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동안 유럽에서는 수학교육을 언어교육과 함께 기초소양교육의 양대 기둥으로 삼아왔다. 왜 그렇게 수학을 중시하고, 왜 누구나 어려운 수학을 공부해야 할까. 학생들은 대개 그저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를 할 뿐이다. 성인들 중에는 “기본적인 개념만 이해하면 됐지 왜 어렵게 배배 꼰 문제들까지 풀어야 하죠?”라든가 “어렵게 배웠던 수학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써먹은 적이 없어요”라고 하는 분들이 많다.
수학공부를 중시하는 것은 ‘수학적 지식’을 나중에 잘 써먹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사고력을 키우는 것이 주요 목적이라 할 수 있다. 흔히 수학공부는 논리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을 키워준다고 말한다. 이런 추상적인 능력 외에도 학생들이 수학공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점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첫번째, 학생들은 수학공부를 통해 좋은 학습 태도를 기를 수 있다. 수학 문제를 풀면서 책상머리에 오랫동안 붙어 앉아있는 습관을 기를 수 있고, 깊게 사고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 학습도 습관이다. 학습하는 습관이 몸에 잘 붙게 하는 데에는 수학공부만 한 게 없다. 수학 문제 푸는 데에 빠지면 몇 시간은 금방 간다. 그래서 수학을 잘하는 학생들이 다른 과목도 잘하는 이유는 (그들의 머리보다는) 그들이 수학공부를 통해 얻은 학습 태도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좋은 학습 태도는 공부할 때만이 아니라 성인이 되어 일을 할 때도 필요하다. 한 보험회사 임원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수학공부를 많이 한 사원은 수학적 사고력 그 자체보다는 문제를 대할 때의 태도가 다릅니다.”
작업기억, 업무수행의 중요 요소
두번째 이점은 수학적 사고법이다. 그중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작업기억(working memory)’이다. 작업기억은 작업 중에 얻은 정보를 일시적으로 유지하면서 학습, 이해, 판단 등을 계획하고 수행하는 능력을 말한다. 최근에는 많은 심리학자·교육학자들이 이것에 주목하고 있고, 이것이 학습 능력에 미치는 영향이 IQ(지능지수)보다 더 크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온다. 단기기억과 다른 점은 단기기억은 정보를 가공 없이 그대로 기억하고 유지하는 것이고 작업기억은 ‘정보의 조작’이 수반되는 것이다.
수학에서 ‘17×21’과 같은 계산을 할 때도 몇 번 곱셈을 한 후에 그 값을 더하게 되는데 각 단계에서 얻은 값을 기억했다가 그것을 다음 단계에 적용하는 것이 작업기억의 간단한 예이다. 모든 논리적·수학적 사고는 두 가지 과정의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추상적인 개념이나 정보를 머릿속에 잘 넣는 과정이고 또 다른 과정은 그것을 잠시 기억하고 있다가 그 바로 다음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 두 번째 과정이 바로 작업기억이다. 예를 들어 √2가 무리수임을 귀류법을 써서 증명하는 과정을 보면, 우선 ‘무리수’와 ‘귀류법’이라는 개념을 머릿속에 넣어야 한다. 여기에서 귀류법이란 “결론이 참이 아니라면 모순이다”라는 것을 통해 결론이 참임을 증명하는 증명법이다. 그러면 증명은 “√2가 무리수가 아닌 유리수라 하자”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2=q/p라 놓은 후 그다음 단계들로 접어드는데 이 단계들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작업기억이다.
작업기억은 학생들의 학업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된 후에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연관하여 새로운 지식이나 개념을 익히고 적용하는 과정에서도 중요하다. 한 회사에 새로 입사한 사원이 회사의 주요 업무를 파악하고 실행하는 과정, 기존의 사원들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수행하는 과정, 중요한 사안에 대하여 판단하고 결정하는 과정 등에서 작업기억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경향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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