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목·자사고 '쏠림'…일반계고 '슬럼화'
“한 반에 두세명은 오전 11시에 등교했다가 점심만 먹고 오후 1시쯤 집에 가요. 인문계는 80%, 자연계는 40% 학생들이 거의 수업시간에 자거나 딴짓한다고 보면 됩니다. 시험 때 잠만 자고 가는 애들도 수두룩합니다. 가고 싶은 대학도 장래 희망도 없기 때문으로, 학교 전체가 무기력증에 걸린 것 같습니다.” 서울 은평구 A일반계고 3학년 김모(18)군은 15일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학교 분위기를 전하며 요즘처럼 이 학교에 온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했다.
김군이 A고 진학을 원한 것은 다니던 중학교와 같은 재단인 데다 친한 친구들과 고등학교에서도 함께 공부하고 싶어서였다.
김군이 중학생 때만 해도 A고는 괜찮았다. 그는 “4∼5년 전에는 우리 학교에서도 6∼7명씩 서울대에 갔다”며 “내가 고1 되던 해 인근에 자율형사립고(자율고)가 생긴 뒤로 대학 진학률과 학습 분위기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A고에서는 지난해 서울대에 들어간 학생이 두 명뿐인데, 그나마 지역균형선발로 간신히 들어갔다는 게 김군의 귀띔이다. 흔히 ‘인서울(in seoul)’이라고 부르는 서울 소재 대학에 가는 학생도 전교에서 20명 정도라는 것.
다만 A고는 취업에 관심이 많은 3학년을 위해 직업반 한 학급을 운영하는데 올해는 3학년 전체의 20%에 육박하는 80명이나 직업반을 택했다.
김군은 “직업반에 가는 친구들은 그나마 꿈이 있는 아이들”이라며 “공부든 취업이든 목표를 가졌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친구들이 훨씬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A고와 같이 일반계고의 위기가 심각하다. 특히 수월성 교육을 강조한 이명박정부에서 ‘고교 다양화 정책’을 내세워 자율고와 특성화고를 확대하면서 일반계고의 학력 저하가 급전직하다.
자율고와 특성화고는 외국어고와 과학고 등 특목고와 함께 신입생을 일반계고보다 먼저 선발한다. 자연스레 중학교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과 학부모는 이들 학교에 진학하기를 원한다. 수업 분위기와 교육환경이 좋고 상위권 대학 진학에도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공부에는 자신이 없으나 진로를 확실히 정한 학생들은 특성화고를 택한다.
이로 인해 이들 학교에 가지 못하고 일반계고에 진학한 학생들은 열패감을 가질 수밖에 없고, 우수 자원을 많이 빼앗긴 일반계고의 면학 분위기나 의욕이 떨어져 학력이 저하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서울 성북구 B일반계고 강모 교사는 “시험문제를 풀 때도 어떤 학생은 문제 자체를 못 푸는 게 아니라 문제의 지문과 보기에 나와 있는 용어의 뜻을 몰라서 못 풀기도 한다”며 “이렇게 성적 편차가 심하다 보니 교과지도가 매우 힘들다”고 전했다.
그는 심지어 ‘우리가 지구라는 동그란 공 모양의 안쪽 공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고등학생도 여럿 만났다며 혀를 찼다.
경기도 부천 C일반계고의 한모 교사는 한숨부터 쉬었다. 그는 “수업시간에 자는 학생을 깨우면 귀찮아하고 성질을 내는데, 한두 명도 아니고 10명 이상이 단체로 엎드려 자는데 이걸 어떻게 하느냐”며 “이 학생들은 왜 학교에 와야 하는지,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른 채 졸업장을 따려고 출근도장만 찍고 있는 형국”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실제 일반계고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중학교 내신성적을 보면 자율고 도입을 전후로 양극화가 뚜렷하다.
서울시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자율고가 없던 2009년 중학교 내신 상위 10% 이상이 일반계고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의 9.8%였다. 그러나 2010년 9.0%로 떨어지더니 2011년엔 8.1%에 머물렀다. 반면 하위 20% 이상의 비율은 같은 기간 15.3%에서 18.6%로 늘었다.
