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를 명문대에 보낸 임미성(53) 씨는 남부러울 것 없는 엄마다. 아들 김용균 씨는 대통령 장학생으로 서울대 수리과학부를 거쳐 경제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고, 딸 윤지 씨는 연세대 생화학과에 다닌다. 그가 가정에서의 엄마표 수학 놀이 비법을 담은 ‘수학의 신 엄마가 만든다(유아 편)’를 펴냈다. 2008년 ‘수학의 신 엄마가 만든다’, 2009년 ‘수학의 신 엄마가 만든다(초등 고학년 편)’에 이은 세 번째 책이다.
2013년부터 개정되는 초등 수학 교과서의 핵심은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이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도입되는 스토리텔링 수학은 실생활과 연계해서 생각하는 문제가 늘어나기에 기존의 요약정리, 암기식 공부로는 대처하기 어렵다. 영유아 때부터 엄마의 교육 방향과 역할이 아이의 인생을 좌우한다고 믿는 임씨로부터 스토리텔링 수학 공부 노하우를 들었다.
집에서도 거리에서도 쉽게 접하는 수학
‘너지(nudge)’란 ‘옆구리를 슬쩍 찌른다’는 뜻으로 ‘강요하지 않고도 상대에게서 원하는 선택을 이끌어내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하루하루 놀이를 통해 수학에 재미를 붙인 덕에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에게 수학은 딱딱하고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아, 옛날에 내가 했던 그 놀이”였다고.
“실생활과 연계된 모든 것이 교육 도구이고 환경이에요. 아이와 블록 놀이를 할 때도 ‘하나’ ‘둘’ 입으로 소리 내며 건네주고, 딸기 한 팩을 사서 먹으면서도 한 줄에 몇 개씩 몇 줄이 있는지 살펴보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수학에 흥미를 느끼게 하는 게 중요해요. ‘지금부터 공부 시간이야’라고 따로 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생활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거죠.”
임씨는 아이가 생활과 학습에 필요한 기본을 다지는 시기가 유아기라는 생각에 어릴 때부터 다양한 영역의 책을 고루 읽혔다. 그는 두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일주일에 한 번은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왔다.
“덧셈, 뺄셈을 잘하는 아이는 수학을 잘하지만 고학년이 될수록 응용 문제나 사고력을 요하는 문제를 푸는 데 한계를 느끼죠. 이때부터는 계산력뿐만 아니라 추론력, 종합하는 능력, 분석력, 단순화 능력, 개념을 이해하는 능력, 사고력 등이 필요해요. 이런 능력을 기르는 데 책 읽기만 한 것이 없어요. 그래서 아이에게 동시와 동요, 전래동화와 디즈니 동화, 과학 이야기, 위인전을 부지런히 읽혔어요. 책을 살 때는 내용이 좋은지, 그림이나 색상이 시각적 부담을 주지는 않는지, 어휘나 표현이 적절한지 등을 따져봤죠. 아이가 입학하기 전에 문제집 한 권 더 풀게 하는 것보다 손잡고 도서관 한 번 더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그의 책에는 값비싼 교육 도구 없이도 할 수 있는 수학 놀이가 가득하다. 나무젓가락 한 통이면 젓가락을 산가지 삼아 아이와 셈 놀이를 하며 십진법을 익힐 수 있다. 이면지와 펜만 있으면 학습지가 따로 필요 없다. 이면지에 사과와 포도 같은 과일을 두 개씩 그려두면 같은 짝을 찾는 선긋기, 짝짓기 놀이가 완성된다. 채소와 칼, 스탬프가 있으면 초등학교 고학년 때 배우는 회전체의 원리를 쉽게 익힐 수 있다.
“회전체를 가로로 잘랐을 때 원이 된다는 건 물체가 회전했다는 증거거든요. 회전체와 비슷한 건 냉장고를 뒤지면 나오는 오이와 당근, 비트 같은 흔한 채소들이죠. 이걸로 채소 도장을 만드는 거예요. 종이에 잉크를 묻혀 찍어서 어떤 모양인지 살펴보고, 썰어서 나오는 원 모양의 단면을 보여주면서 회전체를 가로로 자르면 어떤 모양이 나오는지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죠. 방울토마토는 세로로 자르든 가로로 자르든 항상 원이 나오는데, 그건 방울토마토가 오이나 당근과 달리 ‘구’ 모양이기 때문이죠.”
