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별로 먹지 않는 필자에게 하루 한두 개 먹는 달걀은 단백질과 지방의 주요 공급원이다. 그런데 값싸고 흔한 달걀이 지난 1년 동안
끊임없이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다. 최악의 조류독감(AI)으로 닭 수천만 마리가 매몰되면서 달걀을 외국에서 수입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살충제 달걀
파동으로 소비자들이 달걀을 외면하고 있다. 달걀 하나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세상인 것 같아 씁쓸하다.
그런데 살충제 달걀 사태를 지켜보니 이게 단순히 달걀의 문제가 아니라 농업 전반의 위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순한(인체에 해가 적은) 살충제를 이것저것 다 써봤지만 소용이 없어 독성이 강한 살충제를 쓸 수밖에 없었다는(그리고 수의사도 추천했다는) 양계농장주의 인터뷰가 회피성 변명으로만 들리지 않았다.
학술지 ‘네이처’ 3월 16일자에는 ‘농약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When the pesticides run out)’이라는 제목의, 농약 내성의 현주소와 그 해결책을 다룬 심층기사가 실렸다. 여기서 잠깐 용어정리를 하면 농약이라고 번역한 pesticide의 pest는 해충이나 유해동물 같은 사전적인 의미가 아니라 ‘인간이 존재하기 원하지 않는 생물체’를 뜻한다. 즉 잡초나 미생물도 포함되는 개념이다. 농약은 죽이는 생물의 유형에 따라 살충제(insecticide), 제초제(herbicide), 제진균제(fungicide)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화학이 이끈 농업혁명의 뒤끝
1만 여 년 전 인류는 식물을 작물로 만들고 동물을 가축화하면서 농업을 시작해 먹을거리를 찾아 이곳저곳 떠도는 생활을 청산했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즉 노동량이 크게 늘었는데 그 가운데 사람에 의존하게 된 동식물들을 공격하는 생명체, 즉 인간이 존재하기 원하지 않는 생물체를 관리하는 일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주된 작업은 잡초를 뽑는 일이었는데 벌레나 미생물은 돌려짓기(윤작)나 섞어 심기 같은 방법 외에는 마땅한 대처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 생물체 역시 천적이나 치명적인 기생생물이 있었기 때문에 농사를 아예 망치게 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화학이 농업에 개입하면서 새로운 국면이 전개됐다. 화학비료와 농약이 등장하면서 농업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지자 농업은 거대산업이 됐다. 이제 농부들은 더 이상 돌려짓기나 섞어 심기 같은 귀찮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됐고 밀이나 옥수수 같은 단일 작물이 거대한 들판을 뒤덮었고 경비행기가 농약을 뿌리는 광경이 일상이 됐다.
그러나 농약에 대한 내성이 생긴 생명체들이 등장하면서 사태가 뒤바뀌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 1940년대 이미 농약 내성으로 농작물의 7%를 잃었고 1990년대에는 13%에 이르렀다. 이 기간 동안 수많은 새로운 농약이 등장했고 살포량도 훨씬 많아진 걸 생각하면 미미한 증가는 아니다. 더 걱정스러운 건 2000년대 들어 작용 메커니즘이 완전히 새로운 유형인 농약이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농약 내성인 생명체의 비율이 늘어날수록 농작물 피해는 비례해 커질 것이다. 심층기사의 제목이 ‘농약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인 이유다.
실제 한 가지 이상의 농약에 대해 내성을 지닌 것으로 보고된 생명체의 종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크롭라이프인터내셔널(CropLife International)이라는 기관의 집계에 따르면 현재 절지동물 586종, 곰팡이 235종, 잡초 252종이 한 가지 이상의 농약에 대해 내성을 지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농약 내성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해독 효소가 몸무게 1%에 이르기도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병균의 항생제 내성과 본질적으로 같다. 즉 농약이 선택압으로 작용해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유전자를 지닌 개체가 ‘자연선택’돼 우점종이 되는 과정이다. 살충제 달걀을 ‘기념’해 살충제 내성의 유형을 살펴보자.
먼저 해독 메커니즘을 강화하는 방향의 변이로 해독 유전자의 복제수를 늘리거나 발현량을 늘려 살충제에 대응한다. 해충 몸의 입장에서 살충제 성분은 낯선 분자, 즉 ‘생체이물(xenobiotic)’이다. 참고로 어떤 생명체의 몸을 이루는 성분이 아닌 모든 화합물은 생체이물이다.
