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고교 입시부터 성취평가제(절대평가제)가 처음 적용되는 가운데 중학교 현장에 혼란이 일고 있다. 기존 상대평가 방식이 절대평가 방식으로 바뀌면서 내신 변별력이 떨어지는 바람에 특수목적고들은 입시요강을 확정하지 못한 채 입학설명회를 여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성취평가제는 일정 점수 기준에 따라 과목별 성적을 A∼E등급으로 나누는 절대평가 방식이다. 기존에는 1등급을 받으려면 전교생의 상위 4% 이내에 들어야 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90점만 넘으면 무조건 A등급이다. 정부가 2011년 성취평가제 도입 방침을 정하면서 현재 중학교 3학년이 중학교에 입학한 2012년부터 적용됐다.
성취평가제를 도입한 이유는 기존의 9등급 상대평가가 과도한 내신 경쟁을 일으킨다는 지적 때문. 하지만 현장에서는 성취평가제가 도입되면 중학교마다 중간, 기말고사를 쉽게 내서 경쟁적으로 내신 부풀리기를 할 것이란 우려가 일었다.
실제로 하늘교육이 학교알리미를 통해 지난해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의 내신 성적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A등급을 받은 학생이 국어 17.9%, 수학 17.3%, 영어 20.1%, 과학 18.5%나 될 정도로 많다. 이를 감안하면 올해 중학교 3학년 63만5000여 명 가운데 12만8000명가량이 2학년 영어 성취평가제에서 A등급을 받은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는 외국어고 감축 5개년도의 마지막 해라서 외고 전체 선발 인원이 지난해(6673명)보다 더 줄어들 예정이다. 결과적으로 외고 전체 선발 인원의 20배나 되는 학생이 A등급을 받게 됐다.
올해 고교 입시 요강을 보면 외고와 국제고는 중학교 2, 3학년 영어 성적을 반영하되 2학년 성적은 성취평가제, 3학년 성적은 상대평가제를 적용한다. 3학년 성적을 상대평가제로 다시 바꾼 것은 성취평가제로는 변별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과학고는 2, 3학년 수학과 과학 성적을 모두 성취평가제로 적용한다.
외고에 지원하는 학생들의 경우 2학년 성적은 모두 A등급일 것이므로 성취평가제 도입 취지와는 정반대로 3학년 영어의 상대평가 성적 경쟁이 더욱 피 말리게 된 셈이다. 교1과 성적의 변별력이 떨어지면서 특목고 지원자들은 학교생활기록부의 비교과영역이나 자기소개서, 면접 등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부담도 커졌다.
내신 변별력이 떨어지면서 특수목적고들은 예년이면 학기 초에 내놓았을 학교별 전형 요강을 5월이 다 가도록 내놓지 못하고 있다. 4월 이후 입학설명회를 실시한 일부 특목고는 해당 시도교육청의 고입 전형안을 설명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외고는 10, 11월에 원서 접수가 시작돼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과학고는 당장 8월이면 원서접수가 시작되기 때문에 과학고 지원자들은 더 답답하다는 반응이다.
올해부터는 고등학교에서도 내신 평가 방식이 성취평가제로 바뀌었지만 이런 부작용 때문에 대학 입시에 제대로 적용될지는 미지수다. 일정대로라면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이 대학에 가는 2017년 대학입시에서는 내신평가 방식이 성취평가제로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교육부는 성취평가제에 대한 불만이 커지자 지난해 대학 입시의 경우 성취평가제 적용을 일단 유보한다고 밝혀둔 상태다. 학교 현장에서 성취평가제가 잘 돌아가는지 지켜본 뒤 최소한 2018년 이후에 대학 입시에 적용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당분간 고교에서는 내신을 성취평가제와 상대평가의 2가지 방식 모두 처리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지금처럼 석차 9등급, 원점수, 과목평균, 표준편차를 모두 대학에 제공하는 동시에 성취평가제에 따른 성적 분류도 해야 한다.
교사들은 쓸모없는 업무 부담이 더 늘어났다는 반응이다. 교육부가 성급하게 성취평가제를 도입해놓고 정작 입시에서는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실패한 정책임을 인정한 셈이라는 비판도 많다. 이에 따라 교육부가 중고교 성취평가제 시행 상황을 중간평가 해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해 12월 고교 교사 500명을 대상으로 성취평가제 도입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니 45.6%가 부정적이라고 답한 바 있다. 긍정적이라는 의견은 28.2%였다. 부정적이라고 밝힌 교사들은 학교 현장에서 아직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점과 내신 부풀리기가 벌어질 가능성을 문제로 꼽았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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