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5일 화요일

읽기·자료 조사·토론하기… 철저한 '단계별 지도' 중요

부모가 직접 가르친다면
초등 저학년 때는 '교과서 연계 독서'지도
고학년엔 토론으로 생각 정리·청취 기회를
형식·절차 준수… '올바른 토론 습관' 형성
 평소 토론(debate)의 중요성을 막연하게 떠올리던 학부모도 대통령 선거(이하 '대선') 시즌이 되면 후보들이 출연하는 토론회를 시청하며 토론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특정 주제와 관련, 상대 의견을 경청하며 논리에 근거해 자기 생각을 조목조목 밝히는 토론은 교육적 측면에서도 꽤 중요한 덕목이다. '창의적 인재'가 대접받는 요즘 교육계에선 더더욱 그렇다. 맛있는공부는 토론의 가치가 극대화되는 대선철을 맞아 오늘부터 2주에 걸쳐 '디베이트 특집 기획'을 연재한다. 첫 회는 '부모가 실천할 수 있는 디베이트 교육' 편이다. /편집자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이철호씨네 집 거실은 '토론교실'로 변한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심동석(서울 중앙대부속초등 4년)군, 이규원군, 이철호씨, 김수경(서울 당곡초등 5년)양, 이필규( 서울 중앙대부속초등 5년)군, 최한(서울 중앙대부속초등 4년)군. /이신영 기자
“오늘의 토론 주제는 ‘인터넷 게임 셧다운(shutdown)제도, 폐지돼야 하는가’입니다. 전 반대 입장을 맡은 심동석입니다.”

지난달 23일,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신현주(48)·이철호(52) 부부네 집 거실에서 다섯 아이의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이들이 매주 금요일 저녁 모여 독서와 토론을 함께한 지도 어느덧 6년째. 그간 아이들의 독서 능력과 토론·글쓰기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변변한 학원 하나 안 다니지만 학교 성적은 늘 상위권이다. 6년간 이들을 지도해 온 엄마 신씨는 “토론은 읽기·생각하기·쓰기·듣기·말하기가 통합된 활동”이라며 “학업 능력 향상에 토론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터넷 커뮤니티 ‘모여라 북클럽&디베이트클럽(cafe.daum.net/dongwhabook)’을 운영하며 자신의 교육 노하우를 다른 엄마들과 공유하고 있다. 대다수의 학부모가 으레 학원에 맡겨버리는 토론 교육, 신씨 부부는 어떻게 가정에서 해결했을까?

◇‘독서’ 매개로 말문 틔웠더니 자신감 ‘껑충’


신씨가 동네 아이들을 모아 독서 모임을 시작한 계기는 아들 이규원(서울 중앙대부속초등 4년)군이었다. “규원이는 처음 보는 사람과 마주치면 엄마 뒤에 숨을 정도로 숫기가 없었어요. 어느 날 유아 수학교실에 갔는데 강의가 끝날 때까지 고개 한 번 못 들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며 ‘규원이에게 또래 아이와 어울릴 기회를 주자’고 결심했죠. 당시 규원이 또래(5~6세) 8명으로 구성된 독서 모임을 만들었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어요. 지금 규원이는 학급임원을 맡을 정도로 활발해졌으니까요.”

신씨가 처음부터 목표를 크게 잡은 건 아니었다. ‘아이들이 즐겁게 책 읽으며 놀게 하자’는 게 당시 그의 모토. 아직 어린아이들인 만큼 ‘재미’에 초점을 맞춘 독후 활동을 다양하게 구상했다. ‘무지개 물고기’(마르쿠스 피스터 글, 시공주니어)를 읽은 후엔 아이들에게 페이스 페인팅을 해주고 “얼굴에 색을 칠했다고 해서 네가 다른 사람이 됐을까?” 같은 질문을 던지며 책 내용을 되새겨줬다. “아이들이 매일 ‘책 읽으러 오겠다’고 떼를 쓸 정도로 재밌게 활동했어요. 책 읽는 자세나 발표 등 작은 부분 하나까지 칭찬하고 상장을 주면서 모든 아이를 격려했죠. ”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엔 ‘교과서 연계 독서’를 시작했다. 신씨는 “‘심청전’을 읽은 날엔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 과연 진정한 효녀일까?’란 주제를 던져주는 방식으로 독서 토론을 유도했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의 관심사를 다방면으로 이끌고 싶은 날엔 ‘테마 독서’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테마 독서란 특정 주제를 하나 정해 두 달간 관련 도서를 다양하게 섭렵하는 활동. 아이들이 해당 주제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독서 테마는 환경·과학·경제·미술·역사 등으로 다채롭게 선정했다.

◇처음부터 잘할 순 없어… 칭찬·격려는 아낌없이

아이들이 초등 고학년에 진학하자 신씨는 독서 활동만으로 지도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 결국 2년 전부터 본격적 토론 교육에 나섰다. 이때부터 아이들 지도는 남편 이철호씨가 맡았다. “아이들은 각자 읽은 책 내용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곧잘 대답해요. 하지만 ‘네 생각은 어떠냐’고 물으면 ‘글쎄요’ ‘몰라요’ 같은 답변이 돌아오기 일쑤죠. ‘정답은 없으니 마음껏 말해보라’고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했죠. ‘토론을 통해 자기 생각을 정리해 말하고 남 생각을 듣는 기회도 만들어주자’고요.”

이씨는 일단 토론 관련 책을 읽고 인터넷을 검색하며 토론 지도법을 익혔다. 그런 다음, 아이들에게 ‘자료 조사하는 법’부터 차근차근 가르쳤다. 신문 기사를 보며 ‘기자가 말하려는 내용과 그 근거’를 분석하는 식이었다. 잘 짜인 토론 동영상을 함께 보며 올바른 토론 자세를 익히기도 했다. 토론 주제는 ‘어린이의 스마트폰 사용’ 등 아이들이 관심 가질 만한 것으로 선정했다. 아이들과 하는 토론이라고 해서 허투루 진행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퍼블릭 포럼 디베이트(Public Forum Debate)’ 형식을 채택해 절차를 엄격하게 지켜가며 지도했다.

토론교육의 효과는 놀라웠다. 모임에 참가한 아이들 모두 학교생활에서 자신감을 얻은 건 물론, 성적까지 크게 향상된 것. 아직 초등 4·5학년에 불과하지만 대선 토론을 유심히 지켜볼 정도로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씨가 자평하는 성공 비결은 ‘철저한 단계별 지도’다. 그는 “초등생이 처음부터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말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며 “초기엔 다소 엉뚱한 답변도 칭찬하며 격려해주면 실력은 점차 늘게 돼 있다”고 조언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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