정한다. 동맹은 각국이 주고받는 기대수준에 따라 맺어질 수도 거부될 수도 있다. B가 동맹을 결성하면 A 역시 B동맹과 힘을 비교한 뒤 전쟁을 선택하거나 다른 국가와 동맹을 시도한다. 이런 식으로 동맹 결성이 마무리된 뒤, A진영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면 전쟁을 감행한다. 전쟁이 끝나면 영토를 넘겨주는 등 전쟁 비용을 계산해서 다시 세력 지형도를 그린다. 민 교수는 여기에 ‘교역’이라는 변수를 추가했다. 모든 국가들이 ‘전쟁’과 ‘교역’ 중 기대 수준이 큰 쪽으로 결정을 내리도록 한 것이다.
민 교수는 이 시뮬레이션을 5000번 돌린 뒤 38만 9454개의 사례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경제적으로 상호의존성이 높을수록 전쟁을 선택할 확률은 대체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상호의존성이 0.3이 되기 전까지는 교역이 증가할수록 전쟁 가능성도 함께 커졌다. 상호의존성이 0.3을 넘으면 전쟁을 선택할 비율은 낮아지며 0.6 이상에서는 전쟁 확률이 0이 됐다. 민 교수는 “교역이 일정 규모를 넘어서야 경제와 평화가 비례한다”며 “애매한 수준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은 오히려 전쟁의 가능성을 높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평화를 유지하려면 경제적으로 매우 복잡하게 의존해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 역사에서 현대 경제의 발달과 전쟁 발발을 조사해 봐도 유사하다. 무역량이 증가하던 17~18세기에는 제국주의 바람이 거셌고 유럽, 아프리카, 미국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잦았다. 그러나 이제는 세계 각국이 다양한 방식으로 엮여 있어 전쟁의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다. 2012년 세계 교역량은 약 45조 달러(약 4경 7600조 원)로 2000년보다 3배 커졌다. 100년 전과 비교하는 것은 너무 차이가 커서 무의미하다. 물자의 교류뿐 아니라 컴퓨터와 네트워크로 복잡하게 엮인 금융망을 통해 ‘보이지 않는 돈’이 오가고 있다. 2012년 기준으로 하루에 5조 3000억 달러(5600조원) 규모다. 이제는 전쟁으로 얻는 전리품보다 전쟁으로 경제 네트워크가 붕괴하면서 잃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그렇다면 전쟁보다 교역과 평화를 선택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3 견제가 전쟁을 줄인다.
전쟁을 줄이기 위해서는 군비를 축소해야한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서로 견제할 수 있는 강한 무기가 생기면서 전쟁이 줄었다
는 해석도 있다. 게임이론가들은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설명한다.
현재 상황을 변경해 공격함으로써 얻는 효용인 W변수, 공격에서 실패해 보는 손실 L변수, 현재의 상태를 유지해서 얻는 효용인 S변수를 전쟁에서 이길 확률인 p와 연계해 이해득실을 따져보는 것이다. 두 번째 공식을 만족하면(p가 더 크면) 전쟁을 벌이고, 만족하지 않으면 포기한다. 그런데 상대국도 강한 무기를 보유하면서 p가 커지기 어려워진 것이다. 즉 상대국에 대한 승산이 앞도적으로 높지 않다면, 공격을 단행하기 어렵다.
1990년 이후 국지전이 줄어든 것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일부 강대국을 제외하고는 군사력이 대동소이하다. 군사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지 않다면 공격을 하기 쉽지 않다. 또 대다수의 국가들이 미국, 러시아, 중국, EU 등 강대국의 동맹국이어서 공격이 성공해도 동맹의 반격은 당한다.
