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2일 아리안 5호 로켓에 실려 발사된 로제타호는 지구와 태양 간 거리의 42배가 넘는 64억㎞를 비행한 끝에 지난 8월 혜성 궤도에 진입했다. 그 사이 중력에 의한 추진력을 얻기 위해 네 번이나 지구와 화성을 지나쳐 비행했다. 이 혜성은 1969년 첫 발견자인 우크라이나 과학자 클림 추류모프와 스베틀라나 게라시멘코의 이름을 땄다.
- ▲ 로제타호에서 분리된 탐사로봇 필래가 13일 혜성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에 안착하자, 독일 다름슈타트의 유럽우주국 통제센터에서 과학자들이 얼싸안으며 환호하고 있다. /AP 뉴시스
혜성 탐사는 태양계와 생명의 기원을 찾을 절호의 기회가 될 전망이다. 과학자들은 혜성이 46억년 전 태양계 탄생 당시 생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혜성이 '태양계의 타임캡슐'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지구와 충돌하며 물과 함께 생명의 기원이 된 아미노산을 전해준 것으로 추정한다. 자연에서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이 이번 탐사에서 발견될 경우 혜성이 지구 생명의 기원이라는 가설이 입증될 수 있다. 필래는 로제타에서 분리될 때부터 극도의 정밀도가 필요했다. 분리 시 1인치(2.5㎝)의 오차만 발생해도 착륙 지점이 폭 4㎞의 혜성에서 목표로부터 250m나 벗어나기 때문이다.
첫 만남은 순탄치 않았다. ESA는 "필래가 13일 0시 33분부터 두 시간 동안 두 번 튕기고 세 번 만에 착륙했다"고 13일 밝혔다.
혜성은 중력이 지구의 10만분의 1에 불과하다. 착륙할 때 탐사로봇을 잡아당기는 힘이 거의 없는 셈이다. 게다가 혜성에서는 예고 없이 가스가 뿜어져 나온다. 유럽 과학자들은 필래의 착륙을 돕기 위해 몇 가지 장치를 만들었다. 핵심은 동체를 지면에 고정할 2대의 작살. 하지만 작살이 발사되면 그 충격으로 동체가 다시 튕겨 나갈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동체 위에 역추진 로켓을 달았다. 즉 혜성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눌러 주는 장치다.
그런데 혜성 착륙 하루 전 역추진 로켓에 이상이 발견됐다. 착륙 당시 작살도 발사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남은 것은 세 개의 다리 끝에 있는 나사밖에 없었다. 필래의 다리는 4㎝ 깊이로 박힌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도 예상보다 얕게 박힌 것이다. 다행히 독일 다름슈타트 ESA 지상 관제센터는 착륙 둘째 날(한국 시각 13일 저녁) 필래와의 재교신에 성공했다. 필래는 자신의 다리를 찍은 사진 등을 지구로 전송했다. 관제센터의 착륙책임자 스테판 울라멕은 "작살 발사를 재시도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 ▲ 착륙 이틀째… 혜성 위에 선 탐사로봇의 다리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 혜성에 착륙한 탐사로봇 필래의 모습. 유럽우주국(ESA)이 착륙 이틀째인 13일 저녁에 공개했다. 사진에서 왼쪽 아래에 보이는 기계장치가 착륙 시 충격을 흡수한 세 다리 중 하나이고, 주변은 혜성의 지표면이다. 작은 사진은 필래를 내려 보낸 탐사선 로제타가 찍은 혜성의 모습. 원 안이 이번에 탐사로봇이 착륙한 지점이다. /ESA 제공
필래는 배터리가 작동하는 이틀 반나절 동안 중요한 임무를 거의 다 한다. 먼저 지표 아래 23㎝까지 파 들어가 혜성을 이루는 성분을 분석한다. 라디오파로 혜성 깊숙한 곳도 추적한다. 이후엔 태양전지를 펼쳐 배터리를 충전해 내년 3월까지 정보를 수집할 계획이다. 로제타호도 11대의 과학 장비로 혜성의 핵과 꼬리 등을 분석하고 각종 영상을 촬영한다.
탐사 과정에서 이미 '혜성의 노래'라는 기이한 현상도 관측됐다. 지난 8월 로제타가 혜성에 접근하자 대기에서 전기를 띤 입자들이 진동하면서 극저주파의 소리가 났다. 이를 1만배 증폭해 확인하니 마치 휘파람을 부는 듯한 소리였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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