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7일 토요일

힉스에서 새로운 물리학까지 물리학의 성배를 향한 위대한 전진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온 것이 철학의 역사였고 과학의 역사였고 인류 문명의 역사였다.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다. 엠페도클레스는 여기에 흙, 불, 공기를 더해 유명한 4원소설을 제기했다. 데모크리토스와 레우키포스는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 원자가 만물의 근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원자론이 현대적으로 부활하기까지는 약 2000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깨지지 않는다는 원자도, 20세기 초에는 전자와 원자핵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 이뤄져 있음이 밝혀졌다. 전자는 음의 전기를 가지고 있으며, 그 자체로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물질의 최소단위다(아직까지는 과학자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반면 원자핵은 다시 양의 전기를 띠는 양성자와 전기적으로 중성인 중성자로 나뉜다.
한동안은 양성자와 중성자가 전자처럼 물질의 근본단위로 여겨졌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이론물리학자들에 의해 쿼크라는 개념이 도입되고 그 존재가 실험적으로 확인되면서 물질의 근본단위는 쿼크까지 내려오게 됐다. 쿼크는 둘 또는 셋이 모여 중간자라는 입자, 또는 양성자나 중성자를 만든다.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20세기 과학자들의 답변은 간단히 말해서 ‘쿼크와 전자’인 셈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쿼크는 모두 6개다. 전자는 물리적 성질이 매우 비슷한 형제가 둘 있는데 각각 뮤온(muon)과 타우온(tauon)으로 불린다. 전자, 뮤온, 타우온은 각기 고유한 중성미자를 짝으로 데리고 있다. 전자, 뮤온, 타우온과 각각의 파트너인 3종의 중성미자를 경입자라고 부른다.
한편 자연에는 힘을 매개(중계)하는 입자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입자가 전자기력(전자기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입자인 빛이다. 전자기력 외에도 자연에는 강한 핵력(강한 상호작용)과 약한 핵력(약한 상호작용)이 존재한다. 강한 핵력은 양성자와 중성자를 함께 묶어 안정적인 원자핵으로 만드는 힘이다. 현재 물리학자들은 강한 핵력을 쿼크 수준에서 이해하고 있는데, 쿼크 사이에서 강한 핵력을 매개하는 입자를 접착자(글루온)라고 부른다.
약한 핵력은 입자의 종류를 바꾸는 힘이다(나중에 그렇지않은 약한 핵력이 예견됐으며 실험적으로 검증됐다). 예컨대 핵융합을 일으키려면 양성자 네 개가 양성자 둘과 중성자 둘로 이뤄진 헬륨 핵으로 전환돼야 한다.
따라서 어떻게든 양성자 둘이 중성자 둘로 바뀌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여기에 바로 약한 핵력이 기여한다. 그러니까 태양이 빛을 내는 것도 약한 핵력 덕분이다. 약한 핵력을 전달하는 입자는 W와 Z로 불린다. 이들은 전자기력을 전달하는 빛과 매우 가까운 사촌격이다.








표준모형, 20세기의 모범답안
이렇게 쿼크와 경입자, 그리고 힘을 매개하는 네 개의 입자로 우주의 삼라만상을 설명하는 이론적 틀을 표준모형(standard model)이라고 부른다. 표준모형은 세상이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20세기의 모범답안으로, 지금까지 대단히 성공적으로 자연을 설명해 왔다(그러나 자연의 4대 힘 중 하나인 중력은 아직까지 표준모형으로 설명할 수 없다).
표준모형을 관통하는 핵심원리는 대칭성이다. 대칭성이란 어떤 조작에 대해 변화가 없는 성질을 말한다. 사람 몸의 외형은 대략 좌우대칭이다. 좌우를 바꿔도 큰 차이가 없다. 공은 대칭성이 매우 높아서 어느 방향으로 굴려보아도 항상 똑같은 모습이다. 입자 세계에서 과학자들이 주목한 대칭성은 ‘게이지 대칭성’이다. 게이지 대칭성이란 간단히 말해서 자연을 바라보는 우리의 틀을 바꾸더라도 자연의 근본법칙은 바뀌지 않는 대칭성이다.
6개의 쿼크와 6개의 경입자, 그리고 힘을 매개하는 4개의 입자는 모두 독특한 게이지 대칭성 속에서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런데 게이지 대칭성은 소립자가 질량을 갖도록 허락하지 않는 고약한 습성이 있다. 게이지 대칭성이 확고하다면 모든 입자의 질량은 0이 된다.
