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로 이루어진 DNA, 외모·성격·질병 등에 영향 주지만
주변 환경이나 습관·경험 따라 유전자 작동 방식도 달라져
흡연자는 카페인 분해 잘되지만 당뇨·암 부르는 유전자 작동 늘어
공상과학 영화를 보면 막 태어난 아기의 DNA를 분석해 외모나 성격을 예측하고 심지어 어떤 병에 걸릴지도 미리 알아맞히는 장면이 나옵니다.
부모가 아기의 DNA를 조작해 자신들이 원하는 '맞춤형 아기'를 만들기도 하고요.
과학자들은 DNA를 '우리 몸의 설계도'라고 부릅니다. DNA는 아데닌·구아닌·시토신·티민 이렇게 네 종류의 핵산을 합쳐서 부르는 것으로 우리 몸속에 30억개의 DNA가 순서대로 들어 있어요. DNA를 이루는 유전자들은 단백질 형태로 우리 몸을 이루고 생명 활동을 합니다. 사람에 따라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기도 하고, 특정한 유전자가 활발히 작동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해요. 이에 따라서 우리의 외모나 성격이 어느 정도 결정되고, 특정한 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공상과학 영화처럼 우리는 DNA가 정해놓은 대로만 살아가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DNA도 자신의 경험과 습관, 주변 환경에 따라 작동 방식이 달라지거든요. 유전자가 경험과 습관, 환경에 따라 작동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형성된 유전자 작동 방식이 후대에 유전될 수도 있고요.
과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후성 유전(後成 遺傳)'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을 'DNA의 꼭두각시'라고 부를 수 없는 건 인간이 후성 유전을 통해 자신의 DNA를 다르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공부를 열심히 하는 DNA가 있을까
물론 DNA의 힘이 강력한 건 사실입니다. 특정 유전자가 큰 병을 유발하기도 하거든요. 대표적인 예가 'BRCA'라는 돌연변이 유전자입니다. 일반적인 여성이 평생 유방암에 걸릴 확률은 7% 정도지만, 'BRCA' 유전자를 가진 여성은 평생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50%까지 늘어납니다. 돌연변이 유전자 하나가 목숨을 앗아갈 위험을 크게 높이는 것이죠. 유방암뿐 아니라 당뇨, 자폐증, 뇌 질환 등 거의 모든 질병이 DNA 돌연변이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요.
하지만 반대 경우도 있습니다. 쌍둥이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죠. 일란성쌍둥이는 DNA가 똑같지만 성격이나 외모가 조금씩 다릅니다. 반드시 같은 병에 걸리거나 같은 직업을 갖는 것도 아니고요.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는 친구를 보면 "쟤는 태어날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는 유전자가 있나 봐"라는 말이 나오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DNA가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답니다. 대니얼 벤저민 미국 남캘리포니아대 교수 연구팀이 유럽에 사는 성인
29만명의 DNA와 공부한 시간을 분석해 보았어요. 그 결과 공부를 오래 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74개의 돌연변이 유전자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돌연변이 유전자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공부 시간 차이는 불과 몇 개월 차이였어요. 연구팀은 "둘 사이의
공부 시간 차이는 방학 동안 열심히 공부하면 충분히 메울 수 있는 정도"라고 말했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느냐는 DNA 탓이 아니라 본인의
의지와 주변 환경 등이 더 중요하다는 걸 시사하는 연구 결과입니다.
◇나의 경험과 습관이 DNA에 기록돼
우리가 가진 DNA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DNA가 반드시 물려준 대로 작동하는 건 아니에요. 내가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즐겨 먹고 어떤 행동을 즐기는지가 고스란히 DNA에 저장되어 우리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답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대기근이에요. 패전에 몰린 나치 독일은 자신들이 점령하고 있던 네덜란드 서부 지역에 식량 공급을 차단해버렸어요. 이로 인해 이 지역에 살던 주민들은 굶주림으로 심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한 해 동안 약 1만8000명이 죽었고, 이 지역 주민 대부분이 영양실조를 앓을 정도로 끔찍한 사건이었지요.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이 지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유독 저체중이거나 조현병, 당뇨 등을 앓는 비율이 월등히 높았어요. 과학자들은 "배 속 태아일 때 영양 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특정 유전자가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배 속 태아들은 부모에 따라 제각각 다른 DNA를 갖고 있지만,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면 유전자 작동 방식에 영향을 받아 비슷한 질병을 앓을 수 있다는 것이죠. DNA보다 경험이 우리에게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비슷한 사례로 영국 사우샘프턴대 연구팀이 임신 초기 심한 다이어트를 한 임신부가 낳은 아이를 조사해 보니 일반적인 임신부가 낳은 아이들에 비해 훗날 비만에 걸릴 확률이 더 높게 나타났어요. 심한 다이어트를 한 임신부의 아기들은 공통적으로 'RXRα'라는 유전자가 잘 작동하지 않아 비만에 더 쉽게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 몸에 해를 끼치는 흡연도 우리의 유전자 작동 방식을 바꿔버립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흡연을 많이 하는 사람은 'CYP1A2'라는 유전자가 활발히 작동하는데, 이 유전자는 커피에 많이 들어 있는 카페인을 분해하는 활동을 해요. 그래서 흡연자들이 비흡연자보다 카페인을 더 잘 분해해 커피를 더 많이 마시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더불어 흡연을 하면 유전자 작동 방식이 변해 당뇨나 암에 더 쉽게 걸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아주 많아요. 담배를 많이 피울수록 이런 경향이 더 강해진다고 하니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되겠죠?