사설 입시기관 하늘교육이 지난해 전국 일반계고 1학년의 1학기 수학 내신성적을 분석한 결과 평균 50점도 안 되는 학교가 전체의 절반에 육박했다. 영어도 평균 50점 미만인 학교가 16.8%나 됐다. 상당수 학생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 소재 일반계고의 2012학년도 수능성적을 조사해 보니, 70개 학교에서 학생 3분의 1 이상이 언어와 수리, 외국어 영역에서 4년제 대학 진학이 어려운 7∼9등급을 받았다.
일반계고의 열악한 교육여건도 문제다. 일반계고의 학생 1인당 교사 수는 0.06명으로 특목고 0.11명의 절반 수준이다. 학급당 학생 수도 일반계고는 34.92명으로 자율고(34.2명)나 특목고(28.5명)보다 많다.
학생수 대비 각종 학교 자원도 떨어진다. 특목고와 비교했을 때 일반계고의 어학실습실은 4분의 1, 컴퓨터실은 3분의 1, 과학실습실은 2분의 1 수준이다. 이런 사정 탓에 중학교 자녀를 둔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일반계고를 꺼리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 주요대학에 다니는 큰 딸과 작은 딸을 각각 외고와 일반계고에 보냈던 신모씨는 중학교 2학년인 막내아들을 일반계고에 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신씨는 “특목고와 일반계고는 면학 분위기 차이가 크다”며 “작은 딸이 다닌 학교도 선생님들이 진학·학습지도에 애를 먹고 우수학생들은 수업에 집중을 못해 상당히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특히 일반계고의 장점으로 꼽혔던 내신 상대평가마저 내년부터 절대평가로 바뀌면서 일반계고 기피를 부채질하고 있다.
중3 딸을 둔 학부모 방모씨는 “내신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인근 혜화여고를 보내려고 했는데 절대평가로 바뀐다니 차라리 전문성을 배우고 취업에 도움이 되는 특성화고에 보내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의 D고 이모 교사는 “어린 학생들이라 아직 실패 경험이 별로 없다 보니 전기고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것 자체에 크게 낙담하는 경향이 있다”며 “의욕이 떨어진 학생들에게 ‘오히려 일반계고 와서 더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거나 ‘일류대 못 간다고 너의 삶이 일류가 아닌 건 아니다’라고 달래면서 수업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일반계고 위기 타개를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절실함을 전했다.
세계일보
김군이 A고 진학을 원한 것은 다니던 중학교와 같은 재단인 데다 친한 친구들과 고등학교에서도 함께 공부하고 싶어서였다.
김군이 중학생 때만 해도 A고는 괜찮았다. 그는 “4∼5년 전에는 우리 학교에서도 6∼7명씩 서울대에 갔다”며 “내가 고1 되던 해 인근에 자율형사립고(자율고)가 생긴 뒤로 대학 진학률과 학습 분위기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A고에서는 지난해 서울대에 들어간 학생이 두 명뿐인데, 그나마 지역균형선발로 간신히 들어갔다는 게 김군의 귀띔이다. 흔히 ‘인서울(in seoul)’이라고 부르는 서울 소재 대학에 가는 학생도 전교에서 20명 정도라는 것.
다만 A고는 취업에 관심이 많은 3학년을 위해 직업반 한 학급을 운영하는데 올해는 3학년 전체의 20%에 육박하는 80명이나 직업반을 택했다.
김군은 “직업반에 가는 친구들은 그나마 꿈이 있는 아이들”이라며 “공부든 취업이든 목표를 가졌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친구들이 훨씬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A고와 같이 일반계고의 위기가 심각하다. 특히 수월성 교육을 강조한 이명박정부에서 ‘고교 다양화 정책’을 내세워 자율고와 특성화고를 확대하면서 일반계고의 학력 저하가 급전직하다.
자율고와 특성화고는 외국어고와 과학고 등 특목고와 함께 신입생을 일반계고보다 먼저 선발한다. 자연스레 중학교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과 학부모는 이들 학교에 진학하기를 원한다. 수업 분위기와 교육환경이 좋고 상위권 대학 진학에도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공부에는 자신이 없으나 진로를 확실히 정한 학생들은 특성화고를 택한다.
