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6일 월요일

勝兵先勝而後求戰 '도광양회(韜光養晦)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승리를 확보한 후에야 전쟁에 임한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승산(勝算) 이론'이다. 승산이란 우리말로 번역하면 '싸워서 이길 계산이 나오는가'이다. 즉 전쟁은 싸워서 이기려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것을 확인하러 들어간다는 말이다. 이길 계산이 안 나오면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손자병법의 핵심 철학이다. 단순히 이길 수 있다는 신념만 갖고 승산 없는 전쟁에 나갔다가는 병사들을 몰살시키고 나라만 망하게 한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전쟁은 오늘날로 말하면 일종의 투자나 사업이다. 여러 호족들이 병력과 물자를 내고 유능한 장군이 전쟁에서 조국을 위해 전쟁을 지휘하는 것은 오늘날 CEO가 투자자들을 대신해 기업을 경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번 투자를 잘못하면 직원들이 상처를 입고 회사가 흔들리는 것처럼 전쟁도 한번 잘못 결정하면 사람의 목숨과 국가의 존망이 흔들린다는 경고를 손자병법은 하고 있다.

손자병법은 승산 있는 군대와 승산 없는 군대의 각각 5가지의 특징을 이렇게 말한다. 먼저 승산 있는 군대의 특징이다. 첫째, 상하가 같은 꿈을 가지고 있는 조직은 승리한다.(上下同欲者勝) 둘째, 준비된 자가 준비 안 된 상대와 싸우면 승리한다.(以虞待不虞者勝) 셋째, 싸울만한 상대인지 아닌지를 미리 판단할 수 있는 조직은 승리한다.(知可以戰與不可以戰者勝) 넷째, 인원의 규모를 자유자재로 운용할 줄 아는 조직은 승리한다.(識衆寡之用者勝) 다섯째, 장군이 능력 있고 군주가 간섭 안 하면 승리한다.(將能而君不御者勝)

반면 승산 없는 군대의 특징은 이렇다. 첫째, 전쟁터에서 죽기만을 각오하고 싸우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必死可殺也) 둘째, 반대로 오직 살기만을 생각하고 싸우면 포로가 될 것이다.(必生可虜也) 셋째, 개인적인 분노를 못 이겨 급하게 재촉하면 수모를 당할 수 있다.(忿速可侮也) 넷째, 절개와 고귀함만을 고집하면 치욕을 당할 수 있다.(廉潔可辱也) 다섯째, 어느 한 병사에 집착하면 조직을 어려운 상황에 빠뜨릴 수 있다.(愛民可煩也)

이성적이고 전략적인 사고에 기초하지 않고 감정에 치우쳐 전쟁을 한다면 그 결말은 자명하다. 이순신 장군은 전쟁에 나설 때마다 승산을 만들어 놓고 나갔기에 23전 전승의 전과를 올릴 수 있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Buffett) 역시 승산 있는 대상을 물색하여 투자하였기에 지속적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이길 수 없는 상대라면 수비에 들어가라! 이길 수 있는 상대일 때 공격하라! (不可勝者, 守也. 可勝者, 攻也)' 결국 질 싸움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중국 개혁·개방의 영웅 덩샤오핑(鄧小平)도 울분을 참고 때를 기다리며 적이 강하면 피할 줄 아는 전략적 사고를 한 인물이었다. 문화대혁명 당시 스스로 시골로 내려가, 7년 동안 트랙터 노동자의 삶을 선택한다. 인생의 방어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때가 오자 중앙 정계에 복귀하여 권력을 다시 잡았고 트랙터 공장에서 구상했던 개혁·개방 정책을 활짝 펼쳤다. 만약 덩샤오핑이 자신의 명예만을 소중히 여기고 중국이란 거대한 조직과 인민들을 외면한, 시야가 좁은 리더였다면 중국의 현실은 어땠을 것인가?

전쟁이란 공격할 때도 있고, 피할 때도 있고, 기다릴 때도 있는 아주 변화무쌍한 현장이다. 변하는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조직이 이에 유연하게 적응하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유능한 리더의 경영방식이다.

손자는 만약 형세가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면 실력을 보존해서 나중에 다시 싸울 수 있도록 하라고 조언한다. 우리 주변에는 자기 자신을 함부로 소진시키는 경영자가 의외로 많다. 시장에는 나보다 앞서가는 회사가 얼마든지 있고, 나보다 힘 센 기업도 많다. 이 때는 세상의 동향을 세밀히 살피며 발톱을 감추고 있다가 결정적인 기회가 왔을 때 공격해도 늦지 않다. 승산이 없다고 생각되면 빛을 숨기고 어둠 속에서 실력을 길러라.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다. 오로지 내실을 채우고 실력을 닦아야 할 때인 것이다.

'도광양회(韜光養晦)'의 교훈은 여기서 나온다. 제갈공명이 유비에게 "중국 천하를 위, 촉, 오 세 나라로 나누는 천하 삼분지계를 세워놓고, 오지(奧地)인 촉나라를 중심으로 때가 올 때까지 힘을 길러야 한다"고 설득한 고사다. 즉 실력을 갖출 때까지는 빛을 드러내지 않고 어둠 속에서 오로지 힘을 길러야 한다는 얘기다.

심상치 않은 세계 경영 현실 속에서 승산을 정확히 분석하고, 어둠 속에서 내실을 키워 결정적인 공격 시기를 기다리는 리더의 모습은 아름다움을 넘어 숭고하기까지도 하다. 전쟁은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백 번 모두 안 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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