이동 중에 즐길 수 있는 놀이도 알려줬다.
“차를 타고 가다가 보이는 간판들로 끝말잇기를 하고, 자동차 번호판을 가지고 덧셈과 뺄셈을 할 수도 있어요. 자동차 번호판 네 자리를 두 자리씩 끊어서 더해보기, 약수를 찾아보기, 그런 건 꼭 차 안이 아니라 길을 걸어가다가도 쉽게 할 수 있는 놀이죠.”
아이의 집중력을 높이는 데 추천하는 건 미로 찾기와 숨은그림찾기, 그리고 퍼즐이다.
“조각 퍼즐과 멘사 퍼즐같이 사고력을 요하는 퍼즐 맞추기를 했어요. 스도쿠도 많이 했죠. 퍼즐할 때는 누가 빨리 퍼즐을 찾는지, 답을 빨리 내는지 아이와 내기를 해요. 아이가 유치원 마칠 때까지 가장 많이 가지고 논 장난감 중 하나는 소마 큐브였어요. 소마 큐브, 매직 큐브, 스네이크 큐브는 공간 지각 능력과 창의성을 길러줘요. 단, 하다 안 돼서 팽개치거나 처음부터 매뉴얼을 보고 따라 만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매뉴얼을 보는 순간 아이가 사고를 멈추고,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방법만 연구하게 되거든요.”
◆ 놀이로 미리 하는 수학 공부
물건 따라 그리기
아이들이 한창 그리기를 할 때는 정교함이 부족해 동그라미, 세모, 네모를 제대로 그리기 어렵다. 하지만 물체를 놓고 따라가며 그리면 형태도 갖춰지고 밑면이 어떤 모양인지 알 수 있다.
어떤 것이 더 무거울까
양팔 저울은 집에서 쓰는 굵은 철사로 된 옷걸이에 달력을 다 뜯어내고 남은 대를 이용한다. 달력의 대 양 끝에 굵은 실을 늘어뜨린 후 빨래집게를 매달면 끝. 비교하고 싶은 물건을 양쪽에 매달면 무거운 쪽으로 대가 기운다.
뒤돌아 앉아서 같은 모양으로 블록 쌓기
두 사람이 블록을 똑같이 나누어 가진 뒤 뒤돌아 앉는다. 아이가 블록을 끼우면서 자신이 어떻게 끼우는지 설명하면 엄마는 아이 설명대로 따라 끼우는 방법과, 엄마나 아이가 블록을 어떻게 쌓는지 묻고 다 쌓은 뒤 서로 비교해보는 방법이 있다.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에서 정확하게 말하는 표현력이 길러진다.
숫자를 이용한 로봇 그림
숫자를 이용해서 무엇을 그릴 수 있을까? 자기 얼굴을 그릴 수도 있고, 2자를 이용해 오리를 그릴 수도, 눈과 코를 그릴 수도 있다. 8자를 이용해서는 눈사람, 3자를 이용해서는 귀, 6자를 이용해서는 팔다리를 그릴 수 있다.
어려운 문제, 답 찾아가는 노력 보여줘야
아이와 놀다가 엄마도 모르는 게 나오면 어떻게 할까. 그는 “옥편이든 영어 사전이든 뒤져서 답을 찾는 모습을 보여주라”고 했다.
“요즘에는 스마트폰 덕분에 쉽게 검색할 수 있잖아요. 아이가 어릴 때 저도 모르는 걸 질문하면 ‘엄마도 모르겠는데 같이 찾아보자’라며 책이나 사전을 찾았죠. 밖에서 물어볼 때는 기억해뒀다가 집에 가서 ‘그거 이런 내용이네, 엄마도 새로운 걸 알았다’라고 찾아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래야 모르는 것이 있어도 스스로 찾는 습관을 기를 수 있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아이들의 질문 공세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은 뭘까.
