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도 안 하고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아들 ‘공부의 신’으로 만든 엄마의 비결은?
대화의 신 이정숙, 공부의 신 조승연 모자
이끈 부모의 성공 교육철학을 연재한다.
▲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
화려한 학력에 7개 국어를 구사하고, 내로라하는 다국적 명품 브랜드에서 고액의 러브콜을 숱하게 받은 엄친아 조승연. 이쯤되면 ‘얼마나 피 터지게 공부했으면…’ ‘엄마가 꽤 극성이었겠네’ 싶지만, 전혀 아니다. 그는 학교 수업에 적응을 못해 툭 하면 숙제를 안 해 갔고, 성적도 별로였으며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왕따였다. 이런 아들을 ‘공부의 신’으로 이끈 주역은 말 한마디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대화전문가 이정숙씨다. 세 살 위인 조씨의 형은 미국 미시간대 건축과와 대학원을 수석 졸업하고 뉴욕 파킨스 이스트만 건축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모자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조승연씨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엄마는 가만히 앉아 있고 아들 조씨가 빨간색 모카포트에 에스프레소 커피를 끓여 내왔다. 조승연씨의 직업을 딱 잘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국내외 기업의 마케팅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클래식과 음악 등 통섭에 관한 강의도 하고 공부법 관련 상담 및 강연도 한다. 펴낸 책을 봐도 그의 통섭적인 면면이 드러난다. ‘공부기술’ 외에도 ‘그물망 공부법’ ‘비즈니스의 탄생’ ‘피리 부는 마케터’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등 16권의 책을 냈다. 또한 어원과 유래를 통해 영어를 배우는 프로그램 ‘오리진보카’(www.ustream.com/channel/originvoca)를 개발 중이다.
그는 미국에서 11년, 프랑스에서 5년여 공부하다가 27세에 군입대해 제대한 지 2년이 채 안 됐다. 군입대 전 그는 내로라하는 다국적 회사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프랑스어와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미술사와 음악을 전공한 그를 고액 연봉으로 모셔가겠다는 곳이 많았다. 그런 자리를 마다하고 왜 귀국했을까. 그는 “할 일이 있잖아요”라고 말을 뗐다.
“프랑스에서 눌러살면 편하겠죠. 연봉 2억원에 오전 9시 출근 오후 4시 퇴근, 1년에 두 달여 휴가에 아이를 낳으면 사립학교까지 보내주는 안정된 삶이 보장돼 있으니까. 그런데 프랑스 사람들은 발전이 있는 삶을 지향하지 않아요. 처음에는 프랑스인들의 평온한 삶이 이상적으로 보였어요. 하지만 뭔가 빠져 있다고 할까요? 한국인의 피가 흐르다 보니 뜨거움이 없는 삶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졌죠. 그러다 군대에서 한국의 대학생들을 보고 그 뜨거움을 쏟아낼 일을 찾았어요. 한국의 형편없는 교육제도가 얼마나 개선이 안 됐는지를 알고 깜짝 놀랐죠. 한국 학생들이 불쌍했어요. 이 아이들에게 제 경험을 살려서 즐기면서 공부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그물망 공부법’이라는 새로운 공부법을 창안했다. 놀면서 공부도 잘하고 성공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뽑아낸 공부법으로, 책상에 붙박이처럼 앉아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열린자세로 하는 공부다. 꽃병 하나를 봐도 ‘수정이 어떻게 생기는가?’(화학), ‘철석이란 물질은 도대체 무엇인가?’(지질학), ‘크리스털 병의 유래는?’(역사학) 식으로 호기심을 품고, ‘워크래프트’ 같은 컴퓨터 게임을 해도 인간 내면의 잔인함과 모순을 경험하고, 역사의 일부가 되어 전쟁터에 나가 보고, 독재자가 되어 남의 인생을 좌지우지해 보는 적극적인 경험을 통해서 이집트 대통령 무바라크나 리비아 대통령 카다피가 왜 현대 인류에게 축출 대상이 됐는가를 공부하는 식이다.
