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7일 토요일

2000년 동안 서구 문명 지배한 '유클리드 기하학'

 고대 그리스 수학자 에우클레이데스(영어로 유클리드)가 저서 '원론'에서 소개한 수학체계인 ‘유클리드 기하학’은 2000년 동안 서구 문명을 지배했다. 그러나 19세기 초 굳게 믿었던 유클리드 기하학 체계의 토대 중 하나를 의심하자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등장했다. 인문학과 수학의 시선에서 두 기하학을 살펴본다.


○ 첫 번째 질문. 기하학에서 '원론'은 왜 중요한가.

 

Q(수학자). 초중고에서 배우는 기하인 유클리드 기하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원론'은 어떤 책인가요.

 

A(인문학자).  "'안녕원론'은 기원전 3세기에 고대 그리스 (수학자) 에우클레이데스가 그 당시까지 알려져 있던 수학적 지식을 집대성한 기하학 책이에요. 평면기하 입체기하 수론 등 다양한 내용을 총 13권에 담았어요.

 



이 작품의 그리스어 원제목은 ‘Στοιχεῖα(스토이케이아)’입니다. 이를 그대로 번역하면 요소들이라는 뜻이에요. 다시 말하자면 기하학을 계속 쌓아 나가기 위한 주춧돌 즉 지식의 핵심 요소를 모았다는 것이지요.

 

에우클레이데스가 많은 명제를 한데 모으려고 했던 배경에는 그가 살았던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학자가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에서 의학 지리학 문학 등 각 분야의 지식을 수집해서 목록화하는 작업을 했지요. 에우클레이데스가 '원론'을 쓴 의도가 담긴 서문은 남아있진 않지만 기하학도 당시 지식의 체계화 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어요."

 

Q (수학자). '원론'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책으로 평가받게 된 이유는 뭔가요.

 

A(인문학자). "두 가지 면에서 '원론'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수 있어요. 첫째는 기하학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대화편들에 남아있듯이 고대 그리스에서 기하학은 궁극의 지적 훈련인 철학을 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사유하고 성찰하기 위한 가장 필수적 훈련으로 여겨져 왔어요. '원론'은 그런 훈련을 하기 위한 ‘교과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는 '원론'의 탁월한 구성 체계 때문인데요.  '원론'은 연역적 체계로 이뤄진 책입니다. 정의와 공준에서 시작해서 이전 것에서부터 다음 것을 증명해 나가면서 총 465개의 명제를 연역적으로 꿰어낸 논리적 아름다움이 있어요."

 

Q(수학자). 에우클레이데스가 활동했을 때로부터 무려 2000년이 넘도록 서구 문명에서는 계속해서 '원론'을 공부했나요.

 

A(인문학자). " 네 맞아요. 에우클레이데스가 기원전 3세기쯤 '원론'을 펴낸 이후 서구 전역에 전승됩니다. 이집트에서 발굴된 기원후 1세기경 파피루스에도 학생들이 '원론'을 공부한 기록이 남아있어요. 9세기에는 이슬람의 학자들에 의해서 아랍어로 번역되었다가 12세기 스페인 톨레도에서 라틴어로 번역됩니다. 1482년 최초의 '원론' 인쇄본이 나온 뒤 이 책이 급격히 퍼지기 시작하면서 16세기에는 여러 개정판과 영어 이탈리아어 등의 번역본도 나오지요.

 

유럽에서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인 프랑스 파리대나 영국 옥스포드대의 학생은 졸업을 위해서 '원론'을 반드시 공부했어야 할 만큼 서구에서는 '원론'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강조했습니다."

 

 

○ 두 번째 질문.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Q(인문학자).  '원론'에서 시작한 유클리드 기하학의 지위가 영원히 견고할 것 같았는데 19세기 초 균열이 일어나요. 유클리드 기하학의 토대를 이루는 5개의 공준 중 ‘평행선 공준’ 때문인데요 어떤 내용인가요.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준. 수학동아 제공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준. 수학동아 제공

A(수학자).  "먼저 공준이 무엇인지부터 이야기해볼게요. 바둑을 둘 때 기본적인 규칙이 존재하지요. 바둑판의 격자점 위에 검은 돌과 흰 돌을 하나씩 번갈아 가며 올려야 해요.

 

수학에서도 문제를 풀기 위한 규칙을 먼저 정해요 이 규칙을 ‘공준’이라고 부르고 공준이 정해지면 그 안에서 자유롭게 문제를 풀 수 있지요. '원론'을 보면 기하학에서 지켜야 하는 공준이 5개 있어요. 


5번째 공준을 다르게 표현하면 ‘임의의 직선이 있고 그 직선 밖에 점이 있을 때 이 점을 지나며 원래의 직선과 평행한 직선은 단 하나만 존재한다’는 거예요. 이를 흔히 평행선 공준이라고 부르지요."

 

Q(인문학자).  평행선 공준이 왜 문제가 됐던 건가요.


A(수학자).  "수학자들은 증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약속인 공준을 최소한으로 사용해 유클리드 기하학 체계를 구축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나머지 4개의 공준을 이용해 평행선 공준을 증명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나 에우클레이데스가 처음 이 공준을 소개하고 2000년이 지나도록 평행선 공준 은 증명되지 않았어요.

 

19세기 수학자들은 평행선 공준을 그대로 증명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명제를 거짓이라고 가정할 때 생기는 모순을 보여 역으로 명제를 증명하는 ‘귀류법’을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평행선 공준을 거짓이라고 생각해도 전혀 기하학에 모순이 생기지 않았어요. 당시 수학자들은 평행선 공준을 거짓으로 하는 새로운 기하학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고 이것이 바로 ‘비유클리드 기하학’입니다."

 

Q(인문학자).  그렇게 나온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어떻게 기하학을 발전시켰나요.