이것은 명백히 현실세계와 맞지 않는다. 전자도 작기는 하지만 질량을 갖고 있다. 약한 핵력을 매개하는 W와 Z입자가 만약 질량이 없다면, 검출하는 데 높은 에너지와 기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실험실에서 진작에 검출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20세기 후반에야 검출할 수 있었으며, 예상대로 질량을 갖고 있었다.
질량을 억제하는 것이 게이지 대칭성이니까, 입자가 질량을 갖게 하려면 게이지 대칭성을 어떤 형태로든 깨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이 바로 힉스 메커니즘이다(110쪽 그림 참조).
게이지 대칭성을 깨는 새로운 바닥상태(에너지가 가장 낮은 상태)를 중심으로 다시 물리를 기술하게 되면, 힉스 입자 상태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힉스 장(field)의 일부 요소가 W나 Z입자로 흡수돼 이들이 질량을 갖게 한다. 뿐만 아니라 쿼크나 전자도 힉스 장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질량을 가질 수 있다. W나 Z입자로 흡수되지 않고 남는 힉스 장의 요소는 새로운 입자의 상태로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힉스 입자다.이 모든 과정을 힉스 메커니즘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힉스 입자의 존재는 힉스 장의 존재와 힉스 메커니즘의 직접적인 증거인 셈이다.
힉스 메커니즘은 1964년 영국의 피터 힉스, 벨기에의 프랑수와 앙글레르 및 로베르 브라우가 거의 같은 시기에 제시했고, 직후에 세 명의 미국인도 비슷한 결과를 발표했다. 힉스 메커니즘이 현실적인 모형과 결합해 표준모형을 구축하게 된 것은 주로 스티븐 와인버그 덕분이었다(1967년). 그러나 이후 거의 반세기가 지나도록 힉스 입자는 실험으로 관측되지 않았다. 결국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 입자가속기(LHC)에서 2012년 7월 힉스 입자로 의심되는 새로운 입자를 관측했고, CERN은 후속작업을 통해 2013년 3월 그 입자가 표준모형의 힉스 입자와 성질이 매우 비슷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2013년 10월 노벨위원회는 그 업적을 기려 원래 제안자인 앙글레르와 힉스에게 노벨상을 수여했다. 로베르 브라우는 2011년 사망해 수상자 명단에서 제외됐다.





‘힉스 이후’의 물리학을 꿈꾸며
그렇다면 힉스 입자를 발견했으니 입자물리학은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진 것일까. 전혀 그렇지가 않다. 역설적이게도 표준모형의 완성이라고 불리는 힉스 입자의 존재는, 표준모형을 넘어선 새로운 물리학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힉스 입자는 양자역학적인 보정을 통해 그 질량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성질을 갖고 있다. 이 과정은 힉스 입자가 순간적으로 가상입자 쌍을 만들어내고, 그 쌍이 다시 힉스 입자로 되돌아오는 고리 모양의 반응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때 고리 모양 안에서는 이론적으로 임의로 큰 에너지가 허용된다. 그 결과 힉스 입자의 질량이 무한히 커지게 된다.
하지만 CERN에서 발견한 힉스 입자의 질량은 양성자 질량의 약 126배로, 무한이 아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표준모형에서 이론적으로 힉스 입자를 도입할 때 힉스 입자가 갖고 있던 질량에 물리적으로 의미가 없는 큰 값이 포함돼 있었고, 이것이 다시 양자보정을 거쳐(즉 큰 값을 다시 빼서) 지금의 실험값을 갖게 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큰 값을 더하고 빼는 방법을 사용해 실험값을 얻으려면 대단히 정밀한 미세조정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힉스 입자의 질량이 미세조정된 정도를 수로 표현하면 대략 1032 정도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제우스가 처음에 우주를 만들 때 보정되지 않은 힉스 입자의 질량으로 자릿수가 32개나 되는 큰 수를 줬고, 동시에 헤라가 따로 양자보정에 해당하는 양으로 역시 자릿수가 32인 수를 줘서 뺐더니 그 둘이 절묘하게 상쇄돼 지금의 질량이 남았다는 얘기다. 서로가 사전에 모종의 합의를 하지 않은 이상,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미세조정의 문제는 표준모형에서 해결책이 없다. 물론, ‘우리가 사는 우주는 원래 이렇게 미세조정이 돼 있었다’고 생각하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다중우주론의 등장과 함께 이런 입장을 취하는 과학자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과학자들은 이것이 어떻게든 설명돼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미세조정의 문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표준모형을 넘어 선 새로운 물리학을 추구하는 강력한 동기가 돼 왔다.



만약 새로운 물리학이 있다면, 힉스 입자의 발견은 표준모형의 완성임과 동시에 새로운 물리학의 유력한 실마리가 된다.
