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수학B형은 만점이어야 1등급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례 없이 수학과 영어가 모두 쉽게 출제되면서 14일
학교와 학원 등에서 가채점 결과를 비교한 수험생들은 변별력 없는 ‘물수능’에 불만을 터뜨렸다. 특히 자연계 수험생들은 “당장 수시모집의
최저학력기준을 맞추기도 어렵게 됐다”며 “수능을 너무 쉽게 내면 수험생들은 오히려 힘들다”고 성토했다.
○ 수학B형 만점자만
1등급
입시업체들이 추정한 영역별 등급 구분점수를 종합하면 수학B의 1등급 구분점수는 100점, 2등급 구분점수는
95∼97점이다. 지난해 1등급이 91점, 2등급이 85점인 것과 비교하면 등급 컷이 비정상적으로 치솟은 것이다. 수학 1등급이라는 서울 중앙고
지윤구 군(18)은 “수학 B형이 쉽다고 느꼈고 다 맞았기는 했지만 1등급 구분점수가 만점이 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영어의 1등급 구분점수가 98점이기 때문에 3점짜리 문항을 하나 이상 틀리면 바로 2등급으로 내려앉는다. 자연계 수험생들이 주로
치르는 국어A 역시 1등급 구분점수가 96점 또는 97점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다 맞거나 한 문제를 틀린 경우에만 1등급을 장담할 수 있는
셈이다. 이를 종합하면 자연계 수험생들은 국영수를 합쳐 두세 문제만 틀려야 최상위권 대학의 수시 최저학력기준을 안정적으로 충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의대 진학을 위해 재수를 한 김도환 씨(19)는 “국어 2등급, 수학 1등급, 영어 2등급이 나와서 정시로는 의대에 갈
수 없는 성적이라 수시에 목숨을 걸고 있다”면서 “수시에서 고려대 경희대 성균관대 의대에 지원해 놓은 상태인데 수능이 너무 쉽게 출제돼
최저학력기준을 못 맞출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배재고 3학년 이후승 군(18)은 “국영수 모두 1등급을 받을 정도로 원점수가 모의고사보다
높게 나왔지만 등급 컷 역시 높아서 당황했다”면서 “친구들도 다들 어느 정도 잘 봐야 잘 본 건지 모르겠다며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 교사들 “입시 지도 막막해”
학생들의 가채점 결과를 취합한 고3 교사들은 변별력이 떨어지는 수능
때문에 진학 지도가 너무 힘들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잠실여고의 안연근 교사는 “자연계는 올해 의대 모집이 늘어나 상위권
아이들이 분산되는 여파로 합격선은 지난해보다 내려갈 것 같은데 수능이 너무 쉬워서 감을 잡을 수 없다”면서 “인문계는 국어가 변별력이 있는 데다
입시 판도가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반면 자연계는 진학 지도가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성권 한국교육정책교사연대
대표(서울 대진고)는 “국어나 수학 난이도가 모의평가와 너무 다르게 나와서 아이들이 ‘이럴 거면 6월, 9월 모의평가를 왜 보느냐’고 화를
내더라”면서 “장기적으로 수능을 쉽게 하겠다는 기조에는 찬성하지만 역대 최악의 수준으로 변별력이 떨어지는 올해 수능에 대해서는 주변의 진학지도
교사가 모두 난감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험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인터넷 게시판에는 지원 전략을 짤 엄두가 안 난다는 불만이
폭주했다. 수험생들은 “수능을 몇 년째 출제하는데 아직도 난이도 조절을 못하느냐” “수능이 너무 쉬우면 등급 때문에 망한다는 걸 모르느냐”
“정시를 염두에 두고 재수했는데 삼수를 하게 생겼다”는 등의 원성을 쏟아냈다.
한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올해 수능에서 전국적으로
부정행위 190여 건이 적발됐다고 14일 밝혔다. 휴대전화 등 반입금지 물품 소지, 4교시 응시방법 위반 등이 가장 많이 적발됐다. 평가원에
신고된 부정행위 사례들은 관할 시도교육청이 조사한 뒤 부정행위 심의위원회를 열어 제재 수위를 확정할
계획이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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