 

A(수학자).  "간단한 예시를 들어 유클리드 기하학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비교해볼게요.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라는 명제가 있어요 우리는 이 명제를 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요. 이를 증명할 때 가장 먼저 삼각형의 한 변을 기준으로 맞은 편 꼭짓점을 지나는 평행선을 그어요. 즉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가 되기 위해서는 평행선 공준이 필요합니다. 만약 내각의 합이 180가 아니라면 평행선 공준도 거짓이 되지요.

 

그런데 우리가 사는 지구를 떠올려 보세요. 지구는 구면이잖아요. 지구 위 북극에서 한 점을 잡고 구면을 따라 90의 각도로 선을 2개 내리고 적도 위에 선을 그어 삼각형을 만들면 이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가 아니라 270가 됩니다. 이런 기하학 체계를 ‘구면기하학’ 혹은 ‘타원기하학’이라고 하는데요. 평행선 공준의 표현을 빌리자면 타원 위에서 선 밖의 한 점을 지나 그 직선에 평행한 직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선 밖의 한 점을 지나 그 직선에 평행한 직선이 무한히 많이 존재하는 기하학도 있어요. 이를 ‘쌍곡기하학’이라고 하는데요. 말 안장 혹은 감자칩 모양의 공간을 떠올리면 됩니다 이 공간 위에서 삼각형을 그리면 이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보다 작지요.

 

초중고생 때는 유클리드 기하학을 기본에 둔 기하학을 배우기 때문에 유클리드 기하학의 원리가 자명해보일 거예요. 하지만 실제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곡면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유클리드 기하학이 아니라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세상을 더 잘 설명해요. 그러므로 평행선 공준을 증명하기 위해 발상을 전환한 일이 우리의 세계를 더 잘 표현하게 된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 냈지요."
 

비유클리드 기하학.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비유클리드 기하학.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인문학자 이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왼쪽), 수학자 이승재 서울대 박사후연구원 (오른쪽). 수학동아 제공
인문학자 이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왼쪽), 수학자 이승재 서울대 박사후연구원 (오른쪽). 수학동아 제공

 

○ 세 번째 질문. 기하학의 다양함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Q(인문학자).  지금까지 유클리드 기하학이 왜 중요하게 여겨졌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클리드 기하학이 아닌 기하학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이야기해 왔는데요. 유클리드 기하학이 서구 문명을 지배한 것은 에우클레이데스 덕분만은 아니에요.

 

2000년간 '원론'에 여러 사람의 생각을 보태서 더 멋진 유클리드 기하학 체계를 만들어 왔습니다. '원론'을 중요하게 여겼던 여러 서구의 지식인이 유클리드 기하학을 더 견고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지요.

 

다만 19세기 초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등장은 학문에서 가져야 할 시사점을 주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원론'은 기하학의 훌륭한 교과서 역할을 했지만 어떤 의미에선 마치 전제 군주처럼 2000년 동안 기하학적 공간에 대한 사고를 얽매고 있었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비록 우리가 유클리드 기하학이 왜 서구 문명을 지배해왔느냐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그토록 오래 지배했던 기하학이 어떻게 무너졌느냐가 더 생각할 지점이 많지요.

 

A(수학자).  "교수님 말씀처럼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등장은 기존 기하학 체계를 무너뜨렸다고 볼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기하학의 범위를 넓혔다고도 볼 수 있는데요.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수학이라는 학문적 관점에서도 큰 의미를 갖고 있어요.

 

평행선 공준처럼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겼던 공준을 바꿔도 전혀 모순이 발생하지 않는 새로운 기하학을 세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일부 수학자는 공준을 쌓아 올려 모든 명제를 증명할 수 있는 완전무결한 수학체계를 만들고자 했어요. 독일 수학자 고틀로프 프레게(1848~1925), 다비트 힐베르트(1862~1943), 영국 수학자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이 대표적이지요.

 

끝내 미국 수학자 쿠르트 괴델(1906~1978)에 의해 그 시도는 불가능하다고 판별이 났어요. 모순 없는 체계에는 증명하지 못하는 명제가 있다는 거지요. 이는 수학이 계속해서 새롭게 진화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해요. 그렇게 보면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인류 지성사의 발전을 볼 수 있었던 한 단면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Q(인문학자).  비유클리드 기하학으로 수학이 어떻게 지적인 도약을 했는가를 잘 요약해주신 것 같아요. 그런데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수학의 발전뿐 아니라 과학의 발전에도 엄청나게 기여했잖아요. 그 부분도 짚어주세요.

 

A(수학자).  "수학의 발전은 과학 특히 물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데요. 뉴턴의 고전 역학은 유클리드 기하학에 기반해 이뤄져 있어요. 하지만 현대 물리학의 핵심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필요해요.

 

대표적인 예로 길을 찾을 때 쓰는 GPS가 있어요. GPS는 지구 밖에 있는 인공위성에서 신호를 주고받아서 위치를 추적해요. 이 인공위성의 시간을 보정하기 위해서는 상대성 이론이 필요하고 그게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통해서 계산이 이뤄지지요. 이런 식으로 수학의 발전이 물리학의 발전을 이루고 결국 기술의 발전까지 이뤄져서 현대 사회를 이루는 근간이 된다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수학동아 6월

실연으로 자살하려던 이를 구한 수학 문제 358년 동안 누구도 풀지 못했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어릴 적 수학학원 좀 다녀본 경험이 있다면 반드시 들어봤을 만한 이름이 있다. 바로 피에르 드 페르마(1601~1665)다. 피타고라스, 유클리드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수학자지만 사실은 그가 프랑스의 법대를 졸업한 변호사임을 모르는 사람이 꽤 많다. 그는 수학풀이를 취미로 즐겼을 뿐이다. 



고대 그리스 때 디오판토스라는 수학자가 있었다. 그 시절 수의 계산이란 노예처럼 천한 신분의 사람이 하는 일이었기에 교양인이라면 주로 도형이나 공간을 다루는 기하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디오판토스는 숫자 대신 문자를 써서 방정식을 계산하는 대수학에 몰두했다. 훗날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게 된다. 