“사회가 초고속으로 변하는 이 시대에는 토털 인텔리가 필요합니다. 오늘의 선망 직업이 10년 후에는 사라져버릴 수 있죠. 시험 요령을 익히는 공부 대신 기초 지식을 연결하는 그물망식 공부를 하면 평소 실력만으로도 시험 종류나 유형에 상관없이 높은 성적을 거둘 수 있습니다. 세상에 쓸데없는 지식이란 없습니다. 언젠간 지식 그물망에 쓰이는 탄탄한 밧줄이 됩니다.”
그가 그물망 공부법을 착안하게 된 계기는 미국 유학 시절, 대대로 학자 집안인 유대인 친구 집에 가서 충격을 받고 나서다. 그는 “조슈아라는 친구의 집에 갔는데, TV 뉴스에 나오는 대선 주자들의 공약을 소재로 가족들이 두 시간 넘게 대화를 하더라. 세금 정책에서 시작해 루소와 홉스의 철학에 이르기까지, 일상이 공부였다. 그 아이는 아버지와 대화하듯 논술을 하면 만점이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그물망식 공부가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며 “그물망식으로 공부하는 사람은 처음에는 발전이 느려 보여도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격차가 점점 커진다”고 말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엄마의 인내’다. 성적이 좋지 않아도, 책상 앞에 앉아 있지 않아도 그저 지켜봐줄 수 있는 인내와 여유. 조승연씨는 엄마 이정숙씨를 “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엘레강스한 여인”이라며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엄마식 대화의 힘”이라며 힘주어 말한다.
조승연씨는 어릴 때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 아니었다. 고집 세고 자기 생각이 강한, 튀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땐 ‘왜 굳이 선생님한테 숙제 검사를 받아야 할까? 내가 숙제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지’ 하는 생각에 1년 내내 숙제를 해 놓고도 안 가져갔고, 중학교 때에는 영어학원에 있는 한국지도에서 독도가 일본해로 표기된 것을 보고 제작국가를 추적해 영국대사관에 항의전화를 하기도 했다. 주산학원에서는 “재래시장 아주머니도 전자계산기를 쓰는데 꼭 주산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까?”라며 학원 선생과 논쟁하다 “저능아” 소리를 듣고 일주일 만에 때려치웠다. 성적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과목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해 성적 편차가 심했고, 특히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과목의 성적은 낮았다. 원주의 작은 사립 초등학교에서 서울의 공립학교로 전학간 후에는 적응을 못해 왕따와 폭력에 시달렸다.
여자친구에 있어서도 엄마는 쿨했다. 공부는 손 놓고 프랑스 여자친구와 카페만 전전하는 아들을 보고 엄마는 “역시 엄마가 국제적으로 인기 있는 아들을 키웠다 이거지?”라고 말했고, 쟁쟁한 기업들의 스카우트 제의를 물리치고 이탈리아 여자친구와 유럽에 가서 포도농사를 짓겠다고 했을 때에도 엄마는 반대하지 않았다. 내심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묵묵히 지켜봐주다가 결국 헤어지자 엄마는 “인생 다 그런 거야. 그런 이별을 이겨내면서 소년이 남자로 성장하는 거지. 그런 아픔 한 번쯤 겪어보지 못한 남자는 멋이 없다”라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이정숙씨는 “아이들은 엄마의 말을 먹고 자란다”며 이렇게 말했다.
