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난 피부 새 살 돋듯… 플라스틱 균열 스스로 메운다
손가락에 작은 상처가 났을 때 아무런 치료를 하지 않아도 곧 새살이 돋아난다. 이처럼 피부는 놀라운 ‘자기치료(self healing)’ 능력을 갖고 있다. 흉터는 그 능력의 증거물.
최근 과학자들은 인체의 자기치료 능력을 모방한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우주선에 이 물질을 도입하면 손상된 부분을 고치러 위험한 우주 유영(游泳)을 하지 않아도 된다. 또 전자회로를 망가뜨리는 칩의 균열도 치유할 수 있으며, 스스로 갈라진 틈을 메우는 콘크리트도 만들 수 있다.
◆균열 발생하면 캡슐 터뜨려 접착제 방출=미 일리노이대 베크만(Beckman)연구소는 2001년 ‘네이처’지에 인체의 자기치료 능력을 모방한 플라스틱을 개발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플라스틱 내부에는 디사이클로펜타디엔(DCPD)이라는 액체 상태의 플라스틱이 들어있는 마이크로 캡슐(micro capsule)이 백설기의 건포도처럼 박혀있다. DCPD는 일종의 접착물질. 그리고 주변에는 접착물질을 굳게 하는 촉매제가 점점이 있다.
만약 플라스틱에 균열이 생기면 그 부분에 있는 캡슐이 터지게 된다. 캡슐 안에 있던 접착물질은 균열 부위를 따라 이동한다. 식물의 뿌리에서 잎까지 물이 전달되거나 실을 따라 물이 올라가는 모세관현상 때문이다. 접착물질은 곧 균열부분에 있는 촉매와 만나 굳게 되고 결국 틈을 메우게 된다. 실험 결과 자기치료가 된 플라스틱은 균열 전과 비교해 강도(剛度)가 90%까지 회복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플라스틱은 탄소로 이뤄진 작은 분자들이 사슬처럼 연결돼 있는 고분자 물질이다. 선박이나 자동차에 사용되는 플라스틱에 작은 균열이라도 생기면 강도가 급격히 떨어져 큰 사고를 불러올 수 있다. 또 미세전자기기를 구성하는 플라스틱에 균열이 생기면 전자제품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접착제 역시 고분자물질인 일종의 플라스틱이어서 작은 금이라도 생기면 접착력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자기치료 플라스틱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마이크로 캡슐을 이용한 자기치료 플라스틱은 같은 곳에 다시 균열이 발생하면 속수무책이다. 이미 그곳에 있는 마이크로 캡슐이 터진 상태라 접착물질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베크만연구소의 낸시 소토스(Sottos) 교수는 캡슐 대신 모세혈관과 같은 작은 통로(micro channel)들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모세혈관 모방해 업그레이드
연구팀이 지난 6월 재료공학 전문학술지인 ‘네이처 머티리얼즈’에 발표한 자기치료 플라스틱은 일종의 인공피부라고 할 수 있다. 인체의 바깥쪽 보호 피부막이 잘리면 모세혈관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안쪽 피부막이 잘려진 부분을 복구하기 위해서 영양분을 공급한다. 마찬가지로 자기치료 플라스틱에도 모세혈관과 같은 작은 통로들이 나있어 균열을 메우는 액체 접착물질을 공급한다.
플라스틱을 구부리면 휘어지는 바깥쪽이 갈라진다. 갈라진 틈에서는 미세 통로들의 끝이 밖으로 노출된다. 통로의 한쪽이 열리면 마찬가지로 모세관 현상에 의해 이곳으로 접착물질들이 흘러 들어온다. 접착물질은 미리 플라스틱 표면에 발라놓은 촉매와 반응해 굳게 된다. 연구팀은 같은 곳이 갈라져도 7번까지는 자기치료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자기치료된 곳이 또 갈라져도 다시 미세 통로를 통해 접착물질이 공급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방식도 한계는 있다. 상처가 심하면 흉터가 크게 남듯, 같은 곳이 여러 번 자기치료를 거치고 나면 플라스틱 표면에도 굳은 접착물질이 위로 불룩하게 솟아오른다. 이 상태에서 다시 균열이 생기면 액체 접착물질이 플라스틱 흉터에 막혀 표면까지 전달되기가 어렵다. 결국 표면에 있는 촉매를 만나지 못해 접착물질이 굳지 못하게 된다.
