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4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돌연히 언론에 등장했다. ‘힉스 입자를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외신이 먼저 보도하고 국내 통신사도 발빠르게 소식을 전했다. 힉스는 잠시지만 뉴스 검색어 순위권에 등장했다. 하지만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예전만큼 크게 다루지 않았다.
조금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은 건 뉴스를 읽는 독자뿐 아니었다. 많은 언론사 기자들도 당혹스러웠다. 분명 작년 7월, 데이터 분석 결과 발표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며 힉스 입자를 찾았다고 발표했는데, 불과 8개월 만에 다시 힉스 입자를 발견했다고 발표하다니, 어찌된 일일까.
혼동하지 말자. 지난해 8월 과학동아 기획 기사 ‘힉스 A to Z’를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CERN은 당시 절대 힉스 입자를 ‘찾았다(discover)’는 말을 하지 않았다. 롤프 호이어 CERN 소장은 “우리가 드디어 해낸 것 같다”고 돌려 말했고, 공식 보도자료는 “힉스 입자와 일치하는 입자를 관측(observe)했다”고만 밝혔다. CERN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시 찾은 입자의 일부 특성을 확인했을 뿐 모든 특성을 밝히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관측은 물리학에서 ‘이제부터 자료를 모아 특성을 밝히는 단계에 돌입했다’는 뜻이다. 완전한 발견은 아닌 것이다. 작년 상황은 ‘이론물리학에서 오래 전부터 예측해 온 입자가 있는데, 적절한 질량을 지니는 미지의 입자를 새로 발견했다.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정황상 힉스일 가능성이 높다’였고, 당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이었다.
연구가 미진했던 것은 아니다. 입자물리학 연구는 데이터가 생명이다. 수없이 많이 일어나는 잡음 같은 양자역학 사건들 속에 숨은 ‘증거’를 찾기 위해서는 데이터량이 많아야 한다. 1조 개의 쌀알이 담긴 쌀가마니에 보리가 하나씩 들어 있는데, 가마니를 뜯어서 한눈에 보리를 찾을 확률은 지극히 낮다. 여러 가마니를 쏟아야 겨우 한 번 찾을까 말까다. 지난 해 CERN의 상태가 그랬다. “보리(힉스)를 닮은 뭔가가 있다”고 간신히 말할 정도의 데이터를 모은 상태였다.
그렇다면 다음 차례는 무엇일까. ‘뭔가’를 잘 분리해 모은 뒤 확대도 해보고 깨뜨려도 보며 보리의 성질을 확인해야 한다. 힉스 역시 스핀 등 ‘결정적인’ 성질을 확인해야 한다. 그러자면 다시 더 많은 데이터를 모아야 한다.
힉스 입자의 대표적인 성질은 스핀이 0이라는 점과 ‘패리티’라는 일종의 대칭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 발표는 바로 이 두 가지 특성을 확인했다는 내용이다. LHC는 2012년의 모든 데이터(작년 7월 시점에 비해 2.5배 수준)를 그러모아 분석한 결과 이 입자가 표준 모형의 힉스 입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발표했다.
한 차례 더 발표할 가치는 있었지만, 작년 성과의 재탕 느낌을 주는 것은 작년에 이미 올해 이 순간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입자물리학은 빔의 출력과 운영 계획 등이 모두 정해져 있기 때문에 언제 어느 정도의 데이터가 나오고, 이를 바탕으로 어떤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지 예상할 수 있다. 올해발표는 시간 문제였고, CERN도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또 이번 발표가 아직 모두를 속 시원하게 해 주지 못했다는 점도 이유다. 아직 모든 성질이 밝혀진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성질을 알아냈지만 이 외에도 밝혀내야 할 성질은 많다. 이런 특성에 따라서 표준모형의 힉스가 아닌, 다른 물리학 모형의 입자(예를 들어 초대칭모형에는 힉스가 여러 개다)로 재분류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조 인칸델라 CMS 대표가 “어떤 종류의 힉스 입자인지 밝혀내려면 갈 길이 멀다”고 밝힌 것도 이런 이유다.