소화계는 영양분을 소화해 흡수하고 배출하는 것뿐 아니라 이런 생체이물도 적절하게 대사해 처리하는 임무도 맡고 있다. 따라서 생체이물 분자를 파괴하거나 변형시켜 배출하는데 관여하는 효소 유전자들이 꽤 된다. 만일 특정 농약에 대해 이를 처리하는데 관여하는 유전자의 복제수가 많아지거나 발현량이 늘어난다면 해독 능력이 커져 웬만한 농도에는 버틸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유기인계 살충제에 내성을 갖게 된 복숭아혹진드기(학명 Myzus persicae)를 조사해보니 살충제 분자를 분해하는 효소인 에스터라제(esterase) 유전자가 무려 80개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게 복제수가 엄청나게 늘어난 결과 에스터라제 효소가 진드기 몸무게의 1%에 이를 정도가 됐고 따라서 살충제를 들이부어도 죽지 않게 된 것이다.
한편 살충제의 대명사인 DDT 역시 사용하고 오래지 않아 내성을 지닌 생명체들이 나타났는데 조사결과 CYP6G1이라는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부위(promoter)에 전이성인자(transposable element)가 끼어들어가 발현량을 크게 늘려 유전자 산물인 P450 단백질이 많이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P450은 살충제에 수산기(-OH)를 붙여 배출이 잘 되는 형태로 바꾸는 해독 효소다.
살충제의 표적이 되는 생체분자의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 분자의 구조가 바뀌어 살충제가 달라붙지 못하게 돼 내성을 획득하는 경우도 있다. 앞서 언급한 복숭아혹진드기는 이번 살충제 달걀 파동에서 검출된 비펜트린(bifenthrin)이 속하는 피레트로이드(pyrethroid)계 살충제에도 내성을 보인다. 피레트로이드는 절지동물 신경계의 나트륨통로(sodium channel)단백질에 달라붙어 통로가 열리지 못하게 한다. 그 결과 신경신호가 차단돼 몸이 마비된다. 그런데 나트륨통로의 유전자에 변이가 생겨 단백질의 구조가 바뀌면서 살충제가 제대로 달라붙지 못하게 되면서 내성을 얻게 된 것이다.
한편 세포 내 물질을 세포 밖으로 퍼내는 ABC수송체의 유전자 복제수가 늘어 살충제를 빨리 내보내 내성을 획득하는 예도 보고됐다. 한 개체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살충제 해독력을 높인 내성 해충들이 늘면서 살충제가 말을 안 듣자 농민들은 투여량을 크게 늘리거나 독성이 큰 다른 종류를 찾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살충제 내성이 악화되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GMO의 두 얼굴
먼저 새로운 유형의 살충제를 만드는 방법인데 그런 분자를 찾아내기도 어렵도 설사 운 좋게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경험으로는 내성을 띠는 생명체가 나오는 건 시간의 문제일 것이다. 따라서 많은 과학자들이 전혀 새로운 작동 방식을 보이는 살충제 개발로 눈을 돌리고 있다.
먼저 바이오살충제다. 사실 바이오살충제도 꽤 오랜 역사가 있다. 1901년 일본 세균학자 시게타네 이시와타가 죽은 누에의 몸속에서 발견한 토양 박테리아 바실러스 투린지엔시스(Bacillus thuringiensis, 이하 줄여서 Bt)는 훗날 곤충을 죽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Bt가 만든 Cry단백질이 몇몇 곤충의 장세포막을 뚫고 들어가 구멍을 낸다. 결국 장이 망가진 곤충(애벌레)은 먹이를 먹지 못해 죽는다.
Bt는 바이오살충제로 오랫동안 쓰였지만 꽤 번거로웠는데 1996년 농약회사 몬산토가 Cry유전자를 집어넣은 옥수수(Bt 옥수수)를 출시하면서 본격적인 농산물 GMO시대를 열었다. 식물 자체가 Cry단백질을 만들어 해충에 대응하므로 따로 Bt 바이오살충제를 뿌릴 필요가 없고 물론 합성살충제도 거의 쓸 필요가 없다. 실제 미국의 옥수수 경작지에 뿌려진 합성살충제의 양은 Bt 옥수수의 비율이 늚에 따라 감소했다. 그러나 Bt 옥수수는 GMO 유해성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최근에는 Cry단백질에 내성을 지닌 해충들도 나오고 있다.
최근 연구자들은 새로운 유형의 바이오살충제를 개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마론바이오이노베이션스(Marrone Bio Innovations)라는 회사에서는 1만8000종의 미생물 게놈을 분석해 해충을 죽일 수 있는 물질은 만드는 미생물을 선별해 이미 5가지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다. 이렇게 선별된 미생물인 부르크홀데리아(Burkholderia)의 한 균주는 다양한 유형의 농약 분자를 만들 수 있다.