이런 이유로 요즘은 상대국의 무모한 도발을 막기 위해 ‘보복 공격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주기적으로 군사 훈련을 하거나 강대국과 동맹을 맺어 앞선 공식에서 부등식이 성립하지 않도록, 즉 상대가 선제공격하면 그 이상의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걸프전 때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지만, 미국의 반격을 받아 도리어 큰 피해를 받은 점, 오사마 빈 라덴이 9·11 테러를 일으켰다가 미국의 보복으로 사망한 점 등은 어설픈 선제공격이 응징을 당한 사례다. 이처럼 게임이론에 따르면 상대의 능력을 완전히 뛰어 넘지 않는다면 피해가 큰 보복을 당하기 때문에, 서로가 견제하면서 공포를 줄 뿐 실제 공격으로 이어지는 일은 줄어든다.
핵 억지력도 비슷한 개념이다. 게임이론으로 200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메릴랜드대 토머스 셸링 교수는 “핵무기는 다른 무기와는 질적으로 다르며 핵무기와 관련해서 세계 강국에는 핵폭탄을 보유할 뿐 사용하지 않는다고 기대하는 전통이 있다”고 분석했다. 즉, 한 방에 모두를 불태울 수 있어, 핵 보유국에는 함부로 전쟁을 도발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약소국도 적의 침략을 억지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파국은 한번에 올 수 있다
미래에는 결국 전쟁이 없어질 수 있을까? 아쉽게도 현재의 질서를 한 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변화가 온다면 인류는 다시 원시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민병원 교수는 자신의 논문 ‘전쟁의 규모와 빈도’에서 “규모 7 이상의 대형 지진에 비유할 수 있는 1차 및 2차 세계대전 역시 예외적인 현상이라기보다 일반 법칙을 따르고 있다”며 “앞으로 강도 8 이상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동국대 이관수 교수는 “급격한 기후변화 등으로 식량난 등이 온다면 국가간 전쟁은 다시 많아질 것”이라며 “식량이 부족하고 체제가 불안한 아프리카 등에서 아직도 학살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인류가 만들어 놓은 평화 체계는 아직 허술한 얼개일 뿐이다. 인류가 전쟁을 멈추려면 통신, 교통, 경제 관계를 발달시켜 인류 모두가 동질감을 갖도록하며, 과학과 같은 합리적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세계의 민주의식을 높여야할 것으로 보인다.
과학동아
개구리: 싫어, 부모님이 전갈은 독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어.
전갈: 걱정마! 내가 너를 찌르면 나도 물에 빠져 죽는데, 설마 찌르겠니?
개구리: 아~ 그렇구나. 어서 타렴!
개천을 건너는데, 물살이 거세졌다. 놀란 전갈은 무의식중에 개구리에게 독침을 놨다.
개구리: 아얏~! 아니, 너도 빠져 죽을 텐데 왜 날 찔렀니?
전갈: 미안해. 어쩔 수 없어. 그게 나의 본성인걸….
저명한 생물학자인 미국 하버드대 에드워드 윌슨 교수는 ‘지구의 정복자’라는 저서에서 이 우화를 언급하며 “전쟁은 유전된 저주”와 같다고 말했다. 그는 “종종 대량학살을 수반하는 전쟁이 몇몇 극소수사회의 문화적 인공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중략) 전쟁과 대량학살은 어느 특정한 시대나 장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영속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성’을 갖고 있는 유일한 생명체, 조물주가 자신의 모습대로 창조했다던 인간은 왜 야만적인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 것일까?
