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7일 화요일

인재는 경쟁 통해 만들어지는 것(석학 3인 대담)

서울대 이장무총장과 96년 노벨화학상수상자 해롤드코로토교수,필즈상수상자 에핌젤마노프 한국고등과학원석학교수 가 한국의 영재교육 문제점과 방향에대해 이야기합니다.



노벨화학상(1996년) 수상자인 해롤드 크로토(Harold W. Kroto)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교수와 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1994년)을 수상한 에핌 젤마노프(Efim I. Zelmanov) 한국고등과학원 석학 교수가 15일 오전 서울대를 방문했다. 석학들은 서울대 이장무 총장과 좌담을 갖고 세계 최고 수준의 핵심 인재 양성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다음은 대담 전문(全文).

상위 1% 영재급 인재 어떻게 키울 것인가
이장무 총장 =지식 기반 사회에서 최고 인재의 중요성은 갈수록 중요해 지고 있다. 파레토의 법칙처럼 상위 20%가 경제뿐만 아니라 과학에서도 현대 사회의 발전을 책임지는 것이다. 이런 영재급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창의성을 키우고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다양한 환경을 경험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에핌 젤마노프 교수 =중고등학교 차원에서는 영재들이 자신의 능력을 재능을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레벨에서도 이들은 특별 학교나 특별 반에 배치해서 더 경쟁적인 프로그램을 듣게 해야 한다.

대학 차원에서도 영재급 강의반이 있어야 한다. 그들은 평범한 학생들과는 다른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게 만들어 줘야 한다. 특히 이런 노력은 12세 이하의 학생에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에 “내가 수학을 하면 정말 성공할 수 있겠구나”하는 동기를 주면 그들은 더 좋은 수학자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해롤드 크로토 교수 =과학 분야는 영재 육성이 핵심이다. 많은 학생들이 변호사나 경영인으로만 몰리는 것은 그 사회의 창의성이 죽고 있다는 하나의 지표다. 우리가 경영인이나 변호사를 모욕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더 월급이 많은 곳으로만 학생들이 몰리는 현상은 서구 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는데 꼭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 위해서는

크로토 =꼭 노벨상을 목표로 삼은 필요는 없다. 내가 과학에 관심을 가졌을 때 노벨상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에서 느낀 것은 노벨상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이 지나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다만 일본의 경우를 첫 노벨상이 나오기 20년 전부터 사회적으로 과학발전에 대한 지원시스템을 갖췄다. 한국의 경우 얼마만큼의 과학 인프라를 갖췄는지 살펴보라. 사실 나는 한 학자가 노벨상을 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논문이 인용된 횟수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주요 저널에 한국들의 논문이 많아 지는 것은 고무적이다.

젤마노프 =과학자가 노벨상이나 필즈상을 수상하는 것을 목표로 잡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다. 중간 단계의 연구에서 최첨단 연구까지 그 사회의 과학 수준이 적절하게 연동될 때 한 과학자가 노벨상을 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벨상의 획득은 결국은 목표가 아니라 일련의 과정이 가져온 결과다.
이장무 =노벨상 수준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교육시스템이 지식기반사회에 적합하도록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다. 현재 우리의 교육시스템은 산업사회의 대량생산에 맞도록 디자인돼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이야 말로 한국이 현재나 미래의 필요에 적합한 보다 유연한 교육 시스템을 갖출 시기하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젊고 뛰어난 학생들의 창의력을 키워줄 수 있어야 한다.
크로토 =그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학생들에게 선생님 의견에도 반대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이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 학생들을 가르치기는 힘들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더 창의적인 학생을 길러 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대학 인재선발과 양성에서 정부의 규제

이장무 =정부의 규제는 교육과정에 일관성을 부여하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대입정책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은 대학 교육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큰 역효과를 낸다. 우리가 지식기반 사회로 나가기 위해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다.

크로토 =한국 상황을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영국의 문제는, 대학의 자율성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그들은 과학교육을 위해 예산을 가져가지만 내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곳에 사용한다. 시장경제 속에서 음식을 예로 들겠다. 학생들에게 먹을 것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쉽게 먹을 수 있는 예로 맥도널드 햄버거가 있다. 결국 미국에서는 비만이라는 큰 문제가 생겼다. 영국은 학생들이 원하는 분야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심리학을 졸업하는 학생이 나라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숫자보다 5배에서 10배나 많아졌다. 즉 너무 많은 학생들이 직업이 없는 분야를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가이드와 대학의 자율성이 적당한 균형을 이뤄야 한다.