‘신의 축복으로 태어난 그는 인생의 6분의 1을 소년으로 보냈다. 그리고 인생의 12분의 1이 지난 뒤에는 얼굴에 수염이 자라기 시작했고, 다시 7분의 1이 지난 뒤에는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했다. 결혼 후 5년 만에 귀한 아들을 얻었지만, 가엾은 아들은 아버지의 반밖에 살지 못했다. 깊은 슬픔에 빠진 그는 4년간 정수론에 몰입하다 일생을 마쳤다.’ 

맞다. 이건 방정식이다. 사망 당시 나이를 미지수로 두고 계산해보면 그 결과는 84세가 나온다.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묘비에 방정식 문제를 써둘까 생각하겠지만 그의 이런 기행 덕에 적어도 그가 몇 살까지 살았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너무 오래전 기록이라 출생이나 사망 시기에 대한 단서가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디오판토스의 ‘산술’ 여백에 적힌 문제

피에르 드 페르마. [위키피디아]

피에르 드 페르마. [위키피디아]

그는 수학 문제에 처음으로 문자를 도입했으며 덕분에 복잡한 수식은 훨씬 간단해졌다. 그의 저서 가운데 ‘산술’이라는 유명한 책이 있는데, 오늘의 주인공 페르마가 늘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다 여백에 자신이 증명해냈다고 밝힌 문제 중 하나가 바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다. 증명은 했지만 증명 방식은 여백이 모자라 적지 않는다는 글은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했지만, 실제로 페르마는 항상 여백에 뭔가를 적었기 때문에 아마 여백의 부족함을 탓하던 그의 푸념 섞인 낙서가 단순히 허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평소 ‘사람낚시’를 좋아했던 그는 다른 수학자에게 너도 한번 해보라는 식으로 수학 문제를 남겼다. 정수론의 기본 정리 가운데 하나인 ‘페르마의 소정리’도 그에 속한다. 간단히 말해 어떤 특별한 규칙을 갖는 큰 수를 나눈 나머지가 무조건 1이 된다는 것인데, 페르마가 언급한 문제의 증명은 1683년 독일 수학자 라이프니츠가 해냈다. 아쉽게도 정확한 증명을 제시했던 라이프니츠의 소정리가 아닌 페르마의 소정리로 불린다. 

페르마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이런 경우가 한둘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탈리아 수학자 토니첼리도 페르마에게 낚여 삼각형의 세 꼭짓점으로부터 거리의 합이 최소가 되는 점을 힘겹게 구했으나, 대다수는 이를 ‘페르마의 점’이라 칭한다. ‘페르마의 다각수 정리’는 라그랑주-가우스-코시가, ‘페르마의 두 제곱수 정리’는 스위스 수학자 오일러가 증명했지만, 역시 페르마의 이름이 붙었다. 열정적인 오일러는 50년에 걸쳐 페르마가 무작정 남긴 내용을 대부분 증명해냈으며, 덕분에 수학계에 많은 공헌을 했다. 물론 페르마만 유명해졌지만. 

독일 수학자 레오폴트 크로네커는 이런 말을 남겼다. ‘수학자들의 진정한 천직은 시인이다. 단, 자유롭게 만들고 나면 나중에 엄밀히 증명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숙명이다.’ 숙명을 뒤엎었던 낚시왕 페르마 덕에 뒷수습하던 수학자들만 죽어났다. 

수학적 정리를 직관적으로 찾아내는 것 역시 엄청난 업적이지만 증명은 아예 다른 영역이라 할 정도로 오래 걸리고 힘들다. 게다가 수학을 취미 삼아 한 변호사가 던진 떡밥이라 자존심도 상하지만, 막상 문제를 보면 재미있고 풀어볼 만해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수학자들을 갈아 넣어(?) 해결해나갔는데, 그중 유일하게 증명되지 않고 남은 것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다. 페르마가 마지막에 내놓은 난제가 아니라 무려 358년 동안 버티며 마지막까지 증명되지 않았기에 그렇게 불리게 된 것이다.

기네스북에 오른 ‘가장 까다로운 수학문제’

파울 볼프스켈. [포항공대]

파울 볼프스켈. [포항공대]

‘하나의 세 제곱수는 다른 두 개의 세 제곱수의 합으로 표현될 수 없고, 네 제곱수 역시 다른 두 개의 네 제곱수의 합으로 표현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3차 이상의 거듭제곱 수를 같은 차수의 합으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경이로운 방법으로 증명했으나 여백이 충분하지 않아 여기 적을 수 없다.’ 

1637년 페르마가 36세에 메모한 내용을 글로 쓰니 복잡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아마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알고 있을 테다. 3의 제곱(9)과 4의 제곱(16)을 더하면 이건 5의 제곱(25)이다. 두 수의 각각 제곱의 합이 또 다른 수의 제곱이 된다는 것인데, 여기서 제곱을 세 제곱이나 그 이상으로 바꾼다면, 제곱과는 달리 이걸 만족하는 정수는 절대 없다는 것이다. 

식 자체가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는 것이 이 난제의 가장 큰 함정이었다. 해볼 만해 보이는데 아무리 해도 답은 안 나오니 미칠 지경이었을 것이다. 희망고문은 늘 절망으로 바뀌었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가장 악마적인 수학 난제로 불렸다. 

이제 수많은 수학자의 여정이 시작됐다. 우선 오일러, 르장드르, 베르트랑, 힐베르트 등은 특정한 지수에서 빈칸에 들어갈 수 있는 정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독창적인 방법으로 증명했다. 하지만 이건 부분적인 증명이라 아직 해결할 식은 산더미처럼 많았다. 