다행히도 20세기 후반 들어 전쟁이 줄어들고 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인류안보센터가 발간한 ‘인류안보보고서’에 따르면, 이른바 강대국 간의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없었으며 최근 몇 백 년 동안 가장 평화로운 기간이었다. 2차 대전 이후에는 식민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독립 전쟁, 국가 간 소규모 영토 분쟁, 종교 분쟁이 있었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역시 크게 줄어들었다. 보고서는 1992년부터 2005년까지 13년간 무력분쟁이 40%줄었고, 사망자 역시 80%나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센터는 “1980년 초반부터 당시 국제 전쟁의 60~100%를 차지했던 식민지 독립 전쟁이 거의 끝났고, 1990년대 들어 냉전이 종식되면서 관련된 무력 분쟁이 줄었다”고 분석했다. 센터는 이 같은 갈등 요소가 줄어든 것과 함께 세계의 민주화 바람, 무역의 증대, 국제기구 활동으로 평화 체제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갈의 독침 같은 인간의 전쟁 본능이 정말로 꼬리를 내리는 것일까? 이에 대해 과학은 전쟁이 감소한 3가지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1 잔인성의 입지는 줄고, 호혜의 동심원은 커진다
국제 뉴스를 보다 보면 ‘저 민족 너무 호전적이야’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역사적으로도 전쟁과 침탈을 일삼으며 주변국에 공포감을 심어주는 민족과 국가가 종종 있었다. 성경 민수기를 보면 모세가 1만 2000명의 군대를 구성해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인 미디안을 공격한 뒤, 처녀를 제외하고 남자와 유부녀를 모두 죽이고 재물을 탈취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만 해도 부족 간 잔인한 전쟁이 흔한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장면은 고대의 벽화나 유적지의 유골 무덤 등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심리학자인 하버드대 스티븐 핑커 교수는 “중세는 범죄를 처형하는 것이 일종의 오락으로 자리 잡았을 정도로 잔인성이 만연한 사회”라고 설명했다. 민족이나 개인의 호전적이거나 잔인한 성격은 어떻게 진화된 걸까?
박승배 UNIST 교수는 2013년 발표한 ‘사이코패스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에서 “생활환경이 열악했던 과거에는 잔인하고 호전적인 인간이 생존해 자손을 낳을 확률이 컸고, 결국 호전적인 유전자가 현재까지 이어온 것”이라고 해석했다. 고대 사회에는 호전적인 성격이 유순한 것보다 생존에 유리했다. 구석기 시대에는 과일, 물, 가축 등을 확보하거나 재난을 피해 여기저기 이동하면서 생활했다. 이동을 하다보면 다른 부족과 충돌은 불가피했고 결국 싸움을 벌여야 했다. 이때 호전적인 사람과 민족이 다른 부족을 제압하고 식량 등을 구하는 데 유리했다. 호전적인 사람들은 살인, 폭력에 대해서 죄책감을 덜 느끼며, 부족 내에서 지도자 자리를 차지하는 일도 많았다. 박 교수는 “인류의 조상은 현재보다 훨씬 잔인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호전성과 잔인성이 현대 들어 꽤 줄어든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핑커 교수는 ‘우리 본성의 더 나은 천사들: 왜 폭력은 감소했는가’라는 저서에서 “고대 시대에 사람이 살해당한 비율이 15%였지만, 20세기에는 3%로 줄었다”며 “현재가 아마도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일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범죄학연구소의 마누엘 아이스너 교수도 현대 유럽의 범죄 비율이 중세의 10%에 불과하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는 정부가 발달한 근현대 사회에서 잔인성과 호전성이 발붙일 여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 정부가 출현하면서 공권력만이 합법적으로 폭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됐고, 개인, 부족 간 폭력은 정부가 형벌로 다스면서 잔인성을 동반한 폭력은 점차 줄어들었다.
반면 서로 도와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호혜성이 증가했다. 핑커 교수는 현대 사회가 과거에 비해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과학기술과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는 2013년 12월 26일 열린 다산포럼에서 조선시대 사람들의 평균수명을 35세 내외, 혹은 그 이하로 추정했으며 영아사망율도 높았다고 보고했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가족 등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흔히 접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처럼 죽음이 일상화됐던 고대나 중세 시대에는 개인의 생명 가치가 그리 높지 못했다.
