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8일 토요일

푸른 하늘과 붉은 노을 – 광산란(光散亂)의 두 얼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 서정주 시인의 ‘푸르른 날’의 일부분이다. 맑은 가을날 눈부시게 푸른 하늘을 보며 그 속에 빠져들고 싶다는 느낌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런데, 고대로부터 푸른 하늘은 인류에게 정서적인 공감뿐만 아니라 왜 맑은 하늘은 파란색을 띨까라고 하는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 왔다. 



많은 사람들이 맑은 하늘이 보여주는 푸른색의 기원을 밝히려고 노력하였는데, 가령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하늘에 떠 있는 작고 혼탁한 물체들이 파란색을 만들어 낸다고 설명하였고 아이작 뉴턴은 빛의 반사와 굴절을 이용해 푸른 하늘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푸른 하늘의 원인이 빛의 산란(散亂)때문이라는 것은 19세기 말에 와서야 명확히 밝혀졌다. 



어두운 방에서 손전등을 킨 후에 몇 미터 떨어져 있는 벽을 향해 빛을 쏘아보자. 빛이 지나가는 궤적이 우리 눈에 쉽게 확인된다. 벽을 향해 나아가는 빛이 방 안에서 떠돌아 다니는 먼지들에 의해 산란되면서 사방팔방으로 퍼지고 그 중 일부가 우리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먼지가 없는 진공 상태인 우주 공간에서 손전등이나 레이저를 쏘게 되면 우리는 빛의 궤적을 확인할 수 없게 된다. 



하늘을 가로 질러 가는 태양광도 대기를 통과하면서 산란되어 온갖 방향으로 퍼진다. 태양광을 산란시키는 것은 대기를 구성하는 질소, 산소 등의 기체분자들과 미세한 먼지 등이다. 



백색인 태양광에는 ‘빨주노초파남보’의 색깔성분들이 골고루 섞여 있다. 이 백색광이 대기의 기체분자들에 의해 골고루 산란된다면 하늘은 그저 이들의 혼합색인 하얀색으로만 보일 것이다. 19세기 말 영국의 과학자인 레일레이(Rayleigh)는 빛의 산란 과정을 연구하면서 파장이 짧은 파란색 빛이 파장이 긴 붉은색 빛에 비해 더 많이 산란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보였다. 



파장이 450 나노미터(1 나노미터는 10억분의 1 미터로써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 정도이다)인 파란색이 600 나노미터의 파장을 가진 붉은색에 비해 약 3.2배 정도 더 많이 산란된다. 따라서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게 되면 하늘을 가로지르는 태양광 중 더 많이 산란되는 파란색 빛이 우리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들이 우주인이 되어 달나라를 방문했다고 가정하자. 공기가 없는 달에서 하늘을 보면 어떻게 보일까. 달에는 공기가 없으므로 달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태양광은 산란되지 않는다. 산란되어 우리 눈에 들어 오는 빛이 없으므로 하늘은 검은색으로 보일 것이다. 1969년 달표면을 최초로 밟은 아폴로 11호의 대원들이 달에서 촬영했던 떠오르는 지구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면 지구의 배경이 검은색 하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푸른색 하늘은 대기가 우리에게 주는 지구만의 전유물일까. 그렇지는않은 것 같다. 최근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카시니 탐사선이 토성의 북반구 대기에서 푸른 하늘을 촬영하였다. 지구에서 파란색 빛을 더 많이 산란시켜 푸른 하늘을 만드는 산소나 질소 같은 기체분자 대신에 토성에서는 수소 분자가 그 역할을 담당한다. 



빛이 산란되는 현상이 만들어 내는 ‘푸른 하늘’의 쌍둥이는 바로 ‘붉은 노을’이다. 태양의 고도가 낮아지는 일출이나 석양 무렵의 태양광은 상대적으로 두꺼운 대기층을 비스듬하게 통과하면서 우리 눈에 들어오게 된다. 두꺼운 대기층을 통과하는 동안 산란이 잘 되는 파란색 빛은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면서 빛의 세기가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산란이 잘 되지 않는 붉은색 계통의 빛이 살아남아 우리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석양의 아름다운 노을색을 감상할 수가 있다. 



붉은색이 잘 산란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자동차 후면 브레이크등의 색깔에도 응용되어 있다. 브레이크등의 붉은 조명광은 궂은 날씨에도 잘 산란되지 않기 때문에 뒤따라오는 차의 운전자에게 정지신호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파란 하늘과 브레이크등의 붉은색이 빛의 산란 현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재미있지 않은가.
 Scienc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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