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19일 수요일

유튜브 CEO의 엄마 “학비 안대줘...헬리콥터 맘 되지 마라”

 

미국 베스트셀러 ‘용감한 육아’ 저자 에스터 워지츠키 인터뷰


큰딸은 유튜브 CEO, 둘째 딸은 소아과 교수, 막내는 유전자검사기업 CEO - 왼쪽부터 막내딸 앤(유전자 검사·분석업체‘23앤드미’CEO), 둘째 딸 재닛(UC샌프란시스코 소아과 교수), 엄마 에스터, 큰딸 수전(유튜브 CEO). 에스터는“수백 명의 한국 학생들을 가르쳐봤는데 모두 굉장히 똑똑했다”며 “좋은 DNA를 지니고 있으니 한국 부모들이 지금보다는 자녀들을 좀 믿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큰딸은 유튜브 CEO, 둘째 딸은 소아과 교수, 막내는 유전자검사기업 CEO - 왼쪽부터 막내딸 앤(유전자 검사·분석업체‘23앤드미’CEO), 둘째 딸 재닛(UC샌프란시스코 소아과 교수), 엄마 에스터, 큰딸 수전(유튜브 CEO). 에스터는“수백 명의 한국 학생들을 가르쳐봤는데 모두 굉장히 똑똑했다”며 “좋은 DNA를 지니고 있으니 한국 부모들이 지금보다는 자녀들을 좀 믿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자식에게 어려움 없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양육의 목표는 아니다. 힘든 경험은 인간을 성장시킨다. 우리 부부는 형편이 넉넉했지만 아이들 대학원 학비를 대주지 않았다. 큰딸 수전은 이 때문에 오랫동안 내게 화가 나 있었다. 그렇지만 수전은 제 힘으로 대학원을 다녔고, 집도 샀다. 내가 ‘헬리콥터 엄마’라 주택담보대출을 갚아 줬더라면 수전이 그 집 차고를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에게 빌려주지도 않았을 거고 그 차고에서 구글이 탄생하는 일도 없었을 거다.”

이런 이야기를 거침없이 늘어놓는 엄마는 에스터 워지츠키(80). 수전 워지츠키 유튜브 CEO의 어머니다. 둘째 딸 재닛은 UC샌프란시스코 소아과 교수, 막내딸 앤은 유전자 검사·분석업체 ’23앤드미' CEO다. 에스터 워지츠키는 미국서 손꼽히는 교육 전문가. 대학 졸업 후 기자 생활을 하다 1984년부터 캘리포니아 팰로앨토 고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경력을 살려 저널리즘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실리콘밸리 거물들이 자녀를 이 프로그램에 보내면서 유명해졌다. 그의 양육 철학을 담은 책 ‘용감한 육아’(반비)가 최근 출간됐다. 이메일과 줌으로 워지츠키를 만났다.

에스터 워지츠키의 '용감한 육아'./반비
에스터 워지츠키의 '용감한 육아'./반비

그가 책에서 밝힌 ‘성공적인 인간을 길러내는 5가지 원칙’은 ‘TRICK’. 신뢰(trust), 존중(respect), 자립(independence), 협력(collaboration), 친절(kindness)의 약자다. 워지츠키는 “아이들을 키울 때 독립심을 길러주는 걸 목표로 삼았다”고 했다. “스스로 옷 입고 밥 차려먹기 등 기본적인 생활 스킬을 일찍 습득하도록 가르쳤다. 성적을 강조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성적을 기준으로 ‘나 정말 못하는구나’ 낙심하길 바라지 않아서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은 자존감 높은 인간으로 자라났다. 자기 자신을 믿고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어서다.”

책의 원제는 ‘How to Raise Successful People(성공한 사람 기르는 법)’. 워지츠키가 생각하는 ‘성공한 사람’이란 ‘자신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꿈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딸들이 자라서 지금 같은 일을 하리라 상상하지 못했다. 수전은 나처럼 선생님이 될 거라 생각했다. 재닛은 역사를 좋아하니 관련 일을 하지 않을까 했고 스케이트 타는 걸 제일 좋아하던 앤은 ‘대체 뭐가 되려나’ 했다. 다만 딸들이 독립적으로 꿈을 좇기를 바랐다. 통제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기본적인 의식주를 영위하고 교우관계를 누릴 정도의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 제 꿈을 좇아 사는 것이 성공한 삶이라 생각한다.”


'용감한 육아'를 쓴 에스터 워지츠키. 그는 "수백 명의 한국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모두 다 놀랄만큼 똑똑했다. 훌륭한 DNA를 지녔으니 한국 부모님은 아이를 좀 믿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용감한 육아'를 쓴 에스터 워지츠키. 그는 "수백 명의 한국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모두 다 놀랄만큼 똑똑했다. 훌륭한 DNA를 지녔으니 한국 부모님은 아이를 좀 믿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두 딸을 엄격하게 통제해 하버드·예일 로스쿨에 보낸 에이미 추아 예일대 교수의 ‘타이거 마더 양육’을 지속적으로 비판해 왔다. “‘타이거 양육'의 동기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이들의 권한과 힘을 빼앗게 된다. 이런 양육을 받다 보면 아이들이 ‘내가 성공하려면 엄마·아빠 도움을 늘 받아야 하는구나’ 생각하게 되니까. 부모가 할 일은 뷔페를 차려주듯 아이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주는 것이다. 앤은 음악에 재능이 뛰어났지만 피아노 레슨을 거부하고 스케이트 선수가 되겠다고 했다. 나는 물론 ‘대체 왜 그게 되고싶을까' 생각했지만 결론적으로 아이 의사를 존중했다.”

젊은 시절 남편 및 세 딸과 함께 한 에스터 워지츠키./에스터 워지츠키 제공
젊은 시절 남편 및 세 딸과 함께 한 에스터 워지츠키./에스터 워지츠키 제공

워지츠키 자신이 꿈을 좇아 독립적으로 산 사람이다. 그는 가난한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자랐다. 랍비인 할아버지는 그에게 열여덟 살이 되면 돈 많은 유대인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고 했다. 비석(碑石) 만드는 일을 하던 아버지는 딸에게 대학교육을 시킬 생각이 없었다. 워지츠키는 18세 때인 1959년 8월 가방 두 개를 들고 전액 장학금을 준 버클리 대학행 버스에 올랐다.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영문학과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 2학년 때 남편(스탠리 워지츠키 스탠퍼드대 명예교수)을 만났다. “내가 열 살 때 마루에서 놀던 남동생이 아스피린을 여러 알 삼킨 후 숨졌다. 엄마의 전화를 받은 의사는 ‘아이를 그냥 재우라’고 조언했는데 이민자 출신 여성인 엄마는 권위를 가진 남자 의사에게 감히 의심을 품고 되물어보지 못한 것 같다. 당시 엄마가 용기를 내 질문할 수 있었다면 남동생은 살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비극을 겪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남들이 비웃을까 겁내지 말고 질문을 하자고, 세상을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이해하겠다 결심했다.”

출산율 저하는 한국과 미국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현상. 워지츠키는 “사람들이 자녀를 갖기 꺼리는 건 아이의 행복을 책임져주어야 할 것 같아 부담을 느끼기 때문인데 그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자주 ‘엄마, 나 너무 심심해’라고 한다. 그러나 부모는 광대가 아니다. ‘선생님, 이거 너무 재미없어요’ 하는 학생들에게 나는 ‘원래 인생이란 지루한 거란다’라고 답한다. 재미와 행복을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는 아이가 되도록 기르는 게 중요하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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