연구팀은 촉매를 위한 새로운 미세 통로를 만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전 연구에서 접착물질과 촉매를 플라스틱 내부에 똑같이 점점이 박아놓은 것과 비슷한 원리다. 균열이 생기면 미세 통로를 통해 접착물질과 촉매가 동시에 흘러 들어와 틈을 메우게 된다. 베크만연구소는 최근 이 같은 방식의 자기치료 플라스틱에 대한 실험을 마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콘크리트에도 적용=자기치료 플라스틱은 상용화되기에는 아직 가격이 너무 비싸다. 모세혈관 방식의 경우 접착물질을 계속 공급해줘야 같은 곳이 다시 갈라져도 치료할 수 있다. 유지비용이 계속 들어간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고가의 마이크로 칩이나 우주선처럼 극한 환경에 사용되는 플라스틱에서는 비용보다는 안전이 더 중요하므로 곧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건축물이나 군수제품도 안전이 강조되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분야다.
자기치료 콘크리트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제안됐지만 비용 때문에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 이같은 기능을 가진 ‘인텔리전트(intelligent) 콘크리트’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콘크리트 스스로 자신의 성능을 떨어뜨리는 문제를 진단하고 억제 또는 회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균열 자기치료 인텔리전트 콘크리트에는 고분자 물질 캡슐이 들어있다. 만약 콘크리트가 갈라지면 그곳의 캡슐이 깨지면서 고분자 물질이 흘러나와 틈을 메우고 더 이상의 균열을 방지한다.
시멘트가 물과 만났을 때 나타나는 수화(水和)열을 막아주는 콘크리트도 있다. 음식을 너무 급하게 익히면 표면이 갈라지듯 콘크리트도 굳을 때 수화열이 나면 나중에 균열이 생겨 구조물이 약해진다. 수화열 제어 인텔리전트 콘크리트는 굳을 때 일정 온도에 도달하면 수화 반응 지연제가 들어 있는 마이크로캡슐이 녹아 더 이상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막는다.
국방도 가격보다 기능이 우선되는 분야다. 자기치료 플라스틱 연구에는 미 공군성이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그만큼 군사적 가치가 높다는 말이다. 이미 사용되고 있는 것도 있다. 미국은 헬리콥터의 연료탱크에 자기치료 방식을 도입했다. 연료탱크를 이루는 벽에 연료와 반응하면 부풀어 오르는 고분자 고무가 들어있다. 만약 총알이 연료탱크를 관통해 연료가 흘러나오면 이 고분자 고무가 곧바로 부풀어 올라 총탄 구멍을 메우는 방식이다.
미 일리노이대가 개발한 마이크로 캡슐 형태의 자기치료 플라스틱. 날개에 균열이 생기면 그곳에 있는 캡슐이 터져 접합물질이 나와 틈을 메운다.
조선일보
손가락에 작은 상처가 났을 때 아무런 치료를 하지 않아도 곧 새살이 돋아난다. 이처럼 피부는 놀라운 ‘자기치료(self healing)’ 능력을 갖고 있다. 흉터는 그 능력의 증거물.
최근 과학자들은 인체의 자기치료 능력을 모방한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우주선에 이 물질을 도입하면 손상된 부분을 고치러 위험한 우주 유영(游泳)을 하지 않아도 된다. 또 전자회로를 망가뜨리는 칩의 균열도 치유할 수 있으며, 스스로 갈라진 틈을 메우는 콘크리트도 만들 수 있다.
◆균열 발생하면 캡슐 터뜨려 접착제 방출=미 일리노이대 베크만(Beckman)연구소는 2001년 ‘네이처’지에 인체의 자기치료 능력을 모방한 플라스틱을 개발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플라스틱 내부에는 디사이클로펜타디엔(DCPD)이라는 액체 상태의 플라스틱이 들어있는 마이크로 캡슐(micro capsule)이 백설기의 건포도처럼 박혀있다. DCPD는 일종의 접착물질. 그리고 주변에는 접착물질을 굳게 하는 촉매제가 점점이 있다.
만약 플라스틱에 균열이 생기면 그 부분에 있는 캡슐이 터지게 된다. 캡슐 안에 있던 접착물질은 균열 부위를 따라 이동한다. 식물의 뿌리에서 잎까지 물이 전달되거나 실을 따라 물이 올라가는 모세관현상 때문이다. 접착물질은 곧 균열부분에 있는 촉매와 만나 굳게 되고 결국 틈을 메우게 된다. 실험 결과 자기치료가 된 플라스틱은 균열 전과 비교해 강도(剛度)가 90%까지 회복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플라스틱은 탄소로 이뤄진 작은 분자들이 사슬처럼 연결돼 있는 고분자 물질이다. 선박이나 자동차에 사용되는 플라스틱에 작은 균열이라도 생기면 강도가 급격히 떨어져 큰 사고를 불러올 수 있다. 또 미세전자기기를 구성하는 플라스틱에 균열이 생기면 전자제품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접착제 역시 고분자물질인 일종의 플라스틱이어서 작은 금이라도 생기면 접착력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자기치료 플라스틱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마이크로 캡슐을 이용한 자기치료 플라스틱은 같은 곳에 다시 균열이 발생하면 속수무책이다. 이미 그곳에 있는 마이크로 캡슐이 터진 상태라 접착물질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베크만연구소의 낸시 소토스(Sottos) 교수는 캡슐 대신 모세혈관과 같은 작은 통로(micro channel)들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모세혈관 모방해 업그레이드
연구팀이 지난 6월 재료공학 전문학술지인 ‘네이처 머티리얼즈’에 발표한 자기치료 플라스틱은 일종의 인공피부라고 할 수 있다. 인체의 바깥쪽 보호 피부막이 잘리면 모세혈관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안쪽 피부막이 잘려진 부분을 복구하기 위해서 영양분을 공급한다. 마찬가지로 자기치료 플라스틱에도 모세혈관과 같은 작은 통로들이 나있어 균열을 메우는 액체 접착물질을 공급한다.
