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데일리]초등학교 졸업. 강원도 평창에서 가난한 화전민의 아들로 태어나 어머니 약값을 벌기 위해 열다섯 살에 고향을 떠나 소년가장이 되었던 소년. 어머니의 죽음과 가난으로 자살을 결심하지만 '대우가족'을 찾는다는 광고를 보고 대우종합기계에 사환으로 입사. 남다른 성실성을 인정받아 정식 기능공으로 일하게 된 후 하루 세 시간 이상 자지 않고 공부하는 비법을 개발. 목숨 걸고 노력한 끝에 대한민국 최고의 기능인에게 수여되는 '명장' 칭호를 받은 사나이. 대우중공업 전국 최우수 김규환씨에 대한 설명이다.
1.사환에서 기능공이 되기까지
1977년 8월. 김 씨가 대우중공업에 사환으로 입사하고 처음 맡은 일은 회사 마당을 쓸고 풀을 뽑는 일이었다. 출근 시각은 매일 새벽 다섯 시. 야근자들의 여섯 시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사원식당에 가 양파도 까고 파도 다듬으며 일을 거들었다. 회사 마당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자신에게 일할 기회를 주고, 봉급을 주는 곳이니 제 몸처럼 아끼고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일 새벽 다섯 시에 나와 마당청소를 하던 김 씨에게 어느 날 누군가 와서 물었다.
"왜 자네는 이 시간에 마당청소를 하고 있나?"
"형님들 출근하실 때 기분 좋으라고요"
"그래, 그런데 잔디는 왜 다 뽑아버리나?"
"이 회사 사람들은 바보 같아요"
"아니, 왜?"
"우리 강원도에선 옥수수 밭이나 감자 밭에 풀이 자라면 다 뽑아내는데 여기는 그냥 자라는 대로 놔두니 이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그래서 저는 풀을 뽑고 꽃을 심어볼까 합니다"
"풀? 허허. 그래 자네 아주 부지런하고 훌륭한 사람이군"
꽃씨를 살 돈까지 주었던 사람은 바로 김성중 본부장이었다. 이후 김씨는 꽃씨를 사다 채송화, 봉숭아, 맨드라미 등을 심고 공장 뒤편 개천가에는 밭을 일구어 매년 상추, 쑥갓, 들깨, 고추 모종까지 했다. 멍청한 땅을 놀리는 게 아까웠던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해 수확한 것을 회사 식구들과 나눠 먹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일찍 출근하던 그의 성실성을 높이 산 회사는 1년 만에 기능사원 보조공으로 진급시켜주었다. 그는 당시의 소회를 이렇게 밝힌다.
"그렇다. 내게는 부지런함이 가장 큰 재산이고 최고의 무기였던 것이다. 부지런한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는 데다 다른 사람보다 시간이 많고 할 일도 많고 노력도 많이 하니 잘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지런한 사람은 절대 굶지 않는다"
2.명장이 되기까지
기계가공기능사 시험 과정도 눈여겨 볼만하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이 전부였던 그에게 자격증 시험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험공부만 하면 몰라도 회사일에 집안일. 아버지의 병원비를 준비하기 위한 부업까지. 시간을 부챗살 쪼개듯 해도 모자랄 상황이었다. 궁리 끝에 고안해 낸 방법은 자격증 시험 책을 확대 복사해 이곳저곳에 붙여 놓는 것이었다.
누워서 보이게 천장에 붙이고 돌아누웠을 때 보이게 벽에도 붙였다. 화장실, 회사 기계위, 공구함 속까지 꼼꼼히 붙이고 보일 때 마다 달달 암기했다. 그래도 시험에는 9번이나 낙방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벌써 포기했을 일. 하지만 그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돈 한 푼 없어 병원치료 한번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어머니만 생각하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불길 같은 용기와 각오가 솟아오르곤 했다.
새벽 네 시부터 아침 일곱 시까지는 마산 어시장 공판장에서 고기상자 배달을 하고 여덟시부터는 회사에 출근해 밤 열시까지 잔업을 했다. 퇴근해 자격증 시험공부를 하다보면 시간은 어느새 밤 열시. 공판장에 고기 배달을 하러 나가려면 새벽 세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고통스러웠지만 이를 악물고 견뎠다. 부모님을 생각하면 세상에 못할 일이 없었다. 더 노력해야한다는 결심만 굳건해질 뿐이었다.
