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9일 목요일

다시 쓰는 인류의 '진화론'

인류의 조상

모로코서 30만년 전 화석 발견으로 현생 인류의 기원에 한 발짝 다가서
진화하면서 뇌 커지고 직립보행? 최근 화석들 보면 꼭 들어맞지 않아
CT 촬영, DNA 추출 등 첨단기술로 새로운 사실 알아가는 중이에요


최근 아프리카 모로코의 제벨 이르후드 동굴에서 30만년 전 인간의 화석이 발견됐어요.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화석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에요. 지금까지는 아프리카 동부 에티오피아에서 발굴된 19만5000년 전 화석이 제일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제벨 이르후드 화석은 현생 인류의 등장 시기를 10만년 이상 앞당긴 셈이죠. 제벨 이르후드 화석을 살펴보면 두개골이 지금의 인류보다 조금 더 얇고 뒤쪽으로 길쭉한 형태예요. 이 화석은 그동안 알려졌던 인류 진화의 역사를 새로 쓸지도 몰라요.

◇인류 진화의 '단절 고리' 밝혀질까
이전까지는 호모 사피엔스가 약 20만년 전 아프리카 동부에서 나타나 10만년 전 유럽과 아시아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됐어요. 그러나 이제 30만년 전부터 아프리카 전 지역에서 활동했을 가능성이 높아졌죠. 또 유라시아에 50만년 전에 나타났다 4만년 전에 멸종했던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의 관계도 연구할 수 있게 됐어요. DNA 분석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50만년 전 공통 조상에서 갈라졌다고 해요. 현재 우리 유전자에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1~3% 남아 있죠. 두 인류 사이 아이가 태어났다는 얘기예요. 과학자들은 제벨 이르후드 화석이 인류 진화의 '단절 고리(the missing link)'를 밝혀줄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죠.

인류의 진화 단계
▲ /그래픽=안병현
그동안 인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호모 에렉투스→호모 사피엔스' 순서로 진화했다고 알려졌어요. 점점 뇌 용량이 늘어나고, 손의 구조가 도구를 잘 다룰 수 있게 바뀌고, 몸집이 커지고, 턱이 작아지고, 다리와 발이 걷고 달리는 데 적합하게 바뀌었다고 본 것이죠. 그러나 최근 잇따라 발견된 원시 인류 화석은 기존 가설을 뒤집고 있어요.

대표적으로 2013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발굴된 '호모 날레디(Homo naledi)'를 볼까요. 이 화석에는 200만~300만년 전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와 20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이 섞여 있어서 크게 주목받았어요. 호모 날레디는 현생 인류에 비해 뇌는 작지만 손바닥과 손가락뼈를 보면 도구를 다뤘을 가능성이 높아요. 다리는 길고 곧아서 현생 인류처럼 직립보행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여요.

반면 강한 어깨와 길고 휜 손가락을 보면 나무 타기에 능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비슷해요. 기존에 알려진 순서를 밟아 진화해 온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죠.

◇기존 학설 뒤집는 화석들 잇따라 발견
호모 날레디처럼 다양한 조합을 가진 인류 화석은 또 있어요. 2010년 남아공에서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sediba)'인데요. 이 화석은 178만~195만년 전에 살았던 고대 인류의 것으로 보여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분류되긴 했지만 손과 발, 골반뼈 등이 현생 인류와 상당히 닮아 있어요. 또 2013년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화석은 280만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종류인지 호모 종류인지 확인되지 않고 있어요. 턱뼈는 현생 인류를 닮았지만 다른 부분은 많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이런 화석들의 등장은 인류의 진화가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어요. 인류학자들은 다양한 특징을 가진 여러 종의 인류가 각자 진화했고, 짝짓기를 하면서 유전자를 공유했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어요.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우리 몸에 남아 있는 것도 이 가설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죠.

인류의 진화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꼭 만나는 중요한 화석이 하나 더 있어요. 바로 '루시'로 잘 알려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farensis)예요. 에티오피아의 하다르 유적과 탄자니아의 래톨리 유적 등에서 화석이 나왔는데, 300만~350만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돼요. 루시는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여성의 화석이에요. 두 발로 걷는 특징(직립보행)을 가진 인류의 조상으로 유명해요. 사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침팬지 정도의 두뇌 크기를 가졌고, 도구를 사용한 흔적도 보이지 않았어요. 전체적으로 침팬지에 가까운 형태였지만 딱 한 가지, 두 발로 걷는다는 점에서 달랐죠. 이 때문에 발견 당시 루시는 최초의 인류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 후 루시보다 앞선 시대의 화석이 여럿 발견됐어요. 이들이 최종적으로 인류로 분류되면 인류 진화의 역사가 시작하는 시점이 새로 쓰이게 될 거예요.

이렇게 최초 인류부터 현생 인류의 조상까지 우리가 진화해 온 흔적들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어요. 화석뿐 아니라 DNA 비교, 치아에 남아 있는 극미량 우라늄 분석 등 최첨단 과학기술이 동원되면서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아낼 수 있게 된 덕분이에요.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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