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8일 토요일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천문학 혁명을 시작한 코페르니쿠스


어떤 한사람, 한권의 책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예를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런 특별한 일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더해지면서 상황이 무르익었을 때 가능한 것이지 천재 한사람이 해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천문학 혁명을 이끈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라는 책도 이전까지 제기된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 체계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의심과 달력의 개혁이라는 사회적 필요가 더해지면서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 체계가 제시하는 대로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태양을 도는 평범한 행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믿어온 상식을 깨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 우주체계코페르니쿠스 우주체계

신은 단순한 우주를 좋아한다

프톨레마이오스 우주체계프톨레마이오스 우주체계

정지해 있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모든 천체는 지구를 돈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은 하늘에는 신이 있고 땅에는 인간이 있다는 신학적 해석과도 잘 어울렸다. 이 모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과 조화를 이루어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이 등장할 때까지 서구 천문학을 지배하는 우주체계였다.

그러나 16세기에 이르러 조심스럽게 변화의 물결이 일어났다. 탐험가들의 항해로 새로운 대륙이 발견되면서 다양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알려졌고, 로마 교회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도 기울기 시작했다. 여기 저기서 비판의 목소리가 들렸다. 1천4백여년 동안 인정돼 온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 우주체계가 새삼스럽게 문제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를 기초로 만든 달력은 해마다 기념일이 달라지는 등 크게 불편했다. 또한 주전원 이론으로 설명되는 행성의 운동에서 관측값과 오차를 줄이기 위해 자꾸만 다른 주전원을 첨가하면서 우주체계가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진 것이다. 태양, 달, 오행성의 운동을 설명하는데 80여개가 넘는 주전원이 필요할 지경이었다.

이러한 분위기와 맞물려 당시 대학에서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에 관해 다른 견해들이 생겨났다. 코페르니쿠스도 그 중 한 사람으로 지구중심설에 회의를 품게 됐다. 그는 우주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처럼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수학적 조화를 이룬다고 믿었다. 전지 전능한 신이 만든 우주가 이렇게 복잡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코페르니쿠스는 기원전 2세기에 이미 태양이 지구보다 크며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도는 작은 행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었던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를 알고 있었다. 코페르니쿠스는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의 골칫덩어리였던 행성운동의 복잡성이 태양을 중심에 두고 행성들이 그 주위를 돈다는 가정을 하면 훨씬 쉽게 설명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똑같이 훌륭한 두 설명이 있다면, 보다 간단한 설명이 옳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행성들이 실제로 80여개의 주전원에서 돌든지 그렇지 않든지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계산과 예측이 맞느냐 하는 점이었다. 반면에 코페르니쿠스는 행성들이 이론에서 주장한 바와 똑같이 움직여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의 설명이 실제 자연이 보여주는 현상과 일치된다고 믿었다. 이러한 면에서 코페르니쿠스는 프톨레마이오스 체계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행성의 역행 운동이나 수성과 금성의 태양에 대한 운동이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운동임에도 불구하고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는 엄청나게 복잡한 설명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생각을 편지로 정리해 주위 사람들에게 보낸 이래 30여년 동안 더 다듬어 1543년 비로소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지구를 포함한 행성들이 태양 둘레를 원궤도를 따라 돈다고 말했다. 또한 항성의 일주 운동이나 행성의 불규칙한 움직임은 사실 지구 자체의 운동에 따라 나타나는 상대적인 것임을 밝혔다.

천문학 혁명의 시발점이 된 코페르니쿠스의 책 천문학 혁명의 시발점이 된 코페르니쿠스의 책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이제 지구는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수많은 천체 중 하나로 여겨졌고 수학적으로도 새롭게 기술할 수 있게 됐다. 기원전 2세기 히파르코스가 정리한 세차운동은 춘분점, 추분점이 서쪽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현상으로서 당시에는 하늘 전체의 뒤틀림으로 설명했지만, 이제는 지구의 자전축이 흔들림으로 일어나는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됐다.

그리스시대부터 태양중심설이 힘을 얻지 못한 이유는 지구가 공전한다면 연주시차가 관측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이에 대해 별이 지구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관측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연주시차는 1838년에야 베셀이 백조자리 61번별에서 시차를 밝혀냈다.

기록에 따르면 코페르니쿠스는 자기 학설을 책으로 펴내는 것에 대해 큰 부담을 가졌다고 한다. 소심한 성격 때문일 것이지만, 실은 자신의 주장이 완전한 것이 아니라 논쟁거리를 많이 포함하고 있었기 대문이다. 지구와 같은 큰 땅덩어리가 돈다면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그가 할 수 있는 답변은 지구보다 더 빨리 도는 천체들은 무사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정도였다. 당시는 관성의 원리도 만유인력의 원리도 알려지지 않은 시대였기 때문에 태양중심설이 옳다고 믿었지만 이것을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만약 지구가 움직인다면 자연스럽게 사람은 공중으로 팽개쳐 지는 것처럼 느껴지고, 높은 곳에서 떨어뜨린 돌은 그 서쪽에 떨어져야 할 것이다. 지구가 운동한다는 명백한 증거를 손에 쥐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고민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초판이 죽는 날에야 그의 손에 전달됐던 것도 자신의 생각을 발표해서 불러올 논란을 두려워했다는 증거다.

