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30일 일요일

세상에 없는 21번째 아미노산 탄생

유전자 코드 재작성 생명체(GRO) 연구의 개가

합성 생물학의 새 지평 … 새로운 의약품·접착제 개발에 응용



‘생명체의 지놈 전체를 바꾸다’ ‘재프로그램된 박테리아, 생명의 새로운 언어를 말하다’ ‘플러그 앤드 플레이 합성 생물학’ ‘유전자 코드의 대규모 편집이 가능해지다’ ‘박테리아의 유전자 코드를 다시 쓰다’….

10월 18일 미국 예일대 생물학과와 하버드대 의과대학원의 공동 연구팀이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논문은 외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대장균의 유전자에서 특정 코드를 조작해 자연계에 없던 신종 아미노산을 만들어내고 이것을 단백질에 편입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유전자 코드 재작성 생명체(GRO, genetically recoded organism)라는 이름을 붙였다. 기존의 ‘유전자 조작 생명체(GMO)’와 다른 점은 코드의 의미 자체를 다른 것으로 바꿔버렸다는 데 있다.

생명체를 구성하는 수천 종의 단백질은 20종의 아미노산이 3차원으로 접혀서 만들어진다. 아미노산은 세포 내의 리보솜이란 공장에서 생산된다. 리보솜은 유전자를 이루는 4개의 코드 중 3개가 이어진 ‘코돈’이라는 단어를 해독해서 아미노산을 생산하거나 생산을 중단한다. 코돈은 64종이 있다. 이 중 61종은 아미노산으로, 나머지 3종(UAG·UAA·UGA)은 모두 ‘스톱, 아미노산 생산 작업 끝!’으로 해독된다.

미 예일대·하버드대 공동 연구

리보솜은 코돈을 해독해 아미노산 사슬을 이어 붙이는 작업을 진행하다가 스톱 코돈을 만나면 작업을 끝낸다. 이때 ‘폴리펩티드 사슬 방출인자’라는 이름의 단백질이 결합되면서 기존의 아미노산 사슬은 방출된다. 방출된 아미노산 사슬은 접히고 가공되는 과정을 거쳐 단백질로 만들어진다.

연구팀은 바이러스 효소를 이용해 단일 가닥 DNA 조각에 조작을 가해 이를 읽어 들인 RNA의 기존 UAG 코돈을 UAA로 교체했다. 첫 단계에서 모든 스톱 코돈이 바뀌지는 않지만 각기 다른 변화가 초래된 계통들을 합쳐 코드를 완전히 새롭게 고친 잡종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UAG 코돈 자체는 기능할 수 없게 세포를 조작했다. 그 뒤 운반RNA와 관련 효소를 조작해 이 코돈이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던 21번째 아미노산을 생산하게 만들었다.

이 같은 아미노산은 과거에도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바 있지만 살아있는 생명체는 이를 처리하지 못하며 단백질에 통합되지도 못한다. 물론 박테리아나 초파리의 유전자를 조작해 자연계에 없는 아미노산이 포함된 단백질을 만들게 한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합성 리보솜을 세포 내에 삽입해야 했고, 그 기능은 기존 리보솜과 경쟁을 벌여야 했다.

연구팀은 UAG를 유전자 내의 특정 위치에 삽입해 신종 아미노산을 마음대로 단백질에 통합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21번째 아미노산을 경제적이고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장균은 많은 바이러스에 저항성을 갖는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2종류의 바이러스에 감염시킨 결과 한 종류의 바이러스는 복제에 성공했지만 나머지 한 종류는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러스는 숙주세포의 DNA에 자신의 유전자를 끼워 넣어 자신의 단백질을 생산하는 데, 이제 UAG 코돈이 들어있는 바이러스 유전자는 모두 판독불능이 되어버린 탓이다. 앞으로 리코딩을 좀 더 많이 하면 이런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이것은 유용한 특성이다. 박테리아가 생산하는 단백질을 이용해 바이오 연료나 페니실린을 만드는 산업은 오염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에 오염되는 경우 박테리아가 들어있는 통 전체를 내다 버려야 한다.

새로운 컴퓨터 운영체제 만든 거나 마찬가지

또한 유전코드를 조작한 대장균은 만일 야생으로 탈출한다고 해도 자연계의 대장균과 유전자를 교환할 위험이 거의 없다. 새 임무를 부여 받은 스톱 코돈은 자연 세포에서 정상 코돈으로 판독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단백질 생산이 너무 일찍 종결되는 결과가 생기게 된다. 예비 연구에 따르면 또한 유전자 코드 조작 미생물은 자신이 합쳐지게 돼있는 비자연적인 아미노산이 없이는 성장이 불가능하다.

이번에 개발된 유전자 코드 의미전환 방식은 미국 크레이그 벤터 연구소의 접근법에 대한 대안을 제공한다. 벤터는 세포에 새로운 속성을 부여하기 위해 완전히 백지상태에서 출발해 새로운 유전체를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어렵고 노력이 많이 드는 것이 단점이다. 지놈 전체를 합성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오류가 있어도 세포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현존 지놈의 코드를 재설정해 빠르고 효과적으로 생물학적 다양성을 증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번 연구는 합성 생물학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예컨대 신종 아미노산을 추가하면 단백질에 새로운 속성을 부여할 수 있다. 금속에 달라붙는 능력은 새로운 접착제로 이어진다. 혹은 장에서 소화되지 않는 효소, 특정 분자가 존재할 때만 활성화되는 효소를 만들 수도 있다. 이는 새로운 의약품을 의미한다.

DNA와 아미노산의 개념을 변화시킬 수 있는 세포를 가지게 되면 과학의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창시하는 것이 된다. 연구팀은 “코돈의 기능은 중복이 많기 때문에 상당수의 코돈에서 기존 기능을 제거한 뒤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대장균의 뉴클레오티드 450만개 중에서 321개를 교체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생명체를 다루는 화학의 지평을 넓히는 큰 업적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한 개 만든 게 아니라 MS 윈도 같은 새로운 컴퓨터 운영체제(OS)를 만든 것과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RNA(Ribo Nucleic Acid) 핵산의 일종으로, 유전자 본체인 DNA가 가진 유전정보에 따라 필요한 단백질을 합성할 때 직접 작용하는 고분자 화합물이다. 리보오스·염기·인산의 세 가지 성분으로 돼 있다. DNA의 염기인 티민(T) 대신 우라실(U)을 가진다. RNA는 DNA로부터 만들어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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