“간혹 아이들이 그럴 때가 있죠(웃음). ‘숫자 3을 왜 삼이라고 해? 오라고 하면 안 돼?’ 그러면 ‘일종의 약속’이라는 점을 알려줘요. ‘너는 3을 오라고 말해. 엄마와 아빠는 3을 삼이라고 말한단다. 그러면 나중에 우리가 이야기할 때 의사소통이 어렵지 않을까? 이런 약속들이 세상에 아주 많단다’라고 알려줘요. 유래를 찾을 수 있다면 알려주는 것이 좋고요.”
다만 부모가 모두 교육에 열을 올리는 건 금물.
“집에서 제가 아이에게 학습 습관을 길러주는 역할을 했다면, 아이 아빠는 신체 활동, 그리고 그냥 놀아주는 역할을 주로 했어요. 요즘에는 교육에 관심 갖고 직접 지도하려는 아빠도 많으니, 그럴 때는 엄마가 음악이나 미술 활동을 아이와 하는 식으로 역할 분담이 되면 좋겠죠. 둘 다 너무 공부로만 몰아치면 아이가 갈 곳이 없어지니까요.”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를 믿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 아이도 모든 걸 다 잘하지는 않았어요. 수학 실력과 비교하면 신체 활동 능력은 떨어졌거든요. 그런데 못하는 게 분명하면 아이들은 바로 기가 죽어버려요. 그래서 부모의 믿음이 중요해요. 엄마들은 아이가 잘하는 건 당연한 걸로 알고, 잘못한 부분은 잘하라는 뜻에서 고치라고 지적하는데 아이도 인격이 있으니까 다른 사람 앞에서 비교당하면 위축되잖아요. 옆집에 ‘엄친아’가 있더라도 내 아이의 장점과 잠재 능력을 높이 사주세요. 저도 아이에게 ‘네게 이런 좋은 점이 있고, 이렇게 큰 힘이 있다’는 걸 끊임없이 이야기해줬고, 실제로 그렇게 믿었기에 좋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 공신 엄마의 어드바이스
Q. 우리 아이의 한글 공부를 언제 시작하면 좋을까요.
아이마다 발달 정도가 다르기에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아이가 말을 익히면서 글자에 관심을 두는 시기를 놓치지 마세요. 단, 너무 일찍 가르치기 시작했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것이 가장 나빠요. 공부 시작과 동시에 좌절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죠. 만 5세가 지나도록 한글에 관심이 없다면 엄마가 관심을 유도해보세요. 일부러라도 아이에게 필요한 말을 끊임없이 해주며 아이 관점에서 수다스러워질 필요가 있어요.
Q. 아이를 현명하게 혼내는 방법이 있을까요.
엄마가 기다릴 줄 알면 잔소리가 줄어들어요. 이미 벌어진 일은 잔소리하고 야단친다고 없어지지 않거든요. 물론 야단칠 상황에서는 야단쳐야겠지만, 대부분은 야단칠 때 1절만 하면 될 걸 3, 4절까지 하는 경향이 있어요. 2절부터는 잔소리라고 생각하세요. 잔소리하다 보면 아이들은 엄마 말을 안 듣게 되거든요. 아이가 어릴수록 적재적소에 필요한 말만 해서 야단맞는 이유에 스스로 승복하게 해야 해요.
Q. 아이에게 자립심을 키워주고 싶어요.
엄마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게 인내의 시간을 보내는 거예요. 아주 위험하지만 않다면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게 자립심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죠. ‘나 혼자서 이걸 해냈다’는 뿌듯함을 어릴 때 경험할수록 자신을 믿고 다양한 시도를 하거든요. 나들이할 때도 자기 물건은 직접 챙기도록 해보고, 학교에 간다면 스스로 숙제와 준비물을 챙기게 해보세요. 실수하거나 어설프더라도 이런 행동이 쌓여 자립심 강한 아이로 자라게 합니다. 아이는 실수를 통해 더 많은 걸 배우거든요.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립심과 책임감을 기를 수 있죠.
여성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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