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왜' '어떻게' 질문
잘 살게 됐는데 행복하지 않아
스마트폰 중독이 개성 없앤다
과학은 풀 수 있는 문제만 다뤄 왜 남과 비교하며 불안해하나? 상상력 부족 당연하지 않아
케임브리지대 장하석(46) 석좌교수. 그는 세계 과학철학계에서 주목받는 석학이다. 2006년에는 '과학철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러커토시상을 수상했다.
그는 런던대 교수를 거쳐 젊은 나이에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가 됐다. 손에 잡히는 과학, 손에 잡히지 않는
철학. 그는 둘을 관통하는 과학철학을 연구했다. 손에 잡힐 듯 말 듯, 어쩌면 행복의 속성도 그렇다. 인터뷰 내내 그는 깊이 생각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그가 보는 행복은 어떤 걸까.
-언제부터 과학에 관심이 있었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커서 뭐 될래'라고 물어보면 '과학자'라고 대답했다. 그냥 뭔가를 들여다보고 '이게 어떻게 생겼지' 관찰하고,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되지'
생각하는 게 좋았다. 중학교 3학년 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원서로 읽었다. 영어가 어려워서 처음에는 한 페이지 읽는데 하루가 걸렸다.
그걸 읽고 내 인생이 바뀌었다. 그때 이론물리학을 하겠다고 크게 마음을 먹었다."
장 교수는 미국의 명문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학생 시절 종종 교수들에게 난감한 물음을 던졌다. 가령 "빅뱅으로 인해 시간과 공간이 생겨났다. 그럼 빅뱅 이전에는 뭐가
있었나" 하는 식이었다. 그의 질문은 뿌리를 향했다. 교수들은 "야, 숙제나 해라. 문제 푸는 것 좀 더 배우고"라며 "그건 철학의 문제다"고
대답했다.
-교수들의 대답은 왜 그랬나.
"유명한 과학자 토마스 쿤(1922~96)이 말했다. 과학은
그렇게 심오하고 답이 안 나오는 문제들을 접어놓고 나서야 생기는 거라고. 왜냐면 과학은 풀 수 있는 문제를 얘기한다. 가능한 탐구를 하는 거다.
답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는 철학에 맡겨 둔다. 그래서 학부생 때 '너는 왜 철학적인 얘기만 하려고 하느냐'는 꾸중을 자주
들었다."
그런 꾸중을 듣다가 드디어 그는 화가 났다. "그럼 난 철학을 하겠다. 내가 궁금한 게 다 철학적인 얘기라면 나는 철학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래서 보니까 과학 철학이란 분야가 있더라. 난 그걸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뿌리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과학의 바탕이 왜 궁금했나.
"바탕을 알아야만 과학이 진짜로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게 확실히 맞는지는
모르겠다. 인간이 과연 전체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건 어쩌면 종교적 열망일지도 모른다. 뉴튼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선언했다. 중력 법칙은 온
우주에 적용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태양계 안에서만 증거를 모았을 뿐이다. 아인슈타인도 가장 훌륭한 하나의 이론을 세워서 모든 자연 현상을
설명하려 했다. 현대과학을 보면 그런 꿈들이 많이 깨져나갔다. 요즘은 '우리가 연구할 수 있는 범위에서 잘하자'는 추세다. 노벨상 수상자를 봐도
거대한 이론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한계를 느끼는 거다."
-과학을 하다가 철학으로 옮겼다. 과학철학의 역할은 뭔가.
"과학을 하다 보면 좁게 들어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시야가 좁아진다. 이들에게 과학철학은 시야를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나무도 보고, 숲도 보는 건가.
"그게 희망사항이다. 과학적 지식 자체도 완벽한 게 아니다.
과학지식도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일상 생활의 지식에서 시작된다. 그걸 자꾸 정제해서 발전시킨 거다. 과학철학이 행복에 대해서 던질 수 있는
메시지는 '열려있음'이다. 과학철학에서도 나는 다원주의를 주장한다."
장 교수는 영국에서 살고 있다. 가끔 한국을 찾을 때마다
놀랍다고 했다. "달라지고, 발전하고, 교양도 높아지고, 정말 잘 살게 됐다. 그런데 사람들이 불행해 보인다. 이상하게도 아주 획일적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획일성이다. 사람들이 너무 같은 목표를 추구한다."
-같은 목표라면.
"전부 의대
가야하고, 전부 법대 가야하고. 내게 30년 전에 한국의 미래를 추측해 보라고 했다면, 이런 게 점점 없어질 거라고 말했을 거다. 그런데 도리어
심해지고 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다. 첫째는 상상력이 부족하고, 둘째는 서로 가만 놔두질 않는다."
장 교수는 스마트폰을 예로
들었다. "사람들이 혼자 있는 시간이 없다. 늘 스마트폰을 켜놓고 어딘가에 연결되거나 메시지를 주고 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트렌드가 엄청난
속도로 퍼진다. 늘 남들의 시선에 노출돼 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거나 커피숍에서 누구를 기다리며 혼자 있는 시간, 다시 말해 혼자 생각할
시간이 없다. 그때도 스마트폰을 두드린다. 그런데 어떻게 개성이 살겠는가. 개성이 살아나고, 개성이 만들어질 시간 자체가 없다."
-어떡하면 우리가 다양성을 좀 키워볼 수 있겠나.
"서로 좀 놓아줘야 한다."
-왜
놓아주질 못하나.
"불안 때문이다. 우리 부모 세대만 봐도 굉장한 혼란과 공포 속에서 사셨다. 그런 불안이 아주 뼈에
박히신 분들이다. 조금만 잘못하면 우리 자식이 큰일나지 않을까, 염려하며 길렀다. 그게 대를 물려서 내려가는 것 같다. 솔직히 요즘 재능 있는
얘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 한다고 해서 밥을 못 먹겠나, 굶어 죽겠나.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불안의 심리를 서로 물고, 또 물리고 있다.
상상력이 부족하니까 불안이 가중된다."
-거기에 행복이 있나.
"호기심 없이 사는 게 오히려 불행하지
않나. 호기심이 없으면 남이 정해준 기준을 따라가야 한다. 자신이 정했다고 해도 메마른 목표를 따라간다. 그게 정말 행복한 삶일까."
장하석 교수=1967년 서울생.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에서 학사, 스탠퍼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박사 후 과정을
거쳐 20대 후반에 영국 런던대 과학철학과 교수가 됐다. 현재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로 과학사·과학철학을 강의한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부
교수의 동생이다
LA중앙일보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