플라스틱을 구부리면 휘어지는 바깥쪽이 갈라진다. 갈라진 틈에서는 미세 통로들의 끝이 밖으로 노출된다. 통로의 한쪽이 열리면 마찬가지로 모세관 현상에 의해 이곳으로 접착물질들이 흘러 들어온다. 접착물질은 미리 플라스틱 표면에 발라놓은 촉매와 반응해 굳게 된다. 연구팀은 같은 곳이 갈라져도 7번까지는 자기치료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자기치료된 곳이 또 갈라져도 다시 미세 통로를 통해 접착물질이 공급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방식도 한계는 있다. 상처가 심하면 흉터가 크게 남듯, 같은 곳이 여러 번 자기치료를 거치고 나면 플라스틱 표면에도 굳은 접착물질이 위로 불룩하게 솟아오른다. 이 상태에서 다시 균열이 생기면 액체 접착물질이 플라스틱 흉터에 막혀 표면까지 전달되기가 어렵다. 결국 표면에 있는 촉매를 만나지 못해 접착물질이 굳지 못하게 된다.
연구팀은 촉매를 위한 새로운 미세 통로를 만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전 연구에서 접착물질과 촉매를 플라스틱 내부에 똑같이 점점이 박아놓은 것과 비슷한 원리다. 균열이 생기면 미세 통로를 통해 접착물질과 촉매가 동시에 흘러 들어와 틈을 메우게 된다. 베크만연구소는 최근 이 같은 방식의 자기치료 플라스틱에 대한 실험을 마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콘크리트에도 적용=자기치료 플라스틱은 상용화되기에는 아직 가격이 너무 비싸다. 모세혈관 방식의 경우 접착물질을 계속 공급해줘야 같은 곳이 다시 갈라져도 치료할 수 있다. 유지비용이 계속 들어간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고가의 마이크로 칩이나 우주선처럼 극한 환경에 사용되는 플라스틱에서는 비용보다는 안전이 더 중요하므로 곧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건축물이나 군수제품도 안전이 강조되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분야다.
자기치료 콘크리트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제안됐지만 비용 때문에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 이같은 기능을 가진 ‘인텔리전트(intelligent) 콘크리트’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콘크리트 스스로 자신의 성능을 떨어뜨리는 문제를 진단하고 억제 또는 회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균열 자기치료 인텔리전트 콘크리트에는 고분자 물질 캡슐이 들어있다. 만약 콘크리트가 갈라지면 그곳의 캡슐이 깨지면서 고분자 물질이 흘러나와 틈을 메우고 더 이상의 균열을 방지한다.
시멘트가 물과 만났을 때 나타나는 수화(水和)열을 막아주는 콘크리트도 있다. 음식을 너무 급하게 익히면 표면이 갈라지듯 콘크리트도 굳을 때 수화열이 나면 나중에 균열이 생겨 구조물이 약해진다. 수화열 제어 인텔리전트 콘크리트는 굳을 때 일정 온도에 도달하면 수화 반응 지연제가 들어 있는 마이크로캡슐이 녹아 더 이상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막는다.
국방도 가격보다 기능이 우선되는 분야다. 자기치료 플라스틱 연구에는 미 공군성이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그만큼 군사적 가치가 높다는 말이다. 이미 사용되고 있는 것도 있다. 미국은 헬리콥터의 연료탱크에 자기치료 방식을 도입했다. 연료탱크를 이루는 벽에 연료와 반응하면 부풀어 오르는 고분자 고무가 들어있다. 만약 총알이 연료탱크를 관통해 연료가 흘러나오면 이 고분자 고무가 곧바로 부풀어 올라 총탄 구멍을 메우는 방식이다.
미 일리노이대가 개발한 마이크로 캡슐 형태의 자기치료 플라스틱. 날개에 균열이 생기면 그곳에 있는 캡슐이 터져 접합물질이 나와 틈을 메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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