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처럼 '온 국민이 수학에 목 매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수학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국내 수학 연구의 산실'로 꼽히는 고등과학원과 국가수리과학연구소가 대중 강연에 신경 쓰는 배경에도 '전 국민의 수학 혐오(혹은 공포)증'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다. 실제로 고등과학원의 경우 지난 2월 7일 18시 28분 '오일러 상수(e=2.71828…) 기념 특강'을 개최한 데 이어 지난달 14일엔 '파이(π=3.14)데이'를 맞아 초등생 대상 수학 강연을 펼쳤다. 지난 16일, 김영주(39) 고등과학원 박사와 윤강준(45) 국가수리과학연구소 박사에게서 '수포(수학 포기) 청소년에게 건네는 메시지'를 들었다.
◇수학의 핵심은 '지금, 여기'
- 장은주 객원기자
◇'잘할 수 있다' 뻔뻔해지길
전라도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란 윤 박사는 중학교 때부터 자타공인 '수학 박사'였다. 사교육은 구경도 못했던 환경에서 그가 수학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풀리지 않는 문제를 몇 시간씩 고민했던 열정과 집념이었다. "중학교 때 혼자 고교생용 '수학의 정석'을 공부했어요. 해답을 보지 않고 풀릴 때까지 이리저리 궁리하곤 했죠. 새벽 서너 시까지 공부해도 한두 문제 푸는 게 고작이었지만 어찌어찌 한 문제가 풀리면 알몸으로 목욕탕으로 뛰쳐나가 '유레카(Eureka)!'를 외친 아르키메데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기뻤습니다"(웃음).
김 박사는 "수학자가 된 지금도 수학은 내게 늘 어려운 학문"이라고 말했다. "도서관에서 온종일 고민해도 풀리지 않던 문제가 길을 걷다 갑자기 해결되곤 해요. 중고생 때도 그런 경험 때문에 수학을 좋아했죠. 며칠간 고민하던 문제가 등하굣길 버스 안에서 풀렸을 때의 희열이란…. 학창 시절에 이런 기분을 자주 맛봐야 수학에 대한 흥미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윤 박사는 수학을 잘하기 위한 2대 요건으로 '몰입'과 '자신감'을 꼽았다. "학창시절 수학에 관해서만큼은 저에 대한 학교 측 기대가 엄청났어요. 기대를 많이 받을수록 자신감을 갖게 됐고, 그게 좋은 성과로 이어졌죠. 요즘 청소년에게도 자신감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거뜬히 풀 수 있는 적정 수준의 문제는 내팽개친 채 어려운 문제를 억지로 풀게 하면 결국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마련이에요."
김 박사에 따르면 몰입·자신감 외에 '뻔뻔함'도 수학 잘하는 비결 중 하나다. "수학은 '못하는 게 당연할 정도로' 굉장히 어려운 학문이에요. 설령 지금 잘 못하더라도 '난 잘할 수 있어'라고 다소 뻔뻔하게 생각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정의'만 잘해도 반은 성공
윤 박사는 "용어·기호의 정의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냅다 문제만 풀어야 하는 오늘날의 수학 교육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수학은 기호논리학이에요. 기호를 모르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학문이죠. 영어로 치면 영단어를 제 입으로 말해보지 않고선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가 없는 논리와 마찬가집니다." 같은 맥락에서 그가 생각하는 수학 공부의 첫걸음은 '기호 정의'다. '수학 학습은 교과서 속 기호의 뜻과 쓰임을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 박사가 꼽는 수학 학습 비결은 '한 개념이라도 제대로 알기'다. "수학은 100개를 '대충' 알면 0점밖에 못 받지만 50개를 '정확히' 알면 50점은 받을 수 있는 과목이에요. 한 개념이라도 정확히 알도록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수학 정복의 길이 열릴 거예요."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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