힉스 입자는 이제 어느 정도 ‘발견’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상태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100%는 아니다. 올해 1월, LHC는 2년 예정으로 빔 출력을 2배로 높이는 공사를 시작했다. 실험은 멈췄고 데이터 수집도 중단됐다. 물리학의 위대한 발견의 순간은 미뤄졌다. 하지만 진정한 영광은 벼락 같이 한번에 오지 않는다. 과학동아
조금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은 건 뉴스를 읽는 독자뿐 아니었다. 많은 언론사 기자들도 당혹스러웠다. 분명 작년 7월, 데이터 분석 결과 발표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며 힉스 입자를 찾았다고 발표했는데, 불과 8개월 만에 다시 힉스 입자를 발견했다고 발표하다니, 어찌된 일일까.
혼동하지 말자. 지난해 8월 과학동아 기획 기사 ‘힉스 A to Z’를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CERN은 당시 절대 힉스 입자를 ‘찾았다(discover)’는 말을 하지 않았다. 롤프 호이어 CERN 소장은 “우리가 드디어 해낸 것 같다”고 돌려 말했고, 공식 보도자료는 “힉스 입자와 일치하는 입자를 관측(observe)했다”고만 밝혔다. CERN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시 찾은 입자의 일부 특성을 확인했을 뿐 모든 특성을 밝히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관측은 물리학에서 ‘이제부터 자료를 모아 특성을 밝히는 단계에 돌입했다’는 뜻이다. 완전한 발견은 아닌 것이다. 작년 상황은 ‘이론물리학에서 오래 전부터 예측해 온 입자가 있는데, 적절한 질량을 지니는 미지의 입자를 새로 발견했다.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정황상 힉스일 가능성이 높다’였고, 당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이었다.
연구가 미진했던 것은 아니다. 입자물리학 연구는 데이터가 생명이다. 수없이 많이 일어나는 잡음 같은 양자역학 사건들 속에 숨은 ‘증거’를 찾기 위해서는 데이터량이 많아야 한다. 1조 개의 쌀알이 담긴 쌀가마니에 보리가 하나씩 들어 있는데, 가마니를 뜯어서 한눈에 보리를 찾을 확률은 지극히 낮다. 여러 가마니를 쏟아야 겨우 한 번 찾을까 말까다. 지난 해 CERN의 상태가 그랬다. “보리(힉스)를 닮은 뭔가가 있다”고 간신히 말할 정도의 데이터를 모은 상태였다.
그렇다면 다음 차례는 무엇일까. ‘뭔가’를 잘 분리해 모은 뒤 확대도 해보고 깨뜨려도 보며 보리의 성질을 확인해야 한다. 힉스 역시 스핀 등 ‘결정적인’ 성질을 확인해야 한다. 그러자면 다시 더 많은 데이터를 모아야 한다.
힉스 입자의 대표적인 성질은 스핀이 0이라는 점과 ‘패리티’라는 일종의 대칭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 발표는 바로 이 두 가지 특성을 확인했다는 내용이다. LHC는 2012년의 모든 데이터(작년 7월 시점에 비해 2.5배 수준)를 그러모아 분석한 결과 이 입자가 표준 모형의 힉스 입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발표했다.
한 차례 더 발표할 가치는 있었지만, 작년 성과의 재탕 느낌을 주는 것은 작년에 이미 올해 이 순간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입자물리학은 빔의 출력과 운영 계획 등이 모두 정해져 있기 때문에 언제 어느 정도의 데이터가 나오고, 이를 바탕으로 어떤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지 예상할 수 있다. 올해발표는 시간 문제였고, CERN도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또 이번 발표가 아직 모두를 속 시원하게 해 주지 못했다는 점도 이유다. 아직 모든 성질이 밝혀진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성질을 알아냈지만 이 외에도 밝혀내야 할 성질은 많다. 이런 특성에 따라서 표준모형의 힉스가 아닌, 다른 물리학 모형의 입자(예를 들어 초대칭모형에는 힉스가 여러 개다)로 재분류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조 인칸델라 CMS 대표가 “어떤 종류의 힉스 입자인지 밝혀내려면 갈 길이 멀다”고 밝힌 것도 이런 이유다.
힉스 입자는 이제 어느 정도 ‘발견’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상태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100%는 아니다. 올해 1월, LHC는 2년 예정으로 빔 출력을 2배로 높이는 공사를 시작했다. 실험은 멈췄고 데이터 수집도 중단됐다. 물리학의 위대한 발견의 순간은 미뤄졌다. 하지만 진정한 영광은 벼락 같이 한번에 오지 않는다. 과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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