아이디어맨이었던 김 씨는 당시 조금만 잠을 자고도 피로가 풀리는 숙면법을 스스로 고안해냈다. 잠에 관한 책을 읽고 발이 따뜻해야 잠을 잘 잔다는 결론을 얻었다. 잠자리에 들었을 때 똑바로 누워 몸에 힘을 빼고 발만 움직여 보았다. 발을 좌우로 왔다 갔다 하다가 숨을 멈춘 후 "후!"하고 숨을 쉬면 다리 뒤쪽 인대가 늘어나는 느낌이 들고 뒤꿈치의 피로가 풀어지는 듯 느껴지면서 몸이 착 가라 앉음을 알 수 있었다. 매일 이렇게 다섯 차례 발 운동을 하고 나니 조금만 자도 몸이 개운했다. 자신만의 수면법을 개발한지 한 달 후. 세 시간만 자고 나도 몸이 개운하고 거뜬하게 됐다.
외국어 공부과정 역시 보고 배워야 할 대목. 김 씨가 5개 국어에 능통하게 된 것은 피나는 노력 덕분이었다. 외국은커녕 비행기 한번 타본 적 없던 그는 우선 간편한 회화책 한 권을 샀다. 제일 작고 가볍고 값도 싼 <5개국 기초생활회화> 였다.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5개 국어를 한꺼번에 공부할 수 있는 책이었다. 다음으로 문구점에 가 학생들이 쓰는 평범한 노트 한권을 구입했다. 양면을 펼쳐놓고 가로로 다섯 칸을 나눈 뒤 각 나라의 인사말부터 일상 대화까지 가로로 쓴 후 한국어로 발음을 쓰며 외웠다.
A4 용지에 내용을 크게 써서 다시 눈에 띄는 곳곳에 붙여놓고 보일 때마다 소리 높여 읽었다. 하루 한 문장씩 5개 국어를 익혀나갔다. 3개월이 지나고 6개월이 지날 무렵. 180문장을 읽고 쓰고 발음할 수 있게 되었다. 외국 바이어가 공장에 들렸을 때 유창하게 대화를 나누는 김 씨를 보며 동료들은 모두 박수를 보냈다. 아무리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도 과욕하지 않고 매일 1문장씩 외운 덕이었다. 그렇게 공부한 끝에 1년 만에 현장 통역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외국어에 능통한 수준을 갖출 수 있었다.
기계기술 발명가, 아이디어 제조기인 김 씨는 현재 수많은 기업에서 쇄도하고 있는 강연 요청에 기쁜 함성을 지르며 '명강사'로도 맹활약하고 있다. "목숨 걸고 노력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 오늘의 그를 있게 한 피나는 노력. 모두가 배우고 익힐 뛰어난 모범답안이다.
파이미디어 TV리포트
내 자신이 나태해질때 보는 이야기
저는
초등학교도 다녀보지 못했고
5대 독자 외아들에 일가 친척 하나 없이
15살에 소년가장이 되었습니다.
저는 25년전
대우 중공업에 사환으로 들어가
마당 쓸고 물 나르며 회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제가
훈장 2개, 대통령 표창 4번, 발명특허대상, 장영실 상을 5번 받았고
1992년 초정밀 가공분야 명장(名匠)으로 추대 되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상을 제일 많이 받고
사환에서 명장까지 올라갔는지 궁금하시죠?
부지런한 사람은 절대 굶지 않습니다.
제가 대우에 입사할 때 입사자격이 '고졸'이상이었습니다.
이력서를 제출하려는데
경비원이 자격이 없다고 막아 실갱이를 하다가
사장님이 우연히 이 광경을 보고 면접을 볼 수 있게 해줬습니다.
그러나 학력미달로 면접에서 떨어지고
'사환'으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사환으로 입사한 것도 고마워
매일 아침 5시에 출근하였습니다.
하루는 사장님이 왜 일찍 오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선배들이 출근하면 바로 일 할 수 있게
기계를 워밍업하기 위해 일찍 온다고 했더니
다음날 '정식기능공'으로 승진시켜 주시더군요.
정식기능공이 된 후에도 계속 5시에 출근하였고,
또 사장님이 질문하시기에 똑같이 대답했더니
다음 날 '반장'으로 승진시켜 주셨습니다.
내가 만든 제품에 '혼'을 싣지 않고
품질을 얘기하지 마십시오.
기계 가공시 온도가 1℃ 변할 때 쇠가 얼마나 변하는지 아는 사람은
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이걸 모른다면
일을 모르는 거와 같습니다.
제가 이것을 알려고 국내 모든 자료실을 찾아봤지만
아무런 자료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장 바닥에 모포 깔고 2년 6개월 간 연구했습니다.
그래서 재질, 모형, 종류, 기종별로
온도가 1℃변할 때 쇠는 얼마나 변하는지
온도치수가공 '조견표'를 만들었습니다.