RNA 가닥이 저승사자
다음으로 RNA간섭(RNAi) 살충제다. 2006년 노벨생리의학상 업적이기도 한 RNA간섭은 염기 20여개 길이의 짧은 RNA가닥이 상보적인 염기서열이 있는 전령RNA(mRNA)에 달라붙어 파괴해 단백질로 번역되지 못하게 하는 현상이다. 따라서 해충의 유전자를 표적으로 한 RNA가닥을 만들어 살충제로 쓴다는 전략이다.
1990년대 RNA간섭 현상이 발견된 뒤 인간의 질병 치료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졌지만 인간세포에 RNA조각을 넣는 일이 꽤 까다로운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절지동물의 경우는 RNA를 먹이면 장에서 쉽게 흡수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농작물에 농약을 치듯 RNA조각이 든 물을 뿌려주면 식물이 뿌리로 흡수하고 이를 먹은 해충이 RNA간섭으로 죽게 된다.
RNA간섭이 기대를 받는 이유는 특정 염기서열을 표적으로 하기 때문에 다른 생물체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또 해충이 내성을 획득할 경우 변이에 맞춰 RNA가닥을 새로 만들면 되므로 해충으로서는 죽을 맛이다.
몬산토는 꿀벌의 해충인 진드기(학명 Verroa destructor)와 유채를 공격하는 벼룩잎벌레를 표적으로 하는 RNA간섭 살충제를 개발하고 있는데 2020년 중반쯤 시장에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편 또 다른 거대 농약회사인 신젠타는 콜로라도감자잎벌레를 대상으로 RNA간섭 살충제를 개발하고 있는데 2020년 초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편 최신 기술뿐 아니라 과거 조상들의 지혜도 되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즉 생산성은 좀 떨어지더라도 돌려짓기와 섞어 심기를 통해 해충들이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편안하게 번식할 수 없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과일나무의 경우 가지치기를 제때 해 공기가 잘 통하고 햇빛이 충분히 들어오게 해야 곰팡이 감염 위험성을 낮출 수 있다. 또 과수 사이에 자생하는 풀들(잡초)이 자라게 두면 천적의 서식지가 돼 해충의 수를 조절할 수 있다고 한다.
아무튼 최신 농약과 전통 농법을 총동원해 머리를 짜야 ‘농약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에도 농업은 계속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인데 만만치 않은 일로 보인다.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지 1만 년이 흘렀지만 농부의 고민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런데 살충제 달걀 사태를 지켜보니 이게 단순히 달걀의 문제가 아니라 농업 전반의 위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순한(인체에 해가 적은) 살충제를 이것저것 다 써봤지만 소용이 없어 독성이 강한 살충제를 쓸 수밖에 없었다는(그리고 수의사도 추천했다는) 양계농장주의 인터뷰가 회피성 변명으로만 들리지 않았다.
학술지 ‘네이처’ 3월 16일자에는 ‘농약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When the pesticides run out)’이라는 제목의, 농약 내성의 현주소와 그 해결책을 다룬 심층기사가 실렸다. 여기서 잠깐 용어정리를 하면 농약이라고 번역한 pesticide의 pest는 해충이나 유해동물 같은 사전적인 의미가 아니라 ‘인간이 존재하기 원하지 않는 생물체’를 뜻한다. 즉 잡초나 미생물도 포함되는 개념이다. 농약은 죽이는 생물의 유형에 따라 살충제(insecticide), 제초제(herbicide), 제진균제(fungicide)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화학이 이끈 농업혁명의 뒤끝
1만 여 년 전 인류는 식물을 작물로 만들고 동물을 가축화하면서 농업을 시작해 먹을거리를 찾아 이곳저곳 떠도는 생활을 청산했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즉 노동량이 크게 늘었는데 그 가운데 사람에 의존하게 된 동식물들을 공격하는 생명체, 즉 인간이 존재하기 원하지 않는 생물체를 관리하는 일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주된 작업은 잡초를 뽑는 일이었는데 벌레나 미생물은 돌려짓기(윤작)나 섞어 심기 같은 방법 외에는 마땅한 대처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 생물체 역시 천적이나 치명적인 기생생물이 있었기 때문에 농사를 아예 망치게 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화학이 농업에 개입하면서 새로운 국면이 전개됐다. 화학비료와 농약이 등장하면서 농업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지자 농업은 거대산업이 됐다. 이제 농부들은 더 이상 돌려짓기나 섞어 심기 같은 귀찮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됐고 밀이나 옥수수 같은 단일 작물이 거대한 들판을 뒤덮었고 경비행기가 농약을 뿌리는 광경이 일상이 됐다.