“저 역시 미국에서 커뮤니케이션 공부를 안 했으면 이렇게 키우지 못했을 거예요. 대화는 상대방의 생각을 끄집어내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죠. 일방적으로 내 생각을 말하는 건 대화가 아니에요. 아이의 생각을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부모의 잣대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이정숙씨는 KBS 공채 3기 아나운서로 입사해 20년간 근무하다가 공부에 대한 갈증을 느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 중학생이던 두 아들은 엄마의 공부를 위해 얼떨결에 동행한 셈이다. 그는 “미국으로 유학 전에도, 후에도 내 공부가 바빠서 아이들을 꼼꼼히 챙기지 못했다. 어차피 인간은 독립적인 존재다. 의도적 방치가 필요하다. 털털한 엄마들이 아들을 잘 키운다. 너무 잘 챙기는 엄마는 아이들의 그릇을 작게 만든다. 다만 공동생활에서 필요한 매너 같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승연씨에게 “엄마한테 서운한 적이 없었냐”고 묻자 그는 “가정부와 엄마는 다르다. 우리 엄마는 가정부가 아니다. 우리 엄마의 역할은 사회생활 멘토였다. 그런 엄마가 늘 자랑스러웠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의 대화를 먹고 자란 제가 이젠 거꾸로 엄마식 대화법을 설파하고 다닙니다. 엄마는 파 한 단을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키면서도 선택권을 주셨어요. ‘바쁘니?’ 먼저 물으시고 그렇다고 하면 ‘알았다’고 하고 시키지 않으셨어요. 늘 동등한 인격체로 대해주시면서 수평적인 대화를 하셨어요. 그러다 보면 서로 못할 말이 없죠. 늘 열린 사고와 열린 대화를 하게 돼요. 그게 글로벌 사회에서 큰 경쟁력이 됐습니다.”
이정숙씨의 자녀와의 대화법 TIP 성공을 부르는 엄마식 대화, 따로 있다 ❶ 자녀를 성공시킨 엄마의 말 무엇이든 네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야. / 자기 자신을 존중해야 한다. / 자신을 속이지 마라. / 공상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면 더 좋지 않겠니? / 겁내지 말고 해봐. 너라면 할 수 있어. ❷ 자녀를 불행으로 만든 엄마의 말 아버지가 다 알아서 할 거야. / 네가 하는 일은 뭐든지 다 옳다. / 누구도 너를 막지 못할 것이다. ❸ 엄마와의 대화를 즐기게 하는 말 네가 왜 속상한지 알지만 안 되는 것은 안 돼. / 이유를 들어보고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자. / 네가 그렇게 해주어서 엄마는 기뻐. / 사람이 중요하지 물건이 중요한 것은 아니야. / 정말 잘했네, 그런데 조금만 고치면 더 나을 것 같은데. ❹ 자녀에게 무시당하는 엄마의 말 너 또 그럴래? 그랬다가는 가만 안 둬! / 너만 힘드니? 엄마도 너만큼 힘들어. / 괜찮아, 네 마음대로 해. / 엄마가 다 해결해줄게. / 네가 어떻게 엄마한테 그럴 수 있어? / 돼지우리가 따로 없네. ❺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를 만드는 엄마의 말 엄마한테 소리 내 읽어줄래? / 네가 가르쳐줄래? / 네가 결정한 것은 네가 알아서 해. / 사전을 찾아보면 알 수 있을 텐데. / 혼자 공부할 자신 있으면 학원 그만 다녀도 돼. / 어떤 사람이 되고 싶지? ❻ 자녀의 성적을 떨어뜨리는 엄마의 말 공부는 안 하고 도대체 뭐하니? / 점수 올리면 네가 원하는 것 사줄게. / 집안일은 엄마가 할 테니 너는 공부나 해. / 엄마가 학원 등록해 놓았어. / 내가 창피해서 못 살아. / 너 좋으라고 하는 말이야. / 좋은 대학 못 나오면 사람 취급도 못 받아. ❼ 자녀의 성공을 좌우하는 엄마의 말 조금만 더 노력하면 잘할 수 있어. / 너를 믿는다. / 결정했으면 한 번 해봐. / 네가 자랑스럽다. / 누구나 실패할 수 있어. / 너는 소중한 사람이야. / 그 친구를 좋아하는 이유를 말해줘. / 이제 정말 어른이 되는구나. /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돼. ‘자녀를 성공시킨 엄마의 말은 다르다’(이정숙, 나무생각) 중에서 주간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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