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9일 목요일

나무의 '겨울나기'… 나뭇잎 속에 전략 있다


가을철 성장호르몬 공급 끊어지고
추워지면 '떨켜층' 생기면서 잎 떨어지게 돼
겨울 동안 나무 속 영양분 지키기 위함이에요

강원도 설악산국립공원에 이번 달에만 벌써 52만여 명이 방문했다고 해요. 설악산 인근의 도로는 주말마다 꽉 막혀요. 사람이 이렇게 많이 찾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곱게 물든 단풍과 바닥을 수놓은 낙엽을 보기 위해서지요.

얼마 전 미국에선 낙엽을 파는 회사도 등장했어요. 미국 버몬트주의 낙엽을 12장 넣은 한 봉지는 2만원, 50장이 든 한 봉지는 4만원에 팔기 시작한 거예요. 버몬트주의 낙엽 향을 맡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해요.

이렇게 낙엽을 좋아하는 이는 많지만 낙엽이 어떻게, 왜 떨어지는지 곰곰이 따져 보는 사람은 드물지요.

◇손 없는 나무가 어떻게 잎을 떨궈 낼까
추운 겨울이 오면 나무도 살아가기 힘들어져요. 햇빛의 양이 줄어 만들어 낼 수 있는 영양분이 줄어들거든요. 잎을 끌어안고 힘겹게 겨울나기를 할 것인가, 잎을 떨궈 내고 봄이 올 때까지 버틸 것인가…. 동물처럼 겨울잠을 잘 수 없는 식물에 주어진 겨울 생존 전략의 선택지인 셈이에요. 낙엽은 은행나무·플라타너스·참나무·단풍나무 등 잎이 넓은 나무(활엽수)의 겨울나기 전략이에요. 잎이 넓으면 공급해야 할 영양분도 많고 추위에도 쉽게 얼어 떨궈 내는 게 유리해요.
기사 관련 그래픽
그림=안병현
손이 있으면 나뭇잎을 똑 꺾으면 될 테지만, 손발이 없는 나무가 어떻게 스스로 잎을 떨궈 내는 걸까요? 봄·여름엔 멀쩡히 붙어 있던 잎이 가을에 우수수 떨어지는 게 신기하지 않나요? 나무는 낙엽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를 한답니다. 여름의 절정인 7~8월까지 활발하게 나오는 성장호르몬이 9월부터 멎고, 잎과 가지가 연결된 잎자루의 끝부분엔 떨켜층이 생겨나요. 떨켜층은 잎이 가지에서 분리되는 부분이지요. 잎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 바이러스나 세균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떨켜층과 가지 사이엔 보호층이 생긴답니다.

떨켜층을 이층(離層)이라고 하는 이유는 곧 떨어져 나갈 층이기 때문이에요. 잎과 가지가 서로 이별한다고 생각하면 이층의 뜻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거예요. 기온이 내려가면 떨켜층의 세포벽을 녹이는 효소가 분비돼요. 이렇게 떨켜층이 녹으면서 잎이 가지에서 분리돼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지요.

◇낙엽도 떨어지는 순서가 있다
이때 잎의 위치에 따라 낙엽 지는 순서가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성장호르몬의 공급이 끊기는 잎부터 떨어지기 시작한답니다. 성장호르몬은 식물의 성장·결실·노화를 촉진하는 물질인데, 가지·줄기·뿌리의 가장 끝(바깥)부분에서 만들어져요. 이곳에서 나온 성장호르몬이 목표 기관까지 전달돼 나무의 각 부분을 자라게 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성장호르몬이 만들어지는 가지·줄기 끝에 붙은 잎은 늦게 떨어지는 반면, 이와 멀리 떨어져 있는 잎은 먼저 떨어진답니다. 성장호르몬의 분비가 왕성한 부위의 잎은 봄에 먼저 돋아나고, 가을엔 나중에 지는 것이지요. 모든 잎을 떨군 나무 한 그루를 상상해보세요. 봄이 되면 이 나무는 성장호르몬의 분비가 시작되는 가지와 줄기의 끝부분부터 잎이 나기 시작해요. 잎은 나뭇가지의 가장자리를 점령한 뒤 차츰 가지 안쪽으로 피어나 5월이면 잎이 무성한 나무로 탈바꿈하지요. 이후 쌀쌀한 가을이 오면 성장호르몬 전달이 먼저 끊기는 지점의 잎부터 차례로 떨어지기 시작한답니다.

그럼 소나무처럼 겨울에도 푸른 나무는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하지요? 소나무처럼 잎이 바늘처럼 가는 나무를 바늘잎나무(침엽수)라고 하는데요, 이런 나무들은 잎을 모두 떨궈 내지 않고도 추위를 이겨낼 수 있어요. 해마다 침엽수도 잎을 떨어뜨리긴 하지만 활엽수처럼 가을에 모두 떨구진 않아요. 대표적 침엽수인 소나무의 예를 볼게요. 소나무는 가지가 1년에 한 마디씩 자라기 때문에 나뭇잎 위치만 봐도 얼마나 오래된 잎인지 알 수 있답니다. 가지 맨 끝(바깥)에 달린 잎은 1년생 잎, 거기에 이어진 안쪽 마디의 잎은 2년생 잎, 이런 식으로 줄기와 가까운 가지에 달린 잎일수록 나이가 많은 식이에요.

예를 들어 수평으로 뻗은 소나무 가지가 일곱 마디이면 가장 바깥쪽(줄기와 가까운 순으로 일곱째) 마디에서 자란 잎은 1년생이고, 그보다 안쪽인 여섯째 마디의 잎은 2년생, 가장 안쪽(첫째) 마디의 잎은 7년생인 것이지요. 이렇게 소나무 가지와 줄기의 마디 수를 헤아리면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답니다. 나무를 베어 나이테를 들여다보지 않고도 나이를 알 수 있다니 신기하지요?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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