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9일 목요일

단풍 들고 낙엽 지는 건 겨울 대비한 '다이어트'


가을 되면 잎마다 떨켜층 만들어 잎으로 수분 가지 못하게 막아… 푸른 엽록소 줄면서 단풍 물들죠
겨울 되면 수분 흡수 멈추고 병들고 부실한 가지도 덜어내… 내년을 위한 나무의 '구조조정'


전국의 산과 들은 벌써 울긋불긋 단풍으로 가을 옷을 갈아입었어요. 이맘때면 사람들은 곱게 물든 단풍을 보기 위해 높은 산도 마다하지 않고 오르지요. 그런데 나무에게 단풍과 낙엽은 다가오는 겨울을 무사히 넘기기 위한 제 살 깎기와 같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나무의 겨울나기는 동물이나 인간에 비하면 참 가혹하답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의 숙명이지요. 나무는 동물처럼 추위와 더위를 피해 동굴과 같은 피난처를 찾을 수 없고, 사람처럼 옷을 입고 벗을 수도 없지요.

그래서 나무는 제자리에서 혹한을 견디며 겨울을 넘길 방법을 찾아야 했지요. 그 묘책은 바로 잎과 줄기에 흐르는 수분을 줄이는 거예요. 잎과 줄기에 수분이 없으면 추위에도 얼지 않기 때문에, 동상(凍傷· 추위에 살갗이 얼어서 상함)을 입거나 얼어 죽는 상황을 피할 수 있거든요.

◇가을에 단풍이 물들고 낙엽이 지는 이유

가을에 단풍이 물들고 잎이 떨어지는 것도 나무가 몸에 든 수분을 줄이며 겨울을 준비하는 과정이랍니다.

[재미있는 과학] 단풍 들고 낙엽 지는 건 겨울 대비한 '다이어트'
▲ /그래픽=안병현
낙엽 나무들은 밤 기온이 섭씨 10도 이하로 떨어지면 가을이 왔다고 생각해요. 그때부터 뿌리로 수분을 흡수하는 양을 빠르게 줄이기 시작합니다. 뿌리의 수분이 줄어들면 자연히 줄기와 가지에 흐르는 수분의 양도 줄어들겠죠?

가지와 잎을 이어주는 잎자루에는 떨켜층이라는 칸막이가 생깁니다. 잎으로 수분이 공급되지 않게 관다발을 막는 것이죠. 추운 겨울이 되면 물이 든 나뭇잎은 꽁꽁 얼어 죽고 말아요. 그 전에 나무는 잎을 말려서 땅에 떨어트리는 방법을 선택한 거예요.

떨켜층이 완성되면 잎에는 더 이상 수분이 들어가지 않아요. 수분 공급이 차단된 잎에서는 녹색을 띠는 엽록소가 서서히 빛을 잃어갑니다. 대신 여름내 엽록소의 푸른빛에 가려 제 색을 드러내지 못하던 색소들이 얼굴을 내밀지요. 단풍잎에서는 안토시안(anthocyan)이라는 붉은 색소가, 은행잎에서는 카로티노이드(carotinoid)라는 노란 색소가 선명해져요.

아름다운 단풍도 봄날에 핀 꽃처럼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우수수 땅에 떨어져요. 낮 기온이 섭씨 5도 이하, 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뿌리는 수분 흡수를 완전히 멈추지요. 가지와 줄기에 든 수분을 최대한 줄이는 거죠. 잎은 죄다 떨어지고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남습니다. 겨울을 나기 위한 이 과정들은 나무들이 오랜 세월 진화를 거쳐 깨달은 거예요.

◇나무의 겨울나기는 '다이어트'예요


겨울이 되면 나무들은 매서운 겨울바람에 알몸을 내맡깁니다. 바싹 마른 가지는 겨울에 부는 거센 바람에 맥없이 꺾여 날아가요. 제법 굵직한 줄기도 강풍에 뚝뚝 부러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험한 모습을 한 나무들을 보며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사실 나무에게는 연례행사처럼 치르는 '겨울 다이어트'예요. 바람에 꺾여 날아간 잔가지는 풍성했던 여름날에 잔뜩 불렸던 살과 같은 것이죠. 꺾이거나 부러진 굵은 줄기는 지난여름 병해충에 시달렸거나 옆에 있는 나무에 치여 제대로 자라지 못한 것들이 대부분이고요. 한 해 동안 지나치게 늘어났거나 곯았던 부분들을 겨울 동안 덜어내는 거예요.

이듬해 봄이 되면 몸집이 줄어든 나무의 모습이 초라해 보이지만, 가지나 줄기가 부러진 자리에 달린 수많은 곁눈에서 새 가지가 돋아나고, 가지마다 새 잎도 줄줄이 피어날 거예요. 다이어트를 거친 나무는 지난여름보다 이번 여름에 더 많은 가지와 잎을 풍성하게 피울 수 있답니다.

뉴스를 보다 보면 형편이 좋지 않은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한다는 소식을 듣곤 해요. 기업이 구조조정을 하게 되면 오랫동안 회사에 다닌 직원들이 해고를 당하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진답니다. 그래서 구조조정을 하려는 회사와 해고를 반대하는 직원들 사이에 큰 갈등이 벌어지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모든 구조조정이 '사악한 기업주가 죄 없는 직원을 내쫓기 위해' 벌어지는 것은 아니랍니다. 나무가 매년 가을마다 몸 안의 수분을 줄여 잎을 떨구어 내고 겨울에는 병든 줄기와 가지를 덜어내듯, 위기를 맞은 기업도 구조조정을 거쳐 몸집을 줄여야 다시 번성할 기회를 찾을 수 있어요. 사람과 달리 나무가 수백 년을 거뜬히 살아가는 것도 매년 겨울나기를 통해 가지와 잎을 털어낸 덕분이에요.

[열대·한대에 사는 나무도다이어트를 할까?]

단풍이 물들고 잎이 떨어지는 풍경은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에서만 볼 수 있어요. 그럼 1년 내내 무더운 열대 지역과 연중 추운 날씨가 이어지는 한대 지역에 사는 나무는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걸까요?

열대 지역에서는 나무가 아니라 밀림과 숲이 다이어트를 합니다. 비가 오지 않는 건기에 들불이 일어나면서 우기 때 늘어난 울창한 나무와 풀들이 통째로 불에 타 사라지는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해요. 낙엽 나무보다 더 잔인한 다이어트를 한다고 볼 수 있어요.

한대 지역의 나무들은 짧은 여름 동안 몸집을 불리기보다 겨울을 버틸 양분을 모으는 데 힘을 기울이죠. 이렇게 모은 양분은 긴 겨울을 나는 데 요긴하게 사용됩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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