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0일 화요일

수학을 꽃피운 아름다운 도서관




고대 이집트의 도시 알렉산드리아는 마케도니아의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세운 항구 도시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기원전 288년 알렉산더대왕의 부관으로 있다가, 훗날 이집트를 통치했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에 의해 세워졌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기원전 306년에 도서관을 세우고 “모든 민족의 책을 모으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 지시를 바탕으로 유럽, 북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의 방대한 양의 책들이 수집됐다. 특히 해양 무역도시였던 알렉산드리아의 특성상 수많은 국가의 무역선들이 이곳을 드나들었기 때문에 세계 각 지역의 책을 수집하는 게 가능했다.

게다가 책을 수집하기 위해 강제적인 수단까지 총동원됐다. 알렉산드리아에 들어오는 배에 실린 책은 무조건 도서관에 제출돼야 했고, 도서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를 베껴썼다. 때로는 원본을 돌려주지 않고 필사본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책을 모았다고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 될 수 있었다. 보관돼 있던 파피루스 두루마리는 70만 권 정도였는데, 요즘 책으로 하면 약 1억 1000만 권 분량이 보관돼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저명한 학자들을 도서관에 초청해 적극적으로 연구 활동을 후원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당시 세계 최대 도서관이자 세계 학문의 중심지였다.





말 실수로 다시 태어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설립된 지 600년 만에 불에 타 없어지고 만다. 도서관의 아픈 역사에는 여러 가지 설이 남아 있는데, 로마의 황제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집트를 침략했을 때 실수로 불을 냈다는 이야기가 가장 유력하다. 카이사르는 전쟁 중 배에 불을 붙이는 전술을 사용했는데, 이 불이 바람을 타고 도서관에 옮겨 붙으면서 화재가 난 것이다. 이후 3세기 경, 도서관은 로마군의 침략을 받아 약탈을 당하고 완전히 불타버리고 말았다.

지난 2002년,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있던 자리에 현대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다시 세워졌다. 그런데 도서관의 재건 계획은 엉뚱하게도 미국 닉슨 대통령의 말 실수로부터 시작됐다.

닉슨 대통령은 1974년에 이집트를 방문했을 때, 이미 2000년 전에 파괴된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보고 싶다는 말을 한다. 터무니없는 말 실수였지만, 이로 인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대학교를 시작으로 이집트 정부와 유네스코, 인근 아랍 국가와 선진국들까지 나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재건 프로젝트에 착수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의 필요성과 역할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새롭게 문을 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는 현재 100만 권의 책(2011년 기준)이 보관돼 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장서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앞으로 그 규모는 점차 늘려 나갈 계획이다.






고대 그리스 수학에서 르네상스 시대로 지식의 통로, 지혜의 집
로마가 멸망한 후 몇 세기 동안 중세 유럽은 학문의 암흑기였다. 당시 유럽에서 학문이라고 하면 주로 신학을 배우는 것이었고, 그리스의 철학과 과학 지식은 빛을 잃고 있었다.




반면 같은 시기, 아랍인들은 인류가 축적한 위대한 사상과 과학 지식들을 흡수하고 보관하고 발전시켰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슬람 제국의 주권자인 칼리프들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는 왕립 도서관 ‘지혜의 집’이 있었다.

‘지혜의 집’은 9세기 7대 칼리프인 알마문에 의해 현재 이라크의 바그다드에 세워졌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이후 가장 크고 잘 정리된 도서관 중 하나로, 단순히 도서관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지식을 전파하는 학문의 중심지로서 자리잡았다.

지혜의 집은 건립 초기에는 페르시아어로 된 문헌을 아랍어로 번역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고대 그리스어의 문헌들을 보관하고 번역하는 것으로 그 범위를 넓혀갔다. 그러자 자연스레 지혜의 집에서는 이슬람의 수학자와 과학자들이 모여 유클리드, 프톨레마이오스 등 고대 그리스 학자들의 주요한 철학, 과학 서적들을 번역하는 일이 잦았다. 그 결과 200년 간 300만 권이 넘는 필사본이 제작되며 도서관을 중심으로 지식이 전파된다. 이렇게 되자 세계의 학자들이 바그다드로 몰려들며, 지혜의 집은 학문의 중심지로 자리잡는다.

지혜의 집이 배출한 학자로는 ‘현대 대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페르시아의 수학자 알콰리즈미(780년~850년 경)가 있다. 그는 일차·이차방정식을 풀기 위한 체계적인 해법을 내놓으며 대수학이라는 학문을 이끌어냈다. 대수학을 뜻하는 영어 단어 ‘Algebra’는 그의 저서로부터 기원했고, 알고리즘이란 단어도 그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그의 업적은 라틴어 번역을 통해 유럽으로 퍼져 나갔고, 이는 유럽의 수학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라이프니츠의 아우구스트 공작 도서관
“나의 천재성은 반복적인 독서의 결과물이다”

1691년부터 1716년까지 아우구스트 공작 도서관장을 지낸 라이프니츠의 말이다. 라이프니츠는 뉴턴과 함께 미적분을 발명한 수학자다. 그는 수학뿐만 아니라 신학, 철학, 법학 등에서도 재능을 발휘한 17세기의 천재로 불리는데, 아우구스트 공작 도서관에서 관장을 맡으며 정치, 종교, 역사, 문학 등 각 분야의 대표적인 책들을 반복해서 읽은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도서관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고서 전문 도서관 중 하나로, 1572년 율리우스 공작에 의해 세워졌다. 초기에는 3만 5000권 장서로 출발했지만, 율리우스 공작의 동생이자 도서 수집가였던 아우구스트 공작에 의해 세계적인 고서적 도서관으로 거듭난다. 아우구스트 공작은 1666년까지 역사, 물리 등 여러 분야의 책 13만여 점을 열정적으로 수집했다. 이는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로, 당시 8대 기적 중 하나로 불릴 정도였다.

이 도서관에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책 중 하나인 하인리히 사자공의 복음서가 소장돼 있다. 이 책은 독일의 작센과 바이에른 지역을 다스렸던 왕 하인 리히 사자공이 1188년 브라운슈바이크 대성당에 헌정한 책으로, 빼어난 중세 독일어 필체가 자랑거리다. 1983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 책은 3250만 마르크(당시 우리 돈으로 약 98억 원)라는 엄청난 가격에 낙찰됐다.



동아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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