조선일보
주변 환경이나 습관·경험 따라 유전자 작동 방식도 달라져
흡연자는 카페인 분해 잘되지만 당뇨·암 부르는 유전자 작동 늘어
과학자들은 DNA를 '우리 몸의 설계도'라고 부릅니다. DNA는 아데닌·구아닌·시토신·티민 이렇게 네 종류의 핵산을 합쳐서 부르는 것으로 우리 몸속에 30억개의 DNA가 순서대로 들어 있어요. DNA를 이루는 유전자들은 단백질 형태로 우리 몸을 이루고 생명 활동을 합니다. 사람에 따라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기도 하고, 특정한 유전자가 활발히 작동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해요. 이에 따라서 우리의 외모나 성격이 어느 정도 결정되고, 특정한 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공상과학 영화처럼 우리는 DNA가 정해놓은 대로만 살아가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DNA도 자신의 경험과 습관, 주변 환경에 따라 작동 방식이 달라지거든요. 유전자가 경험과 습관, 환경에 따라 작동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형성된 유전자 작동 방식이 후대에 유전될 수도 있고요.
과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후성 유전(後成 遺傳)'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을 'DNA의 꼭두각시'라고 부를 수 없는 건 인간이 후성 유전을 통해 자신의 DNA를 다르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공부를 열심히 하는 DNA가 있을까
물론 DNA의 힘이 강력한 건 사실입니다. 특정 유전자가 큰 병을 유발하기도 하거든요. 대표적인 예가 'BRCA'라는 돌연변이 유전자입니다. 일반적인 여성이 평생 유방암에 걸릴 확률은 7% 정도지만, 'BRCA' 유전자를 가진 여성은 평생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50%까지 늘어납니다. 돌연변이 유전자 하나가 목숨을 앗아갈 위험을 크게 높이는 것이죠. 유방암뿐 아니라 당뇨, 자폐증, 뇌 질환 등 거의 모든 질병이 DNA 돌연변이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요.
하지만 반대 경우도 있습니다. 쌍둥이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죠. 일란성쌍둥이는 DNA가 똑같지만 성격이나 외모가 조금씩 다릅니다. 반드시 같은 병에 걸리거나 같은 직업을 갖는 것도 아니고요.
- ▲ /그래픽=안병현
◇나의 경험과 습관이 DNA에 기록돼
우리가 가진 DNA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DNA가 반드시 물려준 대로 작동하는 건 아니에요. 내가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즐겨 먹고 어떤 행동을 즐기는지가 고스란히 DNA에 저장되어 우리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답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대기근이에요. 패전에 몰린 나치 독일은 자신들이 점령하고 있던 네덜란드 서부 지역에 식량 공급을 차단해버렸어요. 이로 인해 이 지역에 살던 주민들은 굶주림으로 심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한 해 동안 약 1만8000명이 죽었고, 이 지역 주민 대부분이 영양실조를 앓을 정도로 끔찍한 사건이었지요.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이 지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유독 저체중이거나 조현병, 당뇨 등을 앓는 비율이 월등히 높았어요. 과학자들은 "배 속 태아일 때 영양 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특정 유전자가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배 속 태아들은 부모에 따라 제각각 다른 DNA를 갖고 있지만,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면 유전자 작동 방식에 영향을 받아 비슷한 질병을 앓을 수 있다는 것이죠. DNA보다 경험이 우리에게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비슷한 사례로 영국 사우샘프턴대 연구팀이 임신 초기 심한 다이어트를 한 임신부가 낳은 아이를 조사해 보니 일반적인 임신부가 낳은 아이들에 비해 훗날 비만에 걸릴 확률이 더 높게 나타났어요. 심한 다이어트를 한 임신부의 아기들은 공통적으로 'RXRα'라는 유전자가 잘 작동하지 않아 비만에 더 쉽게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 몸에 해를 끼치는 흡연도 우리의 유전자 작동 방식을 바꿔버립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흡연을 많이 하는 사람은 'CYP1A2'라는 유전자가 활발히 작동하는데, 이 유전자는 커피에 많이 들어 있는 카페인을 분해하는 활동을 해요. 그래서 흡연자들이 비흡연자보다 카페인을 더 잘 분해해 커피를 더 많이 마시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더불어 흡연을 하면 유전자 작동 방식이 변해 당뇨나 암에 더 쉽게 걸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아주 많아요. 담배를 많이 피울수록 이런 경향이 더 강해진다고 하니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되겠죠?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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