천체의 궤도는 완전한 원?

코페르니쿠스의 체계에는 아직 고대나 중세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우주를 붙박이별이 박혀 있는 천구가 둘러싼 유한한 공간으로 생각한 점, 천체들이 붙어 있는 ‘천구’라는 개념을 버리지 못한 점, 그리고 무엇보다 커다란 오류는 행성의 궤도를 완전한 원이라고 가정함으로써 행성의 불규칙한 운동에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전원을 그대로 썼다는 점이다. 코페르니쿠스 역시 원이 완전한 기하학적 도형이며 하늘의 모든 것은 원궤도를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타원인 행성 궤도를 원이라고 하면 행성의 공전속도가 변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주전원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행성의 불규칙한 운동을 여러 원들의 조합에 의해 설명하려고 했다. 물론 프톨레미마이오스가 쓴 원의 수를 일부 줄였으나, 다른 데서는 오히려 더 늘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지구와 태양의 자리가 바뀌긴 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과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을 그대로 썼던 것이다. 이 때문에 과학사학자들은 코페르니쿠스의 체계가 단순성이나 정확성에 있어서 별로 나아진 게 없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가 지핀 불씨는 새로운 변화의 물꼬를 트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체관측 기록을 남긴 인물 가운데 하나인 티코 브라헤, 행성의 타원 궤도를 밝혀낸 케플러, 목성의 4대 위성을 발견한 갈릴레이, 근대역학 체계를 완성한 뉴턴을 거치면서 진정한 천문학의 혁명으로 자리잡아갔다.

태양중심설이 근대 과학자들에게 주목받았던 이유는 이론적 완벽함 때문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통해 낡은 세계관을 대신할 새로운 대안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지구와 태양의 자리를 바꿈으로써 중세의 우주관과 그것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은 뿌리부터 흔들리게 됐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고 인간은 그 위에 사는 가장 존엄한 존재였는데, 이제 인간은 여러 행성들 가운데서도 비교적 작은 별에 거꾸로 매달려 돌아가는 존재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인간은 우주 안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다시 생각해야 했으며, 부질없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

해보기1.금성은 왜 새벽과 저녁에만 보일까?

금성은 달을 빼고 밤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난다.칠흑같이 어두운 그믐날에는 금성의 빛만으로도 그림자가 질 정도다.이렇게 밝게 보이는 것은 아홉 행성 가운데 지구와 가장 가까워서이기도 하지만,표면을 덮은 대기의 상층이 태양 빛을 아주 잘 반사하기 때문이다.금성이 새벽 동쪽하늘에 보일 때는 샛별,저녁 서쪽하늘에 보일 때는 태백성이라고 한다.하지만 자정이 가까운 한밤에는 결코 금성을 볼 수 없다.그 이유는 무얼까.

우리가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 살고 있다면,그래서 금성이 지구 둘레를 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꽤 고생해야 할 것이다.태양의 왼편과 오른편을 왔다갔다하는 금성의 불규칙한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복잡한 주전원을 몇 개씩 머리 속에 그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금성과 지구가 모두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하면 문제는 아주 간단해진다. 아울러 금성의 위치에 따라 밝기의 변화가 생기는 이유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금성은 지구의 안쪽에서 돌고 태양과 가까운 궤도를 따르기 때문에 해진 후 서쪽하늘과 해뜨기 전 동쪽 하늘에서만 보이는 것이다.

해보기2.수성을 찾아보자

태양계의 아홉 행성 중 가장 안쪽 궤도를 도는 수성은 1초에48k를 달려 88일만에 태양 주위를 한바퀴 돈다.이처럼 움직임이 아주 빨라 고대 로마에서 신의 소식을 전하는 발빠른 심부름꾼이라는 뜻의 '머큐리'라는 이름이 붙었다.빨리 움직이므로 보기는 쉽지 않다.해뜨기 직전 동쪽하늘에서,해진 직후 서쪽 하늘에서 잠깐 보인다.가장 잘 보이는 때는 일년에 예닐곱 차례 태양과 수성이 만드는 이각이 가장 큰 날을 전후로 며칠 간이다.코페르니쿠스도 일생동안 수성을 보지 못해 아쉬어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각은 지구에서 볼때 행성이나 달이 태양에서 떨어진 정도를 각도로 나타낸 것이다.이각이 가장 클 때를 최대이각이라 하며 수성은 약28도,금성은 48도쯤이다.태양중심설에서 보면 이각이 클때 수성이 잘 보이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올해 6월9일은 수성이 동방 최대이각(24도)에 이르는 날이다.이날을 전후로 며칠간은 해진 후 저녁 서쪽하늘 지평선 가까이 뜨는 수성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쌍둥이자리에서 0.5등급의 밝기로 빛난다.맨눈으로도 볼 수 있지만 쌍안경이 있다면 찾기가 훨씬 수월하다.


과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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