초대칭성(supersymmetry)은 가장 각광받는 대안이론이다. 초대칭성은 스핀이 반정수(1/2, 3/2,…)인 입자와 정수(0, 1, 2, …)인 입자 사이의 대칭성이다. 우리 우주에 초대칭성이 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입자들(즉 표준모형의 입자들)은 자신과 스핀이 1/2만큼 차이가 나는 짝(초짝)을 하나씩 갖고 있다. 아직까지 이런 입자들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그 짝의 질량이 너무 무거워서 지금의 기술로는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초대칭 이론에서는 힉스 입자의 질량에 대한 양자보정이 작동할 때 원래 입자와 그 초짝이 대칭성에 의해 정확하게 반대로 기여하기 때문에(상쇄됨) 미세조정의 문제를 피할 수 있다.
최근에 큰 관심을 받는 대안이론으로는 덧차원(extra dimension) 이론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이 3차원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면, 그리고 그 모양이 독특하다면 힉스 입자의 질량이 양자보정되는 정도가 무한히 크지 않을 수가 있다. 이는 3차원 공간에서의 큰 에너지를 덧차원의 공간적 성질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전체 시공간의 차원에서 보면 미세조정이 전혀 없는 우주를 생각할 수 있다.
LHC는 첫 가동 이후 꾸준히 초대칭성이나 덧차원의 신호를 추적해 왔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만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 LHC 뿐만 아니라 다른 실험들에서도 아직까지는 표준모형 이외의 새로운 신호를 포착하지 못했다. 과학자들은 2015년 LHC가 더 높은 에너지로 재가동하게 되면 새로운 돌파구가 열리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우주의 상상력에 도전한다
표준모형은 말 그대로 이론적인 모형(model)에 불과하다. 모형은 이론(theory)과 달리 임의적인 요소를 많이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쿼크가 왜 6개 존재하는지, 그 각각의 질량은 왜 그런 다양한 값들을 가지는지 표준모형 안에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 또한 힉스 입자 자체도 표준모형에 다소 임의적으로 도입됐다. 그래서 힉스 입자의 질량이 어떤 값을 가져야 하는지도 표준모형 안에서는 알 길이 없다. 그리고 표준모형에서는 중력을 설명할 수 있는 틀이 전혀 없다. 이는 현대적인 중력이론인 일반상대성이론을 양자역학적으로 기술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21세기에도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게다가 표준모형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우리 우주에는 너무나 많이 있다. 최근의 관측 자료에 따르면 우주에서 우리가 그 정체를 아는 요소(보통의 물질)는 전체의 5% 정도 밖에 안 된다. 보통의 물질처럼 중력 작용은 하지만 빛을 내지 않아 그 정체를 모르는 물질, 즉 암흑물질이 전체의 27%에 이른다. 한편 반중력의 효과를 내면서 우주를 가속 팽창시키는 원인이 되는 암흑에너지가 나머지 68%를 차지한다. 표준모형에는 암흑물질의 후보가 될 만한 입자가 전혀 없다. 따라서 암흑물질의 존재 자체가 표준모형을 넘어서는 새로운 물리학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목표는 암흑물질 등 새 입자다(2파트 참조). 현재 과학자들은 지상과 우주에서 직간접적인 방법을 총동원해 암흑물질의 정체를 규명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암흑에너지 또한 그 정체가 명확하지는 않으나 아인슈타인이 1917년에 도입한 우주상수가 가장 유력하다. 우주상수는 공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 밀도라고 할 수 있다. 우주의 가속팽창이 과연 우주상수 때문인지 아닌지를 확실하게 밝히는 것도 21세기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암흑에너지에 대해서는 2013년 12월호 특집 참조).
이런 이유 때문에 표준모형은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물리학의 궁극적인 이론 또는 최종이론과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힉스 입자의 발견에 과학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그 자체가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라는 2500년도 넘는 인CERN류의 수수께끼에 일차적인 종지부를 찍었기 때문이다. 이는 과학사, 아니 인류 역사의 일대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또한 힉스 입자를 발판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힐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점도 대단히 중요하다. 한마디로 말해 성배를 향한 위대한 발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2014년 현재 인류 지성의 최전선은 바로 여기다.
인류가 원자핵을 발견한 것이 1911년이었으니까 그로부터 표준모형의 모든 입자들을 실험적으로 검증하는 데에 거의 한 세기가 걸린 셈이다. 그 100년의 역사는 물리학 혁명의 역사였고 인류 문명의 혁명의 역사였다. 힉스 발견 이후의 또 다른 100년은 인류에게 어떤 역사로 펼쳐질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그러나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되리라는 점은 확실하다. 인간의 상상력은 광대한 이 우주의 상상력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것없으니까.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