이를 산업인력관리공단의‘기술시대’란 책에 기고했지만
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노동부 공무원들이 찾아왔습니다.
처음에 회사에서는
큰일이 난 줄 알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제가 제출한 자료가
기계가공의 일대혁신 자료인 걸 알고
논문집에 실을 경우 일본에서 알게 될까 봐
장관이 직접 모셔오라고 했다는군요.
장관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일본에서도 모르는 것이오.
발간되면 일본에서 가지고 갈 지 모르는
엄청난 것입니다."
목숨 걸고 노력하면 안되는 일 없습니다.
어느 날 무서운 선배가 하이타이로 공작기계를 다 닦으라고
시키더라구요.
그래서
2612개의 부품으로 된 기계를 다 뜯고 하이타이로 닦았습니다 .
6개월동안 그렇게 하고 나니까
그 기계에 대해 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저에 대한 호칭이‘야 이 새끼 야’에서 ‘김군’으로
바뀌더군요.
그리고 서로 자기 기계 좀 봐 달라고 사정도 하구요.
제 실력이 좋아지니까 저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더군요.
그런데 어느 날 난생 처음 보는 컴퓨터도 뜯고
물로 닦았습니다.
사고를 친 거죠.
그래서 그 때 깨달았습니다.
새로운 것을 알기 위해서는 책을 봐야한다는 것을...
저희 집 가훈은
‘목숨 걸고 노력하면 안되는 일 없다’입니다.
저는 국가기술자격 학과에서 9번 낙방,
1급 국가기술자격에 6번 낙방,
2종 보통운전 5번 낙방하고
창피해 1종으로 전환하여 5번 만에
합격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새대가리'라고 비웃기도 했지요.
하지만 지금 저는 우리나라에서 1급 자격증 최다보유자입니다.
'새대가리'라고 놀림 받던 제가 이렇게 된 비결을 아십니까?
그것은 목숨 걸고 노력하면 안되는 것 없다는
저의 생활신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현재 5개 국어를 합니다.
저는 학원에 다녀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외국어를 배운 방법을 말씀 드릴까요?
저는 욕심부리지 않고 천천히 하루에 1문장씩 외었습니다.
하루에 1문장 외우기 위해
집 천장, 벽, 식탁, 화장실문, 사무실 책상
가는 곳마다 붙이고 봤습니다.
이렇게 하루에 1문장씩 1년, 2년을 꾸준히 하니
나중엔 회사에 외국인들이 올 때
설명도 할 수 있게 되더라구요.
진급하는 것, 돈 버는 것은 자기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세상을 불평하기 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그러면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배 아파하지 말고 노력 하십시오.
의사, 박사, 변호사 다 노력했습니다.
남 모르게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하루 종일 쳐다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해답이 나옵니다.
저는 제안 2만 4천 6백 12건, 국제발명특허 62개를 받았습니다.
저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건 무엇이라도 개선합니다.
하루 종일 쳐다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해답이 나옵니다.
가공기계 개선을 위해 3달 동안 고민하다
꿈에서 해답을 얻어 해결하기도 했지요.
제가 얼마 전에는 새로운 자동차 윈도 브러시도
발명하였습니다.
유수의 자동차 회사에서도 이런 거 발명 못했습니다.
회사에서 상품으로 받은 자동차가
윈도 브러시 오작동으로 사고가 났습니다.
교통사고 후 자나 깨나 개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배가 물을 가르는 것 보고 생각해 냈습니다.
대우자동차 김태구 사장에게 말씀 드렸더니
1개당 100원씩 로열티를 주겠다고 하더라구요.
로열티 받기로 약속하고 오는 길에
고속도로와 길가의 차를 보니 모두 돈으로 보입디다.
돈은 천지에 있습니다.
마음만 있으면 돈은 들어옵니다.
저는 여러분들 한테 반드시 종교를 가지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종교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교회나 절에 다니지 않습니다.
제 종교는 '대우중공업교'입니다.
우리 집에는 대우 깃발이 있고
식구들 모두 아침 밥 먹고 그 깃발 앞에 서서 기도합니다.
저는 하루에 두번 기도합니다.
아침에 그리고 정문 앞에서 또 한번 이렇게 기도합니다.
"나사못 하나를 만들어도 최소한 일본보다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지금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는 영화를 얻습니다.
저는 심청가를 1000번 이상 듣고 완창을 하게 되었습니다.
심청가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한번 밖에 없는 인생 돈에 노예가 되지 마라!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의 인생이다!
지금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는 영화를 얻는다."
목숨 걸고 노력하면 안되는 것 없습니다.
목숨을 거십시오.
[ 출처 : 대우중공업의 어느 명장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