이 문제를 굉장히 유명하게 만든 수학자가 있었는데, 바로 독일 수학자 파울 볼프스켈이다. 짝사랑하던 여성에게 차이자 자살을 결심했던 그는 수학자답게 정확히 자정에 삶을 끝내기로 하고, 무려 자살 직전 수학 서적을 뒤지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관한 논문이었다. 그 논문에서 계산오류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려고 몰두한 사이에 시간은 자정이 훌쩍 넘어버렸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덕에 새로운 삶의 목표를 찾은 그는 이를 증명한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을 딴 볼프스켈상을 수여하고 전 재산(10만 마르크)을 상금으로 주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에 따라 1908년 제정된 이 상으로 인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대중적 명성을 얻었다. 이후 볼프스켈상 심사위원회로 셀 수 없이 많은 증명이 도착했고 쌓아둔 증명의 높이만 무려 3m에 달했다. 심지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틀린 증명이 가장 많이 발표된 정리가 됐고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수학 문제’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밀레니엄 7대 난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

앤드류 와일즈. [위키피디아]

앤드류 와일즈. [위키피디아]

1955년 일본 수학자 다니야마와 절친 시무라는 변형해도 형태가 유지되는 보형형식을 연구하다 ‘다니야마-시무라 추측’을 발견했다. 이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보형형식과 타원곡선이 서로 연관 있다는 것이다. 어려우니 그냥 보형형식을 당근, 타원곡선을 당근케이크라고 치자. 대부분 먹기를 꺼리는 당근을 당근케이크로 바꾸면 굉장히 잘 팔린다. 즉 보형형식으로 도저히 풀리지 않는 문제를 타원곡선으로 바꾸면 비교적 쉽게 풀린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20여 년 후인 1986년 독일 수학자 게르하르트 프레이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도 타원곡선으로 바꿀 수 있다는 놀라운 주장을 펼쳤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상의 타원방정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만 밝혀내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만족하는 정수가 없다는 말이니 증명했다고 볼 수 있다. 이로써 다니야마-시무라 추측만 증명되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자동으로 증명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영국 수학자 앤드류 와일즈는 10세 무렵 하굣길에 지역 도서관에 우연히 들렀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발견하고 매료됐다. 이후 이것을 증명할 기회만 엿보며 꾸준히 수학자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의 지도교수 역시 증명이 불가능해 보이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대신, 당시까지는 전혀 관계없던 타원곡선을 전공할 것을 추천했다. 행운이란 준비가 기회를 만났을 때 나타난다. 놀랍게도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 가장 밀접한 것이 바로 그의 전공이던 타원곡선이었다. 

쉬운 일은 결코 아니었다. 당근을 당근케이크로 바꿨지만 무한개의 당근케이크가 전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야만 했다. 검토 과정에서 문제점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1년이 넘는 은둔 생활 끝에 간결한 증명을 해냈다. 그것을 논문으로 발표한 게 1995년. 비록 완벽한 증명은 아니었지만 전설적인 난제를 정복하기에는 충분했다. 볼프스켈상(상금 5만 달러) 역시 1997년 89년 만에 주인을 찾게 됐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증명으로 수학자들은 행복해졌을까. 반대로 그들은 기뻐하기는커녕 목표를 잃었다고 좌절했다. 와일즈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이후 새 문제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에 시도 때도 없이 시달리게 됐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밀레니엄 7대 난제로, 수학자들은 유일하게 증명된 푸앵카레 정리를 제외한 나머지 6개 난제에 도전하고 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사실 이번 내용은 아름다운 증명 과정에 비유를 포함해 훨씬 경이로운 글로 작성했으나 지면 여백이 충분하지 않아 여기 모두 적을 수 없었다는 점을 밝혀둔다.





주간동아 

초등생 ‘의대 준비반’

 의대 열풍이 거세다 못해 학원가에 ‘초등학생 의대 준비반’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사교육을 통한 초등학교 선행 학습이 예전에는 과학고·영재학교 진학을 목표로 했지만 의대 선호가 높아지면서 학원들이 간판을 ‘의대반’으로 바꿔달고 있다는 것이다. 학원들은 입학 고사까지 치러 ‘초등 의대반’을 뽑는데 경쟁률 10대1도 예사라고 한다.

/일러스트=박상훈
/일러스트=박상훈

▶유튜브에도 ‘초등·중등 의대 로드맵’ 같은 동영상들이 떠있다. 실시간 동영상 밑에는 “초1 때 수·영 어느 정도 해놔야 할까요” “초5 남아 엄마입니다. 지금 진도대로라면 초등 때 고등 선행 불가한데 괜찮을까요” 같은 학부모 질문이 쏟아진다. 인터넷에 떠 있는 ‘초등생 의대반 선발고사’ 문제에는 “고교 문제 같은데” “초딩 때 저 어려운 걸 하면 중딩, 고딩 때는 뭘 공부하냐” 같은 댓글도 붙어 있다.

▶전국 수석을 차지한 자연 계열 수재들이 무슨 공식처럼 물리학과로 진학하던 시절이 있었다. 1970년도 대입 예비고사 전체 수석인 임지순 전 서울대 교수, 1971년도 수석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이 다 물리학도였다. 1990년 입시학원 대입 배치표를 보면, 자연 계열 성적 순위가 서울대 물리학, 컴퓨터공학, 의예, 전자공학, 미생물학이었다. 상위 20학과 중 서울대를 제외하면 연세대 의예 하나뿐이었다.


▶요즘 입시에서는 대학 서열 최상위에 ‘의대’가 있다. ‘의치한약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란 말이 굳어진 지 오래다. 2022학년도 정시 합격자의 성적 상위 20학과가 몽땅 의·치·한이었다. 성적 30위권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30위)를 빼고 다 의학 계열이다. 50위권으로 넓혀도 서울대 5개 학과를 제외한 45개 학과가 의·치·한이었다. 한 입시 컨설턴트는 “독도나 마라도에 의대를 만들어도 학부모들은 서울대 안 보내고 거기 보낼 것”이라고 했다. 성적 최상위 1%를 향한 경쟁에, 학원들의 ‘공포 마케팅’이 가세해 초등생 의대 준비반이라는 웃지 못할 풍경까지 등장한 것이다.