핑커 교수는 “현대 사회에서 수명이 늘고,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즐길 것이 늘어나 ‘삶은 살만한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며 “생명에 대한 존중 의식이 퍼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인터넷, 방송 등 정보통신미디어 기술이 발달해 세계가 좁아지면서 다른 대륙의 국가, 다른 민족에 대한 존중이 커졌다. 생명윤리학자인 미국 프린스턴대 피터 싱어 교수도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공감능력이 동심원처럼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인간의 공감능력이 친척, 마을, 부족, 국가, 다른 민족, 다른 성별로 확산됐고, 앞으로 이를 동물까지 넓혀야한다”고 주장했다.
2 경제의존성이 0.6을 넘으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경제가 발전하고 교역을 통해 얻는 것이 커지면서 국제 교류가 생겼다. 대표적인 것이 실크로드다. 경제 교류는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전쟁을 막는 방패 역할도 해왔다. 흔히 경제적으로 긴밀히 연결될수록 전쟁은 줄어들 것으로 추측하는데 정말 그럴까? 과학적인 방법으로 이를 증명한 연구가 있다.
민병원 이화여대 정치학과 교수는 ‘경제적 상호의존성과 전쟁’이라는 2006년 논문에서 경제적으로 서로 의존하고 있는 국가들의 전쟁 확률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했다. 민 교수는 우선 A, B 두 나라가 얼마나 서로 의존하는지를 측정했다. 양국이 교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대수준은 희소한 자원을 갖고 있을 수록 높다. 그리고 각국의 기대 수준을 그 나라의 국력을 기준으로 나눴다. ‘(수출액+수입액)/GDP’를 계산한 것과 같은 원리다. A국이 B국과 교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을 100이라고 하고, 국력이 1000이라면 A국의 B국에 대한 의존도는 0.1이다. A국이 전쟁 또는 무역으로 국력을 2000으로 강화했다면, 0.05가 된다.
민 교수는 또 실제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을 프로그래밍 했다. 프로그램 속에서 A나라가 전쟁을 선택하면(선전포고를 하면) 상대국인 B는 맞서 싸울지 또는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을지 결정한다. 동맹은 각국이 주고받는 기대수준에 따라 맺어질 수도 거부될 수도 있다. B가 동맹을 결성하면 A 역시 B동맹과 힘을 비교한 뒤 전쟁을 선택하거나 다른 국가와 동맹을 시도한다. 이런 식으로 동맹 결성이 마무리된 뒤, A진영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면 전쟁을 감행한다. 전쟁이 끝나면 영토를 넘겨주는 등 전쟁 비용을 계산해서 다시 세력 지형도를 그린다. 민 교수는 여기에 ‘교역’이라는 변수를 추가했다. 모든 국가들이 ‘전쟁’과 ‘교역’ 중 기대 수준이 큰 쪽으로 결정을 내리도록 한 것이다.
민 교수는 이 시뮬레이션을 5000번 돌린 뒤 38만 9454개의 사례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경제적으로 상호의존성이 높을수록 전쟁을 선택할 확률은 대체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상호의존성이 0.3이 되기 전까지는 교역이 증가할수록 전쟁 가능성도 함께 커졌다. 상호의존성이 0.3을 넘으면 전쟁을 선택할 비율은 낮아지며 0.6 이상에서는 전쟁 확률이 0이 됐다. 민 교수는 “교역이 일정 규모를 넘어서야 경제와 평화가 비례한다”며 “애매한 수준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은 오히려 전쟁의 가능성을 높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평화를 유지하려면 경제적으로 매우 복잡하게 의존해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 역사에서 현대 경제의 발달과 전쟁 발발을 조사해 봐도 유사하다. 무역량이 증가하던 17~18세기에는 제국주의 바람이 거셌고 유럽, 아프리카, 미국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잦았다. 그러나 이제는 세계 각국이 다양한 방식으로 엮여 있어 전쟁의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다. 2012년 세계 교역량은 약 45조 달러(약 4경 7600조 원)로 2000년보다 3배 커졌다. 100년 전과 비교하는 것은 너무 차이가 커서 무의미하다. 물자의 교류뿐 아니라 컴퓨터와 네트워크로 복잡하게 엮인 금융망을 통해 ‘보이지 않는 돈’이 오가고 있다. 2012년 기준으로 하루에 5조 3000억 달러(5600조원) 규모다. 이제는 전쟁으로 얻는 전리품보다 전쟁으로 경제 네트워크가 붕괴하면서 잃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그렇다면 전쟁보다 교역과 평화를 선택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3 견제가 전쟁을 줄인다.