그러나 농약에 대한 내성이 생긴 생명체들이 등장하면서 사태가 뒤바뀌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 1940년대 이미 농약 내성으로 농작물의 7%를 잃었고 1990년대에는 13%에 이르렀다. 이 기간 동안 수많은 새로운 농약이 등장했고 살포량도 훨씬 많아진 걸 생각하면 미미한 증가는 아니다. 더 걱정스러운 건 2000년대 들어 작용 메커니즘이 완전히 새로운 유형인 농약이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농약 내성인 생명체의 비율이 늘어날수록 농작물 피해는 비례해 커질 것이다. 심층기사의 제목이 ‘농약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인 이유다.
실제 한 가지 이상의 농약에 대해 내성을 지닌 것으로 보고된 생명체의 종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크롭라이프인터내셔널(CropLife International)이라는 기관의 집계에 따르면 현재 절지동물 586종, 곰팡이 235종, 잡초 252종이 한 가지 이상의 농약에 대해 내성을 지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농약 내성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해독 효소가 몸무게 1%에 이르기도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병균의 항생제 내성과 본질적으로 같다. 즉 농약이 선택압으로 작용해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유전자를 지닌 개체가 ‘자연선택’돼 우점종이 되는 과정이다. 살충제 달걀을 ‘기념’해 살충제 내성의 유형을 살펴보자.
먼저 해독 메커니즘을 강화하는 방향의 변이로 해독 유전자의 복제수를 늘리거나 발현량을 늘려 살충제에 대응한다. 해충 몸의 입장에서 살충제 성분은 낯선 분자, 즉 ‘생체이물(xenobiotic)’이다. 참고로 어떤 생명체의 몸을 이루는 성분이 아닌 모든 화합물은 생체이물이다.
소화계는 영양분을 소화해 흡수하고 배출하는 것뿐 아니라 이런 생체이물도 적절하게 대사해 처리하는 임무도 맡고 있다. 따라서 생체이물 분자를 파괴하거나 변형시켜 배출하는데 관여하는 효소 유전자들이 꽤 된다. 만일 특정 농약에 대해 이를 처리하는데 관여하는 유전자의 복제수가 많아지거나 발현량이 늘어난다면 해독 능력이 커져 웬만한 농도에는 버틸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유기인계 살충제에 내성을 갖게 된 복숭아혹진드기(학명 Myzus persicae)를 조사해보니 살충제 분자를 분해하는 효소인 에스터라제(esterase) 유전자가 무려 80개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게 복제수가 엄청나게 늘어난 결과 에스터라제 효소가 진드기 몸무게의 1%에 이를 정도가 됐고 따라서 살충제를 들이부어도 죽지 않게 된 것이다.
한편 살충제의 대명사인 DDT 역시 사용하고 오래지 않아 내성을 지닌 생명체들이 나타났는데 조사결과 CYP6G1이라는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부위(promoter)에 전이성인자(transposable element)가 끼어들어가 발현량을 크게 늘려 유전자 산물인 P450 단백질이 많이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P450은 살충제에 수산기(-OH)를 붙여 배출이 잘 되는 형태로 바꾸는 해독 효소다.
살충제의 표적이 되는 생체분자의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 분자의 구조가 바뀌어 살충제가 달라붙지 못하게 돼 내성을 획득하는 경우도 있다. 앞서 언급한 복숭아혹진드기는 이번 살충제 달걀 파동에서 검출된 비펜트린(bifenthrin)이 속하는 피레트로이드(pyrethroid)계 살충제에도 내성을 보인다. 피레트로이드는 절지동물 신경계의 나트륨통로(sodium channel)단백질에 달라붙어 통로가 열리지 못하게 한다. 그 결과 신경신호가 차단돼 몸이 마비된다. 그런데 나트륨통로의 유전자에 변이가 생겨 단백질의 구조가 바뀌면서 살충제가 제대로 달라붙지 못하게 되면서 내성을 얻게 된 것이다.
한편 세포 내 물질을 세포 밖으로 퍼내는 ABC수송체의 유전자 복제수가 늘어 살충제를 빨리 내보내 내성을 획득하는 예도 보고됐다. 한 개체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살충제 해독력을 높인 내성 해충들이 늘면서 살충제가 말을 안 듣자 농민들은 투여량을 크게 늘리거나 독성이 큰 다른 종류를 찾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살충제 내성이 악화되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GMO의 두 얼굴
먼저 새로운 유형의 살충제를 만드는 방법인데 그런 분자를 찾아내기도 어렵도 설사 운 좋게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경험으로는 내성을 띠는 생명체가 나오는 건 시간의 문제일 것이다. 따라서 많은 과학자들이 전혀 새로운 작동 방식을 보이는 살충제 개발로 눈을 돌리고 있다.