▶의대 선호 현상이 강해진 것은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다. 대기업조차 연구원들을 구조조정하는 걸 보면서 월급쟁이의 직업 안정성이 심하게 흔들린 탓이다. 지금도 50대 초중반이 되면 기업 임원이어도 직장에서 퇴직하는 걸 보면서 ‘평생 직업’의 전문직 선호가 훨씬 강해지는 것이 의대 쏠림 현상으로 표출된다. 하지만 의사가 되겠다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필수 의료 붕괴는 심각한 지경이라는 것도 아이러니다. 머리 좋은 인재들이 온통 의대로만 쏠리는 나라가 4차 산업혁명의 글로벌 경쟁을 이겨낼 수 있을지, 걱정되는 현실이다.

조선일보


“초등 의대반 선발고사 진행” 지방 시골학원까지 광풍

 “아이를 꼭 의대에 보내고 싶은데요.”

“몇 학년이죠?”

“초등학교 1학년요.”

“지금부터 준비해야 해요. 의대반으로 보내세요. 저희가 스페셜하게 관리합니다.”

일곱 살에 의대 진학을 준비하는 나라가 있을까. 대한민국 이야기다. 아무리 의대 광풍 시대라지만, 전국 곳곳 초등학생 대상 학원이 아예 간판을 “초등 의대반” “초등 의대관”으로 고쳐 달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3~4학년을 겨냥하던 학원들은 “더 일찍 준비해야 한다”며 초등 1학년생에게도 레벨 테스트를 권유하고 있다.

다음 달 ‘의대반’을 신설하는 한 학원은 “문의 전화가 빗발친다”고 했다. 커리큘럼을 물으니, 다음 주 ‘초등 의대 학부모 설명회’에서 비공개로 원장 직접 강의가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이 설명회도 선착순 30명만 들을 수 있다. 당일 아이를 데려오면 국어, 영어, 수학 레벨 테스트를 보고 입학 여부가 결정된다고.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 초등학생 1학년도 가능한가요?” “네. 어머니. 중학교 1학년 정도 수학만 뗐다면 당연히 입학 가능하고요. 그런 학생들이 이미 대기 중입니다. 소수 정예 6명만 받아요.”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서울 대치동 학원가. 일부 학원이 ‘초등의대관’이라는 이름의 간판을 달았다. 이들은 1~6학년을 상대로 의대 진학을 위한 ‘맞춤 의대반’을 운영한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서울 대치동 학원가. 일부 학원이 ‘초등의대관’이라는 이름의 간판을 달았다. 이들은 1~6학년을 상대로 의대 진학을 위한 ‘맞춤 의대반’을 운영한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유치원생이 ‘수학의 정석’을 푼다고?

사교육의 메카로 불리는 서울 강남 대치동 유명 학원장은 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 나와 초등 의대반 실태를 털어놨다. 이 반에 들어가려고 방학 땐 지방에서도 올라온다고. 이 원장은 “들은 것까지 종합하면 제주도, 부산, 목포, 대전 등에서 온다”며 엄마와 동행한 아이들은 근처 원룸을 빌려 생활한다고 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극성인 부모들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수학의 정석으로 미·적분까지 다해서 보낸다”는 얘기였다. 보통 고등학교 때 푸는 그 정석 말이다.

초등 의대 열풍은 서울 전 지역, 경기, 인천뿐 아니라 부산, 경상, 전라, 충청 등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경북 구미의 한 학원은 “이른바 ‘의치한약수’(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를 간 아이들은 초등 때 무슨 공부를 했을까”란 간판을 내걸고 초등 1~6학년을 대상으로 한 ‘초등 의대 선발 고사’를 진행 중이다. 충남 홍성군 한 읍의 수학학원도 올해 초부터 초등의대반을 운영 중이다. 지방 학원이 이름에 ‘SKY(서울대, 고대, 연대)’ ‘대치’ 등의 단어를 썼던 것처럼 ‘의대반’도 유행이 된 셈이다.

서울 목동의 한 학원 초등 의대반 시간표에는 방학 때 하루 3시간짜리 일정이 빡빡하게 짜여 있었다. 학원비는 3시간에 5만원. 일주일에 두번 간다면 40만원꼴이다. 학생들은 수학 시간에는 올림피아드 상위 3% 문제를 풀고, 과학 시간에는 자체 교재를 통해 물리, 화학, 생물, 지리를 중심으로 한 응용 심화 풀이를 한다. 5학년 아들을 초등 의대반에 보내고 있는 엄마 김모씨는 “요새 애들은 ‘학원 몇 개 다녀?’란 질문을 하지 않는다. ‘수학 학원 몇 개 다녀?’라고 묻는다”며 “수학 학원만 3개씩 다니는 애들이 수두룩하다. 우리 아들은 벌써부터 ‘엄마, 가 문제 푸는 거 보면 나는 의대는 못 가’라고 말한다. 안쓰럽지만 어쩌겠나”라고 했다.

초등생이 어려운 수학, 물리 문제를 푸는 모습은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약대가 목표인 초6의 17시간 공부 브이로그’ ‘의대생을 꿈꾸는 10살 공튜버(공부+유튜버)의 하루 일상’ 같은 제목의 영상이 많다. 인스타그램에서도 초등생들이 ‘ㅇㅇ의대 30학번’ 등의 목표를 공유하며 ‘공부 인증샷’을 올리고 있다. 인터넷에 올라온 초등부 의대반 선발고사 문제에 “저도 명문대 나왔는데 첫 줄 읽다가 포기했네요”란 댓글이 달려 있다. 입시 관련 채널인 ‘가갸거겨고교’에 있는 ‘미국 수학 경시대회 푸는 초등 의대반 수업 현장’ 영상에서도 서울대 의대생이 12세, 7세 초등생의 문제 풀이를 보며 감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이 중 한 명은 “왜 의사가 되고 싶냐”라는 질문에 답변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초등생 5명 중 1명은 의대에 가고 싶어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메가스터디교육이 지난달 10~24일 초등 4~6학년 50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23.9%가 의학 계열 진학을 원했다. 그 뒤로는 ‘아직 못 정했다’는 답변이 22.5%, 자연·과학 계열 15.1%, 공학 계열 12.2%, 인문사회 계열 8.2%, 예체능 계열 7.6%, 사범·교육 계열 6.2%, 상경 계열 2.4% 순이었다.