전쟁을 줄이기 위해서는 군비를 축소해야한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서로 견제할 수 있는 강한 무기가 생기면서 전쟁이 줄었다
는 해석도 있다. 게임이론가들은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설명한다.
현재 상황을 변경해 공격함으로써 얻는 효용인 W변수, 공격에서 실패해 보는 손실 L변수, 현재의 상태를 유지해서 얻는 효용인 S변수를 전쟁에서 이길 확률인 p와 연계해 이해득실을 따져보는 것이다. 두 번째 공식을 만족하면(p가 더 크면) 전쟁을 벌이고, 만족하지 않으면 포기한다. 그런데 상대국도 강한 무기를 보유하면서 p가 커지기 어려워진 것이다. 즉 상대국에 대한 승산이 앞도적으로 높지 않다면, 공격을 단행하기 어렵다.
1990년 이후 국지전이 줄어든 것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일부 강대국을 제외하고는 군사력이 대동소이하다. 군사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지 않다면 공격을 하기 쉽지 않다. 또 대다수의 국가들이 미국, 러시아, 중국, EU 등 강대국의 동맹국이어서 공격이 성공해도 동맹의 반격은 당한다.
이런 이유로 요즘은 상대국의 무모한 도발을 막기 위해 ‘보복 공격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주기적으로 군사 훈련을 하거나 강대국과 동맹을 맺어 앞선 공식에서 부등식이 성립하지 않도록, 즉 상대가 선제공격하면 그 이상의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걸프전 때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지만, 미국의 반격을 받아 도리어 큰 피해를 받은 점, 오사마 빈 라덴이 9·11 테러를 일으켰다가 미국의 보복으로 사망한 점 등은 어설픈 선제공격이 응징을 당한 사례다. 이처럼 게임이론에 따르면 상대의 능력을 완전히 뛰어 넘지 않는다면 피해가 큰 보복을 당하기 때문에, 서로가 견제하면서 공포를 줄 뿐 실제 공격으로 이어지는 일은 줄어든다.
핵 억지력도 비슷한 개념이다. 게임이론으로 200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메릴랜드대 토머스 셸링 교수는 “핵무기는 다른 무기와는 질적으로 다르며 핵무기와 관련해서 세계 강국에는 핵폭탄을 보유할 뿐 사용하지 않는다고 기대하는 전통이 있다”고 분석했다. 즉, 한 방에 모두를 불태울 수 있어, 핵 보유국에는 함부로 전쟁을 도발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약소국도 적의 침략을 억지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파국은 한번에 올 수 있다
미래에는 결국 전쟁이 없어질 수 있을까? 아쉽게도 현재의 질서를 한 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변화가 온다면 인류는 다시 원시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민병원 교수는 자신의 논문 ‘전쟁의 규모와 빈도’에서 “규모 7 이상의 대형 지진에 비유할 수 있는 1차 및 2차 세계대전 역시 예외적인 현상이라기보다 일반 법칙을 따르고 있다”며 “앞으로 강도 8 이상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동국대 이관수 교수는 “급격한 기후변화 등으로 식량난 등이 온다면 국가간 전쟁은 다시 많아질 것”이라며 “식량이 부족하고 체제가 불안한 아프리카 등에서 아직도 학살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인류가 만들어 놓은 평화 체계는 아직 허술한 얼개일 뿐이다. 인류가 전쟁을 멈추려면 통신, 교통, 경제 관계를 발달시켜 인류 모두가 동질감을 갖도록하며, 과학과 같은 합리적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세계의 민주의식을 높여야할 것으로 보인다.
과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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