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꼴찌. 아마 서울대 운동부일 것이다. 경기마다 형편없이 지고, 꼴찌를 하면서도 선수들은 고개 숙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웃는다. 프로나 마찬가지인 다른 대학에 지는 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언론도 사회도 그들을 당당한 꼴찌, 영광의 꼴찌라 부르며 박수 친다.
“어릴 때부터 입시지옥을 헤쳐 온, 우리나라에서 제일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야구도 축구도 하며 경기에 나가는 것이 얼마나 장한 일인가.”
수십 년 동안의 패배에도 좌절하지 않는 그들의 용기가 가상하며 귀감이 된다고 언론과 사회는 칭찬한다.
그러나 서울대 운동부의 만년 꼴찌는 비뚤어진 대한민국 교육의 슬픈 자화상일 뿐이다. 왜 서울대 선수들은 뛰어난 운동 실력으로 다른 대학 선수들의 맞수가 되지 못하는가. 왜 다른 대학 선수들은 공부를 하지 않고 운동만 해 서울대 학생들의 자부심만 높여 주는 신세가 되고 있는가.
美대학선 공부 잘하는 선수들 많아
공부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학생들을 키워내지 못한 교육은 정상이 아니다. 중고교 때 거의 공부하지 않은 선수를 입학시키고, 수업에 참석하지 않는 선수를 프로처럼 길러내는 대학이 수두룩한 것도 정상이 아니다. 서울대 운동부가 꼴찌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생각이다.
눈을 다른 나라로 돌려보자. 우리의 교육과 대학들과는 너무 다른 현실이 있다.
영국의 모든 대학에 스포츠 팀은 있으나 스포츠 장학생은 없다. 한국의 대학처럼 운동에 전념하는 이른바 ‘프로’는 없고 동아리 차원의 운동부만 있을 따름이다. 운동으로 대성하려는 아이들은 대학에 가지 않는다. 대학에 가면 오로지 공부만으로 졸업해야 한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같은 대학들이 프로 팀을 닮은 다른 대학들과 경기를 하는 일은 아예 일어날 수 없는 구조이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도 마찬가지이다.
어릴때 전인교육이 만능인재 키워
이에 비해 미국은 대학이 프로 운동선수 양성소이다. 대학 스포츠의 인기가 프로에 버금간다. TV 중계료 등으로 엄청난 수입을 올린다. 학교의 재정과 명성을 위해 학교들은 선수들에게 장학금을 주면서 경쟁적으로 운동부를 키운다. 그러나 미국대학스포츠위원회(NCAA)는 과열 경쟁이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지나치다 할 만큼 세세하고도 엄격한 규정으로 관리한다.
하버드 등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재정과 명성에 상관없이 운동부를 육성하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장학금을 주지 않는다. 일반 학생들과 같은 과정으로 선수들을 선발하며, 선수들도 똑같은 학업 과정을 밟아 졸업해야 한다. 그럼에도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갖고 있다. 서울대와 같은 참패는 없다.
농구의 경우 프린스턴대는 전국 380여 개 대학의 1부 리그에서 8위까지 오른 적이 있다. 하버드는 2011년 25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프로농구에서 황색 돌풍을 일으킨 대만계 제러미 린은 고교 평균 4.2의 우수한 성적으로 하버드에 입학했다. 린은 하버드 출신으로 네 번째 미국프로농구(NBA) 선수가 되었다. 하버드는 16명의 메이저리그 야구선수도 키워냈다. 그동안 펜실베이니아대는 12명, 프린스턴은 10명, 예일은 3명의 NBA 선수를 배출했다.
매년 미국 고교농구 선수 가운데 0.03%만이 NBA에 진출하는 것을 감안하면 아이비리그 대학들의 기록은 놀랍다. 그만큼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뛰어난 학생들이 많다. NBA스타를 거쳐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빌 브래들리 전 민주당 상원의원·대통령후보는 75개 대학의 장학금 제의를 마다하고 프린스턴에 입학했다. 어릴 때부터의 전인교육이 공부뿐 아니라 운동 실력으로도 미국을 뒤흔드는 인재를 만드는 것이다.
스탠퍼드는 아이비리그 대학 수준에 버금가지만 선수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스포츠 명문 대학이다. 그렇다고 유명 선수를 거저 입학시키고 졸업시키지는 않는다. 17세의 재닛 에번스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의 꽃이었다. 이 미국인 소녀는 동독이 지배하던 수영에서 세계신기록 1개를 세우고 금메달을 3개나 땄다. 고교 평점 4.2의 우수 학생 에번스는 스탠퍼드에 입학했으나 2학년을 마치고 자퇴했다. 그리고 2년 남은 대학 스포츠 선수의 자격도 포기했다.
NCAA가 대학 운동선수들의 학업을 위해 시즌 중에는 일주일에 20시간만 연습하도록 규정을 바꿨기 때문. 그는 일주일에 35시간이나 운동하면서 세계신기록을 3개나 세우고 4.0의 높은 성적을 얻었다. 하지만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위해서는 더이상 공부와 훈련을 모두 감당할 수 없었다고 한다. 에번스는 바르셀로나에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1개를 더 땄다. 그리고 스탠퍼드 입학 후 5년 만에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모든 과정을 마치고 졸업했다.
여자 프로 골퍼 미셸 위도 올해 봄 스탠퍼드대를 4년 반 만에 졸업했다. 미셸 위는 프로 골퍼로 뛰기 위해 봄, 여름 학기는 쉬는 대신 가을, 겨울 학기에는 16∼20시간씩 수강하는 강행군을 했다. 대회 기간에도 새벽 3, 4시까지 공부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는 프로이기 때문에 스탠퍼드의 선수가 될 수 없었다. 학교 마크를 달고 경기에 나갈 수 없었다.
미아 햄은 ‘여자 펠레’로 불리는 세계 여자 축구 사상 최고의 선수다. 미국 대표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2개 땄으며 월드컵에서 우승, 준우승 한 번씩을 기록했다. 햄은 158골을 넣어 남녀 통틀어 국제경기 최다 득점 기록도 갖고 있다. 햄도 노스캐롤라이나대를 5년 만에 졸업했다. 1991년 베이징 월드컵 대표팀 훈련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없어 3학년 때 1년을 휴학했기 때문이다.
‘김연아 학교논란’ 美선 상상못해
올림픽 금메달이나 월드컵 우승이 아무리 값져도 학교 교육보다 더 중요할 수 없다. 올림픽 메달이 인생살이 만사형통의 보증수표가 아니다. 금메달 3개도 에번스의 스탠퍼드대 입학이나 졸업을 보장하지 못했다. 공부 수재가 운동 수재도 될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도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대학에 갈 수 없다. 제대로 학교에 다니지 않으면 대학을 졸업할 수 없다. 한국의 김연아 학교 논란이 미국에는 일어날 수가 없다.
서울대의 경쟁 상대가 아이비리그 대학들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 서울대의 자랑스러운 꼴찌들도 잘못된 교육의 희생자이다. 그들이 패배를 부끄러워하고, 그 부끄러움을 우리 사회가 함께 반성할 때 한국 교육이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동아일보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