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4일 토요일

장애인 배려는 결국 나를 위한 것


인간승리와 불행극복 과정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 돼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시각 장애를 딛고 사법고시 2차 시험을 통과한 최영씨의 이야기가 최근 세간의 화제다. 그의 인간승리 이면에는 주변의 도움과 보조공학기기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또한 법무부는 제도를 바꿔 그와 같은 처지에 있는 시각장애인들이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점자(點字) 문제집 및 음성지원 컴퓨터를 지원했다고 한다.

최영씨가 사용한 보조공학기기 가운데에는 음성합성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것은 스캔한 텍스트 이미지를 먼저 전자활자로 바꾼 다음, 마치 사람이 읽듯이 컴퓨터가 책의 내용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이다. 예전 같으면 생각하기도 힘든 놀랄 만한 발전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 말, 우리 글에 대한 전자화가 영어에는 두말할 것도 없고 다른 아시아 언어들에 비해서도 뒤처져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글의 광학 텍스트 인식률은 크게 떨어진다. 장애인들이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를 꾸준히 개선해야 하는데, 문제는 시장 규모가 작아 기업들이 개발을 기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글음성인식기술도 마찬가지다. 한때는 정부와 기업들이 돈이 된다고 생각하여 앞다투어 개발하겠다고도 했으나, 지금은 시장에 변변한 상품 하나 없는 실정이다. 우리나라가 IT강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더욱이 작은 정부를 만든다는 기치하에 최근 들어 많은 장애 관련 예산들이 삭감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소수의 장애인들을 위해 많은 개발비용이 드는 보조공학기기와 기술개발에 투자하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인가 반문한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장애 보조공학기기에 대한 지원 여부를 경제논리로만 바라볼 수 있겠는가?

나는 얼마 전 나의 교통사고와 장애 경험을 바탕으로 한 책을 썼다. 책을 쓴 동기는 거창하게 내가 그 어려움을 강인한 정신으로 극복했다는 도덕적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척추손상이라는 장애가 어떤 것이고,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던가 하는 정보를 주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나와 우리 가족도 다른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책이 출간된 후 인터넷 서평이나 댓글에서 나타난 일반인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그동안 나약했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 불평만 해오던 자신을 반성했다는 등 새롭게 각오를 다짐하는 내용들이었다. 장애극복 이야기는 장애인들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들에게도 큰 자극제가 된다. 최영씨 같은 분의 성공사례가 이 어려운 시기에 많은 국민들에게 주는 희망과 용기를 돈으로 환산한다면 과연 얼마가 되겠는가.

아직까지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눈은 왠지 어색하다. 장애인 관련 단체나 사회봉사 단체 관련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왜 국가가 나서서 장애인을 도와주어야 되는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부족하다고 한다.

나는 장애인문제를 비롯해 성 차별, 나이 차별, 부의 대물림, 집단 이기주의, 획일화 등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아이로니컬하게도 빠른 경제성장에서 비롯된 후유증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는 거의 한 세대 만에 끼니를 걱정하던 개발도상국에서 공업화를 거쳐 선진 정보지식사회로 도약하고 있다. 소를 팔아 자식을 대학 보내던 시절에서 어느덧 글로벌 마켓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의 겉모습과 물질세계는 비약적으로 바뀌었는지 몰라도 생각이 바뀌는 데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우리가 지난날의 성공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그에 맞게 사고를 전환해야 한다. 이제 단순히 나와 우리 가족만을 생각하는 좁은 틀에서 벗어나 큰 사회의 일원으로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세를 갖추도록 의식적으로라도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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