◇맘카페선 “체계적 교육” VS. “아동 학대”

라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선 초등 의대반을 두고 설전이 벌어진다. 찬반이 명확하게 나뉜다. 찬성 쪽에서는 “자극적으로 ‘초등 의대반’으로 지은 것일 뿐 수업을 보면 영재반 같은 느낌”이라며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하는 게 왜 나쁜지 모르겠다”고 한다. 한 엄마는 “저 지금 중딩 맘인데 어릴 때 많이 안 시킨 거 너무 후회한다”며 “영유도 보내고 수학 선행도 시키세요. 뒤늦게 따라가려니 힘듭니다”라고 썼다. 전국 의대 정원은 3000명대 초반(2023학년도 기준), ‘의치한약수’ 전체로 늘리면 6000명대인데 “재수, N수를 해서라도 갈 수만 있다면 누가 안 보내겠냐”라는 입장이다. 의대 진학을 인생 역전 기회로 봤다.

그러나 반대 쪽은 “의대 진학은 아이의 목표가 아니라 부모의 목표 아니냐”며 “요즘 아이들은 자라는 게 아니라 키워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대체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이 무슨 목표를 가지고 공부를 할 수 있겠냐”고 했다. 아동 학대란 의견도 상당했다. “결국 어릴 때부터 돈 많이 버는 의사가 최고라는 걸 알려주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었다.

의대 쏠림 현상은 하루 이틀 얘기는 아니다. 서울대 신입생 중 휴학생이 많아지는 이유도 의대, 치대 진학을 위한 수능 재수로 추정하고 있다. 문제는 그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이다. 서울대 신입 휴학생은 2019년 70명, 2020년 96명, 2021년 129명, 2022년 195명, 2023년 225명으로 늘었다. 4년 만에 3배로 뛰었다. 20대뿐 아니라 3040세대도 직장을 다니다가 다시 수능을 봐서 의대에 진학하려는 꿈을 꾸기도 한다. 3년째 의대 진학 공부를 하고 있는 40세 미혼 여성 이모씨는 “사범대를 나와 교사를 할 때 월급 200만~300만원을 받았다”며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너무 답답해 다시 수능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의대를 졸업하면 50대일 수도 있지만 정신과 의사는 80세까지 한다더라”고 했다.

한 맘카페에서는 지난 13일부터 무기명 여론조사를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 미래를 위해선 최고 인재들이 어디로 가야 하나”란 질문에 9%만이 “의대에 가야 한다”고 응답했다. 75.8%가 “이공계로 가야 한다”고 했다. 15%는 “문화, 예술, 인문학 등 각자 재능 있는 분야에 진학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내 아이가 내신이나 모의고사 1등급 초반이라면?”이라는 질문을 하자 “의대에 보낸다”가 80%였다. “이공대 진학”은 20%에 그쳤다.

조선일보

2023년 6월 3일 토요일

그림 그려 물리방정식 푸는 카파렐리 교수, 2023 아벨상 영예

 




수학상 하면 필즈상이 가장 먼저 떠오르실 텐데요. 수학자에게 어떤 상을 가장 받고 싶냐 물으면 열에 아홉은 수학계 노벨상 ‘아벨상’을 꼽습니다. 필즈상이 앞으로가 기대되는 만 40세 이하 젊은 수학자에게 주는 상이라면, 아벨상은 평생의 공로를 인정받은 수학자에게 주는 상이기 때문이지요. 358년 난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앤드루 와일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수학자 존 내시가 아벨상을 받았습니다.

 

루이스 카파렐리.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루이스 카파렐리.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2023년 아벨상 수상자는 편미분방정식(PDE) 연구 분야의 살아있는 전설 루이스 카파렐리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 수학과 교수입니다. 헬게 홀든 아벨상위원회 위원장은 “카파렐리 교수는 PDE 문제에 새로운 기하학적 방법론을 제시해 이 분야를 발전시켰다”고 3월 22일 아벨상 홈페이지를 통해 수상 이유를 전했습니다. 

 

PDE는 각각의 변수들의 상관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변화량을 볼 수 있는 방정식으로, 유체역학, 전자기학 등 활용 범위가 다양합니다. 카파렐리 교수는 얼음과 물의 경계, 유체의 흐름, 최적 운송 계획법을 구하는 수학적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가 물리학, 생물학, 경제학,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벨상은 2002년 노르웨이 의회가 노르웨이의 천재 수학자 닐스 헨리크 아벨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제정한 상입니다. 전 세계 명망 있는 수학자 5인으로 구성된 아벨 위원회가 후보를 추천하고 심사해 선정합니다. 올해 아벨 위원회에는 황준묵 기초과학연구원(IBS) 복소기하학 연구단장이 참여했는데요. 우리나라 수학자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Calle Huth / studio / Abel Prize
Calle Huth / studio / Abel Prize

 

○ 카파렐리 교수의 업적 BEST 3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카파렐리 교수가 PDE 분야의 대가로 불리는 이유는 그가 발표한 연구들의 파급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2018 필즈상 수상자 알레시오 피갈리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 교수의 연구를 들 수 있습니다. 피갈리 교수의 업적은 ‘최적 운송 이론ʼ의 문제에서 성과를 낸 것과 ‘슈테판 문제ʼ의 해답에 더 다가선 것인데요. 이 모두 카파렐리 교수의 연구를 발전시킨 것입니다. 카페렐리 교수가 어떤 수학적 성과를 냈는지 지금부터 자세히 알아볼게요.

 

● 업적 1.  최적 운송 계획법을 진전시키다

 

최적 운송 계획법은 A 지점에서 B 지점까지 대량의 물자를 이동시킬 때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윤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예컨대 강원도 채석장에서 서울의 아파트 건설 현장으로 대리석을 옮겨야 한다고 가정해 보세요. 비용을 가장 적게 들이려면 최단 시간에 가장 짧은 경로로 가야 하는데요. 이를 알려주는 함수를 PDE로 찾는 거죠.