먼저 바이오살충제다. 사실 바이오살충제도 꽤 오랜 역사가 있다. 1901년 일본 세균학자 시게타네 이시와타가 죽은 누에의 몸속에서 발견한 토양 박테리아 바실러스 투린지엔시스(Bacillus thuringiensis, 이하 줄여서 Bt)는 훗날 곤충을 죽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Bt가 만든 Cry단백질이 몇몇 곤충의 장세포막을 뚫고 들어가 구멍을 낸다. 결국 장이 망가진 곤충(애벌레)은 먹이를 먹지 못해 죽는다.
Bt는 바이오살충제로 오랫동안 쓰였지만 꽤 번거로웠는데 1996년 농약회사 몬산토가 Cry유전자를 집어넣은 옥수수(Bt 옥수수)를 출시하면서 본격적인 농산물 GMO시대를 열었다. 식물 자체가 Cry단백질을 만들어 해충에 대응하므로 따로 Bt 바이오살충제를 뿌릴 필요가 없고 물론 합성살충제도 거의 쓸 필요가 없다. 실제 미국의 옥수수 경작지에 뿌려진 합성살충제의 양은 Bt 옥수수의 비율이 늚에 따라 감소했다. 그러나 Bt 옥수수는 GMO 유해성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최근에는 Cry단백질에 내성을 지닌 해충들도 나오고 있다.
최근 연구자들은 새로운 유형의 바이오살충제를 개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마론바이오이노베이션스(Marrone Bio Innovations)라는 회사에서는 1만8000종의 미생물 게놈을 분석해 해충을 죽일 수 있는 물질은 만드는 미생물을 선별해 이미 5가지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다. 이렇게 선별된 미생물인 부르크홀데리아(Burkholderia)의 한 균주는 다양한 유형의 농약 분자를 만들 수 있다.
RNA 가닥이 저승사자
다음으로 RNA간섭(RNAi) 살충제다. 2006년 노벨생리의학상 업적이기도 한 RNA간섭은 염기 20여개 길이의 짧은 RNA가닥이 상보적인 염기서열이 있는 전령RNA(mRNA)에 달라붙어 파괴해 단백질로 번역되지 못하게 하는 현상이다. 따라서 해충의 유전자를 표적으로 한 RNA가닥을 만들어 살충제로 쓴다는 전략이다.
1990년대 RNA간섭 현상이 발견된 뒤 인간의 질병 치료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졌지만 인간세포에 RNA조각을 넣는 일이 꽤 까다로운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절지동물의 경우는 RNA를 먹이면 장에서 쉽게 흡수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농작물에 농약을 치듯 RNA조각이 든 물을 뿌려주면 식물이 뿌리로 흡수하고 이를 먹은 해충이 RNA간섭으로 죽게 된다.
RNA간섭이 기대를 받는 이유는 특정 염기서열을 표적으로 하기 때문에 다른 생물체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또 해충이 내성을 획득할 경우 변이에 맞춰 RNA가닥을 새로 만들면 되므로 해충으로서는 죽을 맛이다.
몬산토는 꿀벌의 해충인 진드기(학명 Verroa destructor)와 유채를 공격하는 벼룩잎벌레를 표적으로 하는 RNA간섭 살충제를 개발하고 있는데 2020년 중반쯤 시장에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편 또 다른 거대 농약회사인 신젠타는 콜로라도감자잎벌레를 대상으로 RNA간섭 살충제를 개발하고 있는데 2020년 초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편 최신 기술뿐 아니라 과거 조상들의 지혜도 되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즉 생산성은 좀 떨어지더라도 돌려짓기와 섞어 심기를 통해 해충들이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편안하게 번식할 수 없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과일나무의 경우 가지치기를 제때 해 공기가 잘 통하고 햇빛이 충분히 들어오게 해야 곰팡이 감염 위험성을 낮출 수 있다. 또 과수 사이에 자생하는 풀들(잡초)이 자라게 두면 천적의 서식지가 돼 해충의 수를 조절할 수 있다고 한다.
아무튼 최신 농약과 전통 농법을 총동원해 머리를 짜야 ‘농약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에도 농업은 계속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인데 만만치 않은 일로 보인다.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지 1만 년이 흘렀지만 농부의 고민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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