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
빌
허.
著:
붙일
착.
取:
취할
취.
敗:
깨뜨릴
패)
헛수를
두어 패배를 당한다는 뜻.
내실을
기하지 않고 외양 쫓다 패배한다는 의미.
[출전]《이황(李滉)
퇴계문집
9권)》
1566년
퇴계 선생이 박순(朴淳)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중
한 대목이 이렇다.
"홀로
바둑 두는 자를 못 보았소?
한
수만 잘못 두면 한 판 전체를 망치고 말지요.
(중략)
내가
늘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기묘년에
영수로 있던 사람이 도를 배워 미처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급작스레 큰 이름을 얻자 갑자기 경제(經濟)로
자임하였지요.
임금께서
그 명성을 좋아하고 나무람을 후하게 했으니,
이것이
이미 헛수를 두어 패배를
취한(虛著取敗·허착취패)
길이었던
셈입니다.
게다가
신진 중에 일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 어지러이 부추기는 통에 실패 형세를 재촉하고 말았지요."
[첨가] .....獨不見博者乎。一手虛著。全局致敗。今欲奬進虛名。動一時觀聽。而不得實用。正是一虛著手。寧可不虞其敗局乎。況近世士林之禍。率因虛著而作。覆車在前。故踵後者尤難進步。病人聾耳。猶聞浮囂之徒動以小己卯目之。此乃載禍相餉之言。滉不幸而當虛著之局。及至於敗。未知諸公其得晏然而已乎。愚意嘗謂己卯領袖人。學道未成而暴得大名。遽以經濟自任。聖主好其名而厚其責。此已是虛著取敗之道。又多有新進喜事之人。紛紜鼓作。以促其敗勢。使讒者得售其術。恐此當爲踵後者之至戒。不可忽也。退溪先生文集卷之九
바둑에서
한 수의 실착은 치명적이다.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려 했다가 오히려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괜찮겠지
방심하다가 대마를 죽인다.
일파만파로
걷잡을 수 없게 되어 자멸한다.
편지에서
퇴계가 조광조(趙光祖己= 卯領袖人)를
평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그는
아직 학문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레 큰 명성을 얻었다.
게다가
의욕만 앞선 신진들이 공연한 일을 만들고 모험을 부추기는 통에 결국 일이 참혹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실착
한 번이 치명적 패배를 부른다.
잘나갈
때 방심하지 말고 삼가고 또 삼가는 것이 옳다.
1795년
금정찰방으로 쫓겨나 있던 다산이 이 편지를 읽고 이런 소감을 덧붙였다.
"이
한 대목이야말로 바로 선생의 평생 출처가 말미암은 바의 지점이다."
잘나간다고
교만 떨지 않고 더욱 삼간다.
역경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사람들은
반대로 한다.
임금이
미워하는데 아첨으로 용납되려 하고,
조정이
참소하는데 논박하여 나아가려 하며,
백성의
원망도 아랑곳하지 않고 임금을 속여 지위를 굳히려 든다.
그러다가
권세가 떠나고 운수가 다하면 허물과 재앙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난다.
그리하여
일곱 자 몸뚱이를 망치고 만다.
'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에
나온다.
[첨가] 참판
박순(朴淳)에게
답하는 편지에 ‘어찌
바둑 두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한
수를 헛놓으면 온 판을 실패하게 됩니다.
기묘
영수(己卯領袖
조광조(趙光組))가
도(道)를
배워 완성하기도 전에 갑자기 큰 명성을 얻자,
성급히
경세제민(經世濟民)을
자임하였습니다.’ 하였다.
이
한 문단은 그야말로 선생이 평생 동안 이에 말미암아 출처를 그리하였던 대목이다.
당시
군자(君子)가
지지를 얻고 뭇 선인(善人)이
나아감이 마치 기러기털이 순풍을 만난 듯하여 막을 수 없었다.
국조(國朝)에
선인(善人)이
성대히 진출하여 마침내 패망함이 없는 상황으로는 이때만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선생이
놀라고 두려워하고 삼감이 이처럼 심각하여 앞 사람의 실패한 일을 거울로 삼아 항상 경계하였으니,
군자가
명철(明哲)하여
몸을 보전한 것이 이러함이 있었다.
선생이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組)의
호)의
행장(行狀)을
지으면서 ‘세상일을
담당한 것 때문에 실패하게 되었다.’
하여,
탄식하고
애석히 여기면서 세 번이나 자기 의사를 밝히었다.
아
!
선생이
바야흐로 정암(靜庵)을
경계로 삼은 것이다.
비록
성상(聖上)이
옆 자리를 비워놓고 기다리고,
공경(公卿)이
홀(笏)을
들고 바라고,
도성
백성들이 이마에 손을 얹고 맞이한들 선생이 어찌 오래 머무르고 지체하여,
성상의
뜻이 혹시라도 싫어하고 소인들이 그 틈을 타서 여지없이 패망하는 지경에 이르도록 하려 하였겠는가.
곧
선생은 위대한 덕을 깊이 숨겨 흔들 수 없을 정도로 확고하였으니,
다만
자신만을 편안하게 하였을 뿐 아니라,
실로
당시 조정에 있는 선류(善類)를
널리 구제하려 한 것이었다.
그런데
제공(諸公)들의
소견이 이에 미치지 못하여,
초빙(招聘)하자는
청이 날마다 왕에게 진달되고,
책면(責勉
퇴계에게
벼슬에 나서라고 권하는 것)하는
편지가 시골에 번갈아가며 날아들었으니,
선생이
어찌 생각을 바꾸어 나서려 하였겠는가.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22권
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
잘나가다가
단 한 번 패착으로 판을 망치고 마는 사람이 많다.
감당하지
못할 이름과 지위는 재앙에 더 가깝다.
밖으로
내보이기보다 안으로 감추는 일이 더 급하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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