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묘사한 장면은 스탠리 쿠브릭의 1968년작 SF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정답은 어렵지 않다. 과학동아
독자라면 이 남자가 어떻게 달릴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 걸 오히려 모욕으로 여길 것이다. 남자가 달리고 있는 공간은 가운데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다. 그러면 바깥쪽으로 원심력이 생기므로 가장자리 벽에 발을 딛고 달릴 수 있다. 중력은 아니지만 비슷하게 흉내낸 것이다. 미래에 우주에 거주지가 생긴다면, 이렇게 거주지 전체를 회전시켜 중력 효과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다.
영화 속에서 이렇게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한 건 감독이 스탠리 쿠브릭이요, 공동원작자가 과학적 사실에 충실한 묘사를 중시하는 하드SF로
유명한 아서 클라크이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은 중력을 세밀하게 묘사한 영화를 찾기 어렵다.
어떻게 착륙하는 행성마다 중력이 지구와 그렇게 비슷한지 놀라울 정도다. 지구보다 작은 저중력이나 지구의 몇 배나 되는 중력을 묘사하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심지어는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우주선 안에서도 사람들이 멀쩡하게 땅 위에 있는 것처럼 걸어 다닌다.
이른바 ‘인공중력’이 있다는 식이다.
반대의 이야기도 있다. 영국의 작가 H.G. 웰즈가 1901년 발표한 소설 ‘달세계 최초의 인간’에는 ‘카보라이트’라는 반중력 물질이 나온다. 이
물질은 중력을 차단한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은 카보라이트를 이용해 달로 여행을 떠난다.
우주선과 지구 사이를 가로막으면 달의 중력을 받아 이끌려 움직이고, 달 쪽을 막으면 도로 지구로 끌려오므로 둘을 적절히 조절해 우주선을 조종한다.
이렇게 중력을 원하는 대로 제어하거나 차단하는 일이 가능할까.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이형목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자연계의 기본 힘을 조종하기 위해서는 힘의 원천을 다뤄야 하는데, 원천을 그대로 둔 채 힘만 조종하는 일은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중력을 차단하는 물질도 없다.
현실 속에서 반중력이라는 말을 쓸 때는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원래 뜻이 아닌 약간 다른 의미로 쓰곤 한다. 무중력 상태처럼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나 다른 힘을 이용해 중력과 균형을 이루는 상황을 나타낼 때 쓰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기부상열차는 전자기력을 이용해 열차를 공중에 띄우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반중력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는 반중력이 아니라 반중력을 흉내 낸 데 불과하다.
그렇다면 다른 힘이 아니라 바로 중력을 이용해 중력을 상쇄한다면 어떨까. 지난해 개봉한 ‘업사이드 다운’은 이와 비슷한 아이디어를 다룬
영화다. 이 영화 속 세계는 둘로 나뉘어 있다.
서로 정반대 방향으로 중력을 받는 두 세계가 몇km의 공간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모양이다. 한쪽 세계에 사는 사람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다른 세계의 땅이 보인다. 과학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설정이다. 만약 그런 세계가 있다면 중력에 이끌려 두 세계가 부딪쳐 버릴 것이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서로 다른 중력이 작용한다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간다.
일단 말이 안 되는 설정은 잊어버리고, 영화 속 모습처럼 그렇게 두 세계가 다른 방향으로 중력을 받는다고 생각해보자. 어떤 물체가 있다면 두 세계가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길 테니, 중력이 상쇄된다고 할 수 있다. 높이 올라갈수록 다른 세계의 중력이 강해지다가 균형을 이루는 지점에 도착하면 무중력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앞서 중력을 흉내 내는 데 썼던 원심력도 중력을 상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지구보다 훨씬 무거워서 중력이 매우 강한 행성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중력이 지구의 10배라면 몸무게 60kg인 사람이 그 행성에 섰을 때 몸무게가 600kg이 된다. 웬만한 사람은 그 자리에 쓰러져 숨도 못 쉬고 죽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행성이 매우 빠른 속도로 자전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바깥쪽으로 향하는 원심력이 중력을 상쇄해 주기 때문이다. 늘어난 중력만큼 원심력이 상쇄해 준다면 사람이 평소처럼 생활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는 위도에 따라 원심력이 중력을 상쇄하는 정도가 달라진다. 자전 속도가 빨라 원심력이 큰 적도에서는 중력이 많이 상쇄되고 극으로 갈수록 원심력이 작아져 원래 중력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런 행성에 사람이 산다면 적도에서는 멀쩡하게 걸어 다니다가도 극으로 갈수록 점점 몸이 무거워지는 기이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사실 지구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차이가 미미해 느끼지 못할 뿐이다.