 

최적 운송 계획법을 찾으려면 ‘몽쥬-앙페르 방정식(PDE)’을 이용해야 한다는 프랑스 수학자 얀 브레니어의 결과를 바탕으로, 카파렐리 교수는 이 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이 결과는 경제학뿐만 아니라 기후 전선의 이동을 예측하는 기상학 연구에도 쓰입니다.

 

녹는 얼음의 패턴 - 카파렐리 교수는 슈테판이 고안한 PDE에 특이점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특이점은 얼음에 있으며, 물로 둘러싸여 있다. 그 특이점에서의 온도가 0℃이고, 특이점에서 멀어질수록 온도가 규칙적으로 오르는 이차함수 그래프를 따른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녹는 얼음의 패턴 - 카파렐리 교수는 슈테판이 고안한 PDE에 특이점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특이점은 얼음에 있으며, 물로 둘러싸여 있다. 그 특이점에서의 온도가 0℃이고, 특이점에서 멀어질수록 온도가 규칙적으로 오르는 이차함수 그래프를 따른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 업적 2. 녹는 얼음의 특이점을 찾았다! 슈테판 문제

 

1889년 슬로베니아 물리학자 요제프 슈테판은 얼음이 녹는 현상을 PDE 2개로 표현했어요. 하나는 따뜻한 물에서 차가운 얼음으로 열이 확산하면서 얼음이 녹는 현상을 설명해요. 다른 하나는 얼음이 녹는 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얼음과 물 사이의 경계 변화를 알려주는 식입니다. 이 2개의 PDE는 실제 얼음이 녹는 실험의 결괏값과도 잘 들어맞았지요. 

 

그런데 슈테판은 얼음과 물 사이의 경계에 ‘특이점’이 얼마나 있을지 궁금했지만, 이를 밝히지 못했어요.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딴 슈테판 문제가 나왔습니다. 특이점은 PDE를 포함한 어떤 수식을 그래프로 나타냈을 때 뾰족하게 생긴 지점으로, 이 지점에서는 미분이 불가능해요.

 

1977년 카파렐리 교수는 슈테판 문제 해결의 중요한 실마리를 마련합니다. 얼음과 물의 경계의 변화를 돋보기처럼 확대해서 볼 수 있는 수학적인 방법을 고안합니다. 그 결과 얼음이 물이 되는 0℃에 특이점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또 특이점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내는 방법도 고안했지요. 이 방법을 이용해 2021년 피갈리 교수팀은 특이점이 매우 드물게 있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 업적 3.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의 실마리 제시하다

 

카파렐리 교수는 100만 달러(한화 13억 1900만원)의 상금이 걸린 밀레니엄 난제인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에서도 업적을 남겼어요. 이 식은 끈적끈적한 점성을 포함한 유체의 움직임을 예측하는데, 특이점이 있다면 정확한 움직임을 알 수 없어 특이점이 있는지 밝히는 게 중요해요.

1982년 카파렐리 교수는 공동 연구자와 함께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의 원래 해인 함수에 특이점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특이점이 있다면 이것들을 모았을 때 선을 만들 수 없을 만큼 매우 작아야 한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 독창성의 비결은 독학

 

“PDE는 카파렐리 교수의 연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1970년대부터 카파렐리 교수와 자주 연구한 산드로 살사 이탈리아 밀라노 폴리테크니크대 명예교수가 한 말입니다. 카파렐리 교수의 연구 결과들이 PDE 연구에 끼친 영향이 대단하다고 평가한 건데요. 놀랍게도 카파렐리 교수는 PDE를 박사 졸업 후 알게 됐고, ‘독학’했다고 합니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카파렐리 교수는 모국에서 박사과정까지 밟았습니다. 함수를 연구하는 해석학을 전공한 그는 1973년 미국으로 건너와 미네소타대학교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합니다. 그때 2차 선형 PDE 연구를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한스 레비 교수의 조화 분석 강의를 듣습니다. 조화 분석은 함수와 주파수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으로 PDE를 이용하지요.

 

새로운 강의 내용에 완전히 매료된 카파렐리 교수는 레비 교수에게 찾아가 PDE 문제를 풀고 싶다고 했고, 레비 교수는 얼음과 물처럼 그 경계가 자유롭게 변하는 ‘자유 경계 문제’ 2개를 추천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몰랐던 그는 혼자서 오래전 논문부터 찾아가면서 공부했지요.

 

그렇게 4년이 지난 1977년, 현재는 그의 대표 업적이라 불리는 슈테판 문제의 실마리를 제시해 수학계를 깜짝 놀라게 합니다. 수학계에서는 그의 논문을 두고 PDE 문제를 기하학적으로 접근한 독창적 연구라고 평가했는데요. 2008년 대만국립대학교 수학과와의 인터뷰에서 카파렐리 교수는 이러한 결과가 “혼자 공부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알레시오 피갈리 교수. ⒸETH Zurich / Gian Marco Castelberg
알레시오 피갈리 교수. ⒸETH Zurich / Gian Marco Castelberg
산드로 살사와 카파렐리 교수(왼쪽), 제자 테세이라 교수와 카파렐리 (오른쪽). 루이스 카파렐리 제공
산드로 살사와 카파렐리 교수(왼쪽), 제자 테세이라 교수와 카파렐리 (오른쪽). 루이스 카파렐리 제공

2021년 피갈리 교수와 함께 슈테판 문제 관련 논문을 발표한 자비에 로스 오톤 스페인 바르셀로나대 교수는 “2014년부터 슈테판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카파렐리 교수님의 연구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전했어요.

 

살사 교수는 1978년 공동 연구했던 때를 회상하며 “대개 다른 수학자가 푸는 방식을 따라서 풀기 마련인데 그는 완전히 자신만의 기하학적 관점과 방법으로 PDE를 풀었다”며, “필즈상을 받지 못한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고 그의 수학적 직관이 남달랐다고 설명했습니다.