중고등학교에서의 평준화 정책이 초일류 인재 양성에 미치는 영향

이장무 =가족의 경제적 능력이나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모든 학생에서 동등한 교육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하지만 학생의 잠재력이나 능력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모든 학생에도 똑같은 교육을 할 수는 없다. 이 점에서 다양성과 유연성이 중요하다. 그리고 정부는 고교 평준화와 교육에서의 수월성 사이에 균형을 맞춘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크로토 =내가 한국의 본 가장 큰 문제는 1명의 교사가 30명의 학생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두 명의 자식이 있다면 똑같은 환경에서 자라도 두 명의 관심사는 완전히 달라진다. 한 명은 프랑스어를 좋아하고 다른 한 명은 또 다른 것을 배우기를 원할 것이다. 그것만 봐도 각 학생들에게 맞는 교육을 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각 학생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교육을, 원하는 교사에게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건 마치 농구를 연상시킨다. 키 작은 학생들에게 맞는 농구대가 있다면 그들은 농구를 좋아할 것이다. 인재 양성을 위해선 수준별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 과학이란 것은 무언가를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무언가를 발견하는 방법을 획득하는 것, 그리고 학생들이 수준에 맞는 수업을 할 수 있도록 교사들이 지도해 주는 것이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의 수학과 과학 수준

젤마노프 : 한국의 유명한 수학자들을 여러 명 알고 있다. 한국의 젊은 수학자들이 한국의 수학 수준을 두 단계 이상 올려 놓았다. 지금 한국은 5단계(레벨 5가 가장 높음)에서 레벨 4 정도의 수준에 와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2단계였다.

이장무 =국제학업성취도평가 같은 객관적인 시험 결과를 보면 12세 이상의 한국 학생들은 수학과 과학에서 아주 잘 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수준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최상위 영재 비율은 한국이 일본이나 중국보다 낮다. 게다가 나는 한국이 이런 학생들의 창의성을 성공적으로 키워주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 대학 교육이 최고 수준의 과학자나 엔지니어를 길러내는데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 걱정된다.

크로토 =한국의 나노테크놀로지에 관한 페이퍼는 몇 편 봤는데 매우 훌륭한 수준인 것 같다.

이공계 기피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

젤마노프 =이공계 기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오랜 세월이 걸릴 거라고 생각한다. 과학의 긍정적 면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과학 과목 커리큘럼이 보다 흥미로워야하지 않을까.

이장무 =이 문제에 대해 해답을 알았으면 얼마나 좋겠나. 유감스럽게도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정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공학 분야에서 학생들에게 밝은 전망을 보여주고 초중고 과학과목을 어린 학생들에게 더 재미있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어야 한다.

크로토 =학교 밖에서도 잘 이끌어 줘야 한다. 영국이나 독일에서도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과학자나 수학자보다 변호사나 의사가 되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중국이나 인도를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나라들은 많은 과학자들을 길러내고 있다. 빈곤에서 벗어나는 길이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서구에서처럼 삶이 좀 더 편하다. 물론 사는 게 쉽다고는 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걸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돈을 벌기 위해서만 사는 건 아니다. 정부가 먹고 사는 걱정을 덜어주고 젊은이들의 생계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들도 이해할 거다. 과학은 지적이고 흥미로운 일이며 물리학자나 수학자는 진정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미래 사회를 이끌 핵심인재가 가져야 할 자질

이장무 =자기만의 생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생각을 창의성을 가지고 현실로 만들 끈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할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기가 속한 세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어떤 방향의 미래를 향해 나가고 있는 지에 대해 분명히 알아야 한다.

크로토 =성공을 위해서 말인가? 나의 경우는 다른 사람들이나, 내 학생들보다 더 똑똑하지 않지만, 내 능력껏 최선을 다할 결심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내가 노력할 수록 행운도 더 따랐다.

과학을 하려면 권위 있는 말에도 너무 휘둘리면 안 된다. 과학은 의심과 질문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신앙’을 절박하게 가지려는 사람들이 아주 많은 세상에 살고 있는데, 현실과 믿음은 다르다. 과학에서는 절대적인 의심(absolute doubt)이 중요하다. 증거가 뭐라고 말하는 지가 중요하다. 나는 개인적 믿음이나 종교에서 무엇을 구하지는 않는다. 끝없는 의문(persistent doubt)이 더 중요하다.

핵심 인재 양성을 위한 대학 교육

이장무 =기본적인 인문학 교육과 과학 교육을 강조해야 한다. 그리고 인재들이 두 개 이상의 학문 분야가 결합된 학제적 사고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줘야 한다. 그리고 교육은 개별 학생의 필요에 따라 설계돼야 한다. 왜냐 하면 대형 강의실에서 여러 명의 학생에서 지식을 전달하는 옛날 방식은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