중력과 원심력의 합작은 더욱 기묘한 상황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바로 기조력이다. 밀물과 썰물을 만드는 힘이므로 낯설지는 않다.
원리는 간단하다. 지구에서 달에 가까운 면은 원심력보다 달의 중력이 더 강해 달로 끌려가는 힘을 받는다. 반대면에서는 원심력이 더 강해
달에서 멀어지는 힘을 받는다. 바닷물이 이 힘을 받아 움직이면서 생기는 현상이 밀물과 썰물이다.
지구에서야 평범한 일로 보일지 몰라도, 중력이 매우 강한 천체에서는 색다른 일이 벌어진다. 한 천체 주위를 돌고 있는 우주선을 생각해 보자.
우주선은 중력과 원심력이 균형을 이루는 궤도를 돈다. 그런데 중력과 원심력이 균형을 이루는 위치는 우주선의 중심부다. 천체에 가까운
부분은 중력을, 먼 부분은 원심력을 더 강하게 받는다. 지구에서라면 이 차이, 즉 기조력이 작아서 아무 문제 없이 궤도를 돌 수 있다.
그런데 중력이 지구의 1000억 배에 달하는 중성자별 주위를 도는 우주선에서는 문제가 생긴다. 기조력이 너무 강해 우주선이 양쪽으로 찢어진다. 만약 어떤 사람이 배꼽을 중력과 원심력이 균형을 이루는 위치에 둔 채 발은 중성자별로, 머리는 바깥쪽으로 두고 선다면 보이지 않는 손이 잡아당기듯이 두 동강나 버린다. 블랙홀에서는 이런 효과가 더욱 두드러진다. 기조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블랙홀에 접근하다가는 소립자 단위로 쪼개져 버린다.
또한, 중력은 시간 지연 효과를 일으킨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강한 곳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블랙홀에 접근하는 우주선은 외부에서 볼 때 점점 천천히
움직이다가 마침내는 정지한 것과 마찬가지로 보일 것이다. 그렇게 강한 중력이 빛도 가만히 내버려 둘 리 없다. 만약 중성자별이나 블랙홀
주위를 돌거나, 착륙해서 밤하늘을 바라본다면 지구와 전혀 다른 기괴한 풍경에 놀라게 될 것이다. 별빛이 중력에 휘어져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그러면 앞으로 기술이 발달해도 중성자별이나 블랙홀에 가기 어려울까. 앞에서 언급한 아이디어인 중력으로 중력을 상쇄하는 방법을 이용하면 된다. 지난 1월호 신간 소개에 실린 ‘블랙홀에서 살아남기’의 서평을 보자. 저자는 기조력을 상쇄하기 위해 훌라후프 같은 고리를 두르면 된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 고리의 질량이 매우 커야 해서 쉬운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에 나온 아이디어다.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포워드는 1980년 발표한 SF소설 ‘용의 알’에서 중성자별에 사는 생명체를 묘사했다. 물리학자답게 과학적인 사실에 충실하며, 심지어는 소설 뒤에 이론 해설과 참고 문헌이 따로 있을 정도다. 중력이 지구의 670억 배에 달하는 이 중성자별에서는 물질이 너무 압축돼 있기 때문에 원자가 전자를 교환하며 화학 반응을 하는 대신 강한 핵력에 의해 원자핵끼리 반응을 일으킨다. 이 반응은 인간 몸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에 비해 100만 배나 빠르다. 그래서 이곳에 사는 외계생명체는 인간보다 100만 배나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며 순식간에 문명을 발달시킨다.
이들의 질량은 인간과 비슷하지만, 너무 강한 중력 때문에 두께 0.5mm에 지름 5mm인 납작한 아메바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공중으로 뛰어오르기는커녕 몸을 높이 곧추세우는 일조차 어렵다. 이들을 만나러 간 지구인은 강한 기조력을 해결하기 위해 중성자별을 공전하는 우주선 주위에 훌라후프를 두른다. 우주선을 중심으로 소행성 여섯 개를 둥그런 고리 모양으로 배치한 것이다. 먼저 지름 250km인 소행성을 지름 100m로 압축해 밀도가 아주 높은 물질로 만든 뒤, 우주선 주위로 반지름 200m인 고리를 만든다. 그러면 우주선 주위의 기조력이 상쇄되기 때문에 승무원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신기한 세계를 추측해 내고 가능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까지 제시하는 인간의 상상력과 논리적 사고력은 놀랍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우주는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이 우주 어디에선가는 중력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기상천외한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과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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