 

카파렐리 교수와 아내 아이린감바 교수의 조깅(왼쪽), 요리하는 카파렐리 교수(오른쪽). 유튜브 채널 ′쇼상′ 캡처
카파렐리 교수와 아내 아이린감바 교수의 조깅(왼쪽), 요리하는 카파렐리 교수(오른쪽). 유튜브 채널 '쇼상' 캡처

 

○ 제자가 말하는 카파렐리 교수 위대한 수학자이면서 위대한 스승

 

이기암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

"카파렐리 교수님은 마치 탐정 같았어요"

 

1994년부터 뉴욕대에서 박사과정생으로 있을 때 지도 교수님인 카파렐리 교수님으로부터 세 가지를 배웠어요. 먼저 수학 문제를 그림과 간략한 계산으로 접근하는 방법이에요. 보통 PDE 문제는 수식을 푸는 걸로 공략하지만, 교수님은 기존 방식과 달리 먼저 칠판에 관련 그림을 몇 개 그려놓고, 토론부터 했지요. 세세한 방정식 계산에 신경 쓰기보다는 그림과 대략적인 계산 몇 개를 바탕으로 마치 탐정처럼 추론해 해답까지 도달했어요.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수 있는 방법을 배운 거죠. 덕분에 분명한 방향으로만 고민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다음은 교수님께 집요함을 배웠어요. 그림을 그려 대략적인 방향을 정한 다음엔 추론이 맞는지 하나하나 실제로 계산해봐야 해요. 당시 제가 교수님께 매일 찾아가서 ‘잘 안 됩니다’고 했던 기억이 나요. 그러면 교수님과 같이 논의하면서 이렇게 풀까, 저렇게 풀까 고민했어요. 정말 신기한 점은 문제를 풀고 보면 교수님이 처음에 그림과 대략적인 계산만 보고, 추론했던 결론이 모두 맞았어요. 교수님이 정말 집요하게 문제에 파고들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은 책임감입니다. 항상 제자들을 신경 써주세요. 뉴욕대에서 텍사스대로 옮기실 때는 장학금을 마련하여 모든 뉴욕대 제자들을 방문 학생 자격으로 데리고 가셨어요. 카파렐리 교수님을 지도교수님으로 만났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고, 저도 교수님께 배운 것을 제 제자들에게 돌려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 카파렐리 교수님은 저보다 언제나 발걸음이 빠르셨어요. 축구도 굉장히 잘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연구를 하시길 기원합니다.

 

에두아르도 테세이라 미국 센트럴플로리다대 교수
에두아르도 테세이라 미국 센트럴플로리다대 교수

 "미국에서 연구할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카파렐리 교수님과의 첫 만남은 제 생애 가장 행복한 날 중 하나예요. 아이돌과 이야기하는 것처럼 설렜지요.

 

저는 1990년대 후반 브라질 세아라연방대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지만, 저명한 수학자가 총집합한 미국에서 수학 연구를 더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상황이 쉽지 않았어요.

 

그러던 1999년 저는 브라질 순수 및 응용 수학 연구소(IMPA)에서 열리는 수학 총회에 참가했고, 카파렐리 교수님이 연사로 오셨어요. 그때 교수님께 미국에 가고 싶다는 제 고민을 이야기했어요. 그랬더니 교수님께서 “텍사스대 대학원 박사 과정에 지원해봐라”고 했고, 용기를 내서 지원했어요. 그 결과 정말로 합격해서 미국으로 가게 됐어요. 수학 연구뿐만 아니라 됨됨이까지 제게 큰 영향을 끼친 카파렐리 교수님을 알게 된 것은 제 인생의 큰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카파렐리 교수님은 많은 젊은 수학자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남미 지역의 여러 수학 행사에서 강연을 해주셔서 미래 세대에게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해요.

 

자비에 카브레 스페인 바르셀로나대 교수
자비에 카브레 스페인 바르셀로나대 교수

 "카파렐리 교수님의 수업은 완벽해요!"

 

1993년 봄, 제가 뉴욕대 박사과정생일 때 지도교수님이신 2015 아벨상 수상자 루이스 니렌버그 교수님은 카파렐리 교수님과 함께 한 가지 제안을 했어요. 제가 카파렐리 교수님의 수업 내용을 정리해서 카파렐리 교수님과 공동 저자로 전공 서적을 내자는 거였지요. 

 

니렌버그 교수님은 “카파렐리 교수님이 수업에 완전히 몰입하면 말이 점점 빨라지니까 필기를 위해 중간에 멈춰달라고 꼭 말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지요. 그렇게 저는 카파렐리 교수님의 수업 내용을 정리했어요.

 

이후 강의에서 나온 정리, 명제 등의 순서를 정확히 따라서 책을 쓰기 시작했어요. 책을 다 쓸 무렵, 첫 장부터 끝장까지 아무것도 추가하거나 바꿀 필요가 없다는 것에 아주 감탄했어요. 교수님이 강의를 정말 정교하고 완벽하게 설계했다는 것을 알았지요.

 

카파렐리 교수는 남미 최초 아벨상 수상자입니다.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남미에서 수학자가 이렇게 큰 상을 받은 전례가 없었던 만큼 큰 의미로 다가오는데요. 우르슬라 몰터 아르헨티나 수학회 회장은 “카파렐리 교수님의 아벨상 수상은 미래 세대의 아르헨티나 수학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습니다. 

 

한편 카파렐리 교수는 오는 5월 23일 노르웨이 오슬로대에서 아벨상 트로피와 함께 상금 750만 크로네(한화 9억 4000만원)를 받습니다. 시상식 기간 카파렐리 교수 연구에 관한 강연이  열리니 관심 있는 분들은 아벨상 유튜브 계정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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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동아 5월호, 2023 아벨상 , 복잡한 물리 방정식 그림 그려 푸는 루이스 카파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