이로 인해 이들 학교에 가지 못하고 일반계고에 진학한 학생들은 열패감을 가질 수밖에 없고, 우수 자원을 많이 빼앗긴 일반계고의 면학 분위기나 의욕이 떨어져 학력이 저하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서울 성북구 B일반계고 강모 교사는 “시험문제를 풀 때도 어떤 학생은 문제 자체를 못 푸는 게 아니라 문제의 지문과 보기에 나와 있는 용어의 뜻을 몰라서 못 풀기도 한다”며 “이렇게 성적 편차가 심하다 보니 교과지도가 매우 힘들다”고 전했다.
그는 심지어 ‘우리가 지구라는 동그란 공 모양의 안쪽 공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고등학생도 여럿 만났다며 혀를 찼다.
경기도 부천 C일반계고의 한모 교사는 한숨부터 쉬었다. 그는 “수업시간에 자는 학생을 깨우면 귀찮아하고 성질을 내는데, 한두 명도 아니고 10명 이상이 단체로 엎드려 자는데 이걸 어떻게 하느냐”며 “이 학생들은 왜 학교에 와야 하는지,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른 채 졸업장을 따려고 출근도장만 찍고 있는 형국”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실제 일반계고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중학교 내신성적을 보면 자율고 도입을 전후로 양극화가 뚜렷하다.
서울시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자율고가 없던 2009년 중학교 내신 상위 10% 이상이 일반계고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의 9.8%였다. 그러나 2010년 9.0%로 떨어지더니 2011년엔 8.1%에 머물렀다. 반면 하위 20% 이상의 비율은 같은 기간 15.3%에서 18.6%로 늘었다.
사설 입시기관 하늘교육이 지난해 전국 일반계고 1학년의 1학기 수학 내신성적을 분석한 결과 평균 50점도 안 되는 학교가 전체의 절반에 육박했다. 영어도 평균 50점 미만인 학교가 16.8%나 됐다. 상당수 학생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 소재 일반계고의 2012학년도 수능성적을 조사해 보니, 70개 학교에서 학생 3분의 1 이상이 언어와 수리, 외국어 영역에서 4년제 대학 진학이 어려운 7∼9등급을 받았다.
일반계고의 열악한 교육여건도 문제다. 일반계고의 학생 1인당 교사 수는 0.06명으로 특목고 0.11명의 절반 수준이다. 학급당 학생 수도 일반계고는 34.92명으로 자율고(34.2명)나 특목고(28.5명)보다 많다.
학생수 대비 각종 학교 자원도 떨어진다. 특목고와 비교했을 때 일반계고의 어학실습실은 4분의 1, 컴퓨터실은 3분의 1, 과학실습실은 2분의 1 수준이다. 이런 사정 탓에 중학교 자녀를 둔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일반계고를 꺼리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 주요대학에 다니는 큰 딸과 작은 딸을 각각 외고와 일반계고에 보냈던 신모씨는 중학교 2학년인 막내아들을 일반계고에 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신씨는 “특목고와 일반계고는 면학 분위기 차이가 크다”며 “작은 딸이 다닌 학교도 선생님들이 진학·학습지도에 애를 먹고 우수학생들은 수업에 집중을 못해 상당히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특히 일반계고의 장점으로 꼽혔던 내신 상대평가마저 내년부터 절대평가로 바뀌면서 일반계고 기피를 부채질하고 있다.
중3 딸을 둔 학부모 방모씨는 “내신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인근 혜화여고를 보내려고 했는데 절대평가로 바뀐다니 차라리 전문성을 배우고 취업에 도움이 되는 특성화고에 보내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의 D고 이모 교사는 “어린 학생들이라 아직 실패 경험이 별로 없다 보니 전기고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것 자체에 크게 낙담하는 경향이 있다”며 “의욕이 떨어진 학생들에게 ‘오히려 일반계고 와서 더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거나 ‘일류대 못 간다고 너의 삶이 일류가 아닌 건 아니다’라고 달래면서 수업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일반계고 위기 타개를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절실함을 전했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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