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안국동 풍문여고. 28일 오전 10시부터 담임교사가 학생들에게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를 나눠줬다. 한 명 한 명 교단으로 나와 성적표를 손에 쥘 때마다 환호와 울음소리가 복도까지 흘러나왔다.
이 학교 3학년 김모 양은 “평소에 언어영역은 늘 1등급이 나오는데 이번에는 3등급이 나왔다. 수시에 지원한 대학 중 한 곳은 최저학력기준에 아예 미달이다”라며 울상을 지었다. 그러나 “외국어 점수가 평소보다 높게 나와 정시모집에는 유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 상일여고 이모 양은 “어젯밤에 너무 긴장이 돼 따듯한 우유를 마시고 새벽 2시쯤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에 친구들과 수다를 좀 떨어 긴장이 조금 풀렸는데 선생님이 성적표를 주시는 순간 다시 몸이 마비되는 느낌이었다”고 얘기했다. 이 양은 “수리와 외국어는 예상대로, 언어는 예상보다 한 등급 더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웃었다.
수능 성적표를 받아들면서 이처럼 수험생 사이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지난해보다 시험이 대체로 어려워 가채점을 하면서 걱정했지만, 표준점수와 등급이 높게 나왔다는 수험생이 적지 않았다.
서울 강남구 휘문고의 진학상담 담당인 신종찬 교사는 “성적표가 나오기 전에는 예상보다 등급이 확 내려갈 수 있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그러나 70% 정도의 학생은 점수나 등급이 잘 나왔다는 반응”이라며 “상대적으로 자연계 학생의 성적이 들쑥날쑥한 편이어서 상담 요청이 더 많다”고 전했다.
문제가 쉬워 만점자가 많은 언어영역에서는 한두 문제 차로 등급이 확 떨어지는 바람에 수시모집에서 탈락하게 됐다며 울먹이는 수험생도 있었다.
교사들은 본격적인 진학 지도에 돌입했다. 특히 언어와 외국어영역에서 가채점 결과와 실제 등급이 달라진 학생을 상대로 수시모집의 최저학력기준 충족 여부를 확인하느라 분주했다.
이긍연 서울 용산구 용산고 교감은 “상위권은 지난해보다 확실히 변별력이 커진 만큼 한 곳 정도는 소신 지원하도록 지도할 계획”이라며 “1, 2등급을 받은 공부 잘하는 학생도 변별력이 생겼다는 데 대한 자신감 때문인지 지난해완 달리 소신 지원하려는 경향이 커졌다”고 말했다.
입시학원가에서는 올해 중상위권을 중심으로 재수 기피 현상이 아주 심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내년에 수능이 선택형으로 바뀐다고 해도 공부 방식은 달라질 필요가 없는데 재수를 하기 싫어 하향 지원을 생각하는 학생이 많다는 얘기.
입시 전문가 A 씨는 “수능 변화를 앞두고 재수를 포기하거나, 일찌감치 수능 사교육을 마구 받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사교육에 몸담은 입장에서 손해가 되는 얘기지만, 선택형 수능이라고 해서 사교육에 더 의존할 필요가 없다”며 “현역(재학생)이라면 이런 분위기에서 상향 지원을 노릴 만하다”고 말했다.
서울대 수시모집에 지원했다는 용산고 최상위권인 학생 A 군은 “수시 최저기준은 넘겨서 안도했다. 수시에서 떨어져 정시에 원서를 내더라도 재수를 겁내지 않고 소신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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